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로마서 1:7-13

 

감사와 기도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

 

 

칼 바르트의 사랑론에 의하면, 사랑에는 네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보고 싶은 단계입니다. 사랑은 늘 생각나게 하고 그립게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마주 보는 단계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눈과 눈이 서로 마주치게 됩니다. 눈 속에 서로가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다 주는 단계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주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아깝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주고 싶습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주고 싶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주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주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만일 준 것이 아깝다고 느낀다면 그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좋은 길을 얻어 로마에 가서 성도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가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그만큼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로마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1. 로마 성도들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1:7).

 

당시 로마는 법의 원천, 문명의 중심지, 시인들과 웅변가들과 예술가들의 성지였습니다. 로마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포의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 편지를 기록했던 시기(주후 58년경)에는 네로의 핍박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 공포의 도시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을 두 가지로 묘사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존귀한 존재입니다.

둘째,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도란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거룩한 백성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귀빈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신분에 걸 맞은 거룩한 품성, 높은 도덕성을 가진 주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 로마 교회를 세웠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을 달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에 로마의 유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베드로의 메시지를 듣고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이 세운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선교철학은 남의 터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5:20). 중요한 것은 누가 복음을 전해 로마 교회가 세워졌느냐가 아니라 복음이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은혜는 헬라인들의 인사 표현으로 하나님이 죄인을 값없이 의롭게 하셨다는 것이요, ‘평강은 히브리인들의 인사로 은혜의 결과입니다. 특히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2. 바울의 감사

 

바울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장 먼저 로마 성도들이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믿음이 자라고, 그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1:8).

 

먼저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요구하기에 앞서 우선, 먼저 감사했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천사 둘을 부르시고는 각기 바구니 하나씩 들려주시면서 지상에 내려가 무엇인가를 담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한참 후에 한 천사가 올라왔는데 그 바구니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옆구리가 터져 있었습니다. 천사는 바구니 밖으로 넘쳐 떨어지는 것들을 다시 주워 담느라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리고 바구니가 너무 무거워서 천사는 그만 허리디스크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바구니의 이름은 소원 바구니였습니다.

다른 한 천사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만 올라오라고 휴대폰으로 호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는 그렇게 오랫동안 돌아다녔는데도 바구니를 채울 수가 없어 텅텅 빈 바구니를 들고 올라왔습니다. 그 바구니의 이름은 감사 바구니였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구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부터 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생각할 때 그 입에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먼저 흘러나왔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더라도 바울이 성도들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감사였습니다(1:3-4). 바울의 마음속은 늘 감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살전 5:18).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그 악한 황제의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킨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쾌락과 물질의 세력이 소용돌이치는 풍랑처럼 젊은이들을 유혹해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캠퍼스 주변에서 술에 취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의 등에 업혀 가고, 남학생들이 술에 취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오직 장래 취업 준비를 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캠퍼스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청년들이 있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며 형제자매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섬기는 서정욱 형제(인하대 CMI 동아리 회장)의 믿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선교사들의 믿음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또한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소식을 들을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어두운 북한 땅에 믿음의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이들의 소식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의 소식을 들을 때 형제자매처럼 지극히 사랑스럽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성도들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감사하고 귀한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4).

우리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고, 우리가 돕는 형제자매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은 가장 먼저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로버트 에먼스와 마이클 매컬로의 연구에 의하면, 매일 적어도 다섯 가지씩 감사제목을 찾아 일기를 쓰면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져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

 

3. 바울의 기도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로마 성도들의 믿음으로 인해 감사하고 난 다음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

 

바울은 쉬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만큼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기도의 증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세상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귀한 사랑의 고백은 없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기도입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니카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방탕한 그를 위해 3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수잔나는 아들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했을 때 그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잘못했을 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했습니다. 부모가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자녀들은 곁길로 가지 않습니다. 설령 곁길로 가다가도 오늘도 나를 위해 엎드려 기도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여 그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그 자녀는 절대로 그릇된 길로 가지 않는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과 어떤 인격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와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다음 세대에 살아갈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사회는 성윤리가 극도로 타락해 성매매 관련 업소가 분식집보다 더 많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유혹의 덫이 그들을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믿음으로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하나님 뜻 안에서 좋은 길을 얻어 로마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10).

 

하나님의 뜻은 진리, 사랑, 긍휼, 용서, 자비, 겸손, 희생, 섬김 등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교만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용서로 분노를 이기는 것입니다. 인내로 조급함을 이기는 것입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내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로마에 가고자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뜻을 찾지 않았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할 때마다 길이 막혔습니다(1:13, 15:22). 이때 그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며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안에서 좋은 길을 찾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뜻을 찾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27-28).

