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요한계시록 1:1~8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1:1)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주후 95~96년에 유배지 밧모섬에서 기록했습니다. 그가 밧모섬에서 고독과 절망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의 주제가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면,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서론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와 요한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복을 주시는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1:1)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계시(revelation)’뚜껑을 연다’, ‘나타낸다’, ‘보여준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가려져 있던 것을 치워서 그 안에 있는 실체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연극을 시작할 때, 커튼 뒤에는 배우들도 있고 연극의 소품들이 있지만, 시간이 될 때까지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커튼을 여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드러나 보이는데, 이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오랜 기간 커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요한의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한 자신의 묵상이나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습니다. ‘주셨다는 뜻은 맡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통로가 아니라 계시 자체이고, 구원역사의 근원과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로 요한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목회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속히 될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만들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경영을 잘못하여 사업을 망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단 일을 만듭니다. 특히 한국 사람에게는 일단 해보자고 합니다. 안하는 것보다 일단 하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일단 했으면 끝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에게 무서운 것은 이단이나 삼단이나 사단보다 일단이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시고 세운 계획을 반드시 완성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게 놀라운 구원 계획과 비전과 소망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중단되거나 실패함이 없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파도 소리만 들리는 밧모섬에 유배되어 고독하고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실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밧모섬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시고, 그 내용을 편지로 여러 교회에 보내게 하심으로 교회를 더 든든하게 세워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실패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속히 이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220절에서 예수님은 속히 오신다고 했습니다. ‘속히란 긴박함을 말합니다. 지금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다닙니다(벧전 5:8). 지금 성도들은 마귀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일곱 개요 뿔이 열 개인 마귀가 사방팔방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13:1). 물질주의, 쾌락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 이단과 사교집단이 절망과 회의와 두려움으로 교회와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런 긴박한 영적 전쟁에서 긴장을 풀면 여지없이 마귀의 표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시라도 영적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실 때,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학식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경마다 저자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요한의 인격과 생각과 다르게 천사를 통해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이 쫙 펼쳐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에 나타난 문체와 형식과 달리 상징적인 숫자와 단어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천사를 보내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도록 하셨습니까? 왜 요한복음과 달리 요한계시록에 난해한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까? 그것은 당시 교회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제11대 황제로 적그리스도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는 황제로 즉위하자 황제는 하나님이다.”라고 강요하고, 이를 고백하지 않으면 죽임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님만이 왕이시고, 주님이라고 편지를 써서 교회에 보내면 검열에 여지없이 걸리게 되고, 성도들은 고통과 죽임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적인 단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666 숫자가 나오는데, 666은 이름을 숫자로 표현한 것으로 당시 네로 로마 황제를 뜻합니다. 이 말은 로마 황제를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로마 공안 당국이 666이 뭔지 알 수 없고, 설령 심증이 간다고 해도 물증이 없어 성도들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은 드러내놓고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선교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이 알 수 있는 단어로 편지와 메일을 주고받습니다. 선교사들을 해외 직원, 하나님을 윗 분, 교회를 회사, 하나님의 사역을 사업이라고 표현합니다. 중국 공안 당국에서 선교사들의 메일을 검열해도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기에 선교사님들을 추방할 수 없습니다.

더 예를 든다면 초대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물고기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시다.”라는 헬라어 첫 글자를 모으면 물고기(ΙΧΘΥΣ)란 단어가 됩니다. 이 단어는 외부 사람들이 보면 생선 가게로 생각할 뿐,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것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계시의 방법으로, 상징과 숫자와 그림으로 전달하여 외부 사람에게는 혼동을 주고, 성도들에게는 믿음과 소망을 확신하게 합니다.

이상에서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계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계시는 반드시 성취되며 속히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시고 완성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인과 교회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십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1:2)

 

사도 요한은 부담스러운 말씀은 빼고 듣기 좋은 것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다 증언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진노(16)와 반면에 하늘의 보좌와 영광(21~22)을 가감 없이 다 증언했습니다. 성경은 가감 없이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계시를 어느 것은 빼고 어느 것은 더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전하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경고했습니다(22:18~19).

