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6~27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이는 헬라의 철학자 탈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간이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입니다. 이를 주장한 사람은 히브리인과 동양에서는 순자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입니다. 서양에서는 루소와 동양에서는 맹자가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백지설로, 서양에서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고 하는데 라틴어로 깨끗한 석판이라고 합니다. 이는 스토익 학파와 중국의 고자(告子)가 주장한 견해로,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도 아니고, 악한 존재도 아닌 연못과 같아서 인간이 선한 방향으로 갈지, 악의 방향으로 갈지 평가 이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인간관은 어떠합니까?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1:27, 2:7). 인간은 물질로 지어졌지만, 물질이 되어서는 안 되고, 동물이면서도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세속에 사나, 세속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인간은 물질과 더불어 사나,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궤도, 질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거룩한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첫째로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은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가 되게 하여 달라는 소원입니다. 성경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였습니다(4:3).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요 예수님의 제자로, 마땅히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삶,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1.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17:6~1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17:6).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름이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삶까지도 좌우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속에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고, 이삭의 이름 속에는 웃음이란 뜻이 있고,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구원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나 거룩하여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야훼라고 써 놓고도 아도나이’()라고 읽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신비롭습니다. 예수님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이름을 틈나는 대로 제자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과 인격과 행하심과 위대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습니다(17:8).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믿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귀히 여기셨습니다(17:9). 사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들로 귀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바울은 그들을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4:1)고 했고,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하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제자들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소원,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 악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셨다(17:11~16)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7:11~12)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보전하여 지키셨습니다. ‘지킨다란 부단히 살피고 훈련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부단히 살피고 그들의 내면을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음란한 헤롯당과, 형식과 위선과 물질에 눈이 어두운 바리새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그중에 하나도 악에 빠지지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인 가룟 유다만이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시기에 더는 제자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세상에 악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이런 죄악의 세력에 도전하여 싸우는 영적인 장군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배운 맥아더 장군은 그의 아들에게 주는 기도문에서 평탄하고 안일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대하여 분투 항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 속에서 용감히 싸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적고 있습니다.

히브리 교육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돌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한국 부모들은 돌보는 것은 아주 잘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는 교육은 좀 부족합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헬리콥터 부모도 있습니다. 그런 자녀는 커서도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허약한 사람이 됩니다.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도전하여 자립하도록 돕는 교육 방법입니다.

둘째, 거룩하기를 원하셨다(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예수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거룩이란 구별하다란 뜻으로, 세상과 짝하거나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제자들의 존재의미요 가치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거룩함을 상실하고 세상의 방법과 원리대로 살면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고 빛을 잃은 등불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을 박해하지만,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들만이라도 거룩하게 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남기신 하나님의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모두가 세속으로 빠질지라도 광야에서 보전하시는 마지막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소망이 없고 세상은 끝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처럼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툭툭 털고 일어나 주님께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 같지만 머지않아 떠나야 합니다. 남녀노소와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두 언젠가는 한 줌의 흙으로 떠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했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쓰임 받는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거룩한 삶은 지식이 아닙니다. 추상이 아닙니다. 거룩한 삶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에서 옵니다.

베드로전서 115절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였고, 122절에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면 영혼이 깨끗해지고 영혼이 깨끗하면 인격도 생활도 거룩해지고 깨끗해집니다.

누가 주님께 쓰임 받습니까? 깨끗한 그릇이 될 때 주님께 쓰임 받습니다. 성경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유행어 중의 하나가 흙수저와 금수저 이야기입니다. 금수저는 불에서 녹지만 흙수저는 더 단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흙수저냐 금수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하냐, 깨끗하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깨끗한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쓰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대한 인물로 키우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깨끗하고 거룩한 통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인 리빙스턴(Livingstone David)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다가 1896년에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University of Glasgow)에서 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는데,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찢긴 팔 그대로 단상에 섰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칭찬할 때, “저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고 하신 주님의 말씀만 믿고 살았습니다. 다시 아프리카로 가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라고 그는 답했습니다. 그의 거룩함과 위대함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마태복음 2820절 말씀을 순종했을 때였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가 이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순종했을 때 영혼이 깨끗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기쁨과 거룩의 충만은 동시입니다. 기쁨이 없다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령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되면 행복과 기쁨과 은혜가 충만합니다. 창조적인 능력과 악을 이기는 승리와 찬양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한 말씀이라도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세상으로 보내기를 원하셨다(17:18~19).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17:18).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마태복음 1016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게 하시고 이방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이방 땅으로 내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세상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절에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만드신 바라’(workmanship)는 하나님의 피조물, 작품이란 뜻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 목적,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to do good works)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적하신 선한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 선한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10절에 만일 그렇게 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직장이나 학교나 모두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거룩한 소명의 장소로, 내가 이곳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시험의 장소요, 거룩한 삶을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마음껏 나타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장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20~26)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씀 증거를 통하여 믿게 될 모든 성도, 먼 미래, 2,000년 후의 우리를 보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들도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여기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조직이나 체제로 하나가 아닙니다. 사랑과 겸손과 인격으로 하나가 되는 연합입니다.

통일, 하나 됨은 어느 곳에서나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 됨은 안정도 있고 평화와 번영도 있습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들은 자당을 향해 원팀을 강조합니다. 특히 독재자들이 힘의 수단으로 일치를 외칩니다. 그것은 일치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보통 말 한 마리가 2톤의 무게를 끌 수 있다고 합니다. 산술적으로 말 두 마리가 4톤의 무게를 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마리가 끌면 무려 24ton의 무게를 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이 같고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고층 건물 앞에서 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고 혼자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사람이 좀 거들고 싶어서 함께 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짐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혼자 옮길 때보다 오히려 그 짐은 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한 사람은 짐을 밖으로 끌고, 한 사람은 안으로 끌었던 것입니다. 짐을 옮기겠다는 선한 마음이 있더라도 방향이 다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목적과 방향이 일치해야 합니다. 둘이 마음을 모아 한 목적, 같은 방향으로 마음을 모으면 생각 그 이상의 능력이 발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에 제자들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이 되자 성령이 그들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수에 있지 않습니다. one mind, one Spirit으로 한 방향을 놓고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4:9)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평등한 하나의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를 막론하고 적신으로 태어납니다. 죽을 때에 모두 놓고 가는 점에서 하나입니다. 사는 동안에도 살아가는 모습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근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복의 질량은 똑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슬픔이 있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행복이 있습니다. 단지 표면으로 다르게 보일 뿐이지 행복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성도들이 자기가 잘났다고 사소한 일로 서로 헐뜯고 갈라집니다. 이런 곳에는 성령께서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이미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고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4:3).

우리는 먼저 가정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이므로 나누지 않도록 하나가 된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각기 다른 주머니를 차서도 안 됩니다. 목사와 성도도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한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셨다.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로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17:22)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때 장차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딤후 2:10~12). 또 주님께서 누리는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끝까지 믿음의 인내로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 됨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세상에 살면서 진리로 거룩하고 하나 됨을 지키며 믿음의 인내로 하나님께 영광에 참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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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