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요한복음 1:9~34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이로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성경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죄와 용서입니다. 죄는 사람이 짓는 것이고, 용서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절대 영역입니다. 우리는 보통 죄 하면 거짓말, 도둑질, 살인, 미움, 사기, 간음... ”등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그런 것이 다가 아닙니다. 윤리적인 죄 보다도 더 심각한 근본 죄가 있습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죄라는 헬라어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서야 할 자리에 서 있지 않는다는 παρπτομα(paraptoma),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는 παράβασις(parabasis), 그리고 많이 쓰인 μαρτα(hamartia)입니다. 이는 화살을 쏘았는데 표적에서 빗나간 것을 뜻합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죄란 사람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거나 제 자리에 서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이름이 허다합니다. 큰 빛, 생명의 양식, 선한 목자, , 포도나무, 진리, 길 등, 그 밖에도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을 묵상하며 은혜받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을 증언하는 세례 요한(1:19~28)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영적인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1:4~5). 백성은 그가 혹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3:15). 세례 요한은 뉴스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공회는 세례 요한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파견했습니다(1:19).

그들의 첫 번째 질문은 네가 누구냐?”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인기를 생각할 때 메시아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메시아라고 말은 안 하더라도 내가 메시아는 아닌데...’하며 여운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말라기 45절을 근거로 메시아가 오시기 이전에 엘리야가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는 성경에 예언된 엘리야입니다(11:14). 그런데 그는 나는 아니라라고 부정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엘리야를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영광스럽게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엘리야는 고난의 엘리야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네가 그 선지자냐?” 물었습니다. 이는 모세가 예언했던 선지자(18:15,18)로 메시아를 뜻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번에도 단호하게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점점 짧고 단호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I am not the Christ)”, “나는 아니다(I am not)”, “아니야(NO)”라고 부인했습니다.

조사단들은 세례 요한의 대답에 화를 내면서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당신의 정체가 뭐야?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해야 하는데,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다그쳤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나는 제사장 가문 사가랴의 아들이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입니다. 또 일찍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고 이스라엘에 보냄을 받은 선지자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1:23)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위치(포지션)와 인기에서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찾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사야 말씀에서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찾았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라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라볼 때 심지가 곧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교만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여러 이유로 마음이 패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광야와 같이 메마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광야와 같이 이리떼와 여우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이런 마음을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낮은 자존감으로 패인 마음을 높이는 것입니다. 꼬부라진 마음을 부드럽게 펴는 것입니다. 거칠고 메마른 마음을 옥토로 바꾸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실생활 면에서도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세리는 정한 세를 받고, 군인은 강포하지 말고 정한 급료로 만족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뇌물, 검은돈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위선과 형식을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소리는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말씀(로고스)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소리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들은 그러면 네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세례를 주는가?’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있는 회개의 대각성 운동을 보지 못하고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는가 따졌습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자신이 주는 세례는 위로부터 왔으며, 그 증거는 회개하는 백성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 논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1:26~27)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으신 분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어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조차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볼 때 예수님은 왕이요 자신은 비천한 종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자신은 비천한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자신의 인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뜻과 사명에 충실하여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는 참된 하나님의 종이였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을 높일 수 있었습니까?

 

첫째,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받고 칭찬을 들을 때 무엇이 된 양 착각하고 교만해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대개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 자신이 무엇이나 된 양 우쭐해지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것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사탄의 정체는 교만을 심어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위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처음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1:31~34).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알았을 때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교만했습니다. 그의 교만은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의 이름을 따서 큰 자, 사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겸손한 사람이 되어 이름도 바울, 작은 자라고 이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자신의 존재를 낮췄습니다. 그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고(고전 15:10), 나는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고(3:8), 후에는 나는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의 높아진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자기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자기의 높아진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1:29~34)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시고 승리의 빛난 얼굴로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이 말씀은 신구약 성경의 요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내셔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낙원을 회복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주는 뜻이 무엇입니까?

보라(Behold, KJV)’는 눈을 그에게 집중시키고 깊은 관심을 가지라,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 가치관을 알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보는가를 알면 됩니다. 저속한 사람은 저속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반면에 고상한 사람은 고상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이 저속한 가치관에서 고상한(noble) 가치관을 가지려면 생각을 바꾸고 시각을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라!’는 말씀은 적극적인 생각과 생활의 방향전환을 뜻합니다.

세상 죄란 인류의 죄, 모든 개인의 죄를 하나로 묶어 표현한 것입니다. 죄란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죄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 없이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사는 것(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1:21). 그리고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고 선을 넘는 것을 뜻합니다. 로마서 123절을 보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3:23). 우리의 모든 지체는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일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과 내면과 육이 타락하여 우리의 모든 지체, 곧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죄짓는 데 동원합니다(1:18~32, 3:10~18).

그런데 사람이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죄의 삯을 받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지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심판 후에는 영원한 사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21:8).