요즘 한국교회가 사교 집단과 이단에 빠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혹의 영이 그렇게 만듭니다. 왜 미혹의 영이 한국교회를 파고 들어옵니까? 왜 사교 집단과 이단이 발흥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교회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70~90년대 초반까지 한국교회와 대학선교 단체는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열심히 성경을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통일교와 그 아류인 원리연구회, 그리고 JMS가 대학사회에 침투했지만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보다 삶을 나누는 모임으로 바꿨습니다. 삶을 나누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보다 삶을 나누다 보면 자칫 친목 단체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럴 때, 신천지는 성경을 자기들 입맛에 편집해서 거의 매일 공부하고, 달달 외워서 시험까지 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단과 사교 집단인 신천지가 대학을 점령하고 교회에 파고 들어와 혼란을 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는 대오각성하여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고 전도하여 국가기관까지 점령하려고 하는 사교 집단이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는 회개의 메시지가 없고 축복의 말씀만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축복만 주신다는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세속주의와 쾌락주의, 맘몬주의와 싸우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라, 거기에서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내가 왔으니 복을 받아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15)입니다.

점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외침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심신이 지쳐있기 때문에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살기가 힘드니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위로와 축복의 메시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없이 복음을 믿을 수 없고, 회개가 없는 축복과 위로는 없습니다. 건강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성경을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구약도 읽고 신약도 읽고 서신도 읽고 계시록도 읽어야 합니다. 위로의 메시지도 필요하고 회개의 메시지도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원어에 보면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는 복수입니다. 지금처럼 성경이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고 성경을 파피루스나 양피에 기록해 교회에 두었기 때문에 자기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자가 읽어 주어야만 그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의 신앙생활이 교회를 중심한 신앙생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은 사람들의 필요로 만들어졌습니다. 반면에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언약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교회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무관심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조차도 가나안 신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로 가나안 신자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틈나는 대로 교회에 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읽기만 해도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열심히 읽어 하나님의 깊은 계시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가 가까이 올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곳곳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교회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고,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마음대로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교회는 1884년에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부터 136년간 예배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인 6.26동란과 유신 독재 체제에서도 예배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이단 집단에 퍼져 정부에서 집합금지 명령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한국교회사 속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마귀 사탄과 적그리스도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갖은 미혹과 박해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도는 시대의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지키고 민족을 살리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그것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상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심판의 때가 가깝습니다. 세속주의와 쾌락주의, 사교 집단이 미혹하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깨어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성령, 예수 그리스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1:4~5)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계시록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교회는 지금 터키 지방입니다. 일곱 교회는 교회를 대표합니다. 대표한다고 해서 규모가 큰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양성에서 있어서의 일곱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은 사탄은 제일 먼저 교회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중에도 살아 있는 교회를 공격합니다. 살아 있는 교회를 공격하여 죽은 교회로 만듭니다. 마귀는 황제숭배 사상으로 교회를 공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말씀을 교회에 주심으로 강력한 마귀의 공격을 이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십니다. ‘장차 오신다란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교만하여 자기 맘대로 사는 자들을 향해 오고 계십니다. 세상은 악한 자들이 잘사는 것 같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간섭하시고 함께 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입니다.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성령은 완전하여 우리와 각 교회에 오셔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기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합니다(16:8). 성령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알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 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각 사람에게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온전히 하나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되고 왕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1:5)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십니다. (ἁμαρτα)는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에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1:26~28).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거룩한 사명을 잘 이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과 거룩한 사명을 상실했습니다. 죄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입니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받는 삯이 있는데, 그 삯은 사망입니다. 인간은 죄로 죽습니다. 그러나 한번 죽는 정한 것이지만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21:8).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모든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피는 죄 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셨음을 믿으면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됩니다(8:1~2). ‘해방되다는 시제는 부정 과거형으로 이미 영원히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19:30)입니다. 이는 내 죗값을 다 갚아주셨다는 뜻입니다. 흠 없으신 예수님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9:12). 이제 우리는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더는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고행이나 수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 1:9).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롭다고 선포합니다(3:24, 5:1). ‘의롭다(justify)’의롭다란 법률용어로서 죄 없다고 인정받았다, 형벌에서 사면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죄 없다고 선언하시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고 선포하시면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포하시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됩니다.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율법의 매임에서 자유인이 됩니다. 누구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었다가 회개하면 다시 깨끗하게 되고, 죄를 지으면 죄인으로 추락하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정죄를 받았다, 정죄를 받지 않았다 하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은 확고부동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가 육신이 연약하여 불의에 빠지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 누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그 어떤 세력도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사랑의 줄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은혜의 세계에서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8:33~39).

