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1~14

목마름과 예수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사마리아 여자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와 너무나도 대조됩니다. 니고데모는 당시에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의 관원 중의 한 명이었고 랍비였으며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바리새인이었고 또한 부자였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여자는 여섯 번이나 결혼했던 부도덕하였고,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여자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으나 아무런 변화 없이 어둡게 방문을 나섰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여자는 정오에 물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그 삶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상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니고데모나 육신의 욕망을 좇아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이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보시는 순간 그가 마치 나비가 되기 전에 캄캄한 누에 꼬치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시고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자를 보시는 순간, 목마른 여자라는 것을 아시고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각기 목마름이 있습니다. 육의 목마름과 정신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영의 존재이므로 영혼의 목마름 또한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목마름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합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예수님을 만나 목이 마르지 않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사마리아를 통과하신 예수님(4:1~4)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직통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베뢰아 지역으로 돌아서 가던지 아니면 배를 타고 갔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역사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휴전선은 동서로 150일 마일이지만, 유대는 남북으로 약 120마일 정도 길게 뻗은 작은 나라입니다. 남쪽에 유대가 있고 북쪽에 갈릴리가 있으며 그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남북이 나누어질 때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후에 앗수르의 혼혈 정책으로 유대의 순수성을 상실하였습니다.

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빌론의 침략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들은 70년간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순수한 유대 혈통을 지켜 종족을 보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순수한 혈통을 상실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이라며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서로 내왕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수축할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원하여 함께 건축하기를 원했지만 거룩한 성전에 더러운 손을 묻힐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400여 년간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사람은 그렇다치고 땅까지 더럽다고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에 맺힌 골은 깊을 대로 깊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95%가 서로의 반목으로 갈등한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는 끊임없는 민족과 종교 분쟁이 있습니다. 중동 지방은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 인종과 민족의 갈등이 있습니다. 좁은 한반도 안에도 남북의 장벽이 있습니다. 노사의 갈등, 여야의 갈등, 금수저와 흙수저의 장벽이 있습니다. 가정에도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시누이와 올케 사이의 갈등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 한국은 같은 체제 아래 있음에도 어느 시대보다도 이념의 갈등이 심합니다. 사회는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교회에 태극기파와 촛불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념이 다르면 같은 교회에서도 성도끼리 서슴없이 미워하고 정죄합니다. 때론 신앙보다도 이념이 더 위에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념이 신앙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이념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서거나 더 중요할 수 없습니다. 이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이념과 사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념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오직 나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장벽을 허물 수 있습니까? 누가 장벽을 허물고 평화를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유대와 사마리아와의 장벽을 깨시기 위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He must needs go through Samaria; KJV).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바로 모든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2:14)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라는 장벽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어 영원한 진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도 허물어 서로 사랑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합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코로나19로 초 갈등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화평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미움 대신에 사랑, 다툼 대신에 평화, 불행 대신에 행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서로 간에 담을 쌓지 말고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화평을 만드는 peace maker가 되고, 화해와 치유자의 역할을 힘써야 합니다.

 

2.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신 예수님(4:5~9)