사람들은 이 세상의 문제를 여러 가지로 진단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근본 문제는 죄입니다. 죄가 우리를 못 쓰게 합니다. 죄는 가정과 사회를 파괴합니다. 요즘 성윤리가 무너져 여러 사회 병리 현상이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죄는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사람을 못 쓰게 만듭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쾌락과 탐심이 사람과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그런데 죄의 속성은 묶어 매는 사슬과 같습니다. 그리고 죄는 마약과 같아 강도가 점점 세집니다. 처음에는 죄의식으로 힘들어하다가도 죄를 짓다가 보면 죄의식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죄는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가 왜 발생했습니까? 성경에 먹지 말라는 박쥐를 먹은 데서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고 박쥐를 먹는다고 합니다. 탐욕이 인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인간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는 영광, 무게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과녁에 명중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찾습니다. 종교행사에 열심히 참석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가면 해결될 줄 알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환경을 바꾸면 될 줄로 알고 환경을 바꿉니다. 그러나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고, 시간이 가고, 환경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의 노력, 의지, 시간, 환경 등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내 힘과 의지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어떻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어떤 뜻이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월절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양을 생각하면 양의 성품이 연상됩니다. 어린 양은 동물 중에 가장 순진합니다. 순결하고 깨끗하고 온순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말씀한 것은 어린 양의 성품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레위 지파에 속한 가문에서 태어난 제사장 아론의 후손이고 사가랴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를 잘 압니다. 누구보다도 메시아에 관해 통달한 선지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이라고 선포한 것은 이런 깊은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했습니다. 오랫동안 노예 생활하다 보니 노예근성과 거지 근성이 생겼습니다. 노예근성과 거지 근성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예는 은혜를 모르고 내일과 비전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돼지처럼 오늘 잘 먹고 육신의 안일을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참한 노예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에 바르면 무서운 장자 재앙을 넘어가겠다(pass over)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사람이 무엇을 소유했느냐, 얼마나 선한 생활을 했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느냐, 바르지 않았느냐가 구원의 기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타민족도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어린 양의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 피를 믿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어린양은 구약의 제사 제도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생명, 곧 피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에서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9:22). 그래서 구약 시대에 죄를 짓고 죄 사함을 받으려면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잡아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아무 죄 없는 양이 죽어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며 자기 죄에 대한 처절한 회개와 동시에 아무 죄 없는 어린 양의 피로 내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고백과 동시에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는 일시적입니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 양을 잡는 피의 제사를 올려야 했습니다(10:11).

이 피의 제사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점이 없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이 되셔서 세상 죄를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지고 가다(take away)’란 헬라어로 ό αιρων(ho airon)’으로 홍수 때 다 쓸어간다는 뜻을 가진 현재 분사입니다. 이는 역동적이고, 계속의 의미, 영원한 속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모두 완전히 쓸어간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한 번씩 대속죄일이 있습니다. 이때 아사셀 염소를 제비 뽑아 염소 머리에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다 씌웁니다. 이 이사셀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광야로 보내졌습니다(16:10, 21~22).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어린양은 희생과 헌신을 뜻합니다.

생명의 역사는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역사와 생명의 원칙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친히 그 몸으로 담당해 주셨습니다(벧전 2:2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예수님은 나의 교만과 불순종의 죄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밖에 모르는 이기심, 탐심과 식탐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에서 식탐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식탐죄는 정욕(애욕)보다 더 큰 죄로 그리고 있습니다. 식탐 죄인들이 있는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는 케스베르스라는 개입니다. 그곳에 있는 중요한 인물은 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치아코입니다. 그 안에 있는 죄인들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더럽고 얼음처럼 찬 진눈깨비가 쌓인 악취가 나는 진탕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식탐은 무절제한 욕망으로 이성이 마비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식탐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먹방이 방송국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세상 정욕 때문에 손과 발에 굵은 대못이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슬픔, 운명, 상처를 치료하시고자 십자가에서 고난과 고통을 받으시고 모든 피와 물을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실 문제를 바라볼 때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대를 바라볼 때 희망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우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망 중에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영광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를 지배하던 절망과 불신이 사라지고 앞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병든 마음을 치료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심령에 참 생명과 평화와 자유와 기쁨을 줍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라 할지라도 눈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됩니다.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 용서를 받아 절망을 이기고 새로운 삶, 역사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를 그린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첫째 부인 사스키아를 잃었습니다. 딸을 낳은 둘째 부인인 헤드리케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외아들 티투스와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그림으로 모았던 자산까지 다 잃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느냐면 첫째 부인의 묘까지 팔았습니다. 그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가복음 15장을 읽고 감격하여 하나님을 떠나 탕자로 살던 자신을 받아주신 예수님의 한 없는 용서의 사랑을 화폭에 그렸습니다.

그림을 보면 둘째 아들이 자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그를 꼭 안아줍니다. 안아주는 아버지의 손을 보면 오른손은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이고 왼손은 자비로운 아버지의 손입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서 구부정하게 서 있는 아버지에게로, 축복을 받는 자리에서 은총을 베푸는 자리로 아버지에게로 옮겨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역경 중에도 우리 죄를 지고 돌아가신 십자가를 바라보면 은혜로우신 손길로 안아주시는 한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보다 앞선 분이라고 증언했습니다(1:30). 그리고 자신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나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했습니다(1:34). 세례 요한의 증언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증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심에서 볼 때 예수님의 사역은 악한 영과의 싸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요즘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죄를 회개하고 모든 죄 사함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마음속에 어두운 생각이 물러가고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뜨거운 심장, 뜨거운 피가 우리의 삶에 흘러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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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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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