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성탄 제 3 강(11:1-16, 요절, 11:1)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예수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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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 예수님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빛이 되십니다.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앗수르를 지팡이로 사용하여 징계하셨습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지팡이에 불과하다는 것도 모르고 교만하여 세계를 자기 손 안에 넣고자 닥치는 대로 각 나라를 침략하여 파괴를 일삼았습니다(사10:7). 이제 그 어떤 나라도 앗수르에게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앗수르를 내리치셨습니다. 이로 인해 앗수르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세상 나라는 크고 거대하여 결코 망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멸절합니다.

역사상 앗수르가 그러했고, 바빌론제국이 그러했고, 헬라가 그러했고,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로마도 그러했고, 몽골 제국도 그러했고, 해가 지지 않는다던 영국도 그러했고, 소비에트연방도 그러했습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지만 세상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 그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는 미미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자라고 성장하여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1). 그 나라는 평화의 나라요(6-9,13), 공의와 정직으로 통치합니다(3-5). 그 나라의 범위는 전 세계(whole world)입니다(10-12). 그 나라는 파괴가 아니라 회복과 돌아오는 역사입니다(13-16).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오늘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예수님, 이새의 뿌리에서 나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우리 안에 평화와 회복과 열매를 맺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메시아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셨습니다(1).

1절을 보겠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세상 나라 앗수르의 위용은 울창한 삼림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는 꺾임을 당하고 베임을 당하고 찍힘을 당했습니다(10:33,34). 반면에 예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셨습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다윗을 흠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흠모하여 다윗이란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제 아들도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흠모는 그만두고 이름을 기억하는 이조차 없습니다.

이새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새는 시골 베들레헴에서 양 치는 목자입니다. 당시 목자는 천한 신분으로, 재판의 증인으로도 설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메시야의 가문은 royal family나 high class가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이새의 뿌리에서 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나무가 다 꺾이고 꺾여 겨우 뿌리만 남은 그 뿌리에서 한 싹으로, 한 가지로 태어나셨습니다.

한 싹, 한 가지는 연약함의 상징입니다. 추운 겨울 밤, 한 싹을 잠깐 밖에 내놓아 보세요. 당장 얼어 죽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폭풍 앞에 연약합니다. 성경은 그런 연약한 한 싹과 한 가지에서 결실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연약한 한 싹과 한 가지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란 히브리어로 나사렛이란 음입니다. 이는 메시아가 나사렛에서 자라시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메시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가문은 찍히고 찍혀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유다는 바벨론으로 잡혀 가는 등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겨우 유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지만 강대국의 짓밟힘은 계속되었습니다. 수리아와 로마의 짓밟힘 속에 유다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조차 침묵하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은 400여 년간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과 같았습니다.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은 일제 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와 같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우리나라는 동조동근, 내선일체라는 사상 아래 창씨개명과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한국의 얼과 문화와 전통을 뿌리 채 뽑혔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메시아의 족보가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낳고, 낳고, 낳고 반복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대 시대마다 다윗의 가문을 보존하시고 지키시고 함께 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6절을 보면 마태 저자는 낳고 낳고 하다가 드디어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알립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예수님은 가지가 꺾기고 나무가 송두리 채 베임을 당한 그런 절망의 때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되 시골 나사렛의 목수 출신인 요셉과 정혼한 시골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울 곳이 없어 가장 천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무시 받고 천대받던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갈릴리라 불리는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학문이 없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사53:2)”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핍박하다 못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만백성이 그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세상 역사는 왕궁에서 호화스럽게 출발합니다. 그러나 세상 나라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때가 되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3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화려하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2년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역사는 초라하게 출발합니다. 축전 한 장 보내 주는 사람 없고, 화분 하나 보내 주는 사람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미미하게 출발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탄 소감을 발표한 황우철 형제님은 6년 전 1학년 때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군에 가서도 이병, 일병, 상병, 병장 봉급의 십일조를 모아 군 제대하던 첫 주에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사병 월급의 십일조를 온전히 드린 형제는 제가 처음 보았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보면 연약해 보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장차 의학계의 믿음의 거목이 되어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칠 것입니다. 우리의 일대일 말씀 역사는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작고 미미하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자라 새들이 깃들게 됩니다. 믿음의 큰 거목으로 자라게 됩니다.

둘째, 메시아는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십니다(2).

2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실 수 있는 자격은 곧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강림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고(눅3:35),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으셨습니다(눅4:18). 성령으로 인치시고(요6:27), 성령의 옷 입으시며(눅4:14)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습니다(눅4:1).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시고(눅4:1,2), 성령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셨고(히9:14),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8:11).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메시아로 임명받으신 예수님은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지혜’는 외적인 분별력이라면 ‘총명’은 내적인 분별력입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을 때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가치가 있고 귀한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모략’은 일을 계획하고 세우는 것을 말하며 영어로는 counsel로 되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카운슬러는 진리의 길, 하나님 나라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길이 되십니다.

