20. 로마서 7:14-25

 

신앙의 갈등과 성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짐벨이라는 사회학자는 갈등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고, 코저는 갈등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인은 영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기 전에는 믿기 전대로, 믿은 후에는 믿은 후대로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갈등이 생기면 혹시 내 신앙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깨어 있다는 증거요, 나의 신앙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데서 오는 거룩한 갈등이기 때문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손가락이 문드러져도 아픈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나균이 신경조직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손끝에 작은 가시만 찔려도 아픕니다.

이처럼 건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아픔과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수준대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면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식을 느끼고 고민하고 갈등한다는 것은 성결하게 살고자 노력한다는 증거입니다. 청교도들은 죄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삶은 건강했습니다.

본문에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는 바울의 모습이 나옵니다. 반면에 그 문제를 해결한 데서 오는 환희와 감사도 나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수준 높은 삶을 살고자 하는 갈등과 이를 해결함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바울의 내적 갈등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미운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미워집니다. 어느 정도까지 미워지는가 하면 그가 말하는 것, 걷는 모습,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미워집니다.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데 원하지 않게 미워지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그때 우리는 심적으로 갈등하게 되고, 그런 자신에 대해 절망합니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길까요? 이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7:14).

 

우리는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신령하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우리는 율법대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바울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unspiritual)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영과 대조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8:5-9). 육신에 속한 자는 미성숙합니다(고전 3:1).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7:15).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십계명 중에 마지막 계명인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 계명에 순종하려고 했지만 마음에 온갖 탐심이 가득했습니다.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미워하는 악을 행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행한 이유는 율법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악을 행하게 하는 죄 때문이었습니다(7:16-17).

바울은 로마서 718-20절에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속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바울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된 근본 요인이 자기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자아가 있고, 이에 반대하는 어떤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7:20).

우리는 바울의 갈등을 통해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선의 성향보다 오히려 죄의 성향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악한 성향이 선한 성향보다 더 강합니다. 선을 원하는데 행동은 악한 쪽으로 갑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기가 모르고, 스스로 죄에 팔립니다. 의식과 기억, 그리고 생각이 죄에 팔립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의식하지 못하고,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은 다음에야 깨닫고는 깜짝 놀랍니다.

우리도 때로 스스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화를 내고, 갑자기 혈기를 부립니다. 그런 자신을 보면 실망하게 되고 미워집니다.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보며 우리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고 참된 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이 없어서 그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하지 않게 악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을 알면 알수록 이런 갈등은 더 심화되고, 우리가 선을 행하고자 하면 할수록 이런 갈등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면 자랄수록 갈등의 내용과 질이 달라지고,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할수록 갈등이 더욱더 깊어집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한 법(principle)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법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7:21).

 

바울이 깨달은 법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간관은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성선악설입니다. 인간이 선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또 스스로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 문제로 많은 갈등을 합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나중에 많은 상처와 배신감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인간이 선·악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을 앞두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깨어서 기도하기는커녕 쿨쿨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얼마나 낙담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낙망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의 육신의 연약함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14:38).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는 저주하며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14:71). 이때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감싸주고, 기도하게 됩니다.

또 우리가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성화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근신하게 되고 피 흘리기까지 악과 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6:13). 그때 우리는 수준 높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끊임없이 믿음의 경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했습니다. 이는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바울의 탄식

 

바울은 영적 갈등에서의 패배를 시인하고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7:22-23).

 

바울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웠습니다. 이 싸움에서 바울은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죄의 세력 앞에 여지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죄의 법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7:24).

 

반면에 바울은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를 갈망했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이는 바울의 고향 다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한 종족의 살인자에 대한 처형 방법을 마음에 두고 한 말입니다. 그 마을에서는 살인자를 죽은 사람의 시체와 함께 묶은 뒤 죽기까지 버려두었습니다. 살인자의 손과 시체의 손을 함께 묶고, 살인자의 다리를 시체의 다리와 함께 묶어 동네에서 내쫓았습니다. 살인자가 다행히 끈을 풀면 살아나는 것이고, 풀지 못하면 시체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기 몸에 묶여 있는 사망의 몸에서 누가 구원해 줄 수 있느냐고 탄식했습니다.

이런 탄식은 소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한 가지 원리, 즉 죄와 사망의 법, 육신의 법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소망의 탄식이 없습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이 똑같기 때문에 전혀 갈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갈등이 없습니다. 말씀을 보지 않아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전도하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불신자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 따라 살기 때문에 고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두 개의 법이 그 속에 존재합니다. 하나의 법은 생명의 법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법입니다. 이 두 법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갈등하게 됩니다. 갈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 그리고 믿더라도 영적으로 수준 높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수준 높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죄에 대해 민감합니다. 보통 사람이 죄로 여기지 않는 문제까지도 죄로 여기고 회개합니다.

바울을 보면 그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그의 고백도 달라졌습니다. 초기에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했고(고전 15:9), 중기에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으며(3:8), 순교 직전에는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전보다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지고, 죄로 인해 더 절망한다면 이는 믿음의 세계로 점점 나아간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오는 인간적인 갈등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영적 갈등입니다. 인간적인 갈등은 사람을 못쓰게 만듭니다. 이는 신앙 성장에 백해무익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백성들로부터 명성을 얻고, 특히 여인들에게서 인기를 얻자 시기심에 사로잡혀 일생을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데 허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뼈가 썩는 고통을 겪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갈등은 인격과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이런 갈등이 생길 때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믿기 이전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바울의 갈등은 이런 차원의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영적 갈등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를 수준 높은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바울의 감사

 

어둠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이 오는 법이요, 절망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희망이 가까이 오는 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절망 가운데 있던 바울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감격스러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주님의 은혜가 더 깊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승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찬양하는 나는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입니다. 이것은 내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내 모습입니다. 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는 나, 즉 영적 생명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생각하니 감사와 찬양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때 자학하거나 드러누워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로마서 724절에 오랫동안 머물러 탄식하고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새찬송가 280) 하고 찬송하며 울고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물론 회개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울다가 끝나는 신앙생활은 비정상적입니다. ‘오호라라는 탄식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호라는 짧아야 합니다. 갈등, 탄식, 눈물은 구원의 통로가 아닙니다. 구원의 통로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아픈 상처를 싸매주시고 슬픈 눈물을 씻어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고, 몇 년씩이나 로마서 724절에 머물러 인상을 쓰고 다닙니다. 그는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고,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립니다. 우리는 오호라하고 탄식하는 동시에 재빨리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속히 로마서 725절로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외쳐야 합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1).

 

괴로워하는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말고 즉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12:2).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가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고 주님의 구속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율법은 거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좇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하여 율법대로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절망과 탄식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말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는 회개하고(2:38), 복음을 믿고(1:15), 예배드리고(10:44), 순종해야 합니다(5:32).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새찬송가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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