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1~18

선한 목자, 예수님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성경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목자와 양, 포도나무와 가지, 신랑과 신부, 아버지와 탕자 등 많은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중에 목자와 양의 비유만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비유도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유목민이므로, 예수님은 본문에서 그들이 알아듣기 쉽게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양은 단순히 재산의 소유 관계가 아니라 가족과 같이 생명이 결탁된 사랑과 신뢰의 관계였습니다.

인간은 어떤 점에서 양과 비슷합니다. 양은 다른 동물과 달리 연약한 면에서 인간과 똑같습니다. 양은 눈이 근시여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먹을 것만 있으면 무조건 달려듭니다. 추울 때는 함께 춥자며 떨어져 자고, 더울 때는 같이 덥자고 포개어 자는 개별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방향 감각이 둔하여 놔두면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한편 온순하고 연약하고 다리가 짧아 잘 도망가지 못합니다. 사나운 발톱이나 날카로운 이빨도 없어 적의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끊임없이 돌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듯 인간에게 또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요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이 표류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2030들이 힘들어합니까? 이는 참다운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목자라 할 수 있는 교계와 학계의 지도자들은 이 시대에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영혼은 시들어갑니다.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민족 분단의 간극 하나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영혼과 삶을 풍요롭게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은혜와 진리, 기쁨과 사랑, 그리고 소망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이 앞서가신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서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목자는 양을 돕는 동기와 목적이 순수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10:1~2)

예수님은 먼저 절도, 강도, 목자의 차이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양을 훔치는 절도와 강도들이 널려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이리와 곰과 사자들이 양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공동 우리를 만들어 양을 공동으로 관리했습니다. 밤에는 목자들이 그들의 양들을 우리에 넣고, 문지기는 절도와 강도와 이리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밤새 보초를 섰습니다.

그런데 강도나 절도는 야음을 틈타 문이 아닌 다른 곳, 담을 넘거나 개구멍으로 살금살금 들어와 양을 도둑질했습니다. ‘절도는 좀도둑이고, ‘강도는 전문적인 도둑을 말합니다. 강도나 절도의 특징은 문이 아닌 다른 데로 넘어가 양들을 죽이고 늑탈합니다. 반면에 목자는 정정당당하게 문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데로 넘어간다는 것은 복음 진리 이외 다른 것을 말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한 예로 그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법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았습니다.

목자는 자기 생각이나 자기 철학으로 양들을 도와서도 안 됩니다.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을 돕는 동기와 목적이 순수해야 합니다. 양의 돕는 목적이 생명을 살리는 데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직통 계시, 신비주의와 인본주의, 쾌락과 물질, 그리고 신천지 등 이단들이 그럴듯한 이론과 성경을 자기들 멋대로 윤색하고 더하고 빼서 가르쳐 양들의 영혼과 정신세계를 황폐시킵니다. 목자는 그 시대의 나쁜 사조와 사상과 이단으로부터 양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2. 목자는 양을 인격적으로 돕습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10:3)

목자는 양이 많다고 한 마리쯤이야 하며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목자는 양을 도울 때 번호를 붙여 부르지 않습니다. 목자는 각각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양의 특성과 성격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그 양의 특성을 따라 이름을 지어 인격적으로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섬세하게 돕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재산상의 소유 관계나, 사업적인 관계가 아니라 생명으로 결탁된 사랑과 신뢰의 관계입니다.

개는 후각이 발달하였지만, 양은 청각이 발달하여 목자의 음성을 기가 막히게 잘 압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목자가 가는 길이 때로 거칠고 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왜 이런 곳으로 인도하느냐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목자가 가는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인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소리가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좋게 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들려오는 말이 멋있게 들리고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그 말은 목자의 음성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음성만이 목자의 음성입니다.

3. 목자는 양들을 앞서서 인도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10:4)

소는 뿔이 있어 받칠 염려가 있으므로 뒤에서 몰고, 말은 뒤발로 채일 염려가 있어서 앞에서 끕니다. 한편 양은 뒤에서 몰고 앞에서 끌면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가 개별적으로 불러모은 다음에 앞서가야 따릅니다. 한 예로 개울을 건널 때에 목자가 양을 뒤에서 몰면 양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전혀 개울을 건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어린 양을 안고 개울을 건너면 양들이 따라 건넙니다.

앞서서 간다는 것은 본을 보이는 삶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그 아들’, ‘딸의 그 어머니란 말이 있듯이, 양은 무언중에 목자를 본받습니다. 그러므로 백 마디 말보다 본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양은 목자의 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배웁니다. 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너희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에게 삶을 보이셨습니다. 교육 중의 교육은 삶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를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보보인형 실험으로 사회학습이론을 정립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앞서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 예수님이 가신 발자국에 나의 발자국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신앙생활이란 예수님를 본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 덮인 산을 등산할 때 정상에 오르려면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면 합니다. 그 길이 꼬불꼬불하고, 그 길이 거칠고, 그 길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그 길을 따라가야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본인이 개척한다고 아무 데나 갔다가는 빙하의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crevasse)를 만나 빠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개척하고 창조하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길, 쉽고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가신 길,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길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12:2).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면 작은 예수, 목자장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면 작은 목자가 됩니다.

