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14 강(말씀, 5:12-42, 요절 5:20)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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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들은 어디에서 복음을 전하셨으며, 하나님은 사도들을 얼마나 높이셨습니까(12-16)? 하나님은 왜 사도들에게 표적과 이적을 행하도록 하셨을까요?

2. 종교 지도자들은 복음 역사를 어떻게 방해했습니까(17,18)?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19-21)? 사도들을 옥에서 끌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 사도들이 감옥에서 나가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22-28)? 사도들은 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까(29)?

4. 그들이 전한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30-32)?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사도들을 보호하셨습니까(33-39)? 사도들은 채찍에 맞으면서도 왜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40,41)?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로부터 배울 바가 무엇입니까(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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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하든 성경을 가르치든 모든 일에는 증거적 성격이 있어야 합니다. 증거는 교육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교육은 영어로 education인데, 이는 라틴어 educatio에서 유래된 단어로 빼낸다, 끌어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내부적 능력을 개발시키고 미숙한 상태를 성숙한 상태로 만드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증거는 증인된 의미가 있습니다. 증인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증인은 자기 철학이나 가치관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사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깨닫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증인은 자기를 설명하고 변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말합니다. 재판장이 묻는 대로 대답만 하면 됩니다. ‘그 자리에 있었느냐?’ 물으면 있었으면 있었다고 대답하면 됩니다. ‘네가 보았느냐’ 물으면 보았으면 보았다고 대답하면 됩니다. 자기가 보고 체험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증인의 임무입니다. 증인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인은 증거자에 대한 사랑과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본 것을 보았다, 경험한 것을 경험하였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담대함이 요구됩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들은 법정에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32)”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듣고 보고 체험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증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증인은 헬라어로 마르튀스, 영어로는 순교자라는 martyr입니다. 증인은 자기의 생명을 바쳐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증인된 삶을 살았을 때 표적과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표적과 이적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상황과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복음의 증인된 사도들의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믿음을 배워 환경과 여건이 어떠하든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표적과 기사를 나타낸 사도들(12-16). 12a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하나님은 사도들에게 영적인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그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기사란 공관복음에 나타나고 있는데, 헬라어로 테라스로 wonder, miraculous로 아주 놀라운 사건, 깜짝 놀랄만한 초자연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 sign입니다. 표적이란 놀라운 기사 속에는 반드시 깊은 뜻, sign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적 속에는 주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이적 속에는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건 속에서 지금도 주님이 살아계시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시는 표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단순히 기적의 사건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서 성령을 속이고 거짓된 삶을 하나님이 얼마나 미워하시는가 하는 표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2b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이자 믿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행각에 모였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162개의 큰 기둥으로 된 건물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솔로몬 행각에서 말씀을 전하신 적이 있습니다(요10:23).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은 공회에서 다시는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으며 석방되었지만 그런 것에 매이지 않고 공개적으로 그것도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신앙적 용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초대 성도들이 사도들과 마음을 같이 하였다는 것입니다. 초대 성도들은 핍박받는 것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받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권능 앞에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 앞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수평적 관계에서의 하나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에서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 사도적 권위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어떤 핍박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하나가 되어 감옥도 함께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하나가 되어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보통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둘을 하나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미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붕어빵처럼 똑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개성과 특성이 각기 다르지만 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이 각기 자기 악기의 목소리를 내지만 지휘자를 중심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가 되지 않을 때 틈이 생기게 되고, 틈이 생기면 사단이 비집고 들어와 분열을 일으킵니다. 분열이 생기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라고 한 것은 아마 자기 자신과 간수의 손을 하나로 묶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힘써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지킬 때 윤택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곳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공동체를 깨는 것은 사탄의 역사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그 나머지는 교인이 아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예수를 핍박하는 아예 안 믿기로 굳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감히 사도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핍박하는 사람이 감히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권세 앞에서 감히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교회를 칭찬했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들도 교회를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었고, 안 믿는 사람들도 교회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교회가 날로 부흥이 되었습니다(14).

