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로마서 2:17-29, 3:1-8

 

유대인의 위선과 형식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29).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네 살 때부터 집에서 율법의 가르침을 받았고, 여섯 살 때부터는 회당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율법은 그들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 세계까지도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 나이와 이름은 잊어버려도 율법은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정당한 자긍심은 좋은 것입니다. 정당한 자긍심은 자존감과 소속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회사의 유니폼과 로고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긍심이 잘못되면 헛된 몽상과 자만심에 빠지게 됩니다. 유대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대인은 헛된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위선과 형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유대인의 형식과 위선이 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의 자랑

 

지구상에서 자긍심이 강한 민족으로 게르만 민족과 유대인이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며 세계 역사의 중심에 항상 자기 민족이 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른 민족을 개로 취급했습니다. 랍비들의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방인을 존재하게 하셨는가? 이는 지옥의 땔감으로 쓰시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은 세계를 나눌 때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했습니다. 유대인은 의인이고 이방인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것 자체를 큰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우리말 성경에는 없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로마서 217-20절은 그렇다면’(if)으로 시작해 21절부터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로 전개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함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2:17).

 

율법을 의지했다는 것은 율법을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율법을 받은 백성이요, 다른 민족은 율법을 받지 못한 개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민족은 단 하나, 자기 민족밖에 없고 다른 민족은 각종 우상을 숭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종교학으로 보면 유일신 종교는 유대교, 회교, 그리고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조상이 모두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것을 무척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자랑함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2:18).

유대인들은 율법의 교육을 잘 받아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선한 것을 잘 분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확실하게 요약해 놓은 것이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전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표면을 볼 때 그들은 본질을 보았고, 세상 사람들이 현상을 볼 때 그들은 원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강한 것입니다.

 

지식의 모본을 가진 것을 자랑함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2:19-20).

 

모본’(embodiment)은 전형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과 바르게 사는 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규범을 배웠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훈련(discipline)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모본을 가진 자로서 보지 못하는 이의 길을 인도하고,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가 모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받고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드리는 습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주급 1달러 50센트였던 첫 봉급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십일조로 100만 달러를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십일조를 드리는 훈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장성한 후에 믿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법, 교회를 섬기는 법, 경건하게 사는 법에 대한 모본이 없어 주일예배에 잘 빠지고, 십일조를 잘 드리지 않고, 경건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자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몸에, 생활에, 생각에, 가치관에 익숙해질 때까지 스스로 훈련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쯤 되면 유대인이 된 것을 스스로 자랑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알고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2. 유대인들의 위선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2:21-22).

 

유대인들을 향한 바울의 지적이 얼마나 날카롭습니까? 그들은 알고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열심히 가르쳤지만 자기 자신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외우고 남을 가르쳐도 자신이 행하지 않는 율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자신이 행하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의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와 제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계명들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3:8).

 

하나님은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은 것을 보고 도둑질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도 주시고, 시간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자녀도 주시고, 생명도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증이 십일조입니다. 열 개 중에 하나는 절대로 손대지 않음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도록 하신 것이 십일조입니다. 말라기 39절은 유대인들이 저주를 받은 원인은 십일조를 도둑질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의 상술과 금전욕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고리대금업자는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인정사정없이 돈을 긁어모으는 수전노들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이라는 사람은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살을 1파운드 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줬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나 체이스맨해튼은행을 비롯해 기타 17개의 세계적인 금융자본회사를 가지고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그들이 신사 물건을 도둑질했습니다. 인류역사상 유대인들만큼 우상숭배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민족도 없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도 틈만 생기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했습니다(32:4). 구약성경은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상숭배를 멸시하다가도 우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때는 우상숭배에 필요한 물건을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돈을 벌어서 좋았고, 이방인들은 우상을 숭배해서 좋았습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랬다면 정상참작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몇 가지 예를 든 것일 뿐 그 외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들로 인해 오히려 이방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23-24).

