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24(갈라디아서 2:20)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백성은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행렬과 이 외침은 왕에게 드리는 영광과 찬양으로서 최고의 퍼레이드였습니다. 이 외침과 행렬은 예수님의 생애 최고의 절정에 이른 인기였습니다. 이때 대개 사람들은 자기도취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순간에 한 알의 밀의 인생을 살고자 결단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되어 많은 사람을 섬기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우리 또한 이 진리를 배워 아담 생명이 죽어 2021년에 예수 생명의 흔적을 남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12:20~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관광차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으로, 헬라식 이름을 가진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적이고 신사적이고 사색적이며 논리적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부도덕했습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유대교로 귀의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귀의했지만,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유대교에서도 참된 진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리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뵙기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헬라 사람들을 보시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4:23)

이 말씀은 동문서답인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주신 가장 적합한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인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죽음과 희생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고 보고 느끼기를 원하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남이 희생하고 낮아져서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쉽게 무엇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인자란 단어가 90회 이상 나오는 데,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영광이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는데 바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장에 십자가를 지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십자가를 내일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현재, 지금 내가 져야 하는 ‘here and now to me’입니다.

십자가에 죽는 것이 어떻게 영광이 됩니까? 당시 십자가는 저주요, 고통이요, 패배요, 미련한 것이요, 치욕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밥을 먹는 중에 밥맛 떨어진다고 십자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 처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 편에서 보셨습니다. 이때 십자가는 저주나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었습니다.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어리석고 무력한 것이 아니라 지혜이며 능력이었습니다. 조롱과 비웃음이 아니라 승리의 찬가였습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시고 하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길이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길이요,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알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십자가는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고전 1:22~24).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이를 믿는 자들을 박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달라졌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1:16). 왜냐하면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밀알의 진리를 비유로 십자가가 왜 영광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생명은 신비하여 무한한 번식과 생산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은 작지만 무한한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알의 밀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땅에 떨어져 묻혀야 합니다. 씨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있으나 허공에서 저절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져 묻혀야 합니다. 땅에 묻히고 밟혀야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가 맺힙니다.

둘째는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씨에는 씨의 3대 요소인 배와 배젖, 껍질이 있습니다. 이 배가 땅속에 들어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99% 죽어서도 안 되고 100%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보호하고 있는 껍질이 완전히 분해되어야 합니다. 밀알이 자기 분해와 자기 희생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원리, 생명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밀알이 땅에 묻히고 밟히고 죽어 분해될 때 고통이 따릅니다. 자기를 깨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밀알이 죽고 자기가 분해되는 아픔과 고통을 이기고 인내할 때 싹이 나고 자라며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한 알의 밀에는 줄기가 4~5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4개월 후면 한 줄기에서 약 100~125개 정도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다면 한 알에서 약 500개의 밀알이 생깁니다. 이를 종자로 계속 심는다고 가정할 때 1년 후에 25만 개의 밀알이 생깁니다. 2년 후면 125백만 개의 밀알이 생깁니다.

이를 10년 동안 계속 심는다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됩니다. 이처럼 한 알의 밀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반드시 땅에 떨어져 묻히고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한 알의 밀은 참새 한 마리가 한번 쪼아먹는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창세 전부터 영원한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아와 같이 아름다운 곳에서 영화와 존귀로 옷 입으시고,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의 몸을 입고 말구유에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과 병든 사람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낮아져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시키심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셔서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5:24).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는 것입니다. 손톱만큼이라도 살아 있으면 그 순간에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죄는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것을 숙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고전 15:31). 이를 마르틴 루터는 Daily Baptist, 매일 예수님의 십자가로 잠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까?

첫째는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교만으로 타락한 이래 사람 마음속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 아담의 불순종과 교만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교만은 우상숭배로 나타납니다. 우상숭배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 사랑, 자기 자신을 마음의 첫 자리에 놓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생각, 자기 영광이 우상숭배입니다. 나를 주어로 삼는 것은 자기를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아담 아래 있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체질적으로 교만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16:18).

바울은 자기 의로 교만했습니다. 그에게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십자가를 조롱했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런 그가 십자가에 못박하신 예수님을 만나 자기의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자기 중심, 자기 자랑, 자기 영광이 예수님 중심, 예수님 자랑, 예수님 영광으로 변했고, 주어가 나에서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만합니까? 대개 든 것 없는 사람이 교만합니다. 그래서 빈 수레와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관중(管仲)의 글을 모은 관자일은 생각함으로써 생기고,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지고, 교만함으로써 실패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지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29:23)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있는 나를 하나님 위치에 놓고 오르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4:6; 벧전 5:5).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18:14).