바울의 삶이 영광스러웠던 이유는 매사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4.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하는 이유

 

은사를 나눠주어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1).

 

신령한 은사란 무엇입니까?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καρσμα), 즉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부흥회 광고를 보면 이곳에 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은사를 마치 사람이 주는 것인 양 선전합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은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12:6; 고전 12:11; 4:11).

본문에서 신령한 은사는 복음을 가리킵니다(1:15).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의 믿음이 견고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믿음이 온 땅에 알려져 있지만 이는 로마 문화에 오염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는 아직 신앙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고, 성경에 기초한 복음 진리가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기초한 신앙을 정립해 복음을 분명하고도 체계적으로 증언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변증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지만 믿음을 견고하게 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한 번 회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때 장성한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어린아이는 장성하기까지 양육과 교육과 훈련과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4:13-14).

 

우리는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복음의 신비를 아는 것에 있어서 매일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새로워지고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고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12).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안위를 받고, 그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으면서 안위함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도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대하지 않고 서로 은혜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은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배우는 양방향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고, 양들과 성경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웁니다. 우리 주위에는 랍비들이 많습니다. 둘이 있는 곳에는 스승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이는 실패한 교육입니다. 내가 가르치면서 무엇인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참된 교육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완벽해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알아서 완벽해져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 보면 복음의 신비를 알게 되고, 복음의 신비를 알게 되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확신이 생기고, 확신이 생기면 복음을 더 열심히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벽해야 교회에 봉사하고 직분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직분을 맡아 일을 하다 보면 배우게 되고, 배우다 보면 믿음이 자라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되면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조지아에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선실에서 모라비안 성도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들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믿음을 얻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 믿음이 있으면 그 있는 것으로 전하시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열매를 얻으려고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13).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불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서 복음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19:8-20). 이 열매는 구원의 열매’(fruit, harvest)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열매가 로마 교회에도 있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열매 맺기를 원했을까요? 그 이유는 세계복음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로마가 그리스도께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교 전략상 로마 선교는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가 복음화되지 않고는 기독교가 세계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바울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는 불경건의 도시, 각종 신상과 우상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결국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죄수의 몸으로 주후 61-62년에 로마에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서 3, 4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주후 64-65). 당시 로마의 전 인구가 120만 명쯤 되었는데, 그중에 그리스도인은 약 2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카타콤은 100만 명이 숨어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결국 로마는 주후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기독교를 공인했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는 세계화되었습니다.

오늘의 로마라 일컫는 미국은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교회를 세웠고, 그 다음에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제2세대에 이르자 그들은 제1세대의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1700년대 유럽의 과학 문명과 합리주의 사상이 미국 교회를 휩쓸었고,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었습니다.

이때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대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217절 말씀을 붙들고 영적으로 잠든 미국을 깨우려면 먼저 대학생들을 깨워야 한다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1734, 노샘프턴 수양회에서 젊은이들이 교만과 거짓과 각종 죄악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청교도 제1세대들의 순수한 믿음이 회복되었고, 영적으로 잠든 미국이 깨어났습니다.

이 각성운동의 영향으로 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자유주의 사상으로 세속화된 하버드 대학을 대신해 프린스턴 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를 시발점으로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코넬, 다트머스 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이 영향으로 로버트 와일더에 의해 학생자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구호는 우리의 세대에 우리의 손으로 세계를 복음화하자였습니다. 그들은 1886년 무디 목사를 모시고 251명이 참가한 가운데 헬몬산 수양관에서 세계선교라는 주제로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참석한 학생들이 마가복음 1615절 말씀을 영접하고 회심했는데, 이것이 학생자원운동의 시발점입니다. 1889년 한국에 첫 학생 선교사로 와서 1893년 평양숭실전문대학과 평양신학교를 세운 사무엘 마펫도 SVM 출신입니다.

1970, 80년대에 한국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청년 대학생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군사 독재 정치로 인해 이 땅에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죄 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망이 없는 조국의 현실 앞에 좌절하지 않고 복음을 붙들었습니다.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열기가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여름수양회 때는 한밤중에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계곡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이 땅에 임하도록 합심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모기에 물려 병원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한국 캠퍼스의 복음화와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 청년 대학생들이 한국 교회와 캠퍼스를 이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깊은 영적인 잠을 자고 있습니다. 캠퍼스와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사는 길, 한국이 사는 길은 젊은이들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올 때 한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학 캠퍼스 선교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청년 대학생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적인 열매를 맺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살아나고, 캠퍼스가 살아나도록, 더 나아가 통일 한국과 열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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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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