 

유대인은 입만 열었다 하면 율법이 어떻고, 계명이 어떻다고 떠들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선적이었습니다. ‘위선이란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죄가 더 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유대인들만의 문제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배우고 실천하려는 율법을 우리도 배웁니다. 아니, 우리는 구약의 율법보다 더 엄격한 말씀을 배웁니다. 구약성경은 간음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알면서도 죄를 범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것이 위선이요, 이중적인 삶입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순종이 없는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순종이 없으면 귀신을 내쫓는 큰 은사를 가지고 있고 선지자 노릇을 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연륜,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은 굴러다니는 돌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1:13). 순종이 없는 모태 신앙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종종 언론에 그리스도인들의 부도덕성이 나옵니다. 성직자의 부도덕성 또한 신문에 보도되기도 합니다. 이를 볼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성직자라고 위선을 행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능력이 많고 성경을 많이 안다고 위선을 행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이들이 위선을 행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위선이요,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

 

귀신은 우리보다 예수님을 더 잘 압니다(2:19; 5:7). 그러나 귀신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행하지 않는 믿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귀신의 믿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면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진리임을 믿는다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몸을 움직여야 내 삶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직장 분위기가 변하고, 캠퍼스가 변하고, 민족이 변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위선의 자리에서 순종의 자리로 나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3. 유대인들의 형식주의

 

유대인들의 할례는 안식일과 더불어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요인 중의 요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 증표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다시 말해 할례는 언약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증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꼭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할례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를 귀하게 여긴 나머지 할례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쓴 글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구원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은 자동적으로 그 구원에 포함된다. 할례만 있으면 비록 죄인일지라도, 순종하지 않아도 천국을 상속받게 된다.”

 

할례라는 형식만 있으면 구원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2:25).

 

유대인들이 할례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순종이 따르지 않으면 그 할례는 무효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오히려 그는 할례를 받은 사람보다 더 낫습니다.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있으면서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보다 율법도 없고 할례도 없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이방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습니다(2:26-28). 진정한 할례는 몸에 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는 마음에 해야 합니다(10:16). 할례는 마음 가죽을 베는 것입니다(4:4). 할례는 성령의 인치심으로 마음이 변화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29).

 

이면적 유대인, 즉 영적으로 할례받은 사람이 진정한 유대인이지 몸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유대인이 아닙니다. 진정한 유대인은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몸에 칼자국을 남긴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서약입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5:3).

 

할례를 받으면 율법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순종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할례가 형식이라면 순종은 내용입니다. 형식과 내용을 함께 갖추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내용을 갖추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할례를 포기하고 순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유대인의 경우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큰 죄입니다.

형식주의는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진심을 드리지 않으면 우리 역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신앙생활이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은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타성으로 기도하고, 타성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타성으로 헌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4. 유대인들의 변명

 

바울의 말을 듣던 한 유대인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유대인이 나은 것이 무엇이며, 할례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할례도 아무 소용이 없고, 유대인이라고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 이런 질문을 할 법도 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유대인들이 무엇보다도 말씀을 맡았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3:2).

 

맡았다’(committed, KJV)란 위임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맡기시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이방인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또한 부르셔서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하도록 위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순종하여 열매 맺기 위함입니다.

이에 유대인이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율법을 순종하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약속하신 언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리신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버리실 때는 언제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하고 따졌습니다(3:3).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순종하지 못한 죄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적당히 봐주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것이나 의롭고, 하나님의 판단은 어느 것이나 옳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의로운 분이십니다”(3:4-6절 참조).

그러자 유대인이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향해 진노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은 더 의롭게 보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를 죄인 취급하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을 주셔야 옳습니다”(3:7 참조).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3:8).

 

바울은 궤변을 늘어놓는 유대인을 향해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택하셨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잘못이 있는 것이라며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자신들의 위선과 형식주의를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자기 죄를 정당화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변호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은 옳으시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이런 모습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같이 내용이 없고 순종이 없는 위선적인 신앙생활, 자신의 위선을 정당화하려고 변명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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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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