둘째는 위선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위선(hypocrisy)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뜻합니다. 보통 위선을 악어의 눈물로 비유합니다. 유래는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라는 고대 서양 전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실제로 악어는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보충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주로 위선자나 위정자들의 거짓 눈물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위선은 최악의 중죄 중의 하나로 취급받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위선자들의 형벌을 기록하고 있는데, “겉은 금이지만 속은 납으로 된 무거운 옷을 입고 영원히 행진하는 벌을 받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병이 있습니다. 척 병은 위선입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 금방 들통날 일도 안 한척 합니다. 추한 것을 가리기 위해 거룩한 것으로 위장하고, 거짓된 것을 가리기 위해 진실로 위장합니다. 어두움을 가리기 위해 밝음으로 위장합니다. 불의를 가리기 위해 의로움으로 가립니다. 약함을 강함으로 가리고, 미움을 사랑으로 위장합니다. 자기의 부정을 가리기 위해 미사여구로 조아립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 내허외식(內虛外飾), 빛 좋은 개살구라는 화이부실(華而不實-Flowery but bears no fruit)은 다 이를 두고 말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위선을 회칠한 무덤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23:27). 예수님은 속은 더럽고 추악한 욕망과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하여 썩은 냄새가 나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거룩한 척하는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자기 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은 하나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위선이 없을까요?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만과 위선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아담 생명인 살아나서 나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랑이 새끼를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곧 떼어 우유를 먹여 키우면 그 호랑이 새끼는 순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어느 날 동족 호랑이를 만나는 순간에 사나운 호랑이의 야성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도 좋은 습관을 길들다가도 어느날 순간적으로 본성이 드러나 표독스럽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여야 합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을 날마다 드러내어 회개하는 것이 성화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으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삽니다. 이 생명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거룩한 생명이요, 참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사망이 주관할 수 없는 유한적인 생명인 βιος(bios)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인 ζωή(zohe)입니다. 이 생명은 행복과 기쁨과 자유를 포함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가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생각과 생활과 나의 삶을 다스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인 사랑, 겸손, 온유, 신실함, 인내, 절제와 아름다운 소망이 자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상이 내 안에 조각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생명이요, 내 뜻이요, 내 목적이요, 내 생의 전부가 됩니다.

셋째,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12:25)

예수님은 이제 밀알의 진리를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12:25)

미워한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자기를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는 가치관을 말합니다. 자기를 먼저 사랑하면 자기 사랑이 되고,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면 이타적인 사랑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큰 성전이 됩니다. 큰 성전이 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현재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자기를 사랑하면 미래 생명을 잃게 됩니다. 현재 자기를 사랑하다가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일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기보다는 오늘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래가 없습니다. 이솝 우화의 매미와 개미는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건강도 상하고, 정신 건강도 망칩니다. 그러나 오늘의 수고와 오늘의 죽음은 미래를 윤택하게 하고, 영화롭고 값지게 됩니다.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대학 시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24~25)라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로 갈 것을 결심하고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슈바이처는 9년 후에 의학 공부를 마치고 아프리카로 들어가 평생을 원주민의 의료와 전도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의사로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섬기는 한 알의 밀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크리스천 인구가 33%가 되었습니다.

WEC(국제복음선교회)를 창설한 스터드(C. T. Studd) 미래가 촉망받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며 재벌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믿고 중국 선교사로 간다고 했을 때 영국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평생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살면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복음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가 섬겼던 영국 런던의 WEC(국제복음선교회) 본부 지하실에는 많은 가방이 선반에 정리된 채 놓여 있다고 합니다. 임지로 떠나는 선교사들이 임기를 마친 뒤 찾아가겠노라고 남겨둔 가방들입니다. 그 가방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가방들입니다.

사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가방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의 표적으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가방의 주인들이 어느 곳에서 생을 마감했건, 그들이 있던 곳마다 예수 생명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남긴 가방은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이 땅에 남겨진 영원한 생명의 흔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을 마감할 때,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가겠습니까? 우리가 영원한 생명, 예수 생명의 흔적을 남기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밀알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헌신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셨고 많은 죄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출발하면서 한 알의 밀로 시신 예수님을 배워서 예수 생명의 흔적을 남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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