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사도행전 14:19-2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더베 선교 및 귀환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14:22).

 

 

김홍신 작가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풀을 베면 은은한 향기로움을 풍긴다. 이는 상처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인생도 실패, 좌절, 시련, 고난에 밟혀 쓰러지면 고통이 된다. 그러나 시련은 사람을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향기롭게 만들기도 한다. 다이아몬드가 귀한 것은 갈고 닦는 혹독한 시련을 거쳐 찬란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원석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사람이 좋은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깎고 갈아내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인내하게 되고, 인내를 통해 연단이 되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5:3). 그리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8:18). 현재의 환난은 영광에 비해 경한 것이요 보이는 환난은 보이지 않는 영광에 비해 잠깐이라고 했습니다(고후 4:17-18).

본문은 제1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결산입니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에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동시에 바울은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환난 중에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성에 들어가는 바울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루스드라 도시 사람들은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부르며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루스드라에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다른 사건이 전개됩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14:19).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와서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안디옥에서 루스드라까지의 거리는 150km(안디옥이고니온 120km, 이고니온루스드라 30km)입니다. 몇 명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선동하니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금방 제사를 지내려고 하던 바나바와 바울을 향해 사람들이 돌을 던졌습니다. 얼마나 돌을 던졌는지 초주검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내다 버렸습니다.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 바울 일행을 핍박했으면 되었지 그 먼 거리까지 와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죄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고 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 살인 원정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보면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 믿는 사람을 잡기 위해 가는 그 모습이 생각납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240km입니다.

바울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던 그들이 돌변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초주검에 이르게 한 이유는 군중심리 때문입니다. ‘군중심리(crowd mind) 란 사회심리현상의 하나로,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였을 때 개별 주체의 일상적인 사고와 다르거나 혹은 같더라도 그 범위를 뛰어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군중심리는 남이 하면 자기도 하고 싶어집니다.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도 주변 사람들이 흥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여 과격하게 행동합니다. 군중심리는 군중 속에 일체화되어 자기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동인과 반응의 상승작용으로 격앙되었기 때문에 책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유대인들의 군중심리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호산나를 부르며 주님을 열렬히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의 사주를 받아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으라,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무지한 군중들은 군중심리에 이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벌떼같이 아우성을 쳤습니다. 결국 무지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은 아마도 처음부터 돌을 던져서 바울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을 던지니 바울이 기절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누구도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겁이 나서 바울을 시외로 내던져 살인을 은폐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14:20).

 

바울은 정신을 차리고 곧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옷의 먼지를 툭툭 털고 자기를 돌로 쳐서 초주검 상태에 이르게 한 그 도시로 다시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불사조와 같습니다. 세상이 이런 바울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24:16).

 

제자들을 굳게 세우는 바울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14:20-21).

 

더베는 루스드라에서 약 25km 동북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그는 아무리 박해가 있고 환난이 닥쳐도 복음 전하는 사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다음날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를 박해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는 제1차 전도여행지인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굳게 세웠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14:22).

 

바울은 그들에게 굳게 마음을 가져라. 흔들리지 말라. 이 믿음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계속적으로 믿음에 살라는 말씀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믿음 안에 계속적으로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우리가 주의 일에 힘쓰고자 하면 할수록 유혹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신앙을 굳게 하여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 받아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세상에서 잘 살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세상에서 병 낫는 3박자 구원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14:22).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예수님을 믿어 잘 살고 출세하고 병 낫고 성공하는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14:17). 하나님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벧전 1:4).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공짜가 없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대가는 환난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겪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환난(hardship)은 내적인 고민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고통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에서 오는 경제적 고통,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을 말합니다.

내적인 고민은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등입니다. 근심, 초조, 두려움, 염려는 하나님 나라에 백해무익합니다. 이런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염려, 근심, 초조는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과 영적 건강의 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시고(6:27),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6:33-34).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에서 겪는다는 것은 환난을 통해(through many hardships)라는 말입니다. 외적인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외적인 고통, 손해를 많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물질의 손해도 봐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욕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칭찬만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가짜 신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게 되면 반드시 환난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충돌이 없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양다리 걸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실하게 살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면 박해가 있습니다. 경건은 박해의 당위 조건입니다. 이런 박해에는 소망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요즈음 고3 수험생들이 대학입시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나가면 밤늦게 별을 보고서야 집에 옵니다. 어떤 때에는 불쌍하기도 합니다. 곤히 잠든 자녀를 깨워서 새벽밥을 먹여 보내려면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들을 동정하지 않고 깨워서 학교에 보냅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병대가 자랑하는 빨간 명찰과 팔각모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땀과 피를 쏟아야 빨간 명찰을 달고 팔각모를 쓰게 됩니다. 특히 해병대 장교 훈련을 받을 때 긴 육각형으로 되어 있는 계급장을 달고 훈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 계급장이 피와 땀으로 채워져야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생동안 해야 할 일의 총량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일의 총량을 채우지 못하면 늙어서 고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공부를 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면 늙어서 고생을 합니다. 우리가 젊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으면 늙어서 고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젊었을 때에 제멋대로 산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우리는 젊을 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많이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12:11).

 

이 말씀은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린 말씀입니다. 고통이 오면 즐겁지 않습니다. 고통이 오면 슬프고 서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은 고난을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에서 얻어지는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3-5).

 

그 가치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내는 단순히 참고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적극적인 인내를 말합니다. 도망갈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지만 피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인내는 연단을 가져다줍니다. 연단은 헬라어로 도키메(δοκιμή)로 금속공학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강도 높은 쇠가 되려면 불속에 여러 번 들어가야 하고 수없이 해머로 맞아야 합니다. 많이 맞은 쇠가 단단합니다. 이와 같이 많이 맞은 사람, 많은 역경을 겪은 사람이 단단합니다. 역경을 통해 좋은 품성으로 빚어집니다. 기독교에서 최고의 품성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에서 비롯되고, 그 인내는 환난에서 옵니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좋은 품성이 되어야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좋은 품성은 환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욕망은 내가 스스로 버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환난을 통해 세상 욕망이 깨지고 부서집니다. 환난을 통해 자기애를 부인하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 연약한 자가 강해집니다.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 주님께 부복하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 삶이 변하고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고난을 통해 교만한 마음이 깨지고 겸손해집니다. 주님은 세상이 고칠 수 없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고치십니다. 그 방법이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은혜의 학교요,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에델바이스는 고산 지대의 작은 꽃입니다. 그 꽃은 이른 봄, 아직 눈이 덮여 있는 추위에 꽃봉오리를 맺습니다. 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따뜻한 곳에서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약간 추워야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고귀한 꽃일수록 역경을 온상으로 삼습니다.

바울의 몸에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가시는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어지게 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찬송가 저자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새찬송가 384).

 

바울은 그들을 주님께 부탁하고, 주님의 은혜에 부탁했습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14:23).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주님이 친히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장로들을 주님께 위탁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정성스럽게 키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에 주여, 이 자녀를 돌보아주세요하고 주님께 위탁해야 합니다. 결혼도, 직장도, 자녀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바울은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함께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 등, 1차 선교여행을 보고하고 오랫동안 제자들과 있었습니다(14:24-28).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거의 죽을 만큼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그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대가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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