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성탄(누가복음 2:11~14)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2:10)

 

올해는 산타가 19일에 온다는 말이 인터넷에 오가고 있습니다. 이는 산타가 1225일 새벽에 도착해서 2주간 격리가 끝나는 날이 202119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거리 두기와 격리가 일상이 되다 보니 성탄이 다가와도 성탄의 기쁨이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성탄보다 백신이 언제 나오나,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인가 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립니다. 천사가 전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모든 사람, 빈부귀천, 남녀노소, 이념과 체제, 피부 색깔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기쁨입니다.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상대적인 기쁨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하늘나라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입니다(벧전 1:8).

그래서 천사는 이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전한 큰 기쁨의 소식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성육신하셨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1)

이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약속하신 대로 성자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1, 14, 19:13).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입니다. 이를 한 가지라도 부정하거나 덜 중요시해도 안 됩니다. 영과 육을 이분법으로 나눠 육은 악하고 영은 거룩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상이 당시 성행했는데 바로 영지주의, 이원론입니다.

이 사상은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거부했고, 몸의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있고, 추한 육의 몸으로 부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지금도 음으로 양으로 교회 속에 파고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교회 안은 거룩하고 교회 밖은 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내에서는 신자 모습으로 살고, 교회 문을 나가는 순간 불신자의 모습으로 삽니다. 삶과 신앙이 일치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도 계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만 신자로 행세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밖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성전은 깨끗해야 합니다. 성전인 우리 몸이 음욕과 탐욕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이 의와 사랑과 거룩함으로 깨끗해야 성령이 거하시고, 깨끗한 성전이 되어 성령이 거할 때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주로 오셨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1).

구주란 구원자란 뜻이고, ‘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기름 부은 자란 뜻입니다. 당시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이 세움을 받을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은 왕이요 선지자요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입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 속죄합니다. 왕은 통치자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요 대제사장이시오 왕이십니다. 그리고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존재이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것은 인간은 죄를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며, 예수님이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은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요즘 코로나 감염병은 지금까지 지탱했던 모든 제도와 가치를 송두리째 허물어트렸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습니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었는데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검사를 받으라는 문자 통보가 날라왔습니다. 길을 물은 사람이 코로나 양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밤 9시가 되면 어둠의 도시로 변합니다.

왜 코로나 감염병이 발생했습니까? 성경에 먹지 말라는 박쥐를 먹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박쥐를 먹었습니까?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1:15).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3:5). 탐심은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은 미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에 미쳐 있고 성과 쾌락에 미쳐 있고 명예와 권력에 미쳐 있습니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습니다. 요즘 20대는 좌절하고, 30대는 분노하고, 40대는 절망하고, 50대는 명태(명예로운 퇴직) 정도가 아니라 한겨울에 강제 퇴직해야 하는 강퇴, 60대는 포기, 70대는 노후가 마련되지 않아 할거(할아버지, 할머니 거지) 세대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상이 없는 분노가 곳곳에 나타납니다.

죄는 육신과 생각과 영혼을 파괴합니다. 인간관계를 무너뜨립니다. 사람이 죄의 세력에 사로잡히면 자기 힘과 의지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병든 몸, 병든 마음, 병든 영혼, 병든 심령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까? 친구나 부모님이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친구가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죄는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과 기술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고상한 철학과 사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종교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미국의 무디 목사님은 당신은 자신을 믿어보라. 반드시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갈라놓을 것이다. 명예나 돈을 믿어보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후회 없는 삶과 영생의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죄의 고통과 형벌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온전히, 영원히 아담의 죄성에서 벗어나 예수 생명이 됩니다(9:11~15).

이 예수 생명은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땅에 살고 있지만,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3:20). 구원받은 성도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들림받고, 무덤에 묻힌 육의 몸은 썩지 않은 몸으로 부활합니다. 이것이 영화로운 영광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즉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종교가 한번 믿음으로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 탄생, 구주 탄생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구주이심을 마음으로 영접하여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라는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9:27).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1:15). 아담의 죄성에 속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 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영원히 참예합니다(21:8).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9:48). 그곳은 내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실패하더라도 내일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내일이 없습니다. 내일이 없으니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희망은 오늘보다 내일은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식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예외 없이 다 죽습니다. 50에 죽던지, 천수를 누려 100세에 죽든지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먼저 가고 늦게 가는 것뿐입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인간은 권태와 고통의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는 날 동안 사망권세가 나를 지배합니다. 사망이 세도를 부려 세상을 공동묘지로 만들었습니다. 죽음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처럼 사망은 잔인합니다. 바울은 사망을 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56).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하루아침에 갈라놓고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가져다줍니다.

