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8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요한복음 114절은 예수님과 관계된 말씀’, ‘육신’, ‘거하시매’, ‘영광’, ‘독생자’, ‘은혜’, ‘진리, 중요한 단어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4절을 요한복음의 기독론(Christology) 요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말씀(λόγoς)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히브인들과 헬라인들 모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습니다(4:12; 33:20).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요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을 뿐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서 육의 몸으로 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헬라인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여 육체는 악하고, 육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일수록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대신에 육체를 경멸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죄의 뿌리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그들 또한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영원 속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시공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추상적이던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적 사건이 되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면 예수님의 지혜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알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예수님의 뜻을 생각하면 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성육신의 놀라운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1.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습니다(1:5). ‘어두움이란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탄과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깨닫지 못하다는 이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빛은 물질과 공기로 파고드는 성질이 있으므로 어두움이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교만과 불순종 이후 계속해서 세상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빛을 미워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빛의 증언자로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1:6~8). 세례 요한이 증언한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9)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빛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빛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빛은 희망입니다. 빛은 영광입니다. 빛은 에너지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집은 길이와 폭이 50cm도 안 되는 작은 창문 하나밖에 없습니다. 집에 창이 하나밖에 없으니 방이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그래서 이른 아침이나 이른 저녁에도 등불을 켜야 했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마침내 하나님께서 참 빛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true)’은 헬라어로 ‘ἀληθινόν(알레시논)’으로 완전하다, 순수하다, 진짜라는 뜻으로, 참 빛의 속성은 순수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에 비추는 보편성, 그리고 시공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하고 영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본질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모양이 각기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문제가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죄와 죽음 문제입니다. 우리가 왜 코로나 감염 앞에 두려워하고 염려합니까? 궁극적으로 죽음 문제입니다. 우리는 평소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다가도 죽음을 생각하면 슬퍼지고 고통스럽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대왕도 죽음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죽음은 모든 이들을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상도 그 어떤 종교도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어두움의 근원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는 참 빛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둠을 비췰 때 어둠이 순식간에 물러갑니다. 어두움이 물러가니 생기가 있고 희망과 기쁨이 생기고 삶이 아름답게 변합니다. 큰 빛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실명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1,000편의 찬송시를 지은 크로스비가 그러했고, 노예 선장 출신 존 뉴턴이 그러했고, 영국 런던의 켄더베리 교회의 니콜라이 집사가 그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큰 빛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취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4).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비춰야 합니다. 이는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별이 고요하게 밤하늘을 비취듯이 하나님의 영롱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장미와 백합화가 은은한 향기를 내듯이 예수님의 향내를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을 내고 향기를 내되 적극적으로 발해야 합니다. 불교는 은둔의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산 위로 올라가 발광(發光)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면 바른길을 걷고 올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이 내 발에 등불이라 말씀했습니다.

빛은 열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았으면 열을 내야 합니다. 열은 에너지를 발산하여 주위를 따뜻하게 합니다. 열이 기관차를 움직이고 보일러를 가동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됩니다. 사람이 빛을 받아 열을 내면 독수리가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듯 힘찬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빛은 만물을 소생시키고 성장하게 하고 결실을 보게 합니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시대가 어둘수록 예수님의 빛을 받고 그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은 발할 때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이는 마치 비가 온 후 신비한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그리고 예수 생명의 흔적을 드러내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백성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무지해서 예수님에 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우상을 섬기는데 있었습니다(고후 4:4).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가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교만과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3:19).

복음은 거부 상품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거부당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실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1:12). ‘권세를 주셨다란 헬라어로 부정과거로 단번에 주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권세를 단번에 누리게 됩니다. 단번에 사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두움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가 됩니다. 단번에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있고,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단번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산 소망을 주십니다(벧전 1:3~4).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않습니다. 목자가 양을 변화시킬 수 없고, 부모가 자녀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변화시킬 수 없고, 남편이 아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3. 예수님은 성육신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무소 부재하시고 영원하신 예수님이 육신으로 제한된 시공간 속에 오셨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예수님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우고 낮아지셨습니다. 낮아지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2:6~8).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육신의 몸으로 오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인간과 함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기 위해 장막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25:8). 그들은 노예 백성으로 내면성과 역사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예 백성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의 뚜껑, 속죄소에서 말씀하시고 만나 주시며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희생의 피를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죄인은 감히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2:1~4). 우리는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았습니다(요일 2:12~17). 우리는 받은 은혜와 사랑을 쉽게 헌신짝처럼 버리는 배은망덕한 본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안일합니다.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이 이런 죄인과 함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본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천사로 오셔서 우리 중에 거하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시험을 받습니다. 송사를 받습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고 송사를 받으셨습니다.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끝까지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의 슬픔을 이해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의 본이 되심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주로 오셔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4.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사람과 세상에서 오는 영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독생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영광입니다(5:41, 7:18).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17:22).

둘째,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이 은혜는 단순한 은혜가 아니라 은혜 위에 은혜(grace upon grace)’입니다(1:16).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심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뭔가 의도를 가지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는 아무 자격과 가치가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시는 사죄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예수님 안에 은혜 위에 은혜가 항상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신비롭고 위대한 분이 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할수록 예수님은 점점 더 우리에게 존귀한 분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와 높이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에 대한 지평이 더 넓어지고 커지고 풍성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이요, 보화가 쏟아지는 광맥입니다.

존 밀턴은 런던에서 청교도 신앙을 가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별장에서 독서와 사색으로 문학적 역량을 쌓았습니다. 그는 청교도 혁명으로 수립된 올리버 크롬웰 정부에서 10년간 라틴어 장관을 지냈으며, 종교, 언론, 정치 문제에 많은 그들을 썼습니다. 그런 그가 시력을 상실했습니다. 뛰어난 작가로서 앞날이 창창했는데 실명을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실명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감사했습니다. 그때 그는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두 눈을 가졌음에도 보지 못했던 영의 세계, 하나님 나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실명한 이후, 딸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이 불후의 명작 실낙원입니다. 실낙원은 인간의 원죄를 주제로 기독교 성격의 대서사시로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명작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알면 운명적인 사람이 값진 삶을 살게 됩니다. 인생역전을 이루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좁은 시야가 넓어집니다. 종지 같은 마음이 민족과 열방을 향하게 하시고,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주역이 됩니다.

셋째,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진리입니다. 진리는 거짓의 반대입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은 변함이 없는 자연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진리의 거울 앞에 자기의 얼굴을 비출 때 자기의 진솔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안에 참 자유와 구원이 있음을 찾게 됩니다. 세상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최고요, 의인이요, 자기가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무지와 착각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자신의 식탐과 각종 탐욕의 감옥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님의 진리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한번 비추어 보십시오. 예수님의 진리의 거울로 얼굴과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형편없이 추한 자신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거짓이 보일 것입니다. 위선이 보일 것입니다. 탐심이 보일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자랑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습니다(1:18). 유대인들에게 누군가의 품에 있다는 것은 최고의 친밀감과 사랑의 관계를 뜻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든,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든 누구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극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11:12; 13:6).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 가슴에 안고 계십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지만, 은혜는 우리에게 의를 덧입혀 줍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죄를 사해 줍니다.

예수님은 큰 빛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은혜가 충만하십니다. 예수님은 흘러넘치는 은혜와 진리의 저수지입니다. 이 저수지는 단수되거나 고갈되지 않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가 보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종지 같은 마음이 민족과 열방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위대한 역사의 주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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