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조회 수 2716 추천 수 0 2012.07.11 06:21:42
이사야서 (2:1-4, 요절 2:3)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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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이사야가 본 예루살렘과 시온에 관한 비전입니다. 이사야가 시온에 관한 비전을 받을 때의 시기는 웃시야가 유다를 통치했습니다(1). 그 시대는 남북이 200여 년간 분열되어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다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여 없어지고, 남쪽의 유다는 북쪽의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아 언제 어떻게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남쪽의 애굽은 애굽대로 남 유다를 넘보고 있어 유다는 마치 풍전등화 같은 위기였습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보면 현재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의 상징막과 같이 겨우 남아 있었습니다. 원두막의 상직막은 초라합니다. 상징막은 언제 어떻게 비바람에 넘어갈지 모릅니다. 상징막은 보잘 것 없고 비천하여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랑과 관심을 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 원두막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예루살렘과 시온이 이처럼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거룩하고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습니다. 창기란 본 남편을 버리고 음행을 하는 여인을 말합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공평과 의리가 있었던 곳이 살인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유다는 이와 같이 영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국내외적으로나 위기의 순간이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장차 말일에 시온에 나타날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3).” 어떻게 폐허가 된 시온이 영광의 시온이 될 수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 시온의 영광을 사모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말씀이 모든 산 위에 뛰어나기 때문입니다(2).

2절을 보겠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시온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동산입니다. 이곳에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언약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일에 시온이 모든 산 위에 뛰어나고 모든 산 위에 굳게 서게 될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산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70%가 산입니다. 따라서 높고 낮은 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가까이는 인천의 문학산이 있고 청량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한라산이, 북쪽에는 백두산(2,774m)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럽에는 알프스가 있고, 아프리카에는 킬리만자로가 있고, 미국에는 Mount McKinley 산이 있는데 높이는 6194 m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8,848m)가 있습니다. 한라산과 백두산은 에베레스트에 비하면 작은 동산에 불과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백두산을 오르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1994년에 백두산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백두산은 정말 장관입니다. 이제 저는 유럽의 아름다운 알프스와 에베레스트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이처럼 알프스를 오르고자 하고, 에베레스트를 오르고자 합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모든 것을 투자하여 알프스와 에베레스트에 오르고자 합니까? 왜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이런 산을 오르고자 합니까? 왜 사람들은 문학산이나 수봉산을 오르지 않고 죽음을 불사하고 이런 산을 오르고자 합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산들이 어떤 산보다 높고 또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정상을 오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년들은 더 그러합니다. 만일 청년들이 높은 산을 오르고자하는 소원이 없이 인천의 문학산이나 오르고 싶다면 그런 사람은 청년이 아니라 애늙은이들입니다. 청년은 저 높은 곳을 향해야 하고, 향해 있어야 합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저 높은 창공을 날듯이 저 높고 높은 세계로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저마다 자기가 제일 높다고 자랑하는 산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높은 정상을 오르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는 명예의 산이 있습니다. 권력의 산이 있습니다. 고시의 산이 있습니다. 예술과 부의 산이 있습니다. 이즘과 쾌락의 산이 있습니다. 이런 산들은 저마다 제일 아름답고 높다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의 산에 열심히 오릅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학문의 산에 오릅니다. 사람들은 고시의 산을 열심히 오릅니다. 사람들은 쾌락의 산을 열심히 오릅니다. 사람들은 이즘의 산을 오릅니다. 한 때 남쪽의 대학생들은 사회주의 산에 열심히 오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부의 산, 쾌락의 산, 미의 산에 오르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한편 북쪽의 김일성 대학생들은 주체사상의 산이 가장 높다고 열심히 오릅니다.

그러나 뭐니 해도 사람들은 물질과 권력의 산이 가장 높고 굳게 선줄로 알고 오릅니다. 사실 물질의 정상에 오르면 국가 권력 기관도 함부로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삼성을 통해 이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의 산 또한 그 높기로 물질의 산 못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사활을 겁니다. 대통령은 그만 두고 대통령 아들만 되어도 그 세도가 막강합니다. 대통령 아들은 그만 두고 국회의원 아들만 되어도 그 산이 높은 줄 알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미국의 한안드레 선교사의 여동생이 국회의원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평소에 그를 쳐다보지 않던 큰아버지가 국회의원과 사돈을 맺자 자세가 달라져 VIP로 대우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동생과 함께 큰아버지 6순 잔치에 가보니 자기 주위에는 한 명도 앉지 않고 사람들이 여동생 주위만 앉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권력의 산을 오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돈 산은 그 세력이 가히 가공할 만합니다. 쾌락의 산은 사람을 가장 유혹하는 산중의 산입니다.

