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도행전 7:17-36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7:33).

 

 

스데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의 생애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시작이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생애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모형임을 전했습니다.

이제 스데반은 모세의 생애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이르자 모세를 호렙 산의 불꽃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고, 모세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대적하는 백성을 징벌하셨습니다. 하나님 중심 신앙이 곧 모세 중심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고,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세워 역사하십니다. 우리도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냄새나는 신을 벗고 주님께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미디안에서의 나그네

 

애굽에 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과 합하여 70명이었습니다(46:27; 1:5). 그들은 요셉의 후광으로 고센 땅에서 목축을 하면서 지냈습니다(46:26-34). 당시 목축업은 하층민들의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 무려 장정만 603,550명이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애굽 인구가 900만 명이었는데, 그중에 이스라엘 사람이 2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와 방불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하늘의 뭇별과 해변의 모래알과 같은 수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들이 일어나자 이스라엘의 형편은 달라졌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혹시 전쟁이 나면 반기를 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노예가 되면 그 후손들은 모두 노예가 됩니다. 일단 노예가 되면 그 순간부터 자유가 박탈됩니다. 주권이 박탈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목적과 방향이 상실됩니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사라집니다. 내일이 없으니 희망이 없습니다. 책임감이 없고, 감사가 없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이 입에 붙어 있고, 받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보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기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독수리가 창공을 나는 것과 같은 비전과 영적인 소원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게 되면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습관은 사람의 인격을 형성합니다.

노예생활을 계속 하다보면 노예근성이 생깁니다. 노예근성은 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노예근성은 사탄의 노예가 된 인간의 모습과 같습니다. 인간이 사탄의 노예가 되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1차원적인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은 이런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사명을 가진 귀한 존재입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과 비전이 넘치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 번성하자 애굽 왕 바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이스라엘 중에 남자가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는 비밀 지령을 내렸습니다(1:15-16). 그러나 산파는 바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1:17). 이는 보이는 바로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바로는 이스라엘 남자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 강에 던지라는 공개 살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시대 배경에서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곧 하수에 던져져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태어나자 그의 부모는 모세의 준수함을 보고 임금의 명령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키웠습니다. 부모는 더 이상 숨겨 키울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고 갈 상자에 아기를 넣어 나일 강가의 갈대숲에 띄웠습니다(2:3). 그리고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에게 그 아이가 어떻게 되는가를 지켜보게 했습니다.

그때 마침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공주는 그 안에 히브리 아이가 울고 있음을 보고 모세를 궁중에 데려다가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때 누이가 재치 있게 모세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히브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 기간은 모세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타일러는 “3세 이전에 인격의 92%가 형성된다고 하였고, 우리 속담에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신앙 교육은 모세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했고, 피 속에는 히브리 사상이 흘렀습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어 최고의 선진국 애굽에서 학문을 배우고 궁중 예절과 궁중 무술을 배워 문무 예지를 겸비한 왕자가 되었습니다(7:22). 이 궁중 교육은 후에 모세오경을 기록하는 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나이 40이 되자 형제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났습니다(7:23). 나이 40이 되었다는 것은 히브리인으로서 자아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고민해야 했습니다. 현재 모세는 애굽 중에서 명예와 권세와 부를 누리며 장래가 보장된 왕자의 신분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히브리인으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영광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공주의 은혜와 사랑과 기대를 저버리는 아픔이었습니다. 모세는 고민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냐, 하나님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자기 뜻대로 살 것인가? 히브리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공주의 기대대로 살 것인가?’

마침내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의 쾌락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결단했습니다(11:24-25). 모세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로 결단하고 히브리 백성의 고통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때 히브리인이 애굽 사람으로부터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궁중에서 배운 무술로 단숨에 애굽 사람을 죽여 모래사장에 묻었습니다(7:24). 이튿날 나가보니 같은 히브리인끼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싸우는 것을 말리려다가 동족으로부터 오히려 배척을 받고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7:26-28). 이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고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40년간 자기 양도 아닌 처갓집 양을 치며 지냈습니다.

