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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6-31, 2:1-3

인간론 :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역사 이래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해왔습니다.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인간이란 어찌 이다지도 기막힌 걸작인가! 슬기롭고 고귀한 이성, 무한한 재능, 적절하고 훌륭한 형체와 동작, 행동은 천사와 같고 이해력은 신과 같으며 이는 세계적인 미요 만물의 영장이니라고 외쳤습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을 가리켜 고등한 존재이지만 본질적으로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성적으로 억압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인간을 경제적 동기에 의해 조작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인간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찰스 다윈이 인간을 고등한 동물로 봄으로 인해 짐승과 같은 현대인들의 광기를 보게 되었고, 프로이트의 주장은 결국 성적인 타락을 가져왔으며, 칼 마르크스의 주장은 인간을 물질로 전락시켰고, 실존주의는 오히려 실존을 상실케 했습니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시편 8편에서 다윗은 광대한 자연 앞에서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을 깃딧에 맞추어 찬양했습니다(깃딧은 악기의 일종으로, 이 악기가 헬라로 넘어가서 기타가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 내 영혼이 찬양하네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 내 영혼이 찬양하네”(찬송가 79).

그는 얼마 동안 찬양하다가 광대 불변한 자연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무엇이관대”(What is man), “인자가 무엇이관대”(What is the son of man)를 물었습니다. ‘사람이란 히브리어로 에노쉬’(anosch), 깨지기 쉬운 존재, 부패하기 쉬운 존재, 낡아지기 쉬운 존재란 뜻입니다. 그리고 인자란 히브리어로 벤 아담’(ben adam)으로, 흙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쉽게 더럽혀지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넘어지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입니까?


1. 인간의 본질(1:26-27)


인간은 여섯째 날에 동물과 함께 흙으로 지음받았습니다(1:25, 2:7, 9).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영화와 존귀로 관 씌우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심으로 인간의 지위를 높이셨습니다(8:4-8). 이로 인해 하나님인간만물의 질서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질서, 곧 창조 질서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원숭이의 후예라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을 동물의 차원으로, 유물론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 인간을 물질의 차원으로, 인본주의자들은 인간 고유의 존엄성과 가치관만을 주장하여 인간을 2차원으로, 또 사탄은 인간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본래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내면적 속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지적, 도덕적, 영적인 탁월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첫째, 인간은 이성적 존재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이성적인 인간은 추리하고 분석, 종합하여 지식을 후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수천 년이 지나도 문화를 창조하지 못했지만 인간은 창조적 지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예술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예를 들어 여우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굴에서 살고, 까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무 위에서 삽니다. 그러나 인간은 움막에서 시작하여 100층이 넘는 고층빌딩과 화려한 호텔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집을 지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갑니다.


둘째, 인간은 도덕적 존재

인간에게는 도덕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흉악한 범죄자일지라도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때 수치심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양심이 없고 수치심도 느끼지 못합니다. 쥐가 곡간에 들어가서 주인 몰래 곡식을 훔쳐 먹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인간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은 진실하며 아름답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돼지는 우리를 깨끗하게 치워주어도 다시 오물 위에 뒹굽니다. 인간만이 진실하고 순결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동물과 달리 선하게 살고자 하는 양심을 가진 도덕의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셋째, 인간은 영적인 존재

에베소서 424, 골로새서 39-10, 요한일서 4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4).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3:9-10).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소유한 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고귀하고 존엄한 것입니다(9:6). 하나님의 형상은 거룩함과 의와 사랑입니다(11:45; 4:24; 요일 4:8, 16). 따라서 인간은 육감의 사랑이 아닌 거룩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의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긍휼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가진 존재로 거룩한 삶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139문에 제시된 7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합니다. 7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요구된 의무들을 등한시하는 것 외에 간음, 음행, 강간, 근친상간, 남색, 모든 부자연스러운 정욕, 모든 부정한 상상과 생각, 목적, 애정, 모든 부패한 혹은 추잡한 교제, 또는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음탕한 표정, 뻔뻔스러운 추태, 경솔한 행동, 단정치 못한 옷차림, 합법적 결혼의 금지와 불법적 결혼의 시행, 매음, 음녀들에게 가는 것, 독신 생활에 얽매이는 서약, 결혼의 부당한 지연,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 부당한 이혼 혹은 별거, 게으름, 포식, 술 취함, 음란한 친구와의 교제, 음탕한 노래, 서적, 그림, , 연극 등과 음란을 자극하는 것, 음란의 행위를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인간은 육신이 되어 동물과 같이 음란하고 불의하고 더럽고 추하고 강포해졌습니다(6:3). 거룩함보다 음란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성윤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삶을 살게 하심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하셨습니다(8:29).