‘재능’은 성취하는 권능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그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충만하십니다. ‘지식’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가 사물에 대한 분별을 가리킨다면 지식은 행위의 근거를 가리킵니다. 지식이 없으면 어떤 일을 자신감 있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이 지식은 성경을 상고함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고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단 사상 중의 하나인 영지주의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지식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복종과 찬양과 경배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충만하십니다.

셋째, 메시아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았습니다(3a).

3a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사람이 살다 보면 많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데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 하면 교회에 나가면 술 담배 할 수 없다는데, 술 담배 안하면 무슨 재미로 살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즐거움은 이런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즐거움은 delight, 환희를 말합니다. 에덴이란 뜻도 환희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경외’는 원어 성경에 코로 호흡한다는 뜻입니다. 코로 호흡한다는 것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좋은 향기를 만끽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 냉수 마시듯이 꿀꺽꿀꺽 삼킵니다. 그러나 커피 맛을 아는 사람들은 커피에서 나오는 독특한 향기를 맡으며 마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여호와께 대한 경외로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등 육신의 정욕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는 즐거움이 아니라 재미입니다. 재미는 순간적이고 육감적입니다. 재미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재미로 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이 즐거움은 영원합니다. 이 즐거움은 누가 뺏어갈 수 없습니다. 이 즐거움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풀리는 그 기쁨, 그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표현한다면 ‘쇼 쌩크 탈출’의 영화에서 종신형의 수형 생활하던 주인공이 감옥을 탈출하여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두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하여 기뻐하는 주인공의 그 모습이 아닐까요? 찬송가는 이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285)♬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그가 말씀을 사랑하였는지 아십니까?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119:147,148).” 그리고 그는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새벽이 빨리 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빨리 일어나서 말씀에서 나오는 향기, 말씀에서 나오는 꿀맛을 향유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 심오한 영적인 세계를 알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일하는 즐거움 때문에 새벽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새벽을 깨워서 시편 기자와 같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상고하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새벽을 기다릴 만큼 말씀을 읽는 즐거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멘.

넷째, 메시아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3b).

3b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세상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합니다. 일한 업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성과급이니 연봉제니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욕심과 실리로 판단하고 행합니다.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권모술수로 판단하고 행합니다. 형제나 자매나 배우자를 고를 때 인격과 내면성보다 외모를 봅니다. 키가 얼마인가를 묻습니다. 통장에 잔고가 얼마인가를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판단하고 행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때 가룟 유다는 그 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그녀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막14:6).

그리고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부자들은 헌금함에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반면에 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넣었는데도 동전 소리가 땡그랑하고 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이 때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12:43,44).” 예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동기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섯째, 메시아는 평화로 다스리십니다(6-9).

6-9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천국은 사랑이 넘치는 곳입니다. 천국은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려 다닙니다.

암소와 곰은 원수인데 같이 풀을 뜯어먹습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먹습니다. 사자는 산 짐승만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풀을 뜯어먹습니다. 표범과 이리는 가장 잔인한 짐승입니다. 표범은 나무를 잘 타는 맹수로 나무에 올라가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먹을 것이 지나가면 무섭게 덮칩니다. 그런데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있습니다. 사자는 무섭고, 곰은 미련하나 잔인하고, 독사는 독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사랑으로 뭉칩니다. 함께 거하고 먹고 마시고 눕고 놉니다.

세상은 성공지상주의, 투기와 탐욕이 가득합니다. 세상은 눈만 뜨고 일어나면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상극의 원리가 지배합니다. 갈등이 점철되어 있습니다. 남북의 갈등은 최악입니다. 언제 어느 때 포가 서로 날아갈지 모릅니다. 원수지간도 아닌데 여야가 서로 물어뜯습니다. 계층간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상하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불신자끼리는 그렇다 치고 신자들끼리도 서로 싸우고 헐뜯습니다. 같은 교회의 동역자 끼리도 서로 으르렁거립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하고 눈을 부라립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함께 거하고 먹고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합시다. 천국에는 상함과 해됨이 없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메시아는 돌아오게 합니다(10-16).

메시야는 이스라엘만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메시야는 친히 만민의 깃발로 서서 열방을 자신에게로 불러 모으십니다. 그 결과 온 천하 만민이 돌아오게 됩니다.

11-16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비록 범죄하여 멸망할지라도 메시아는 평화와 승리의 나라를 다시 건설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온 세계에서 불러 모아 새 이스라엘을 형성하십니다.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사역은 제 2의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홍해를 말리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것처럼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올 자들을 위해 유브라데 강을 일곱 갈래로 나누어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앗수르로부터 돌아올 자들을 위해서는 대로를 준비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방불하게 하십니다. 남은 자의 구원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제 서로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여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승리하게 됩니다(13,14). 그리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귀환시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모든 장애의 요소가 제거됩니다(15,16).

세상 나라는 크고 요란하고 거대하게 보이지만 반드시 멸절합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는 미미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자라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메시아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평화의 나라’ 입니다. 메시야가 세계를 통치하실 때 진정한 평화와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그 날이 하루 속히 오도록 기도합시다. 이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음 전파입니다. 모든 교회(whole church)가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전 세계((whole world)에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미미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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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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