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도행전 9:20-31

 

사울의 첫 전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9:20).

 

 

 

사울은 진노의 그릇이었습니다. 그의 그릇에는 불의와 불순종과 유대교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의 그릇에 의와 순종과 복음을 담으셨습니다. 이제 사울은 유대교 중심에서 십자가와 부활,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데서 돌아서서 예수님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끈한 변화를 체험했지만 복음에 대해 체계적이지 못했습니다. 구약성경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약성경을 들고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 지내면서,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한 것을 성경적으로 체계화했습니다(1:17).

본문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첫째로 복음을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전해야 하고, 둘째로 광야 훈련을 통한 믿음의 연단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즉시 복음을 전하는 사울

 

사람이 삶의 방식과 목적, 그리고 가치관을 확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환인, 환웅, 단군, 이 삼신을 섬겼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지만 부처를 모신 전을 불전(佛殿)이라고 하지 않고 대웅전(大雄殿)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오자 교회를 예배당, 성당이라고 했습니다. ‘이란 사당이나 서낭당의 당에서 나온 말로, 신성한 곳을 뜻합니다. 그리고 불교를 호국 불교로, 기독교를 기복 종교로, 유교를 조상 숭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삶의 방식이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습관과 관습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결혼할 때와 이사할 때에는 손 없는 날을 택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삶의 목적이 한순간 확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대교를 증오하지도 않았습니다. 변명도 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회당에 가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했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9:20).

 

그가 복음의 비밀을 다 알아서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완전히 납득하고, 체계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믿고 확신하고 아는 것만큼 전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생하게 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다 알아야 전도하고 가르치고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아는 만큼’, ‘믿는 만큼’, ‘체험한 만큼전했습니다. 믿음의 확신은 합리적인 이론과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이론이나 지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 ‘I’ 메시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체험한 사실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삼위의 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 되셔서 역사적인 존재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동안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신령하고 영화로우신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40일간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령이나 천사로 계신 것이 아니라 영화로우신 몸으로 계십니다. 영화로우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의 대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와 늘 동행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를 앞서 가시는 대장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를 긍휼의 그릇으로 쓰십니다. 나를 돌보시고, 나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나 여전히 나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좋을 때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반드시 함께하십니다(18:20). 예수님은 죽음의 강을 건널 때에도 나와 함께하십니다.

사울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자 듣는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혹시 저가 우리를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습니다(9:21). 그러자 바울은 더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9:22). 그러자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은 당혹해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아야 전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믿는 만큼, 내가 체험한 만큼 복음을 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아라비아 광야생활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더니(9:23).

 

여기에서여러 날 지나매는 갈라디아서를 보면 아라비아 3년 광야 기간을 말합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1:16-17).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부모님에게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를 했다면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바리새인이요, 공회의원으로 잘 나가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단으로 낙인찍힌 예수교를 전한다고 할 때 부모들이 용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교직을 그만두고 대학선교회의 목자가 된다고 하니 부모님과 가족들은 용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혼자서 아라비아 광야로 갔습니다. 사울이 아라비아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기간에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약 3년 동안 영적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생활을 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이 공적인 사역을 하기에 앞서 광야에 거한 것과 같습니다(1:80).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신 것과도 같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되기 위해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란 연단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울은 3년 동안 광야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조용한 곳에 가서 구약성경의 뜻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때 그는 구약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복음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았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길게 또는 짧게 연단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주님과 더 깊은 교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기간은 더 깊은 영성을 갖추기 위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길이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빨리 가야 하는데 길이 막힙니다. 다 된 것 같았다가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은 우리가 더 훈련을 받고, 더 준비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사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련의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금방 눈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성령 충만하여 다메섹으로 돌아왔을 때 꽃가마가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켰습니다(9:23-24). 박해하던 사울이 박해받는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더구나 그를 죽이려는 세력까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죽이려고 하던 자가 오히려 예수님을 위해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변해도 확실하게 변했다는 증거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확실한 보증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광야에서 3년 동안 훈련 받고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오히려 박해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제자들을 통해 밤에 광주리에 담아 성 밖으로 달아 내리게 해서 죽음을 피하게 하셨습니다(9:25). 사울은 이를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 11:32-33).

 

사울은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했습니다(고후 4:8). 그러나 그는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았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방이 깜깜하면 할수록 하늘에 별빛이 보이듯이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창문을 열어 바울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때에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희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글에 보면 수용소에서 너무 혹독한 고통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보니 사람들이 고통으로 죽는 것보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 조그마한 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한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창 너머를 본다고 해봐야 회색 담벼락밖에 더 없지 않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회색 담벼락 너머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푸른 하늘을 보십시오. 밤에도 빛나는 저 별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는 절망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후에 유명한 의미치료(logotherapy)법을 개발했습니다.

지금 한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의 취업문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남북문제가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이보다 더 혹독한 시련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련들을 이겼습니다. 지금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50, 60년대의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보다 더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려울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구원의 창문을 통해 우리에게 비치는 구원의 하나님, 희망의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사방이 캄캄해지면 구원의 창문이 열려짐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현실의 어둠을 넘어 구원의 창을 열어 놓고 계십니다. 우리는 구원의 창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봐야 합니다.

 

영화로운 시온성에 들어가서 다닐 때 흰 옷 입고 황금 길을 다니며 금 거문고 맞추어서 새 노래를 부를 때 세상 고생 모두 잊어버리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의 못 자국을 보아 알겠네”(새찬송가 240)

 

동역자 바나바를 만나는 사울

 

사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다메섹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예루살렘에 올라와 제자들을 사귀고자 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사귀려고 했지만 제자들은 사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때 누가 사울을 도왔습니까?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9:27).

바나바가 사울의 보증이 되어주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담대히 전한 일을 말하며 변호해주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눈물 날 정도로 바나바에게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본래 요셉이었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유무상통할 때 밭을 팔아서 사도들 발 앞에 둔 사람입니다(4:36). 사도들은 그에게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요셉이란 뛰어나고 개성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요셉을 볼 때에 그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심성이 있었기 때문에 바나바’, 즉 돕는 자, 위로하는 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울을 아직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바나바는 이렇게 사람을 품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믿고 세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인정하고 섬기고 베풀며 보듬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아나니아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또한 바나바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런 만남을 통해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 인류 문화를 바꾸는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요 변증가요 학자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운명이 바뀝니다. 사람은 세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승, 친구, 배우자입니다.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란 시가 있습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 다오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20세기 위대한 목자 존 스토트 뒤에는 멘토이자 스승인 배쉬가 있었습니다. 청년 시기에 하나님을 만나고, 좋은 멘토를 만나고,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만나고 좋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야 합니다.

사울이 바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또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할 때마다 그에게 핍박과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핍박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항상 나타나는 공식입니다. 형제들은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고향 다소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습니다(9:31). 어떤 여건 속에서도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박해자에서, 박해받는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광야 훈련을 통해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동역자 바나바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광야 훈련을 통한 믿음의 연단과 좋은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을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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