그러나 이런 산은 여호와의 산에 비하면 아주 작은 산에 불과합니다. 이런 산은 아무리 정복해도 결코 행복이 없습니다. 진정한 유토피아를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산해야 합니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하산 준비하지 않습니까? 하산을 준비하니 일개 교육부장관이 항명을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높은 산은 회전하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약1:17).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아 마르고 시듭니다(벧전1:24). 우리가 번 물질, 우리가 쟁취한 명예와 권력, 쌓은 지식과 학문, 그리고 달콤한 쾌락, 환상적인 이즘 등은 언젠가 물거품처럼 다 사라집니다.

오직 성경 말씀만이 굳게 서고 뛰어나게 됩니다. 굳게 서다, 뛰어나다는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높다는 것이 아니라 이는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과 절대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철학과 사상과 이즘,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장 뛰어나고 높습니다. 말씀만이 굳게 서고 세세무궁하게 됩니다(벧전1:25).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고 우둔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과 우월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말씀만이 굳게 서고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멘.

현대인들은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풍요롭게 산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제가 50여 년간 살아오면서 오늘날과 같이 풍요로운 적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김조이 선교사가 출국했습니다. 공항에 가보니 연휴 기간에 외국에 나간 사람들의 차량으로 차를 세울 곳이 없었습니다. 제가 공항을 다닌 이래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만큼 곤고한 때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내면은 곤고합니다. 목자가 필요합니다. 어제 한 형제가 명절이라고 찾아왔습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세상에는 모두가 멘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왜 이처럼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곤고한 삶을 살아갈까요? 이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인간이 갈한 것은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어 곤고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갈함이라 했습니다(암8:11).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너희는 이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사랑하기보다 쾌락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3:11). 어떤 사상과 어떤 철학과 이즘보다 말씀을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말일에는 말씀만이 절대적인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함을 알게 됩니다(시19:7).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디고데모가 나옵니다. 그는 명예와 부와 권력의 산의 정상을 정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의 72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출신입니다. 유대인들 중에 뜨거운 열망 중의 하나는 선생, 곧 랍비가 되는 것입니다. 랍비란 위대한 분이란 뜻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최고의 열망인 랍비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돈도 많았습니다(요19:39). 그는 세상 사람들이 오르고 싶은 모든 정상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저녁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어두움, 빛이 없는 삶, 생명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빛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쾌락의 정산에 오른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남편을 다섯 명을 갈아치웠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남자와도 만족을 얻지 못 홥니다. 그녀는 만족하지 못할 우물을 마시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났을 때에 삶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 사람들이 모든 산의 정상을 오른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지 않으면, 말씀의 능력을 덧입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말씀을 통한 능력을 덧이입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다 사라지지만 성경 말씀은 영원하고 가장 높고 굳습니다. 아멘.

둘째, 말씀이 시온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3).

