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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26, 5:1-32

 

참된 예배 :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4:4).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을 벌거벗긴 채 내쫓지 않고 가죽옷을 입혀 내보내셨습니다. 에덴 동산과 생명나무를 없애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이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22:1-4).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이 장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과 그 후예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아벨의 믿음과 셋의 후예들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에 대하여, 죄를 범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죄를 범한 가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1. 가인과 아벨의 제사(4:1-4)

 

낙원을 상실한 아담과 하와는 실낙원에서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아들의 이름을 가인이라 했습니다. 이는 얻음이란 뜻입니다. 하와는 산 자의 어머니로 아들을 낳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4:1)라고 간증했습니다. 또 시간이 지나 아담과 하와는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습니다. 이는 허무란 뜻입니다. 아담이 아들의 이름을 아벨이라고 한 것은 가인의 행실을 보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반대로 소망을 갖고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두 아들이 각기 장성하여 가인은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목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각각 소출을 얻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제사란 하나님이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마련하신 제도입니다. 제사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 제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어 후에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여기에서 볼 때 하나님은 제사라고 하여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제사를 받으십니까?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11:4).

 

아벨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물뿐만 아니라 아벨의 믿음과 그 인격과 그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물 자체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의 마음과 인격을 원하십니다.

이사야서 1장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마음 없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물만 드리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곤비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드리는 제사를 받으십니다. 믿음으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기준으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가인은 자기 중심으로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중심의 예배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개인기도와 성경읽기 등을 소홀히 여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원하십니다(삼상 16:7; 요일 1:9-10).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삼상 15:22-23).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51:17).

이 말씀은 다윗이 충성스런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장에 보내어 죽인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통회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보다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십니다.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기도와 예배를 받으십니다.

누가복음 1810-14절을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8:11-12).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8:13).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를 받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18:14).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상한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 긍휼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마음으로 드린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산제사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은 일체의 지체, 즉 눈, , , 팔다리, 더 나아가 인격, 지식, 감정, 의지 등을 포함구체적인 생활이요, 현실이요, 실제적인 삶의 전부를 뜻합니다. 산 제물’(a living sacrifice)이란 삶의 전부를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영적인 예배는 합당한 예배란 뜻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토저는 바른 예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는 사람들의 손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손으로 드려지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어 우리에게 왔다가 우리를 거울 삼아 반사되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종교적인 체험과 아름다운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할지라도 진리와 성령님이 계시지 않으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 전체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

예배란 영어로 ‘worship’인데, 이는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예배를 인간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기념비적이고, 가장 긴박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진리란 거짓의 반대로, 말씀에 기초하여 마음과 성품과 온몸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6:5). ‘이란 가장 높고 깊고 가장 귀하게 예배드리는 마음을 말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란 바로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을 보면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전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번제단이 있기 때문에 양과 소를 잡는 일로 시끄럽습니다. 성소에는 등대와 진설병과 금향단이 있습니다. 이곳은 제사장들이 봉사하는 곳입니다. 지성소는 속죄소가 있는 곳으로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예배당에 오더라도 성전 뜰에서만 어슬렁거리다가 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마당만 밟는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마당만 밟는 사람은 사교적으로, 자기 유익을 좇아 교회에 오는 사람입니다. 성소까지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매너리즘에 빠져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습니다. 참된 예배란 지성소,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아가 하나님께 자기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피의 은혜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은 사교장이 아니며, 자기 꿈을 채우는 야망의 장 또한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당입니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예배는 식어진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란 믿음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기준으로,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찬송가 317).

 

2. 가인의 분노와 가인을 찾으시는 하나님(4:5-8)

 

가인의 분노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가인의 표정이 어떠했습니까?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4:5).

눈은 마음의 창이요, 얼굴은 마음의 표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를 볼 때 그의 내면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가 이렇게 분을 내고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면 감사하고, 받지 않으시면 회개하고 다시 드리면 됩니다. 제사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편애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주권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2:7-8, 11). 가인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고 분을 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분노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들이 생깁니까?

 

첫째,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영접하지 않을 때 원망과 불평을 하며 하나님께 대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살게 되면 매사 감사하게 됩니다. 욥기에 나오는 욥은 순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탄의 시기로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축복의 날이나 환난의 날에도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어머니가 네 명이나 되었으며 열 명의 배다른 형들 틈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는 깨어진 가정에서 비운의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절망하거나 운명의 사슬에 매이지 않고 자신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면 매사에 생각하는 것과 가치관이 달라지고 내면에서 시와 찬미와 감사가 흘러납니다. 어떤 형편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시기심이 생깁니다.

사람이 주권 신앙을 영접하지 않으면 시기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자 가인은 불신앙과 시기심을 드러냈습니다(요일 3:12).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아벨과 비교하여 아벨을 시기했습니다. 시기심은 하나님 앞에 살지 않고 사람 앞에서 살기 때문에 생깁니다. 시기심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시기심은 살인을 가져옵니다. 시기심은 내면의 썩음과 같습니다(14:30). 시기심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다윗과 사울이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람 앞에서 살았습니다. 하루는 전쟁하고 돌아오는데 여인들이 춤을 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29:5)라고 노래했습니다. 사울은 여인들의 노랫소리에 비교의식이 들어 시기심이 생겼고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울은 일국의 왕이었지만 시기심과 비교의식으로 내면에 평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기심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에 겸손히 순복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가인을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분을 내고 있는 가인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6-7).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아시고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죄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고자 투쟁을 해야 합니다.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12:4). 그렇지 않으면 사단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마음의 문에 앉아 있다가 머리를 쳐들고 우리의 발꿈치를 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16:3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의 못 박힌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66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우리의 옛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온전히, 영원히 새 생명이 되었습니다(9:11-15). 이 생명은 지금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습니다(2:6).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3:2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이유는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입니다. ‘죄의 몸이란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영향력을 말합니다. ‘멸하다는 영어로 destroy, 무력화시키다, 효력이 없게 하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무력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지만 죄가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 줄을 믿어야 합니다.