신앙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세움받는 것입니다(1:28; 4:13). 그리고 복음전파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인간성 회복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타락한(deformed) 인간을 회복시키는(reformed)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인간성이 회복되어 이기적인 사람이 희생적인 사람으로, 거짓된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추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으로,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땅의 소망을 바라던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붙들고 살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참 만족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표현했습니다.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 욕구, 3단계 소속감과 애정 욕구, 4단계 존경 욕구, 마지막 5단계는 자아실현 욕구입니다. 이런 욕구가 다 충족된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현재 살고 있는 남편으로부터도 참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자로 살 때만이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고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거나 저주해서도 안 됩니다. 또 자신을 학대하거나 비하하는 등 낮은 자존감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그 자체로서 고귀하고 존엄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때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죄인도 죄가 없다고 판정되고, 돈이 없으면 죄 없는 사람도 죄인으로 판정된다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있든 없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또 국적이나 피부 색깔에 따라서 사람대우가 달라져서도 안 됩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되고, 또한 남성이기 때문에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존엄성이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2. 인간의 사명(1:28)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다름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

이 말씀 속에 담긴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 자녀를 많이 낳으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결혼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를 많이 낳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이나 국가를 통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 자녀를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가정은 모든 기관의 최소 단위요 근간이 됩니다. 요즘 결혼도 하지 않으려 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아 1.3명이라는 초저출산율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연을 관리할 수 있습니까? 아기를 낳지 않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발로 중의 발로입니다. 앞으로 저출산문제는 인류에게 재앙을 불러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 아기를 낳고 양육해야 합니다.

 

둘째, 사명의 소유자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영적 자녀를 많이 양육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15:8, 11).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는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13:34)는 것이고 또 하나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지상명령입니다(1:8).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주신 유언이고, 세계 선교 지상명령은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유언입니다. 유언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습니다. 유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마지막에 한결같이 세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28:18-20; 16:15; 24:47; 21:15-17). 그리고 바울도 순교를 앞두고 복음전파를 강조했습니다(딤후 4:1-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 19-20).

예수님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2006년 기준으로 유엔에 가입한 나라는 192개국입니다. 세계지도 정보를 보면 유엔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까지 포함하여 237개국이고, 세계은행 통계로는 229개국입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자료에 의하면 231개국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각기 종족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5,300개의 종족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자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명을 지키는 자와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프리카의 탐험가인 리빙스턴은 아프리카를 개척하다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명인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기까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인간은 단지 먹고살기 위해 사는 일차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해 공부하고,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다녀보십시오. 이때 우리는 일상성으로 꿈도, 희망도, 비전도 없는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사명을 위하여 살아보십시오. 복음전파를 위해 살아보십시오. 환경에 순응하는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명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위대하게 합니다.


셋째, 자연을 개척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총칼로 남의 땅을 침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자연을 개간하고 개척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자연을 개척하고 개간했을 때 인간은 과학문명의 발달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었으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넷째,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을 감당하라.

