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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1-33, 19:1-38

 

중보기도 : 하나님의 동역자, 아브라함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아브라함의 소원은 이스마엘의 고상한 아버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자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하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이후로 아브라함은 믿음이 자라 여러 민족의 아버지다운 내면성을 갖추었습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다운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롯의 삶이 비교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친구가 된 아브라함의 모습이 나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로 불립니다(2:23; 대하 20:7; 41:8). 이 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까지 성장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손님을 대접하는 아브라함(18:1-8)

 

창세기 181-2절에서 아브라함은 정오에 점심을 먹고 장막 문에 앉아 쉬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보니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이는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천사들이었습니다(8:56-58). 지금까지 하나님은 말씀과 환상(비전)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되 육신의 몸을 입고 찾아오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몸이었지만 그들을 보자 달려가 영접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18:3-4).

 

그리고 아브라함은 장막에 들어가서 외쳤습니다. “여보! 여보! 손님이 오셨소. 고운 가루 세 스아(22리터)를 가져다가 빨리 반죽하여 빵을 만들어요! 나는 들에 나가 살진 송아지를 잡겠소.” 그는 거친 가루가 아닌 고운 가루로 풍성하게 빵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달려가 살지고 기름진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요리하도록 했습니다. 얼마 후에 아브라함은 버터와 우유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과 안심 불고기를 손님에게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곁에서 손님의 식탁을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놀랍습니다. 손님을 어떻게든 기쁘게 해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상상만 해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사라와 함께 손님을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합니다. 또한 하인도 불평하지 않고 신속히 움직이는 것을 보면 가정 전체가 손님을 맞이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은 손님이 천사인 줄 알았기 때문에 기쁨으로 풍성하게 대접한 것입니까? 히브리서 132절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그들은 자기 집에 온 손님이면 누구나 이렇게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것입니다. 손님을 이렇게 섬기려면 한두 번으로 안되고 몸에 배기까지 섬겨야 합니다. 이를 볼 때 아브라함은 평소에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손님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내면은 기름지고 살진 송아지처럼 윤택하고 풍요로웠습니다.

이런 내면의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물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부자들이 많이 있지만 마음이 인색한 졸부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풍요 속에서 빈곤을 느끼며 사는 가난한 자들입니다. 잠언 1124-2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버는 법은 잘 알지만 쓰는 법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지만 남을 섬기는 데에는 아주 인색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찾아온 손님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물질을 썼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풍요로운 마음은 하나님의 소원과 뜻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산 데서 기인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각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며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차가운 현실을 훈훈하게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부요하신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사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십니다(고후 9:8).

오늘의 사회는 한마디로 도시사회, 지식정보화사회, 산업사회, 대중사회입니다. 정보사회는 정보의 가치 생산을 중심으로 사회가 발전합니다. 정보사회에서는 개성이 중시되고 다양성이 보편화됩니다. 반면에 비대면성과 익명성으로 인한 무책임하고 비인격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산업사회는 인간의 삶을 위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합리화되고 기계화되면서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시사회는 지역적, 직업적, 사회적 이동이 심합니다. 대중사회는 대량생산과 소비, 대중매체로 국민을 일방적으로 조정하기 쉽고, 획일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점차 닫힌 사회가 되어 옆집에 누가 살고 누가 죽었는지조차 알 지 못합니다. 세상은 점점 메말라 내 떡 내가 먹고 네 떡 네가 먹는 식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관심이 실례요, 무관심이 미덕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자기 가족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요즘 이런 말이 유행합니다. “만점 시어머니는 김치를 담아 아무 말 없이 아파트 경비실에 갖다놓고 가는 시어머니이고, 50점 시어머니는 김치를 담아 아파트 문 앞에 놓고 가는 시어머니이고, 빵점 시어머니는 김치를 담아 집 안까지 들어가는 시어머니다.” 요즘 아파트 이름을 길고 복잡하게 짓는 것은 나이 든 시부모님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손님 대접하는 것도 매너리즘에 빠져 정성과 사랑이 없습니다. 방은 난방이 잘되어 따뜻하지만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이런 시대에 믿는 사람들조차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우리는 이런 시대에 아브라함과 같이 손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바울은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3)고 했습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손님대접과 기도입니다. 우리는 메마르고 각박한 시대에 가정을 개방하여 이웃과 성도들을 초청하고 음식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손님을 초청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초청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음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입니다. 비록 차 한 잔일지라도 따뜻한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으면 됩니다.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으면 손님의 마음이 즐겁고 풍요롭습니다. 우리 가정을 열어 이웃을 섬기는 가정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사라를 웃게 하 하나님(18:9-15)

