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메시지(1) 푯대를 향하여

조회 수 2426 추천 수 0 2012.07.11 06:20:54
2008년 신년메시지(빌립보서 3:10-16, 요절 3:14)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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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그 삶이 지향하는 것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늘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는 과거 지향적인 삶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삶은 지난날을 잊지 못합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경력과 추억에 얽매여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과거의 원통했던 일과 패배를 잊지 못합니다. 과거의 추억 속으로 도피하거나, 지난날의 패배와 상처가 운명의 사슬처럼 그 인생을 얽어맵니다. 과거에 묶여 있는 사람은 앞을 향하여 한발자국도 나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현재 지향적인 삶입니다. 현재 지향적인 삶은 미래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합니다. 현재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갑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배고픔을 참지 못합니다. 오늘에 얽매여 소중한 미래에 펼쳐질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이어서 현실의 유익만을 추구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에서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미래지향적 삶입니다. 모든 초점을 미래에 둡니다. 미래의 결실을 보고 오늘이 수고롭지만 과일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미래의 꿈과 소망을 위해서 오늘 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전심전력합니다. 대개 늙으면 미래지향적인 삶보다 과거 지향적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라 할지라도 꿈과 비전을 상실하면 젊은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꿈과 비전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나간다면 그를 늙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에서 청춘은 나이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하고,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하며,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의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다면 80세라도 청춘으로 남는다고 노래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육신의 나이가 점점 먹어간다 할지라도 꿈과 비전만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미래에 대한 꿈을 상실하는 순간 망하게 됩니다.

빌립보서를 쓰는 바울은 60세 전후입니다. 지금은 60세가 되어도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수명이 짧던 당시의 나이로 본다면 나이가 꽤 먹은 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를 보면 아직도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벅찬 감격, 타오르는 비전, 끓어오르는 꿈, 그 꿈과 비전을 따라,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는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지난날의 화려했던 것들,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에겐 꿈과 비전이 살아 움직이었습니다. 그리했을 때문 그는 그 시대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습니다. 새해를 출발하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이를 위해 전력질주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바울은 예수님의 전 인격을 알고자 했습니다(10-12).

10,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0,11)”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겸손과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 예수님의 인내심, 예수님의 기도 생활,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 예수님의 인자하심, 예수님의 온유하심 등 예수님의 전 인격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고난의 의미를 알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본’이라는 말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뽄’입니다. 옷을 만들 때 이미 만들어진 ‘뽄’을 갖다 놓고 그 ‘뽄 대로’ 천을 오려냅니다. 그리고 그 천을 이어나가면 옷이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본이 필요합니다. 그 본대로 흉내 내고 따라가다 보면 틀이 잡힙니다. 그 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배우고자 했습니까? 그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잡혔다’는 것은 포로가 되었다는 뜻으로, 노예란 말입니다. ‘좇아가다’는 능동적인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잡히는 것’은 피동적인 반면에 좇아가는 것은 능동적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잡혔습니까? 아내에게 잡혔습니까? 아니면 남편에게 잡혔습니까? 아니면 돈에 잡혔습니까? 아니면 명예욕에 잡혀있습니까? 아니면 육신의 쾌락에 붙들렸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붙들렸습니다. 그는 목적에 붙들렸습니다. 과거 그는 자기가 목적이지만 이제 그는 예수님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께 붙들려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좇아갔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적극적으로 좇았습니다. 그는 질질 끌려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좇아갔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 붙들렸다면 위대한 인격을 배우기 위해 전 생애를 거십시오. 전 생애를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이 새해에는 바울처럼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가까이 능동적으로 좇기를 바랍니다.

둘째, 바울은 오직 한 일(one point)에 집중했습니다(13).

13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사실 그의 삶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얻었고, 이루었고,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도 당시 학문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섭렵한 대 학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그는 종교적으로 바리새인이요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일루리곤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소아시아와 유럽과 당시 세계의 수도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직도 이루지 못해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리스도를 알고 싶은 열망, 더 깊이 알고 싶은 열망, 신앙이 성숙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 그리고 넓이와 길이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위임하신 그의 비전을 이루어 가는 삶에 있어서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이룬 것이 아니고,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가난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가난했기 때문에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창조적 불만이 있었습니다. 불만을 위한 불만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어두움의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창조적 불만은 더 나은 세계로 나가게 합니다. 창조적인 불만의 반대는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현실안주의식(Status quo mentality)입니다. “이만하면 되었지”, “이 정도면 돼” 현실에 안주하고 근거 없이 여유를 부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때부터 인생은 늙고 퇴보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개인도 그렇고,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늘 부족하다는 생각, 가난한 마음, 창조적 불만은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새로운 발명의 세계로, 새로운 연구의 세계로, 새로운 역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정말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기를 원한다면,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 창조적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이나 전공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을 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가난한 마음, 창조적 불만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 이런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마음을 주셔서 금년 한해 우리 대학마을교회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성장, 발달하여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1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기에서 ‘오직 한 일’은 영어성경에 보면 ‘one thing I do’ 입니다. 바울은 오직 한 일(one point)에 집중했습니다. 그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한 가지 일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인생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성공한 사람들도 있고, 반면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사람들이 연초에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연말에 결산해 보면 계획을 이룬 사람이 있는 반면에 빈 그물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목표를 다 같이 가졌고, 목표도 다 같이 설정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납니까? 목표에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헌신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설렁설렁했기 때문입니다.

