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9~24, 28~40

진리의 왕 예수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18:37)

 

삼성그룹의 이병철 전 회장이 1987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한 달 전, 가톨릭 정의채 신부에게 A4 용지 다섯 장에 빼곡히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부터 시작하여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에 이르기까지 총 24가지를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돈이 많아 돈병철이라 불렸지만, 그에게도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고뇌가 있었습니다.

정의채 신부가 답변을 준비해 만나기로 했으나 이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다음번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는 끝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7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일찍이 삶과 죽음, 사후 세계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신부를 만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해결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어리석은 부자 청년과 빌라도입니다. 빌라도는 장차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이 오히려 세상에서 예수님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두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는 정치적인 질문으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였고, 두 번째 질문은 조롱 섞인 말투로 진리가 무엇이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웃는 질문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이나마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날 좋은 기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진리를 외칩니다. 세상에서 진리를 가장 크게 외치는 곳은 대학입니다. 하버드대 교훈이 라틴어로 진리’(VERITAS)이고 서울대는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며 인하대도 진()입니다. 대학이 저마다 진리를 내세우지만 진작 진리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비웃음으로 진리가 무엇이냐? 묻기라도 했지만, 대학은 진리에 관해 묻지 않고 찾지도 않고 답을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다스리는 진리의 왕입니다. 우리가 소유와 수량에 따라 움직이는 욕망의 바다로부터 진리의 왕 예수님 나라에 소속되어 진리로 인도받는 삶, 생명과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18:19~24)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하여 대제사장 가야바로부터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관해 심문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은 제자양성과 복음전파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18:20~21)

예수님은 성전이나 회당에서나 어디에서나 항상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배운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를 보면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20:20)라고 회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되 은밀하게 가르치지 않고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단들과 사이비 단체의 특징은 은밀한 장소에서 은밀히 가르치고 드러내 놓지 않습니다. 그들이 은밀히 하는 것은 자기들이 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밀히 행하는 자들은 어둠의 자식들입니다. 그런 곳은 썩고 부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밝은 곳에서 만나야 합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교회는 투명하고 열려 있어야 합니다. 회계장부도 투명해야 합니다. 투명하고 열린 교회와 사회는 건강한 교회요 사회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TV를 보는 열린 가정 또한 건강한 가정입니다.

예수님은 교권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심문을 받고 계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대제사장의 무지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당당하시므로 아랫사람 하나가 대제사장에게 버릇없이 말한다며 손바닥으로 쳤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에 아부하는 그에게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18:23)라고 책망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사형판결을 받으셨습니다(26:66).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열린 마음, 열린 가정, 열린 교회, 열린 사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열린 마음은 매우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언하여야 합니다.

2. 네가 왕이냐(18:28~40)

그들은 예수님을 유대 총독의 관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아무 죄가 없는 예수님을 새벽(3~6)에 재판하였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사건은 낮에 하게 되어 있는데 새벽에 재판하였고, 심문이 있고 바로 그날에 판결을 내릴 수 없는데 그날에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돌을 던져 처형하는데 십자가로 처형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처형은 내용과 절차상 등 모두 불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관정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갔다 오면 불결하다 하여 옷을 빨곤 했습니다. 그들은 겉은 깨끗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악하고 더러웠습니다. 이를 일컬어 외식(外飾, hypocrisy)하는 표리부동하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 기분이 나빠 밖으로 나가서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였느냐?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긴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집행권이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게 하려 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채찍질 당하고 죽임당할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10:33~34).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만나자 첫 마디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재판하는 사람들이 자기편에서 각기 심문하였습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는 종교인 편에서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냐?”고 물었습니다. 그편에서 보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였고 그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반면에 빌라도는 로마 총독 정치가였기에 유대인의 왕이냐, 아니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와 헤롯 빌립입니다. 이들은 로마 황제로부터 유대 일부를 다스리도록 허락받은 분봉왕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 낼 유대인의 왕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스스로 한 말인가, 아니면 남이 말해서 하는 말인가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총독으로 사무적인 질문보다도 인격으로 예수님께 묻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예수님이 왕이라고 하니까, 덩달아 물어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당신이 왕입니까? 묻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객관적인 지식의 탐구나 연구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둘째로 빌라도는 여전히 사무적이고 객관적으로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18:35)라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 사람으로 예수가 유대인의 왕인지, 메시아인지, 네가 무엇을 하였는지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군의 후손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느냐? 우리나라 왕들도 잘 알지 못하는데 이스라엘의 왕들을 알려고 하느냐? 우리에게도 민족 종교가 있는데, 왜 굳이 외국 사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자 하느냐? 질문합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언약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고 유대인이 되지 못하는 법 또한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겉모양만 갖추었다 해서 유대인이 아니고 내면을 가져야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2:28~29). 진정한 유대인은 할례라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아브라함의 후손, 참 유대인, 새 이스라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참 유대인, 새 이스라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8:36)

옛날에는 도시국가가 많았습니다. 작은 도시국가 생겼다가 합병하여 또 하나의 나라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도 백제와 신라 고구려가 지역을 기반으로 나라가 세워졌다가 신라를 거쳐 고려 시대에 통일되었습니다.