 

아브라함으로부터 풍성하게 대접을 받으신 하나님은 마음이 흐뭇하셨습니다. 그래서 기한이 이를 때에 반드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소식을 장막 문에서 엿들은 사라는 기가 막혀 속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 빠진 할망구요, 내 바깥주인은 허리가 굽고 이가 다 빠진 늙은 영감인데 무슨 낙을 누리리요. 게다가 나는 경수가 끊긴 몸인데 무슨 아기를 낳는다는 말인가?’ 그녀의 웃음은 불신에서 나온 씁쓸한 웃음이었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인간 조건을 바라볼 때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녀가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18:11). 때로 우리도 자신의 인간 조건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부정적으로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라의 속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불신을 책망하시고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8:14).

 

사라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두려워서 웃지 아니하였다고 정색하며 시치미를 딱 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속으로 웃은 것까지도 다 아시고 그의 불신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우리의 이성과 상상을 초월하여 기도제목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20-21).

 

3.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18:16-21)

 

하나님은 전송 나온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숨김없이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18:17-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게 될 강대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후손으로 나실 메시아를 통해 천하 만민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7절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실로 강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그리스도의 왕국, 곧 신령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의와 공도를 세워나가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그 자식과 권속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고자, 즉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세우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부담스러워 말씀대로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서 121-31절에 의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우상숭배와 정욕의 노예가 되어 온갖 불의를 행하고, 세상은 온갖 부정, 불의, 부패, 음란과 강포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부정부패와 음란과 강포가 충만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세운 나라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법도대로 살았을 때 하나님은 미국을 자유와 평등의 나라, 만백성의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도를 버리자 자유가 방종이 되어 점점 소돔과 같이 음란과 강포의 나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와 대학 캠퍼스는 어떠합니까? 지성과 야성, 그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대학 캠퍼스 안에 서구 못지않게 퇴폐 문화가 판치고 있습니다. 사회는 허영과 사치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방황합니다. 이런 곳에서 누가, 어떻게 의와 공도를 세울 수 있습니까? 이런 곳에서 누가, 어떻게 무너진 창조질서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만이 무너진 의와 공도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무너진 창조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가 후손들과 권속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세우고 무너진 창조질서를 회복하고자 하심에 있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 이 땅 고쳐주소서 / 이제 우리 모두 하나되어 /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하나님은 동역자를 얻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고자 하시는 일을 알려주심으로 이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문제에 빠져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애를 먹이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구속역사를 섬기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종의 위치에서 동역자의 위치로 높여주셨습니다. 아모스서 37절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두신 뜻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의 계획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18:20-21)

 

하나님은 혼자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동역자를 얻어서 함께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요, 동역자라고 해서 하나님과 동등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고 그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내주의 영이지만 동시에 초월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4).