창세기 128절을 일컬어 문화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학문과 예술, 문학,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명령을 잘 수행하여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고 건전한 문화와 문명이 꽃피우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성과 재능을 계발하여 이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을 계승하는 역사의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18세기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땅에 언덕 위에 교회를 세워 세계의 모든 나라가 보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문화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인 위대한 국가를 세워 각국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계에 하나님의 복음과 더불어 정치, 경제, 학문,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잊고 세계에 파송했던 선교사들을 철수했을 때 미국 사회는 점점 물질주의와 향락에 빠져들었고, 무기를 수출하고 전쟁을 일삼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화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대로 관리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ule over, NIV)는 말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선한 목적을 위해 개발하고 학문을 발전시키라는 건설적인 명령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을 잘 관리하지 않고 인간의 유익에 따라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자연의 재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하수 대수층의 오염으로 인한 식수 문제, 온실가스 축적, 지구촌의 온난화 등으로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을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청지기 사상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이 인간에게 일정한 기간 동안 맡기신 것으로, 서로 공유하며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1:29-30).

사람이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먹는 문제도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먹고살아야 사명을 위해 살 수 있지 않느냐며 생활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생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후에 사명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은 평생 사명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먼저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이 친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3. 인간의 존재 의미와 목적(1:31)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31).

하나님은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대 걸작품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의미, 목적,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존재 의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기쁜 존재라는 것입니다. 도공(陶工)은 온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도자기가 불후의 작품이 되었을 때 그 도자기를 보고 기뻐합니다. 그 도자기는 도공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은 제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제품은 기계로 대량 생산하여 가격을 매길 수 있지만 작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신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남자는 인정에 따라, 여자는 사랑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우리는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기뻐하면 그것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의 존재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면 힘이 납니다. 하물며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실 때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크다가 말았을까?’, ‘내 코는 왜 이렇게 납작하지?’, ‘나는 왜 이렇게 민주형으로 생겼지?’,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잘 안 돌아가지?’, ‘내 성격은 왜 이렇게 괴팍하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겼든 개의치 않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으시고 절대적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보실 때 최고’(best, No.1)입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방탄유리로 철저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의 가격은 14경이라고 합니다. ‘그림 한 점이 뭐 그렇게 비싸?’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명한 화가가 그린 작품이 세상에 한 점밖에 없기 때문에 비싼 것입니다. 똑같은 그림이 두 점 있다면 비교 우위에 따라 가격이 형성됩니다. 나란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란 존재가 둘이라면 비교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돈으로 환산하거나 계량화할 수 없는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존재에게는 고귀한 삶의 가치와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쾌락과 욕망에 몸을 던진 채 함부로 살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나 자신을 학대하고 운명의 사슬에 매여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교만과 열등감에 시달려서도 안 됩니다. 나란 존재는 나 자신으로부터도 존중을 받고,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존중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가져야 할 가치관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으냐, 나쁘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은 사람의 말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눈길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요셉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칼뱅의 생애의 2대 목표는 하나님 앞에서’(In the sight of God),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For the glory of God)였습니다. 요셉뿐만 아니라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창조 목적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도록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할 때 반발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결국 물질이나 육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됩니다(1:23-25).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은 인간에게 굴레가 아니라 최고의 행복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결단하였을 때 그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으로 인해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그는 장애인 어머니가 부끄러웠고 술을 마시며 어머니를 괴롭히는 실업자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런 부모님은 그에게 아픔이었고 수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도,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창세기 말씀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교사로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바울의 인생 목적은 죽든지 살든지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1:20).


4. 안식하신 하나님(2:1-3)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안식일입니다. 출애굽 이후에 와서는 안식일의 근거가 하나님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구속으로 바뀌었습니다(5:12-15).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안식일을 창조 완성 후 안식한 날로 부르는 반면,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을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관련시켜 언급하고 있습니다(5:15).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에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5:14)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로운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 종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은혜를 받은 백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5:14). “거룩하게 하라는 것은 육신의 쉼뿐만 아니라 영적인 쉼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쉼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쉼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옵니다.

오늘날 주일은 천지창조의 안식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 오늘의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2:28). 그러므로 주일을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12:1). 참 안식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육적으로 쉬어도 피곤을 느끼고 곤고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7:10-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소유한 존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히 기뻐하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관이 없는 시대에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할 수 있고, 참된 존재 의미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인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향상 만드소서(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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