나라는 3요소, 주권, 영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달리 영토가 다르고 백성도 다릅니다. 여기에서 나라’(βασιλεία)는 왕권을 말합니다. 이 왕권은 세상 나라의 왕권과 다릅니다.

이 세상의 왕권은 일시적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225월이면 권좌에서 물러납니다. 이 세상에 속한 왕국은 오래가는 왕권이 없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그리고 칭기즈칸의 왕권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가이사 황제가 임명한 빌라도나 헤롯왕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나라의 왕권은 세상 왕들과 달리 영원무궁합니다.

공관복음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석방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음모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진리가 무엇이냐(18:37~40)

빌라도가 예수님께 세 번째 묻습니다.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은 이에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18:37)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은 왕인데 진리의 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권력과 무력과 재물에 좌우되는 나라가 아니라 오직 진리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위해 태어나셨고,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에 마지막으로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3년 동안 진리를 말했다고 하는데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혼자 진리를 얘기하고, 혼자 진리의 왕이라고 말하니 우습게 들린 것입니다. 빌라도의 눈빛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질문 앞에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D. L. Moody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질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소한 베드로는 이 자리에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며칠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어디 갔습니까? 그는 예수님 옆에 서서 당당하게 이 분은 진리의 왕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라고 한마디쯤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서서 이방인 빌라도로부터 진리 좋아하네, 따르는 백성이 한 명도 없는데 혼자 진리의 왕? 도대체 네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조롱당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로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의 질문 속에는 정치가요 군인으로서 로마 철학에 젖어 있는 사람으로서의 질문입니다. 로마 철학은 강자 철학으로, 강한 자가 진리요, 승자요, 의인입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고 힘이 있어야 진리입니다. 쉽게 말해 힘이 있고, 다수가 진리이지 힘이 없는 소수는 진리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3살의 갈릴리 청년이 붙들려 와서 혼자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빌라도의 눈에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그래서 빌라도는 네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이기고 나서 진리를 말하면 설득력이 있지만, 십자가에 죽게 된 마당에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약자의 변명에 불과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힘이 곧 진리요 정의였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힘이 없으면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힘을 따라 추가 옮겨집니다. 대권 후보 중심으로 권력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님 혼자라도 진리는 진리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제자들이 다 배반해도 진리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수에 의해, 권력에 의해, 정치적 능력에 의해, 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혼자 주장해도 진리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대세를 따릅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옳아도 수가 적으면 잘못된 것처럼 이해하고 공리를 따릅니다. 이것이 보편화의 함정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조롱하고 비웃어도 하나님 앞에 의인이면 의인입니다.

보통 진, , , 성을 말합니다. 이 말은 학문에 있어서 진, 도덕에 있어서 선, 예술에 있어서 미, 종교에 있어서 거룩, 성스러움입니다. 진리란 절대 무너지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중세 시대에 모든 사람이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런 중에 이탈리아의 갈릴레오(Galileo Galilei)는 지구가 돈다는 폴란드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지동설을 부인하였지만,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진리는 믿음과 다르고 신념과 다르고 소망과 다릅니다. 진리는 대중의 절대 의견이나 인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투표로도 흔들 수 없습니다. 저명한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고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면 빌라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수를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 철학이 다르고 수의 개념이 달라서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진리에 속하지 않고 세상 나라에 속해 있고 세상 철학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소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 소속된 사람은 한국법을 따릅니다. 한국민이 미국 시민이 되려면 미국법을 따르겠다고 선서합니다. 따라서 진리의 나라에 소속된 백성은 진리의 법을 따르고 순종합니다.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나라에 소속된 사람은 예수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음성을 듣고 누구의 말에 순종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나라에 소속된 백성이라면 마땅히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진리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가 백성이 됩니다(3:5~6).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뿌리를 둔 사람만이 사랑을 아는 것처럼 거듭난 사람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왕으로 여기며 큰소리치면서 삽니다. 자신이 주인이고 왕이 된 나라는 실리적이고 물질적입니다. 이런 곳은 소유와 수량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젊음과 미모와 부와 권력이 안개처럼 다 사라져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소유와 수량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과 자기 유익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망해도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14:6). 예수님은 세상에 진리를 증언하시기 위해 오신 진리의 왕입니다. 진리의 왕 예수님에게 소속된 사람만이 진리의 음성을 듣고,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의 왕 되신 예수님의 다스림과 섬김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에 소속되어 있고, 누구의 음성을 듣고 누구의 말에 순종합니까? 진리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되었다면 당연히 진리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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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