이제 그는 40년간 광야에서 양을 치다보니 광야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창하게 하던 애굽 말도 다 잊어버렸습니다(4:10). 화려하던 그의 풍모와 광채는 온데간데없고 양 똥 냄새만 풍기는 양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품었던 위대한 이상과 꿈, 동족에 대한 열정도 다 사라졌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문무예지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꿈이 산산이 깨어진, 그 이름 모세였습니다. 그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린다고 산산이 깨어진 자신의 꿈이 되살아 날 리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어 이런 혹독한 훈련을 받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겸손 훈

궁중 교육이 인간 기초 훈련이었다면 광야 훈련은 신앙 교육으로 자아를 깨는 훈련이었습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만이 자기 동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창한 언변과 인간 조건을 믿었습니다. 이때야말로 자기 동족을 위해 큰일을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교만과 혈기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광야 훈련을 통해 겸손과 온유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12:3).

 

목자 훈련

양은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양으로 비유합니다. 모세가 40년간 양을 치며 목자 훈련받은 것은 후에 노예근성에 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해하고 품고 사랑하고 도울 수 있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노예 백성들을 끝까지 섬겨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의욕만으로는 안 됩니다. 광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광야의 영성은 자아를 깨는 겸손 훈련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고 섬기는 목자 훈련입니다. 그래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모세의 광야 훈련 40년째였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 광야 떨기나무에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보니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았습니다. 그 불꽃은 보통 불꽃과 달랐습니다. 모세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그 불꽃을 보기 위해 떨기나무 가까이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7:32-33).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의와 좌절 중에 있는 모세에게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나타나셔서 그의 가슴에 불꽃같은 비전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모세가 서 있는 광야는 거룩한 땅이 아니라 저주받은 땅이었습니다. 광야는 자신의 모든 꿈과 소망을 앗아간 곳입니다. 광야는 슬픔과 운명을 안겨 준 곳입니다. 광야는 사명을 앗아간 곳입니다. 광야는 좌절과 체념을 심어준 곳입니다. 광야는 처갓집 양이나 치는 별 볼 일 없는 곳입니다. 광야는 자신을 삼켜버린 비극적인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입니다. 우리가 점수에 맞춰 대학에 왔고 연봉에 따라 직장에 다닐지라도 이곳은 거룩한 캠퍼스, 거룩한 직장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셨고 사명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당시 귀족들은 긴 부츠와 같은 화려한 신을 신고 다녔지만 종은 신을 신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떤 신을 벗어야 합니까?

첫째는 부정한 죄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 이력서를 씁니다. 이력서란 자기 발로 걸어온 경로입니다. 다시 말해 이력서는 밟고 다닌 신발의 흔적입니다. 이제 모세의 과거 이력은 끝났습니다. 과거와는 완전한 단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애굽을 생각하거나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진실한 회개를 통한 죄와의 단절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순결한 신부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에 섬기던 것들을 깨끗하게 잊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전에 제주도에 신혼여행을 간 신부가 신랑이 잠깐 나간 사이에 옛날 애인하고 전화하다가 들켜 그 날로 파혼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섬겼던 죄악들, 정욕, 교만, 미움, 열등감, 절망, 불신, 나태, 자기애, 열등감, 미움 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딤전 6:11).

 

둘째는 자신의 권리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법정에서는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신을 벗었습니다(4:7). 그리고 당시 주인은 노예의 신을 벗겼습니다. 이것은 모든 권리를 주인에게 이양하는, 자기 권리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려놓음을 의미합니다. 나의 주장과 나의 고집, 나의 방법 등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음은 겸손을 뜻합니다. 겸손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표현은 곧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는 표현인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셋째는 불신과 불순종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특수한 땅입니다. 신을 벗어야 들어가는 땅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1:3).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5:15).

가나안은 신발 도장이 아니라 발바닥 도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땅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상징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며 믿음에는 순종이 따릅니다. 이를 볼 때에 신을 벗는다는 것은 불신과 불순종에 대한 회개입니다. 우리는 불신과 불순종의 신을 벗고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훈련하실 때에는 특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 사명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7:34). 하나님은 애굽에서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과거 모세의 지팡이는 양을 보호하고, 피로할 때 의지하는 지팡이였습니다. 한숨과 좌절과 운명의 지팡이였습니다. 이 지팡이에는 40년간의 모세의 사연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를 빨리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능력의 지팡이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 노예 백성을 출애굽 시켜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영적 무지와 교만으로 인해 모세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세우시고 구원 역사에 귀히 쓰셨습니다.

모세는 메시야의 예표입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불순종하였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쓰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우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훈련하신 후, 때가 이르자 모세를 호렙 산의 불꽃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원망과 불평, 그리고 불신과 좌절의 신을 벗었습니. 우리가 주님께 나가려면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정욕과 육신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이기심과 탐욕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불신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새찬송가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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