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로마서 8:26-30

 

합력하여 선을: 성령의 역사 5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 등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쓴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그가 이런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가 그러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공장에서 일하며 가난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해서 구걸까지 해야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글이고, *미운 오리새끼*는 안데르센이 작가로 데뷔한 후 자신의 출신 때문에 홀대받은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입니다. 그의 삶이 작품이 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고통이었지만 그의 아픔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삶의 모든 것들이 작품의 소재요, 기회의 순간이 됩니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 길에서 많은 시련과 절망과 실패를 경험합니다. 어쩌면 성공과 기쁨보다 실패와 좌절을 더 많이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또 하나의 사역에 대해 설명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이와 같이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다른 말로 보혜사라고 합니다. 보혜사란 돕다, 함께 담당하다, 맞잡아주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나 몰라라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다 할 테니 너는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혼자 무거운 짐을 들고 끙끙거리며 나를 때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면 그 짐을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심적으로 고통스럽고 슬퍼할 때 옆에서 누군가가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성령께서 나의 좋지 못한 성격과 좋지 못한 인간성을 확 바꿔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마술사가 보자기에 손을 넣으면 난데없이 비둘기가 나오고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성령께서 마술사가 되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2000UBF 개혁의 과정에서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께서는 마술사가 아니십니다. 성령께서는 어두운 방에 전기 스위치를 켜면 전깃불이 즉시 들어와 환하게 밝히시는 그런 분 또한 아니십니다. 갑자기 영적인 거인이 되게 하시고, 초자연적인 인물이 되게 하시는 그런 분 또한 아니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두고 도우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연약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자 할 때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인격적이시고 개별적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오셨고,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연약하기 때문에 부모가 동행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놓고 돌봅니다. 한편 아이는 아이답게 있는 모습 그대로 부모에게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약한 데서 온전해지고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인간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연약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이 강하고 거룩하고 경건하고 흠 없는 자인 것처럼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연약합니까?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낙망합니다. 우리는 쉽게 정욕에 무릎을 꿇고, 쉽게 탐욕 앞에 엎드러집니다. 우리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합니다. 우리는 이해와 지식 면에서 우매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신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연약함을 절실히 깨닫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도움의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붙들어주시고, 부족하면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시고, 약해지면 건강하게 해주십니다.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주시고,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 주시고, 보호가 필요할 때 보호해 주시고, 소망이 필요할 때 소망을 주십니다. 반면에 성령께서는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함께하시지 않고 힘이 되어주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서 잘 나타납니다. 특히 어려운 일을 당해 심령이 답답하고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끙끙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여! 주여!”만 부르거나 다만 불쌍히 여겨주소서!’ 하고 외칩니다. 이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이를 가리켜 성령의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기가 울며 보챌 때 왜 그런지를 압니다.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울음인지, 배가 고파서 젖을 달라고 하는 울음인지, 어디가 아파서 우는 소리인지 금세 압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가 끙끙거리며 기도할 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 주십니다.

또 성령께서는 우리의 불완전한 기도를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가를 살피며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119:105).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우리는 하나님의 코드를 몰라 엉뚱한 기도를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하며, 재앙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환난이 극심하고 위급할 때일수록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열어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시고 무릎을 꿇게 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막힌 기도를 열어주시고, 마땅히 구할 바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엉뚱한 것을 구하게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께 자신의 두 아들을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우의정), 하나는 주의 좌편(좌의정)에 앉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20:20-22).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20:22).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기도를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바른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만 계속 먹다 보니 싫증이 난다며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 국물도 원 없이 먹었는데 광야에 와서 고기를 먹지 못해 기력이 쇠약해졌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106:15).

 

이스라엘 백성은 소원대로 원없이 고기를 먹어 돼지처럼 살이 쪘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피폐해져 영양실조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고 순종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잘못 구함으로 고기를 실컷 먹기는 했지만 영적으로 피폐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우리는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고,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성령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좋은 일, 나쁜 일, 고난, 불행, 질병, 본의 아니게 당한 일, 헤어지고 만나는 일들, 실패와 성공, 살고 죽는 일, 살면서 당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합력이란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합니다. ‘이란 실패가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영화로운 구원, 전적인 구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것,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모든 환난과 기쁨과 실패와 좌절은 다 선을 이루는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반면에 우리가 싫어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데 유익이 된다면 그것은 선이 됩니다.

우리가 사업하다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잘 믿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선이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성공을 했습니다.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사업이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데 걸림이 되고, 신앙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해서 믿음을 갖는 데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반면에 우리가 아파서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주님의 사랑을 더 사모하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더욱 넘치게 드리게 되었다면 그것은 선이 됩니다.

우리의 좁은 소견과 짧은 생각으로 보면 시험이 되고 문제가 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선한 의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구원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로써 우리를 필요한 곳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뜻을 두시고 우리의 인생을 가장 완전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좌절과 환난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완전한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성공으로 바꾸십니다. 성령께서는 쓰라린 실패와 경험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운명을 섭리로 바꾸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운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시련 앞에서도 초조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셉의 일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진실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의 시기로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으나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성추행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왜 하는 일마다 잘 안 되었을까요? 이런 사건들은 삶을 조각조각 나눠서 생각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큰 뜻을 두시고 고난 중에서 그의 내면을 연단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에 귀히 쓰셨습니다. 그는 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음을 간증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0).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부르심이란 내 자격과 내 뜻과는 상관없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 부르셨습니다. 나는 다만 그에 대해 응답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부르심은 단순히 음성이 아닙니다. 공기가 진동하는 그런 소리가 아닙니다. 부르심은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중생의 변화입니다. 부르심은 단순히 머리로만 찬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합니다(5:6). 사랑은 감정, 지식, 행동, 믿음,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속일 수 없고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쁨으로 순종하고 기쁨으로 헌신합니다. 이런 삶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증거가 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이유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까? 왜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실패함이 없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9-30).

 

로마서 829절은 영어 성경에서 왜냐하면’(for)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실패함이 없게 하시는 이유는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이 다섯 단계를 일컬어 황금 고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1단계: 아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1:4).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벌써 우리 개개인을 미리 아셨습니다.

 

2단계: 정하심

정하셨다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났든 못났든,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행위 이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좋아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왜 택하셨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하나님이 좋아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3단계: 부르심

부르심이란 예수님을 믿도록 이끄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 믿으라고 해서 우리가 믿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믿게 하셨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4단계: 의롭다 하심

의롭다 하심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고 용서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5단계: 영화롭게 하심

이는 재림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의 썩은 몸이 새 몸을 입고 부활하여 우리의 영혼과 하나가 됩니다. 이때 우리의 몸은 완전히 속량을 받아 완전무결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신령한 새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 영화롭게 된다고 합니다.

 

아시다’(foreknew), ‘정하시다’(predestined), ‘부르시다’(called), ‘의롭다 하시다’(justified), ‘영화롭게 하시다’(glorified) 등 모두 과거형입니다. 아시다, 정하시다, 부르시다, 의롭다 하시다는 이미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반면에 영화롭게 하시다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시제가 과거입니다. 이는 미래에 이루어질 영화도 이미 완성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에게는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불확실성은 불신자들이 쓰는 용어입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도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현재의 삶 속에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 천국에 가야만 이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자로 잰 것처럼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존귀합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실패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노한 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주여 나를 돌보시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새찬송가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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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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