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로마서 8:18-25

 

미래의 소망: 성령의 역사 4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바울은 구원의 과거적인 측면인 의롭다 하심과 구원의 현재적인 측면, 곧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되는 성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본문에서 미래의 소망, ‘영화에 대해 설명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영광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소망과 소원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소망은 약속에 기초한 것이고, 소원은 욕망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 근거가 다릅니다. 소원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출발해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은 소망의 유무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소망이 있으면 어떤 역경과 시련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소망이 없으면 작은 시련에도 쉽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인간은 헬라어로 안스로포스(ἅνθρωπος), 위를 바라보라의 합성어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손에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내일의 소망을 바라며 내일을 향해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바울은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었습니다(고후 11:23-27). 그런 중에도 그는 장차 누릴 영광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현재의 고난을 감당해야 하고, 성도의 참된 소망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8:1-17). 이 사실은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고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은 돈을 숭배합니다. 세상은 섬김받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은 권세를 잡아 지배하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은 거룩함과 성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눔과 배려, 그리고 헌신된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니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세상과의 충돌은 필연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과 싸워 이기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끝까지 미워하고 희롱하고 조롱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27:40, 43).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고난이 필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명을 감당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주님이 고난을 받으셨는데 주님의 종들이 어떻게 고난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15:20).

 

예수님은 성도가 핍박받는 것을 예수님이 핍박받는 것과 동일시 하셨습니다(9:4-5).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동일하게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이때 세상은 고난을 받지 않게 해주겠다며 감언이설로 미혹합니다. 특히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을 면해 주겠다. 고난 없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겠다하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도리어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딤후 3:12). 주님은 엠마오로 낙향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4:25-26).

 

고난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베드로는 후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고난은 현재의 고난을 말합니다. ‘현재는 주님이 부활하신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시간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전 과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한 일생 동안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2, 3차 모임에 가지 않거나, 각종 이권 개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난입니다. 늦잠 많은 사람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 또한 고난입니다. 순교당하고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것만이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어려움이 현재의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요, 현재의 고난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고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생각하건대란 여기다, 고려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따로 없습니다. 곧 현재의 고난을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내일을 내게 주세요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였던 1950, 중부전선에서 헤길스라는 미 종군 여기자가 아침에 깨어 보니 미군들이 밤새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설원 위에 흑인 병사 한 사람만 대열에서 이탈하여 내동댕이쳐진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여기자가 흑인 병사를 깨우는 순간, 발아래에 중공군이 벌 떼처럼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5분 후면 죽어야 할 운명을 맞이한 것입니다. 여기자는 흑인 병사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지금 내게 무엇을 부탁하겠습니까?”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여기자는 이 장면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고, 전쟁이 끝난 후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희망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를 기초로 정립한 것이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의미치료 이론입니다.

우리에게 밝은 미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밝은 내일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의 차이를 알라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을 무게와 시간으로 비교했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현재 당하는 환난은 영원한 영광에 비해 경한 것이요, 보이는 환난은 보이지 않는 영광에 비해 잠깐입니다. 그렇다고 고난이 무겁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고난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고난이든, 그 고난이 크든 작든 고난은 고난이요, 고난은 실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면 그 고난이 크든 작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큰 고통과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이 닥칠 때 고통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또는 그 고난을 없애기 위해 어떤 것에 몰두해 보기도 합니.

그러나 이런 행동은 통증이 있을 때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통제를 복용하면 통증이 잠시 사라지지만 그 기운이 떨어지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바울은 고난이 있을 때 그 고난의 무게와 영광의 무게를 비교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고난은 순간이지만 영광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가 현재의 아픔과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떠나온 고향과 하나님이 지으시고 세우신 하나님 나라를 비교해 보았고, 이는 비교할 대상이 아님을 깨달은 데 있습니다(11:15-16).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상은 세상 그 어떤 상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하고 값진 것임을 그는 알았습니다(11:26).

사도 요한은 늙어서 밧모섬에 갇혔습니다. 그의 앞에는 환난과 역경, 그리고 극한 시련이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는 그런 중에도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희망과 최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차 누릴 영광이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때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사자의 밥이 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도 찬송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장차 받을 승리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이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에는 카타콤이라는 지하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의 총 길이는 560km나 됩니다. 그리고 터키의 갑바도기아에도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하에서 태어나 태양 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고난이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대상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이 현재 받고 있는 고난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소망 중에 참고 기다려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8:24-25).

 

영광의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것입니다. 이 소망은 보이지는 않지만 참된 소망입니다. 보이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만이 참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크고 영광스럽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임할 영광을 바라며 참고 기다리면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다고 해서 중도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참는 자만이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과 신자의 탄식

 

피조물의 탄식

현재의 고난은 순간이지만 장차 받을 영광은 영원합니다. 장차 받을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는 피조물까지도 고대합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19-21).

 

고대하다란 목을 길게 내밀고 안타깝게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말 못하는 산천초목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여 썩어질 것에 종 노릇 하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피조물까지 저주를 받았습니다(3:17-18).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 지음받았기 때문에 인간과 운명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피조물은 하루속히 하나님 자녀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열망합니다.

우리가 볼 때 피조물의 세계는 겉으로는 아름답고 평온하고 자유로운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면세계를 보면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으로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힙니다. 서로에게 천적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 동산은 겉으로 볼 때 숲이 우거지고 새가 노래하지만 그 이면세계를 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장미꽃 뒤에는 진드기가 있습니다. 피조물은 인간의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탄식

피조물 뿐만 아니라 우리까지도 몸의 속량을 기다립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나타나는 첫 열매를 뜻합니다. 첫 열매는 추수의 시작이자 완전한 추수가 머지않았음을 나타나는 보증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몸이 아직 속량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다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의 육신은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고대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마지막 날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 중에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13:36).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순식간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3:4).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남은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주와 영원히 함께하게 됩니다(살전 4:16-17). 바울은 인간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까지도 구속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가 회복되는 놀라운 소망을 보았습니다. 일찍이 이사야는 만유가 회복될 낙원을 보았습니다(11:6-9). 사도 요한도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심으로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비전을 보았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1-4).

 

우리는 장차 나타날 만유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합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을 소망합니다. 그 소망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이 소망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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