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도행전 7:1-16

 

조상들의 행적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7:3).

 

 

사도행전 7장에는 스데반의 순교 직전의 메시지가 나오는데, 그 메시지 내용이 자그마치 52절이나 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메시지가 유대인 중심의 선교에서 이방인 선교로 바뀌는 신호가 되었으며, 연이어 바울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만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스데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였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팔레스타인에게만 계신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창조주이시고,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명령과 약속

 

대제사장은 피고인 스데반에게 심문을 시작합니다. “네가 율법을 고치고 성전을 헌다는 말이 사실이냐?” 스데반은 이때 자기를 변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복음을 변증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변증하되 부드럽고 친근하게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7:2).

 

그리고 그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선교란 내가 전하고 싶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관심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일차적인 방법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역사를 거론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자 저들이 일제히 스데반을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데반이 그리스도 예수를 이야기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7:2-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고향, 친척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이라고 해서 갔는데 하나님은 발붙일 땅조차 주시지 않았습니다(7: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물질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녀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은 오직 약속뿐이었습니다. 그 약속도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현금을 주시지 않고 약속어음을 주셨습니다. 약속어음은 현재 현금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현금으로 쓸 수 없습니다. 어느 시간이 지나야 현금 가치가 있습니다.

약속에는 인간 상호간의 수평적인 약속과 하나님과 인간, 아버지와 자녀 간의 수직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수평적인 약속은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언론에서 자살한 한 배우를 국민배우라고 치켜세웠는데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민배우라면 연기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살했습니다. 그녀는 크리스천입니다. 자살은 부모에게 불효이고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혼녀입니다. 여러 이유로 이혼했겠지만 어쨌든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은 수평적인 약속을 파기하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을 깨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 앞과 서로 간에, 그리고 주례자인 목사 앞과 하객들 앞에서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겠다고 서약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엄숙히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다시 말해 수직적인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 수직적인 약속은 해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19: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고 순종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약속에 대한 응답, 약속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했을까요? 고향에 있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까? 당시에는 고향을 떠나면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살던 고향은 우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시대의 영향을 따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우상은 달(Moon)난나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던 곳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되며 무언가 다른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 낯선 사람들과 사는 사람, 나그네(stranger)입니다. 나그네는 원주민이 아닙니다. 나그네는 원주민이 볼 때에 이상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원주민이 볼 때 나그네는 피부 색깔도 다르고, 생활양식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옷차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11:13).

 

이 사람들이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에게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본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순례자의 삶은 남모르는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세상에서 즐기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11:15). 이는 그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11:16).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그들은 본향이 이 세상 나라보다 더 아름답고, 더 고귀하고, 더 가치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더 나은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소망했습니다. 이러할 때 그들은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와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일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삶을 즐기기 위해 산과 바다로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자기를 위해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과 복음을 전하는 데 씁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헌금과 감사헌금도 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옷차림은 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건한 옷차림을 합니다. 사람들은 감정과 욕심을 따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사명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말씀을 좇아 삽니다. 사람들은 섬김 받기 위해 높아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섬기기 위해 높아지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 여자, 남자, 패션, 돈 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차원이 다른 좀 더 고상한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남의 약점을 흉보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칭찬합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만 우리는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삽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25년이 지나서야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당장 아들을 주시지 않고 왜 25년 후에야 주셨을까요? 이는 아브라함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그릇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내가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씀씀이나 모든 것이 작은 종지 같다면 하나님이 큰 것을 주셔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25년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을 키우셨습니다. 생각의 폭을 키우셨습니다. 가치관과 세계관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다운 뜨거운 심장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못 받는 것은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내가 복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미래적입니다. 그런데 그는 약속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는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수도 했습니다. 그는 엘리에셀을 자기 후사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스마엘을 낳는 실수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자체를 불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다. 아내 사라의 경수가 끊기고, 자신의 나이가 99세로 도저히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주님께서 명년 이때에 자식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습니다(4:22; 3:6; 2:23). 아브라함의 생애는 한마디로 약속을 믿고 산 생애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그 약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때 진정한 복이 있습니다.

 

팔림과 보냄

 

하나님은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나그네 되어 400년 동안 노예생활하다가 그 후에 출애굽하게 될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는 이삭을 낳아 8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 후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동생을 애굽의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 당시 한번 노예가 되면 대대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형들은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동생을 팔았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리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중에도 요셉과 동행하셨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에게 반한 보디발의 처는 날마다 끈질기게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여인의 말을 듣지도 않을 뿐더러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요셉이 시무하러 집에 들어갔다가 두 사람만 있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요셉의 옷을 붙들고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요셉은 이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가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았고, 둘째는 주인을 배반할 수 없었고,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화에는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자 그녀가 치마를 벗어 그의 우상에 씌우며 이렇게 해 놓으면 못 보지 않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요셉은 그 우상은 못 보지만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지금도 보고 계신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동행하셨습니다. 요셉은 사람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보이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고 붙잡혔을 때는 옷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보디발의 처는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요셉에게 성폭행이라는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러한 중에도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을 때 감옥도 천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39:21).

 

하나님은 요셉에게 은혜를 주셔서 억울한 누명을 참고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힘든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전옥의 도움으로 옥중 제반 사무를 맡아 섬겼습니다. 인간 요셉을 생각하면 형들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기 쉬웠습니다. 꿈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처지에서도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뜻을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형들에게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0).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신들하나님의 대조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괴롭혔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학대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이리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당신들은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형들이 나를 팔았지만 나는 팔려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리로 왔습니다. 나는 팔린(be sold) 것이 아니라 보냄(be sent)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셔서 당신들과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과 만백성을 살리시기 위해 나를 이리로 먼저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팔린 존재입니까, 보냄을 받은 존재입니까? 우리는 팔려서 왔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왔습니까? 우리는 점수에 팔려 대학에 왔습니까? 우리는 연봉에 팔려 직장에 다닙니까? 우리는 운명에 팔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습니까? 팔린 것은 노예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점수에 팔려 대학에 왔고, 돈 몇 푼인 연봉에 팔려 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운명으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 인생이 서글퍼집니다. 나란 존재가 그렇게 비참할 수 없습니다. 운명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팔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귀한 자입니다. 팔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존재! 이것이 크리스천의 존재 의미요, 목적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운명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절망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 인생이 기대가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요셉은 죄 없이 형들에게 팔려 환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사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높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무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 죄 없으신 의인 예수님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 만에 살리어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팔려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팔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팔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팔린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뜻 가운데 보냄을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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