15,16절을 보겠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람들은 베드로의 말과 그의 기적을 행하는 역사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인정했습니다. 그에게 가까이 감으로써 그들이 병을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림자에 덮이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이 모여 병뿐만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둘째, 이 일에 증인이요(17-39). 17,18절을 보겠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내적 시련이 끝나자 외부적인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하나가 되어 마음에 시기심이 가득하여 사도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큰 시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옥에 갇힘으로 말씀을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도들이 모두 옥에 갇힘으로 초대교회는 구심점이 없어 방향을 잃고 표류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들 또한 실의와 좌절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복음의 원수들은 복음이 전파될 수 없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깜짝 놀란 순간에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그들을 끌어내었습니다. 주의 사자, 천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상 사역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눅1:26),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단6:22), 용기를 주고(창16:7), 인도하고(출14:19), 형벌을 내리고(삼하24:16), 땅을 두루 다니고(슥1:9-14), 악한 세력과 싸웁니다(왕하6:16-18, 계20:1,2). 천사들 중에는 악한 천사가 있고 선한 천사가 있습니다(계12:7). 악한 천사는 마귀 곧 사단과 동맹을 맺고 있어 그 세력이 대단합니다. 여기에서 주의 사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행8:26, 12:7,23, 마1:20,24, 2:13,19, 28:2, 눅1:11, 2:9).

20절을 보겠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주의 사자는 사도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이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기를 원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은 말씀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말씀 전파를 통해서만이 생명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생명 구원의 역사는 말씀 전파와 정비례합니다. 말씀 전파만큼 구원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구원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1:21).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예수님이 이 땅에서 쉬임없이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전도하고 일대일 말씀을 하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금년에는 일대일 말씀과 전도를 통해 캠퍼스와 각기 직장에서 교회 마을을 만들어 구원역사가 날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전파는 실로 절박합니다. 찬송가 258장을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죄와 죽음의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줄을 던지고, 구조선을 띄워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들이 죄와 죽음의 탁류에서 휩쓸려 심판과 멸망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가서, 성전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말씀에 붙잡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복음역사를 훼방하였습니다. 바울의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고린도전서2:3절을 보면 바울이 그들 가운데 거할 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사도행전 18:9,10절을 보겠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이 심해지자 더 이상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말씀의 종이 가만히 있게 되면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잠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 얻기를 원하셨습니다(고전1:21). 바울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때 영적으로 황무지와 같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고린도에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유언적인 서신입니다. 그는 이 서신에서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1,2).” 이를 볼 때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은 우리 주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마28:19,20, 막16:15, 눅24:47, 요21:15, 행1:8).

이 명령은 마지막 명령이요 유언입니다. 유언은 반드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는 영어성경에 in season and out of season입니다. 이는 기회가 있든 없든, 조건이 좋든 나쁘든 항상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조건과 상황에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좋은 조건은 결코 없습니다. 봄 학기에는 봄 학기대로, 여름학기는 여름 학기대로, 가을학기에는 가을 학기대로, 겨울학기에는 겨울 학기대로 상황은 항상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항상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틈나는 대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양이 좋든, 어렵든, 나의 형편이 좋든, 안 좋든, 성수기든, 비 성수기든 전해야 합니다. 직장에 가든 안 가든, 군대를 가든 안 가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세입니다. 말씀을 전하되 여러 모양으로 전해야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파한다고 해서 듣는 사람들이 말씀을 다 듣는 것은 아닙니다. 발하고 대적하고 불순종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말세에 가까우면 바른 교훈을 듣지 않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진지한 대화보다 부담 없이 듣고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도우려면 범사에 오래 참고 말씀으로 경책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말로 권면해야 합니다.

사도들은 주의 사자가 명하는 대로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공회를 모아서 사도들은 성전에서 성령 충만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다가 공회 앞에 세우고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했는데 왜 계속해서 가르치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이 때 사도들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 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에 권세 잡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의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0-32).” 사도들은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직접 보고 체험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은 크게 분노하여 사도들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말리엘의 현명한 권고를 통해 사도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34-39). 그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석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사명을 마칠 때까지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생명싸개로 보호하여 주십니다.

셋째, 쉬지 않고 전도하는 사도들(40-42). 채찍을 맞은 사도들의 자세가 어떠했습니까? 41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에 떠나니라.” 그들은 채찍을 맞고 움츠러들거나 슬픈 생각에 빠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핍박받을 만한 자격이 인정된 사실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핍박에 대해 도전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핍박을 받을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5:11,12).” 사도들과 같이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자가 복음신앙을 소유한 자입니다.

42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고난을 겪고 두려워하기는커녕 더욱 용기를 얻어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주님, 우리는 이 생명의 복음을 다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가서 생명의 복음을 다 전하겠습니다. 금년에는 열심히 전도하여 저희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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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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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