설렁설렁하게 산 사람들 치고 성공한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반면에 성취한 사람들, 어느 분야에 성공을 한 사람들, 귀한 가치를 남긴 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지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 일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었습니다. 서울대 교수 이면우 박사는 송곳이론으로 이를 정립했습니다. 한 가지 일(one point)에 몰두하고 집중하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년 한해에 자기가 설정한 목표를 향하여 집중하고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마을이 전도의 목표를 정했으면 그 목표를 향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살을 살 때에 연말 결산 때에는 우리의 목표 그 이상의 배가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갔습니다(14).

14절을 읽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는 부르심, 소명에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만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구원을 받았다는 것, 죄사함을 얻었다는 것, 그것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은 출발에 불과하고, 불러주신 그 일을 하도록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르심, 소명에 근거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소명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그리스도인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의 소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도를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 그러나 전도를 해도 사람마다 어떻게, 어디에서 하느냐 하는 소명이 또다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동족인 유태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소명이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소명이 있지만 그 보편적 소명 안에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달란트, 은사, 나의 독특한 삶의 조건을 통해서 나만이 추구해 나가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이 소명이 분명하고 확고해야 합니다.

목표는 매우 중요합니다. 해병대는 다른 군과 다른 특별한 훈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IBS(inflatable boat small) 훈련입니다. IBS는 12명이 양쪽에서 노를 젓는데 열심히 노를 젓는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를 바라보고 노를 저어야 합니다. 목표를 바라보지 않고 선미만을 보고 노를 저으면 빙글빙글 돕니다. 목표를 향해 노를 저어야 합니다. 사람이 눈을 감고 운동장을 걸어가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자기는 목표를 향해 간다고 하지만 운동장을 빙글빙글 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갈 때에 밭의 끝을 바라보고 소를 몰아야지 곧게 밭을 갈 수 있습니다. 만일 소 궁둥이를 보고 밭을 갈면 삐뚤삐뚤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생도 목표가 없이 살게 되면 자기 주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직장에 보낸 분명한 소명, 대학에 보낸 분명한 소명, 그것은 그 직장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직장을 주신 것입니다. 대학에 온 것은 캠퍼스를 변화시키기 위해 보낸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르심, 소명을 갖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이것을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났다는 분명한 소명, 여기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그것이 있다면, 이는 성공한 삶입니다. 이런 분명한 부르심이 없을 때 허무주의에 휩쓸리고, 무의미감에 빠지고, 공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무기력하게 되고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부패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부르심이있을 때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같은 기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명은 삶에 힘을 주고, 생기를 주고, 보람을 주고, 의미를 줍니다.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어떤 악천후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남자의 생존율은 30%이고, 여자의 생존율은 70%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강한 소명, 사명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여자는 가족이나 자녀에 대한 사명의식 때문에 끝까지 버틴다는 것입니다. 65억 인구 중 너희들을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내가 살아야 너도 살아”라는 사명의식이 여자의 생존율을 높여줍니다. 사명의식이 생존의식으로 승화됩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란 소설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 무엇인가 분명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을 모른다면 인생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살 수 있고, 그것을 위해 몸을 던져 죽을 수 있는 그 것, 이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이제 목표의식이 분명하면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분명한 소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좇아갔습니다. ‘좇아가다’는 것은 영어로 Press on입니다. 이는 아주 강력한 감성이 들어가 있는 단어입니다. 강력하게 전진하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오랫동안 굶주렸던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한 모습을 말합니다.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소명을 향하여 무섭게 질주했습니다.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그 소명에 향하여 전심전력했습니다. 16절을 보면 현재의 자리를 점검한 다음에 그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갔습니다.

마젤란이 세계를 처음으로 항해로 일주할 때 많은 시련과 난관이 있었습니다. 2년 동안 계획했던 항해가 3년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식량이 고갈됩니다. 배의 모든 장비가 마모되기 시작합니다. 파선 직전에 이릅니다. 설상가상으로 몇 사람들이 선상 반란을 시도합니다. 이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젤란 함장은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계속해서 한가지 단어만을 되풀이했습니다. “계속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아프리카의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톤 은 노년에 잠시 안식년을 얻어서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누군가가 리빙스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리빙스톤 선교사님,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그때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그는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을 향해서 자기의 삶을 계속 던지고자 한 것입니다. 역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또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새롭게 역사는 시작됩니다.

내가 대학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선후배들과 함께 세계를 복음화에 대한 꿈을 꾸며 새벽에 대전 보문산을 구보로 올라가 겨울에 폭포에 들어가 살을 에는듯한 폭포수를 맞으며 세계를 우리의 손으로 복음화하자며 외치곤 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기뻐하며 찬송하며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꿈을 꾸며 함께 생활했던 선후배들은 거의 주님의 지상명령인 세계선교를 향하여 미국으로 독일로 호주로 떠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꿈과 비전을 갖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푸르른 삶을 삽니다. 반면에 사명을 버리고 한인교회에 다니며 신앙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며 살아가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넓은 정원과 그림 같은 저택에 삽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겉으로 보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들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꿈은 빼앗긴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꿈이 없으면 성취에 대한 기대도 사라지고 헌신의 감격도 기쁨도 사라집니다. 저는 꿈과 비전을 잃고 감격과 헌신이 거세된 채 편리함과 안락함에 갇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세상이 주는 잔재미를 즐기며 꿈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을 때 일생동안 여러분은 의미 있는 삶,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역동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늘 푸른 꿈을 꾸며 그 소명을 이룰 때까지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요나단 에드워드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의연한 사명감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새 해를 출발하며 분명한 소명,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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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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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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