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위대한 조상, 정 약 용

이선지

1762, 영조가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던 해에 경기도 남양주 마재 에서 정약용이 태어났다. 정약용의 어릴 적 이름은 귀농이다. 귀농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는지 아기 때 온 몸에 물집이 나고 곪는 완두창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고생했다. 그 병 때문에 귀농의 오른쪽 눈썹은 두 개로 갈라졌다. 그래서 삼미자’ , 눈썹이 세 개인 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귀농은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겨했다. 다음은 귀농이 일곱 살 때 쓴 시이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네. 두 산은 멀고 가까움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세.” 당시 귀농의 또래 아이들은 원근법을 몰랐기 때문에 작은 것이 큰 것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농은 자세한 관찰력으로 이것을 깨우쳤다. 이를 본 귀농의 아버지는 아들의 자질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귀농은 열 살이 되기 전 쓴 글을 모아 자신의 별명을 딴 삼미자집이라는 책을 묶어냈다. 귀농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관례를 치러 귀농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약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풍산 황 씨 집안에 아가씨와 결혼하였다. 정약용은 결혼한 뒤에도 꾸준히 학문을 배우고 익혔다. 1783, 정약용은 과거에 급제해 성균관 입학하였다. 집안은 기쁨으로 넘쳤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을 불러 모아 잔치를 열었다. 이듬해인 1784, 정약용은 죽을 때 까지 자신을 옭아맨 천주교를 만났다. 학자 정약용이 보기에 천주교는 썩어 빠진 조선사회를 개혁할 열쇠로 보였기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천주교 모임을 갖던 도중 이기경에게 발각되어 이를 정조에게 고발했다. 천주교서책을 금한다는 정조의 엄명으로 정약용 고발사건은 무마되는 듯 했다. 정약용은 정조의 수원 행차 때 배를 깔아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놓은, 일명 배 다리를 만들어 왕의 총애를 샀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부르는 화근이 되었다. 1792, 정약용은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진주로 향했다. 그러나 운봉에 이르렀을 때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약용은 눈물 범벅이 되어 초상을 치렀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건설하기 위해 마땅한 인재가 정약용밖에 없어서 책을 보내어 연구를 하라고 하였다. 정약용은 상중이라며 거부했지만 정조는 막무가내였다. 정약용은 짬을 내어 책을 읽고선 일년 안에 수원 화성 설계안인 성화주략을 완성하였다. 그는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어 무거운 물건을 적은 힘으로 올릴 수 있게 하였다. 또 유형거 라는 수레를 만들어 많은 짐을 실고도 경사진 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이들 기계 덕에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수원 화성은 총 비용 873,517냥의 70만 명이 동원된 대공사였다. 이 일로 정조는 정약용을 더욱 예뻐하였고, 사람들의 시기는 점차 커져만 갔다. 정조는 암행어사 10명을 뽑았는데 그 중 정약용도 있었다. 정약용은 네 고을을 살피게 되었다. 그는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아 간 연천 전 현감 김양직과 삭녕의 전 군수 강명길을 처벌요구하고, 임금을 팔아 제 배를 불린 서용보를 고발하였다. 그리하여 정약용과 서용보는 악연을 맺게 되었다. 17954, 천주교를 퍼뜨리다가 발각되어 최인길을 비롯해 지황과 운유일 등 신자들이 줄줄이 붙잡혔다. 이 사건의 사람들은 정약용까지 물고 늘어지려 했다. 정조는 한쪽만 두둔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정약용도 금정 찰방으로 귀양 보냈다. 정약용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4년 전, 서학에서 손을 뗐는데도 올가미가 되어 자신의 삶을 옥죄니 너무도 괴로웠다. 금정은 홍주 소속으로 대부분 천주교를 믿고 있었다. 정조가 정약용을 이리로 보낸 것은 그들을 잘 달래서 천주교에서 손을 떼게 하라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정약용이 황해도 곡산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이계심이 정약용에게 전 곡산 부사가 백성을 속여 세금을 많이 거두 길래 따졌더니 오히려 자신을 벌하려 하였다고 호소했다. 이에 정약용이 이계심은 무죄로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 정약용의 도움 덕분에 곡산은 전보다 많이 발전할 수 있었다. 1799, 정약용은 곡산에서 4년 만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 때문에 정조가 힘들어질까봐 정약용은 스스로 벼슬자리를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 해 7, 정약용은 벼슬살이를 마감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0, 정조가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뒤를 이어 여덟 살인 순조가 왕위에 올랐으나 너무 어려 그의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가 나라를 다스렸다. 정순왕후는 정약용을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어 정약용을 경상도 장기로 귀양 보내려 했다. 이 때, 황사영 백서 사건이 터졌다. 비단에 눈물로 쓴 편지가 발각되고 만 것이다. 정약용이 암행어사 때 벌을 내렸던 서용보가 잔뜩 벼르고 있다가 이 사건으로 정약용까지 물고 늘어지려 했다. 불똥이 정약용에게까지 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집을 뒤져보았지만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용보가 정약용을 유배 보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서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되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고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약용이 그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점차 누그려졌다. 그리고 정약용은 자신의 아호를 다산으로 정했다. 1818년이 되던 해에 정약용은 석방이 되었다. 고향 마재로 돌아가 책을 쓰려 했으나 중풍으로 정신이 흐트러지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유배에서 풀려난 지 18년이 지난 1836, 정약용의 결혼 60주년을 맞아 일가친척들이 모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정약용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개혁사상가의 일생이 저문 것 이다. 생각해보면 정약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정약용이 살아온 모습들을 보니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힘든 내색 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갔던 것. 그리고 자랑할 만한 좋은 벼슬자리인데도 자만하지 않았던 것. 그는 일생 동안 542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귀양살이가 아무리 시간이 많이 남는다고 해도 한 사람이 남겼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책을 쓰기는커녕 거의 읽지도 않는데많이 부끄러웠다. 정약용에 대해 공부 해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정약용이기에 가능한 일들 같았다. 우리의 위대한 조상, 정약용은 위대하다!

 

자 료 출 처

시대의 어둠을 밝힌 개혁 사상가 정 약 용

안 길 성 지음, 김 자 흔 그림

정 약 용

김 은 미 글, 홍 선 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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