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1-8

시련과 인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

초대교회에는 수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기도 하고 톱에 켜기도 하고 칼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궁핍과 환난과 수많은 학대를 당했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련과 박해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박해와 고난을 시험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뜻과 계획 속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시련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탄이 사람의 탐욕을 이용하여 유혹으로 빠지게 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은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지만,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인격을 파괴시켜 사탄의 노예로 만들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본문에서의 시험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시련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시련의 의미와 시련에 대한 자세, 그리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시험을 만날 때 기쁘게 여겨라(1:1-2)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1-2)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유대 성도들, 특히 수리아 지역의 유대 크리스천을 가리킵니다. 그는 먼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납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ποικίλοις)’란 헬라어로 여러 색깔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들을 보면 색상이 단조롭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그림은 여러 색상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시련과 역경과 고통이 엮어져서 우리의 생애가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풍성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빚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쓰시는데 그 재료가 바로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의 재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조각됩니다. 만일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체념하고 도중에 그만 두게 되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조각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련이 닥칠 때 온전히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라(count, K.J.)’는 평가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련이 있을 때 이를 굉장히 놀라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시련을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련을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가 시련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쁨으로 높은 뜻과 가치를 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시련과 역경이 없거나 없애거나 물러가게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도 불신자와 똑같이 온갖 여러 종류의 시련과 고통을 만납니다. 우리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때론 불치의 병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전립선암 판정의 수준까지 PSC 수치가 올라가서 2주간 넘게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고통과 역경과 시련이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런 생각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은 시련이 닥칠 때 어떻게 대처합니까? 그들은 시련이 닥치면 도피합니다. 그들은 이를 잊고자 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니면 반항합니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찾아오는가, 조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예수님은 환난을 당할 때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안은 환난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환난과 시련과 역경 중에도 누릴 수 있는 평안, 어떤 상황이나 환경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안, 환경이 평안을 변질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평안을 말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환난 속에서의 승리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14:22)

바울은 그들에게 굳게 마음을 가져라.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환난 앞에 흔들리지 말고 계속적으로 믿음에 살라는 말씀입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환난과 시련 앞에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우리는 3박자 구원을 좋아합니다. 3박자 구원이란 세상에서 잘 살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세상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이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14:17).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벧전 1:4).

세상에는 결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또한 공짜가 없습니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대가가 환난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겪지 않고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환난(hardship)은 내적인 고민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고통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에서 오는 경제적 고통,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을 말합니다. 근심, 걱정, 불안, 초조, 염려, 두려움은 하나님 나라에 백해무익합니다. 이런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은 정신 건강과 육체적 건강, 그리고 영적 건강의 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시고(6:27),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3-34)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외적인 환난과 손해를 많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 좀 더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직장과 가정 학교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자 할 때 조롱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믿고 칭찬만 듣는다면 가짜 신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게 되면 반드시 환난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충돌이 없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양다리 걸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박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박해를 통해 겸손하고 경건하게 됩니다. 경건은 박해의 당위조건입니다.

욥은 많은 시련을 받았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의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2:9). 그 때 그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그는 환난과 시련이 인격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단련을 통해 어느 날 빛나고 아름다운 순금처럼 되어 주님 앞에 서 있을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시련 중에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련의 인내를 통해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42:10-17).

요즘 우리 앞에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에다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서민경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개인 총 부채가 1300조입니다. 거기다가 대중문화는 음란의 광풍으로 몰아치고 있습니다. 100만 명이 넘는 청년실업자들은 바늘귀처럼 좁은 취업문으로 인해 절망이 아니라 멩붕(멘탈 붕괴)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이런 때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 하나님과 사회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는 과정으로 여기고 온전히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시련은 믿음을 굳게 하는 좋은 스승이요 학교입니다. 시련은 졸장부에게는 괴물처럼 보이지만 장부에게는 천사로 보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역경을 감내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포기하고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역경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습니다.

쥐 두 마리가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한 마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물 속에서도 헤엄치기가 어려운데 우유통 속에 빠졌으니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쥐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지고 살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내가 우유통 속에 빠졌는데 우유는 얼마든지 있으니 죽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손발을 놀려서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자 우유가 버터가 되어 결국 그 쥐는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희망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절망의 관점에서 보느냐, 적극적인 사고로 보느냐, 아니면 소극적인 사고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는 부정과 절망의 시각에서 긍정과 희망의 시각으로 역경을 감내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고향 시카고에서 퇴임 마지막 연설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Yes, We did, We can.