누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공자는 죽음의 문제를 묻는 제자에게 삶의 문제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의 문제를 알 수 있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석가는 세상에서 죽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죽음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요즘 고도로 발달한 의학과 생명과학도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 퇴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11:25). 예수님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렸습니다(2:1,5).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빛의 세계로 옮기셨습니다(1:13).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살려 영원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산 소망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벧전 1:3~4). 예수님은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두려움에서 평강을, 어두움에서 빛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디에 탄생하셨습니까?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2:12)

천사는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말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그리스도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표적이란 이적과 달리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깊은 뜻은 메시아 정신과 역사 방법입니다.

메시아의 정신과 역사 방법은 겸손과 낮아짐입니다. 겸손은 배우는 마음입니다. 論語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아무리 지위가 낮고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낮고 겸손한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넷째, 예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현대인들의 큰 고통은 고독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David Riesman)은 개인의 소외를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라고 했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로 패자부활전이 없는 데서 오는 고독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친구는 많으나 우정을 나눌 벗이 없어 고독합니다.

명심보감에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A friend in need입니다. 반면에 급하고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매일 친구들을 만나느라 돈을 낭비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날마다 밖으로 나돌아다니느냐 하니, 아들이 아버지, 제가 나가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래요. 여러 친구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아요.”

아버지는 그건 그렇지, 그러나 친구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면 친한 친구가 있는지 시험해보자.”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이참에 친구들이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아버지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거적에 싸서 지게에 얹혀 아들에게 지게를 지운 후, 친한 친구에게 가서 내가 실수하여 사람을 죽였어.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나를 좀 도와주게나하라고 했습니다. 친한 친구를 찾아 그대로 말하니 친구는 그런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며 가라고 했습니다. 친한 친구라고 하는 집마다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거적으로 싼 돼지를 지고 친구 집에 가서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하자, 두말할 것 없이 집안으로 안내하며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위험하니 저 나무 밑에 내려놓고 자네는 내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웃으며 돼지 한 마리 잡아 왔네. 술이나 한잔하게나.” 친구는 에이 짓궂은 친구!”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며 이제 알았니, 친구가 형편이 좋을 때는 형, 아우 하지만 어려울 때 돕는 친구는 많지 않단다.”

현대인들은 밥 먹고 술 마실 때는 형님, 동생이라고 하는 주식형제(酒食兄弟)와 카톡에 수십 명이 저장되어 있으나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없습니다. 선생은 많지만 참 스승이 없습니다. 저마다 리더라고 하지만 참 지도자가 없습니다. 목사는 많으나 목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고독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1등만이 존재하는 정글의 법칙 속에 누가 내 말을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좋겠는데, 누구도 나와 함께해주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코로나로 말미암아 만나면 죽고 집콕해야만 산다고 하니 더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임마누엘,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하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라.”(1:23)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23:4)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는 영어로 사망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고 허상,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랐습니다. 사울의 칼날은 다윗의 심장을 겨눴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늘 다윗과 함께하셔서 사울의 칼날에서 보호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다윗을 늘 안전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리면 코로나에 걸린 남편을 아내가 도울 수 없고, 코로나에 걸린 아내를 남편이 도울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부부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병실이 없어 아내가 먼저 입원하고 남편은 집에서 병실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3일 만에 남편이 숨졌습니다. 죽음의 길에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연습이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사후 세계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남편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코로나로 투병하고 있지만, 한국에 있는 아내는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병상에서도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연극 중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부자에게 죽음이 친절한 손님으로 가장하고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그를 친절하게 대접하다가, 그 사람의 신분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 부자는 죽음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음에게 한 가지 부탁했습니다. 그것은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주어, 동행자를 불러 같이 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은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먼저 죽마고우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친구,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왔어.” “그래 이야기해봐. 우리 둘 사이에 못 들어 줄 것이 뭐 있겠나?” “친구, 지금 내가 여행 가려고 하는데 동행해 줄 수 있겠나?” “어떤 여행인데?” “이 여행은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네.” 무슨 여행인데 말해봐. 백리면 어떻고 천리면 같이 못 가겠어? “친구, 그건 죽음의 여행이여그러자 친구는 당황하면서 안색이 변하며 미안해. 그것만은 어쩔 수 없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며 말해봤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제 그는 죽음의 사자와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다 거절해도 아내만은 동행해 줄줄 알았습니다. 아내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자 아내마저 여보,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해, 미안해! 같이 갈 수 없어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쁠 때도 함께하시고, 슬플 때도 함께하시고, 병상에서도 함께하시고, 죽음의 강을 건널 때도 함께 건너가십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예수님은 임마누엘, 늘 나와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는 좋은 친구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주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1:3). 예수님은 영화와 존귀로 옷 입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백성으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함께하시기 위해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한 아기 예수님을 내 안에,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모셔 들이면 구원하여 주시고 늘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가이사의 보좌를 보지 말고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여 큰 기쁨의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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