죄가 우리를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다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줄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6:8).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라”(6:10).

셋째,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6:11).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다는 말은 영어로 reckon(KJV)으로, 간주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믿으라는 단어보다 더 강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체험과 상관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과 세상을 바라보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두려워서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암벽을 오를 때 끝까지 위를 보면서 오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오르다가 무섭다고 밑을 내려다보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추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간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힘써 좇아야 합니다. 이를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성화는 내 육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

정욕의 흉흉한 파도와 상대주의의 물결, 물질주의의 거센 광풍이 우리를 순식간에 삼켜버릴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성령을 힘써 좇을 때 죄의 유혹에 떠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4:8).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을 때 가인은 더욱더 완악하여 시기심에 불탔고, 시기심은 미움의 감정으로, 미움의 감정은 증오의 감정으로, 증오심은 마침내 살인을 불러왔습니다. 이로 인해 최초의 순교자와 살인자가 생겨났습니다.

요한일서 211절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미움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11-12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예수님은 형제에 대해 분노하거나 욕하고 무시하는 것조차 금하셨습니다. 그것은 형제를 죽이는 살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형제에 대한 미운 감정과 무시하는 마음, 그리고 시기심이 생기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3. 가인의 죄와 하나님의 사랑의 표(4:9-15)

 

가인의 죄

 

하나님은 죄를 범한 가인을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4:9)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 손에 아벨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여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자신의 죄를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아우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다니! 이런 망할 놈이 있나!”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으셨습니다.

그때 가인은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며 인상을 쓴 채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살인을 은폐하고 위증까지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에 나는 농부요, 아벨은 목동인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며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했습니다. 여기에서 볼 때 아담의 속성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라면, 가인의 속성은 하나님께 대한 반항심입니다. 이처럼 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오늘날의 시대를 일컬어 이유 없이 반항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면 어리석은 사람이요, 주체성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불순종하는 사람을 주체성 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인간 마음속에 가인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성장이 없고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반드시 불순종과 반항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적하고 반항하는 가인에게 현장 검증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4:10).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가인을 저주하셨습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12).

땀 흘려 땅을 갈지만 땅이 소출을 내지 않으므로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리하다는 것은 방황한다는 뜻입니다. 방황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저주의 결과입니다. 그러자 그는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다며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4:14)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에서 만나는 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담이 가인과 아벨 말고도 많은 자식을 낳았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죄를 짓고 도피하는 도피자의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죄의식으로 인하여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빠졌습니다.

죄지은 사람은 누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내면 가운데 죄의식으로 괴로워합니다. 그것은 양심과 이성이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2:15).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인 죄와 벌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끝내는 애인인 소냐에게 나는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스스로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또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과 죄의식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표

 

하나님은 방황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가인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4:15).

하나님은 죄를 철저히 미워하시지만 가인의 생명은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달아주셨습니다. 가인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누구도 그에게 복수하기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해주셨습니다. 가인의 표는 살인자의 표가 아니라 사랑의 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요, 반항자인 그를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심판을 유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딤전 2:4). 이를 위해 천 년을 하루같이 참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사랑(2:4-5)을 깨닫고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4. 가인의 후예와 셋의 후예(4:16-24, 5:1-32)

가인의 후예

 

가인은 회개하지 않고 결국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했습니다. ‘이란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성을 쌓음으로 최초로 세속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또 가인의 후예들은 육축을 치고, 수금과 퉁소와 같은 악기들을 만들고, 동철로 각종 기구와 전쟁무기들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와 세속문화를 창조했습니다.

가인의 후예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라멕입니다. 그는 두 아내를 취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질서를 파괴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또 그의 아내들은 이름이 말해 주는 대로 외모만 가꾸는 유한마담들이었습니다. ‘실라란 그늘지다라는 뜻으로 헤어스타일의 조상이 되었고, ‘아다는 꾸미는 자란 뜻으로 패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라멕은 살인자의 후예답게 피를 흘렸습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면 소년이라도 죽였습니다. 그는 생명을 경시하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들에게 시를 지어 자신의 죄를 자랑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는 77배나 무력으로 보복하겠다며 아내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그는 가인보다 더 흉악했습니다.

가인의 후예는 피 흘림의 역사를 계속했습니다. 가인의 죄는 그로 끝나지 않고 후손들에게 오염됐습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시작된 죄가 가인 시대에 와서 장성하였고, 라멕 시대에 와서는 꽃을 피웠으며, 노아 시대에 와서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셋의 후예

 

가인의 후예들을 보면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합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도 구속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감사 찬양했습니다(4:26).

5장에는 가인의 후예와 대조적으로 아담의 계보가 나옵니다. ‘아담에노스게난마할랄렐야렛에녹므두셀라라멕노아순으로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노아는 셈, , 야벳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셋의 후예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후손은 가인의 후손과 비교해 볼 때 인간적으로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죽음을 보지않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 올리셨습니다(5:24; 11:5). 므두셀라는 969세 동안 향수했습니다. 라멕은 노아를 낳고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로이 일하는 사람들을 안위하리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그의 10대손,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 역사를 계승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어집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죄는 점점 장성하여 가인 시대에 와서는 살인을 낳았습니다. 죄는 인간의 정신과 영적 세계, 더 나아가 인류 문명을 병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중에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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