중동 지방은 정오에는 섭씨 40도가 오르내립니다. 예수님은 40도가 오르내리는 뙤약볕에 120 리나 되는 먼 길을 걸어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도착하셨습니다. 이곳은 옛날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또 그곳에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우물이 있었습니다(4:5~6; 33:19; 24:32). 이 우물은 야곱이 판 우물로 깊이가 30m나 됩니다. 이 우물은 수 세기를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여 야곱의 우물 곁에 도착하시자 그대로앉으셨습니다. ‘그대로앉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곤한 모습을 숨김없이 나타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받으시고 고통당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다 아시고 이해하시고 아파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이십니다(4:15).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사기 위해 10여 리 떨어진 수가성 동네로 갔으므로 혼자 계셨습니다. 이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우물은 동네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여자들은 정오는 더워서 시원한 아침과 서늘한 저녁때 떼를 지어 물을 길으러 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정오에 혼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점에서 이 여자는 분명 문제가 있는 여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시 우물가는 여자들이 동네 소식을 듣고 전하는 뉴스 현장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모여 주로 하는 얘기들이 무엇일까요? 서울대 곽금주 교수의 보고에 20대의 경우 나쁜 소문은 81% 듣고, 86%를 전하고, 좋은 소식은 18% 듣고, 4%만이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40~50대의 경우에는 나쁜 소문은 84%를 듣고 좋은 소식은 16%로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자들이 물을 길으러 오가며 또 기다리며 좋은 얘기를 하겠습니까? 아마 좋은 얘기보다는 안 좋은 이야기를 주로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동네 누구는 시집을 여섯 번 갔는데 지금 사는 남편도 진짜 남편이 아니래!’ 그 남편은 누구래하며 험담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자가 그녀들과 함께 물을 길으러 우물에 오갈 수 있겠습니까?

이 여자는 소외된 여자였습니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는 정복자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름이 없는 사마리아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소외되었고, 소외된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소외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소외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친구도 없는 외로운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다섯 남편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많은 상처가 있는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는 아무도 없을 때 물을 길으러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우물가에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는 놀라서 뒷걸음질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여자에게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 하시니(Will you give me a drink)”(4:7)

이 말을 들은 여자는 물을 주겠다, 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즉시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좀 달라 합니까?” 대답했습니다. 이 여자의 대답 속에 마음이 꼬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여자는 인구조사의 대상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유대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 세 가지를 감사했는데, 첫째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둘째는 여자로 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죄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길에서 딸을 만나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고, 랍비들은 여자들을 보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유대 남자가 여자에게, 동네 여자들조차도 함께 하기를 꺼리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여자와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사람과 대화가 되려면 관심이 일치되고, 배경이 비슷하고, 수준이 같아야 합니다. 사람이 대화하다가 말이 통하지 않으면 핏대를 세우고 헤어집니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왜 서로 으르릉거리는지 아십니까? 고양이와 강아지는 시그널(signal)이 서로 다릅니다. 강아지는 좋으면 꼬리를 올리고 싫으면 내립니다. 반면에 고양이는 좋으면 내리고 싫으면 올립니다. 남북이 대화했다 하면 좋은 결과보다 안 좋게 끝납니다. 이는 70여 년간 다른 체제에 살아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면 상대방과 대화가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열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보통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면 마음을 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주면 마음을 열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준다고 하면 우리가 거지냐고 화를 냅니다. 제가 금강산에 갔을 때 어느 중년 아주머니가 곳곳에 배치된 젊은 지도위원에게 초콜릿을 주었다가 내가 거지인 줄로 아느냐? 당신 당장 남쪽으로 추방하겠다고 봉변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준다고 무조건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먼저 신뢰가 쌓여야 합니다. 신뢰를 쌓으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려면 아쉬운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쉬운 입장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을 높여주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세워주고 높여줄 때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사람이 낮아져서 아쉬운 입장이 되어 도움을 청하면 대화의 창이 열립니다.

어떤 사람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친구로 사귀고 싶다면 먼저 낮아져서 겸손하게 도움을 청하면 친구가 됩니다. 전도도 낮아져서 아쉬운 마음으로 도움을 받을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요즘 소통(communication)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소통은 낮아져서 아쉬운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 낮아져서 오셨고 또 낮아져서 부도덕한 사마리아 여자를 돕기 위해 겸손하게 물을 좀 달라고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예수님은 겸손하신 주님이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2:5~6)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또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셨습니다(1:1~4).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셨습니다(1:15). 예수님은 영광스럽고 영원하십니다(17:5).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기에는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도 육신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과는 전혀 상반된 길을 가셨습니다. 가장 존귀하신 분이 가장 비천해지셨습니다. 가장 부유하신 분이 가장 가난해지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분이 한계의 시공간 안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것을 겪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낮아지심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고 자기 존재감이 사라진다고 생각될 때 속이 시끄럽습니다. 우리는 때로 직장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비우시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여 자존심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님(4:10~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

