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로마서 8:31-39

 

구원의 확신: 성령의 역사 6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썩어질 육신의 몸을 장차 영화롭게 하실 것이 아니라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영화로운 삶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랑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어떤 논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8:31).

 

이는 기쁜 심정의 극치입니다. 사람은 감격하게 되면 말문이 막힙니다. 지금 바울의 심정이 그렇습니다. 이 말속에는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했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본문은 사랑의 찬가입니다. 모두 다섯 가지 질문이 나오는데, 이 질문들은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확신을 심어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전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가 그것입니다. 이 전제들은 하나님께 대한 확고부동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질문은 우리의 믿음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흔드는 의심, , 생명의 위협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들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붙들 때 오히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구원을 흔드는 의심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면 의부증(疑夫症)이라 하고,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疑妻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의천부증(疑天父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첫 사람 아담을 미혹하여 넘어뜨린 사탄은 우리에게 의심을 심어주어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일이 잘 안 될 때 마음에 의심과 회의를 심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 같다. 꼭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사탄의 미혹을 받게 되면 의천부증이 생깁니다. 이 병은 신앙의 연륜이 깊은 사람도 걸릴 수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우리를 위해 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심은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그 아들인 이삭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삭이 장성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땅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는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사입니다. 아브라함은 명령에 순종해 이삭을 데리고 가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명령하셨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독생자까지 번제로 바칠 만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들을 바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소중한 것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아들은 생명보다도 훨씬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아브라함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고,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주셨습니다(5:8, 10). ‘내주셨다’(gave up)란 포기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아끼고, 가장 귀히 여겼던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독생자 예수님을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희생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독생자까지도 내어주신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위해 내어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습니다. 큰 것을 주면 그보다 못한 것을 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내어놓으면 그보다 덜 귀한 것을 내어놓는 것쯤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나머지 부분들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값없이, 너그러이 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죄 사함은 물론 모든 것을 다 받았다는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십니다. 지혜가 필요해서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믿음이 필요해 믿음을 구하면 믿음을 주십니다. 사랑이 필요해 사랑을 구하면 사랑을 주십니다. 물질이 필요해 물질을 구하면 물질을 주십니다. 핍박받을 때 핍박을 이길 힘을 달라 하면 핍박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흔드는 죄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 몰라도 자기 자신은 그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참 간사합니다. 금방 웃다가도 금방 슬퍼집니다. 금방 좋았다가도 금방 심각해집니다. 이처럼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넘어집니다. 우리는 쉽게 정욕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절망합니다. 우리는 쉽게 물욕과 권력과 명예욕의 덫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럴 때 마귀가 찾아와 우리의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켜 구원의 투구를 벗기고자 합니다.

너는 죄를 지었으니 이제 구원은 틀렸다. 너 같은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어. 너같이 세상을 사랑하고 정욕에 쉽게 무릎을 꿇는 자가 구원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때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6:17). 투구의 역할은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8절을 보면 소망의 투구라고 했습니다. 소망은 인내를 가져옵니다. 인내는 마침내 승리를 가져옵니다. 구원과 소망의 투구를 가질 때 우리는 의심을 심는 마귀의 궤계에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마귀는 가까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우리를 송사합니다. 이런 마귀의 속삭임을 듣다 보면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누구도 우리를 고발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8:33).

 

누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할 수 있습니까? 누구도 우리를 고발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고(1:4),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되 짐승의 피로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 하셨습니다(9:13-14). 그런데 누가 우리를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 법정에서 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미 무죄 선고를 내리셨는데 누가 우리를 다시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고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송사하여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우리를 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때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3-35절을 보면 누가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바울은 누가 우리를 고발하고, 누가 우리를 정죄하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

 

때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53:6, 12).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현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의 영적 생명도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습니다(2:6). 그런데 어떻게 구원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다섯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간구하다란 중보기도를 뜻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을 때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십니다(7:25).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어 끊임없이 우리를 변호하고 계십니다(요일 2:1).

 

우리의 구원을 흔드는 생명의 위협

 

우리는 생명이 위협받을 때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이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8:35).

 

핍박과 환난이 구원을 위협합니다. 곤고가 구원을 위협합니다. 박해가 구원을 위협합니다. 기근과 적신이 우리의 구원을 위협합니다. ‘환난이란 로마 시대에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했던 트리볼룸이라는 타작 기구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도리깨와 같은 것입니다. 땅에 곡식을 널어놓고 도리깨로 힘껏 계속 내리치면 곡식알들이 떨어집니다. 환난은 마치 성도들을 눕혀놓고 도리깨로 계속 내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곤고란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좁은 독방에 갇혀서 혼자 있게 되면 그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기근이란 굶주림을 뜻합니다. ‘적신이란 헐벗음입니다. 옷을 벗겨 수치를 주는 핍박의 형태입니다.

당시는 예수님을 믿으면 즉시 위험이나 칼의 핍박이 왔습니다. 광야로 쫓겨나거나 지하 동굴에서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다고 표현했겠습니까?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8:36).

 

초대 성도들에게는 불 시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무서운 핍박이 있었습니다.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는 혹독한 시련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금 우리에게 닥친다면 우리는 믿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작은 시련과 신음 앞에서도 구원이 흔들리고 부르심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바울은 인간의 힘으로 이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 승리한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했습니다. ‘넉넉히 이긴다’(more than conquerors)란 압도적인 승리를 말합니다. 이는 아마 로마의 승전한 장수들이 아피아 가도를 행진하며 수많은 백성들로부터 열광적으로 환호받는 모습을 상기하며 했던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극한 시련과 역경 중에서도 이기고 또 이길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와 같은 참혹한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개척 초기에 핍박을 받기는 했지만 도살할 어린 양처럼 참혹한 핍박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작은 시련도 자기 자신에게는 큰 시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지만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핍박과 시련을 겪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이런 사랑의 확신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간증이 우리의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이 세상의 어떤 시련과 역경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안이숙 사모의 *죽으면 죽으리라*에 의하면 그녀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6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다가 6년간 참혹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후 8·15해방과 더불어 출옥했습니다. 그녀는 출옥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자격이 부족하여 실격된 순교자다. 진실로 나는 내 주님 예수를 위하여 죽기를 결심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회를 잃었을 때 섭섭하여 몹시 울었다.”

그녀는 주기철 목사처럼 순교의 길을 가지 못한 것이 원통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녀를 넉넉히 이기게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믿음의 순결을 지키게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힘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넉넉히 이기게 합니다. 바울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우리에게는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불신이 우리를 대적하고 사망 권세가 우리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사망이나 생명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를 이간하기 좋아하는 악한 천사와 권세자들(demons)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환난도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장래 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능력이나 표적도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구원을 끊을 수 없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운명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시공간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이나 환난뿐 아니라 좋은 것들도 우리의 구원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것들도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풍요로운 삶, 세상의 권세와 명예, 달콤한 사랑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고, 우리를 고발할 수 없고,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믿는 자들은 태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집힌다 해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환난을 당해도 기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118:6).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셨네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듯이 나도 너를 사랑하며 섬기리”(복음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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