 

종은 주인의 일을 알지 못하고 알아도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이 시키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순종합니다. 그러나 친구는 주인의 일을 알고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섬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친구가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기쁨으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4. 아브라함의 특권(18:22-23)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을 때 주어진 특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중보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이 악하므로 마땅히 심판받아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심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망할 수밖에 없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쌍히 여기고 어찌하든지 그들을 구원하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무조건 떼를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이에 기초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인을 사랑하시고 의인 때문에 악인까지도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소망 없는 백성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에 여러 민족의 아버지다운 내면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돔 성에 의인 50명이 없으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로 숫자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50명에서 45, 40, 30, 20, 마침내 10명으로까지 깎으며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5명씩 깎아 내리다가 나중에는 10명씩 깎아내려 결국 10명까지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자세는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티끌과 같은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며 일방적으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10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18:32) 하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끈질겼습니다. 그에게는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롯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롯만을 구하고자 기도하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 백성 전체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대제사장적인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의 끈질기고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비록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했지만 창세기 1929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원해 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롯과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포기하기 그리고 나 한 사람이 기도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 과연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고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위하여 끝까지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다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5.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신 하나님(19:1-38)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창세기 191-22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이 나옵니다. 두 천사는 저녁때가 되어 소돔 성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문은 고대 헬라의 아골라나 로마의 포럼처럼 일종의 사교장으로 재판, 상거래 등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롯은 성문에서 손님들을 만났고 그들을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문명의 도시 사람답게 누룩이 없는 맛없고 딱딱한 빵을 인색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롯의 아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아파트 투기 붐에 갔든지, 아니면 복부인 계모임에 갔던 것 같습니다. 롯은 메마른 도시 문명 속의 사람들처럼 심령이 메말랐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기쁨이 없고 심령이 피곤했습니다. 그의 메마른 모습을 본 천사는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했습니다.

롯의 간청으로 천사는 다시 롯의 집에 들어가 쉬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자리에 눕자 성 안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손님을 끌어내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유는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19:5). ‘상관하다는 것은 성관계를 맺는 것(have sex with them)을 말합니다. 소돔 성은 성적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남색을 영어로 ‘sodomy’라고 하는데, 이는 소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윤리의 타락의 극치는 성윤리의 타락입니다. 성윤리의 타락의 극치는 동성연애로 나타납니다(1:26-27).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하고 강포했습니다.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고자 정혼한 두 딸을 폭도들에게 내어주겠다고 타협했습니다. 성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였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롯을 해하고자 했습니다. 롯은 그 시대의 영향과 풍습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와 공도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롯이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전하자 그들이 이를 농담으로 여긴 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19:14). 그들은 멸망 직전에 구원의 소식을 들었지만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고자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롯과 가족들에게 빨리 그 도시를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롯은 도시 문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자꾸 지체했습니다. 천사들은 보다 못해 롯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이끌어 성 밖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도시 문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산으로 가지 않고 도중에 소알 성에 머물렀습니다(19:20-22). 롯은 작은 도시에서나마 끝까지 도시의 문명 생활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창세기 1923-38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소돔 성과 고모라 성을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과 유황을 비처럼 내리사 온 성을 뒤엎으셨습니다.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들이 모두 뒤엎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들도 멸망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했습니다. 또한 롯의 아내는 두고 온 적금 통장과 아파트 문서 및 다이아 반지에 대한 미련으로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롯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인면수심의 근친상간의 죄악을 범했습니다. 이 죄악으로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생겼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두 민족은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했습니다.

오늘날의 지구촌은 소돔과 고모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성도덕의 타락이 극에 달하여 동성연애와 각종 성병과 에이즈가 난무합니다. 물질 문명은 찬란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만약 이를 회개치 않고 세상 풍조대로 살 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소돔 성의 멸망은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롯은 왜 이처럼 가장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쳤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물질과 육신을 좇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세상의 쾌락과 세속적인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세상, 두 줄 타기를 했습니다. 그는 불신자 앞에 가서는 불신자같이 살고, 신자 앞에 가서는 신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자녀들과 사람들에게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고 말씀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롯과 같이 세상 재미를 즐기면서 믿음생활을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후는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은 기쁨의 열매인 이삭을 낳았고, 롯은 부끄러운 죄악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크게 신자와 불신자가 있고 또한 신자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과 세상과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롯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길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국에는 구원과 심판, 생명과 사망, 기쁨의 열매와 부끄러운 열매, 축복과 저주, 웃음과 슬픔으로 나누어집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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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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