사람들은 이 여자의 문제를 남편 문제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자의 문제를 목마름으로 보셨습니다. 이 여자는 목이 말라 매일매일 대낮에, 아무도 없을 때 이렇게 물을 길으러 와야 했습니다. 이 여자는 혼자 물을 길으러 오는 것을 그만 두고 싶어도 목이 말라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우물가로 와야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시자 이 여자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우리 몸의 6070%가 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 몸에 12%의 물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10%가 부족하면 생명이 위독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풍성해서 물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Palestine)의 건기(4~10)에는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부족합니다. 물이 없어 초목들이 타들어 갑니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물은 곧 생명입니다. 시편 1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복 받은 나무라고 말씀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로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생수를 의미합니다.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입니다. ‘생수는 성경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여 주는 것으로 묘사합니다(42:1; 44:3; 2:13; 7:17). 생수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찾는다, 배운다, 기도한다, 관심을 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생수를 구하는 모든 이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그리고 생수는 성령입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7~39)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2:38). 성령은 우리에게 희열과 기쁨과 평화를 줍니다. 성령은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흘러넘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성령은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부드럽게 합니다. 솟아나는 정욕과 욕망의 불꽃, 미움의 불꽃을 끄고, 용암 같은 죄의 격류를 끄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합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의 참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합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 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4:11~12)

아마 이 여자는 물을 길으러 올 때마다 조상인 야곱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 우물은 깊이가 30m, 물의 깊이도 5m나 된다고 하니 좋은 우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야곱의 우물은 아무리 좋은 물이라고 할지라도 마실 때 뿐이지 마시고 나면 또다시 목이 마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므로 더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물은 고여 있는 물로 흘러넘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물을 흙으로 덮어 버리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샘물은 흙으로 덮어 막았다 싶어 다음날 가보면 물이 퐁퐁 솟아오릅니다. 샘은 가물어도 늘 솟아오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하는 샘물은 그 어떤 사상과 이즘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샘을 당신께로 나아오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샘물은 지혜의 샘물, 진리의 샘물, 구원의 샘물입니다. 이 샘물은 우리의 심령과 영혼을 적시어 흘러넘치어 병든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샘에서 기쁨과 사랑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샘에서 희망의 샘물, 평강의 샘물, 진리와 자유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더러운 죄악을 씻고 순결하고 고결한 삶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영의 존재이므로 세속의 목마름 이상의 영혼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 영혼의 목마름은 세속의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얼마나 먹을 것이 많고 마실 것이 많습니까? 인간의 기갈은 양식과 물이 없는 기갈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오는 영혼의 기갈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2:13)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나 다른 데 우물을 팠습니다. 다른 우물은 각종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했습니다. 그래도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우상은 터진 웅덩이와 같아서 심령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들은 강대국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강대국에 멸망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웅덩이에서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생의 생수가 되십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21:6)

예수님을 믿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을 의지하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값없이 마시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것으로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서 나중에는 죽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샘물은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흘러넘쳐서 만족하게 하고 깨끗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우울증과 약물중독으로 서른여섯 살에 자살했습니다. 마릴린 먼로를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 랠프 그린슨(Ralph Greenson)마릴린 먼로는 마음이 늘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어서 종일 거울을 들여다 봤다고 했습니다. 시간만 영화를 촬영하고 사진을 찍고 나면 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늘 마음이 텅 비어있어 불안하여 거울을 보고 또 보다가 결국 약물에 취해 살다가 자살하였습니다.

삶에 대한 고독과 사랑의 갈증은 그 유명한 배우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공통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내면에 고독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예수님을 만날 때 더는 목마르지 않고 영원한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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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요한계시록 서론 운영자 2020-12-14 100
416 요한계시록 머릿말 운영자 2020-12-14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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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안내

  • 주일 오전 예배 - 오전 11:00
  • 주일 오후 예배 - 오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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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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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