그리스도 안이란 신령한 몸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뜻입니다. 한 몸(one body)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떼래야 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예수님과 유기적인 관계로 떼래야 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이란 아담 안과 대조됩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 있었을 때는 사망이 왕 노릇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명이 왕 노릇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내가 죄를 짓지 않거나 온전해서가 아닙니다. 법이 달라져서 자유해진 것입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법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북한 영국 공사였던 태영호는 북한 노동당 법에 의하면 아오지 탄광에 갈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남한에 와서 국민의힘 강남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법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지고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법에 속하면 은혜의 사람이 되고, 죄와 사망의 법에 속하면 죄인이 됩니다. 어떤 법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사람의 신분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어느 법아래 사느냐에 따라 란 존재가 달라집니다. 율법과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게 되면 은혜의 사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6)

 

로마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망 대상은 왕이고,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선망 대상은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왕의 위엄과 영광, 그리고 제사장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나라는 왕들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 역할을 합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쫓겨 다니면서 고통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왕과 제사장이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왕이 되었고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제사장이 되어서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특수한 사람에게만 제사장의 신분이 주어졌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든지 제사장의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 어떻게 제사장과 왕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와 기도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제사장 직무는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성도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나의 기도는 세계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초대 성도들은 박해와 고난 중에도 전도와 기도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세대에 나의 손으로 세계를 복음화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고귀한 특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심판주로 오신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르는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8)

 

그를 찌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찌르는 사람을 의미하나 교회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에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들은 비로소 예수님이 구원자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박해하고 거절하던 사람들이 애곡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저주와 심판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개인 개인에게 역사하였지만 재림하실 예수님은 모든 족속, 모든 나라가 동시에 순간적으로 볼 수 있도록 오십니다. 예수님은 밤에 오실지, 낮에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알파요 오메가 되신 예수님은 창조주가 되시고 종말의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은 반드시 매듭을 지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매듭을 지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이루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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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메시지 2021년 요한복음 2:12~25 이 성전을 헐라- 마케팅 전략은 비지니스 전략이다.

주일메시지 2021년 요한복음 2:11~11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 -C.S 루이스의 변화

주일메시지 2021년 요한복음 1:35~51 너는 장차 게바라 하리라 -단 바틀렛 교수 이야기

주일메시지 2021년 요한복음 1:19~34 보라 세상 죄를.....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주일메시지 2021년 요한복음 1:5~18 은혜와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 밀턴에게 베푸신 은혜

주일메시지 2021년 요한복음 1: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패니를 1000편의 찬송 작시자로

2021년 신년 말씀 한 알의 밀알되신 예수님-예수 생명의 흔적을 남기자

2020년 성탄 말씀 큰 기쁨의 좋은 소식

2020년 성탄 제 3강 돋는 해 예수님, 희망의 예수님

2020년 성탄 제 2강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마리아

주일메시지 2020 성탄 제 1강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가랴와 엘리사벳-니콜라이 집사이야기

요한계시록 제1강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서론

요한계시록 머릿말


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 주일 오전 예배 - 오전 11:00
  • 주일 오후 예배 - 오후 3:30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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