2. 인내를 이루라(1:3-4)

바울은 인내를 환난의 원인의 위치에 두었지만(5:3-4), 야고보는 시련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3)

우리가 왜 시련을 온전히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까? 이는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5:22-23).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요 인격입니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오래 참으시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2:4; 12:2).

인내(ὐπομονἠ)’는 연단의 결정체입니다(5:4). 금광석이 몇 백도의 제련의 과정에서 힘들다고 인내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면 순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에서 신앙생활이란 뒷짐 지고 하나님께서 다 아셔서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란 내가 혼자 하는 것도 또한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의 의지와 책임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만일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하나님의 주권에만 돌리게 되면 기독교 운명주의에 빠지게 되고, 의지와 책임만을 강조하게 되면 신앙의 주체가 내가 되는 인본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면 인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온전하게 됩니다.

온전하다(complete, τέλειον)’는 뜻은 성숙하다란 뜻입니다. 성숙의 척도는 인내입니다. 시련 앞에서 얼마나 참고 인내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이 드러납니다.

둘째, 구비하게 됩니다.

구비하다(ὁλόκληροι)’란 것은 하나님 앞에 어떤 제물을 드릴 때 상처나 흠이 없는 깨끗하고 온전한 제물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는 일절 깨끗해야 합니다. 성도는 인내를 통해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정결한 제물이 됩니다.

셋째,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부족함이 없다(λειπόενοι)’는 단어는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인격을 뜻합니다. ‘인내는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갖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많은 시련을 주셨습니다. 그 시련은 거룩한 훈련이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 광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딸 일곱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는 외로운 이드로의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모세는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는 머슴이 되었습니다. 허허 벌판에서 양을 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양을 따라 광야의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되었고 모세는 결국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살겠노라고 했던 그의 믿음의 결단은 그를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의 결단의 결과는 끝없는 슬픔과 끝없는 노동과 끝없는 고독뿐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머슴살이의 대가로 모세에게 주어진 것은 이드로의 맏딸 십보라와의 결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광야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광야 훈련은 광야에서 자신의 감정과 혈기를 죽이는 훈련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고독을 이기는 훈련이었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부르심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는 40년간 처가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 똥을 치면서 묵묵히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훈련을 통해 어떤 시련과 역경 중에도 인내할 수 있는 온유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졌습니다. 성경을 그를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12:3)

하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훈련을 통해 온유해졌을 때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많은 시련과 여러 연단을 주십니다. 이 시련과 연단을 통해 온전하게 구비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조각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3. 지혜를 구하라(1:5-8)

우리가 어떻게 이런 시련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지식은 분석하는 것이라면 지혜는 종합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정보를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지식을 선하게 사용하는 힘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지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후히 주십니다. 여기에서 후히 주신다는 것은 풍성하게 주신다는 뜻도 있지만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께 건강을 구하면 건강을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주십니다. 주님께 능력을 구하면 주저하지 않고 능력을 주시고, 주님께 은혜를 구하면 주저하지 않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후히 주시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도록 함에 있습니다(3:16). 그 이외에 다른 뜻이 없습니다.

꾸짖지 아니한다는 것은 귀찮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몇 번은 도와줄 수 있지만 자꾸 도와달라고 하면 귀찮게 여기고 짜증내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달라고 졸라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들어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6-8)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한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고 구하는 것입니다. ‘의심(διακρινόμενος)’이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저울질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 무엇이든지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의심이 생기면 부정적인 생각, 연약한 생각, 패배적인 생각, 운명적인 생각이 들어 나의 몸과 생각과 의지를 사로잡아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의심은 신앙생활의 적입니다.

그런데 의심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심리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의심은 사탄이 심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사탄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의심병을 심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의심의 파문이 일어나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사탄이 심어주는 의심병에 걸리면 어떤 천하장사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의심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할 때만이 사탄이 심어주는 의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6:10-18). 우리가 의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때 으면 누구든지 믿는 그대로 됩니다.

믿음은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인내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각됩니다. 우리가 시련의 인내로 하나님의 사람들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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