목자는 예수님 자신을 비유한 것이고, 강도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지칭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비유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10:6). 왜냐하면, 그들은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없었고, 또한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문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십니다(107~9).

예수님은 이제 다른 차원에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7~9)

사람들은 정상은 하나이지만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문이라(I am the gate).”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절대성, 유일성, 현재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14:6).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딤전 2:5).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4:12). ‘먼저 온 자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거짓 메시아와 거짓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문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양을 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목자의 집을 중심으로 치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일정한 장소가 없이 풀이 있고 물이 있는 곳을 찾아서 양을 치는 방법입니다. 이때 목자는 24시간 양을 중심으로 지내게 됩니다. 목자는 양을 모아 놓고 들판에서 함께 잠을 자기도 합니다. 이때 목자는 양의 문이 됩니다. 문은 보호막과 쉼터가 됩니다. 그러면 문 되신 예수님께로 들고나면서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10:9)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가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구원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죄를 짓는 순간은 재미가 있을지 모르나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지만 심판이 있습니다(9:27). 그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히 던져집니다(21:8).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 이외에 구원의 문이 있는 줄 알고 벌 나비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찢기고 상처만 받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입니다.

둘째, 들고 나며 풍성한 생명의 꼴을 얻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빼빼 마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언제든지 풍성한 생명의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으면서 빈티 나고 찌든 삶, 주고 섬기는 삶이 없다면, 이는 예수님의 문을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탐욕, 이기심의 문을 드나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문을 드나드는 사람은 마음이 늘 풍요롭습니다.

5. 선한 목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십니다(10:10~18).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예수님은 도둑과 비교해 설명하셨습니다.

도둑은 양을 죽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반면에 목자는 양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생명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이를 믿지 못하는 것은 의심입니다. 믿음의 적은 의심입니다. 의심이 불신을 낳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의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삯꾼과 비교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10:11~13)

양이 많은 경우에는 삯을 주면서 품꾼을 채용합니다. 품꾼과 목자의 차이점은 위험한 일이 생기고 손해를 볼 때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품꾼은 양을 잃어도 안타까움이 없습니다. 주인의식(ownership)이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하게 된 이유는 ownership,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품꾼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한몫 잡고 그만두는가에 있습니다. 품꾼은 목장에 적자가 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품삯은 물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품꾼은 어려움이 있으면 도망갑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이리가 오는 등 어려움이 닥치면 생명을 내걸고 싸웁니다. 어려울수록 가까이 가는 것이 목자입니다. 목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더 적극적으로 주인의식과 책임감, 희생적으로 몸을 던져 우리를 지키고 양을 지킵니다.

다윗은 몸을 던져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에서 양을 구원했습니다. 한 마디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망가면 삯꾼이요, 남아서 끝까지 양을 위해 일하고 지키면 목자입니다. 위험한 순간에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목자의 심정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내와 희생을 동반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므로 양들을 위해 물질과 시간과 젊음과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조금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목숨까지도 바칩니다. 사랑하면 목숨까지도 바치는데 시간과 돈을 아까워한다면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는 나를 잘 아십니다(10:14~15). 선하다는 것은 애정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선도 포함합니다. 그리고 선하다는 것은 지혜를 포함합니다. 선한 목자는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처리하는 지혜도 있습니다. 목자는 양의 입장과 형편과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고 지혜롭게 돕습니다. 목자는 양이 풀만 먹고 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소금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지 못합니다. 아마 그래서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지도 모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이 나를 잘 아십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나의 현재와 나의 미래까지도 잘 아십니다. 잘 알기 때문에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선한 목자와 양은 눈길로 다 통합니다. ‘다 안다는 것은 정적이고 의지적인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까지 압니다.

그리고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19로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구호입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두되 사회적 거리는 더욱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4:23). 하나 됨을 지킬 때 기적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사도들을 비롯하여 120명이 합심해서 기도했을 때 오순절의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도쿄 2020 올림픽에서 8강에도 오를 수 없었던 한국 여자 배구팀이 감독과 선수 김연경 팀장을 중심으로 one팀을 강조하며 하나가 되었을 때 강적인 터키와 일본을 이기고 4강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 됨은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갑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10:16~18). 사랑은 과거가 아니고 계속적이고 현재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자세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우리는 선한 목자 예수님을 100% 신뢰하고 믿고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양은 선한 목자를 기쁜 마음으로 따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따르는 좋은 양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한 목자장 예수님을 잘 따르고 배워서 작은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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