3절을 보겠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 하나님은 일찍이 시온에 큰 뜻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씨에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예루살렘과 시온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찾고 순례합니다. 사실 그곳을 가본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합니다. 우리는 갈릴리 하면 아름다운 호수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합니다. 그러면 뭣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그 많은 여비를 들여가며 그곳을 찾는 것입니까?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입니다. 예수님의 사셨던 곳, 예수님이 거니셨던 곳, 예수님이 앉으셔서 말씀을 전하셨던 곳,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곳, 모두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기 때문에 만백성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복음의 흔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은 어느 곳이나 많은 사람들을 모여 들게 하고 영광스럽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혈의 강물, 성령의 강물, 은혜의 강물이 넘치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창12:2, 18:18,19).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요 목자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출 19:6).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선민다운 삶을 살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물질과 쾌락과 안일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헛된 우월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이즘, 즉 시온이즘에 빠져 하나님께 쓸모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새 이스라엘, 새 시온, 목자의 나라,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이를 볼 때 시온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개인과 공동체, 나라가 시온입니다. 한 때 영국은 시온이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나오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허드슨 테일러, 리빙스턴, 요한 웨슬리, 스펄전, 죤스 로이스 목사님들입니다. 그리고 영국은 영국성서공회를 통해 많은 성경을 세계 각처에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서적과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학생복음의 요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영적인 경건 생활로 피의 혁명을 부르지 않고 근대화를 이루었습니다. 그 때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영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18세기 이후에 복음과 복음 정신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미국으로 시온을 옮기셨습니다. 그러자 세계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배우고 신학을 배우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인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브라운 대학 등은 모두 크리스천들이 세운 대학들입니다. 많은 신학자와 말씀의 종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SVM 등 학생 복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미국은 복음을 사랑하는 주의 종들의 정신이 흐르고 있어 세계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몰려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초중등생들이 영어를 배우러 유학을 떠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미국을 시온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세계각처에서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이 복음을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약소민족을 괴롭히고, 패권 정치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미국을 사랑할 리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성경을 사랑하는 한국을 사랑하셔서 제사장 나라로 삼고 계십니다. 아멘. 한국의 성도들은 처음 복음이 전파될 때부터 성경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 성도들을 일컬어 Bible Lover, Bible Christian 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팔러 다니는 권서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家家戶戶를 방문하여 성경을 팔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성경을 사랑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저 유명한 1907년 1월의 평양 사경회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저 멀리 목포에서까지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먹을 것과 덮을 것을 들고 등에 메고 사경회를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1907년의 대부흥회의 기폭제가 된 것입니다. 이로 이해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들과 같은 훌륭한 주의 종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믿음의 선배들의 정신이 우리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20년 만에 1000만 성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시온으로 삼으십니다. 위대한 사람들로 축복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했을 때 갈릴리 촌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D.L.무디는 국민 학교도 나오지 않은 분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영국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미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연세대 총장이었고 1960년대 참의회 부의장이었던 백낙준 박사는 그 아버지가 아주 비루한 서민 출신인 백정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연세대 총장이 되었고 석학 중의 한 사람이요 또 한국 정계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만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 정신이 있을 때 누구나 시온으로 삼으시어 축복하시고 그 이름을 높이십니다. 이를 볼 때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시온, 걸어 다니는 시온, Walking Zion이 됩니다. 이 때 만백성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몰려듭니다.

우리는 분열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슬픈 민족입니다. 미국의 주가가 내려가면 덩달아 내려갑니다. 미국 경제가 제치기를 하면 우리나라의 경제는 독감이 걸려 열이 40도를 오르내립니다. 우리는 실로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눈으로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한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백성이 되어 제사장 나라가 될 때 만백성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하여 몰려올 것입니다. 인하대, 인천대가 제사장 캠퍼스가 될 때 만국에서 인하대로 인천대로 몰려올 것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저명한 대학이 본래부터 유명했습니까?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총장과 교수, 그리고 성경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만남을 통해 위대한 대학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빼어난 성경 선생이 되면 여러분에게로 성경을 공부하러 몰려올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경 선생이 될 때 인하대는 명문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양이 없는 것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양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양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각자 각자가 정말 빼어난 성경 선생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빼어난 성경 선생, 날카로운 칼이요 마광한 살 같은 말씀의 종이 되면 양들이 벌떼처럼 몰려 올 것입니다. 목자가 되십시오. 양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흰머리 노랑머리 곱슬머리 검은머리들이 물결을 이루며 몰려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본 비전입니다. 이 환상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말씀은 평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4).

4절을 읽겠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서로 전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세계 인류 역사를 볼 때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수 없는 평화 협정을 맺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칼을 만들고 총을 만들고 대포를 만들고 미사일을 만듭니다. 그리고 핵폭탄을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지구상에 분쟁이 사라질 수 있습니까? 성경을 사랑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통치하는 곳에 전쟁은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사랑하는 우리를 시온으로 삼고자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세계 각 곳에 말씀이 흘러넘치기를 원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교우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빼어난 성경 선생이 되어 만백성이 몰려 올 비전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1. 이사야가 시온에 대하여 본 비전이 무엇입니까(1,2)? 어떻게 폐허가 된 시온이 영광의 시온이 될 수 있습니까? 많은 백성이 왜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자 합니까(3)? 우리는 지금 어떤 산을 오르고자 합니까?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뜻이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세계는 어떻게 됩니까(4)? 언제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오게 됩니까?
3. 야곱은 어떤 빛에 행하여야 합니까(5)? 주께서 유다를 버리신 이유가 무엇이며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6-9)?
4.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 영광을 나타내시며 우상의 결국이 어떠합니까(10-21)?
5. 사람이 왜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됩니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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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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