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39 강(말씀, 15:12-36, 요절, 15:19,20)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 옳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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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안에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역사와 전통과 관습, 그리고 문화와 풍습, 언어 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계층과 인종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없었고 이방인의 집에 심방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사이에는 간극이 깊었습니다.

이런 이질적인 그룹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마치 물과 기름을 섞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다양한 사상과 계층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복음 진리를 세운 감독 야고보의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의결된 복음 진리가 교회 속에 어떤 뜻이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 초대 감독 야고보(12-21)

사도행전 15장 5절을 보면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에 유대 크리스천들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방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에 이의가 없음을 선포했습니다(행 15:6-11). 그러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바나바와 바울이 나서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이루신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 성령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감독인 야고보가 말했습니다. 12,13절을 보겠습니다. “듣고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뜻합니다. 그는 현재 이 총회의 의장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총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남인 예수님이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킬 생각은 안하고 갈릴리 어부 출신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설파하시니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그가 초막절이 가까워오던 어느 날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 큰 고기를 잡으려면 큰 바다로 가야하는 것과 같이 큰일을 하시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셔야지 갈릴리 시골에만 계시면 어떻게 하십니까?”(요 7:4). 이에 대해 요한 저자는 이렇게 주를 달았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라”(요 7:5).

그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고전 15:7). 성경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11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열 두 사도, 오백 문도, 그리고 야고보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단독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일대일로 나타나셔서 교훈하시고 주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유명한 야고보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설에 의하면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무릎이 군살이 박혀 낙타 무릎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삶을 산 것은 행함을 통한 구원을 실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는 율법에 의해 경건하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실천했습니다. 특히 그의 서신을 보면 그는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12절과 13절을 보면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 크리스천들의 변론도 듣고 베드로의 메시지도 다 들었고, 바울과 바나바의 기사와 이적의 이야기도 다 들었습니다.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을 중간에 끊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조신영∙박현찬 씨가 지은 ‘경청’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경청이라는 미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 아는 사실이다. 말을 배우는 데에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하는 것을 배우는 데는 60년의 세월도 모자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과 금전의 지불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경청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려하지 않는다.”

저는 경청에 대해 아주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경청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잠언에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잠 18:13). 제가 경청하는 것을 즐거이 하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는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베드로의 말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들의 놀라운 업적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런 모든 사건 속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치, 유대 크리스천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제자 베드로의 눈치나 바울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보았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야고보는 다 듣고 나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선지자들의 말씀이 어디 있는가, 성경과의 일치함이 어디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 때 아모스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모스 말씀이 응했음을 알았습니다.

16-18절을 보겠습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아무리 좋은 이야기, 좋은 말도 성경 말씀, 즉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주관적입니다. 주관적인 생각은 독선으로 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성경에 없는 이야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바울의 말을 다 듣고 성경 말씀이 응했음을 확신한 후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하고, 성경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야고보는 신앙과 문화를 구분합니다. 신앙은 절대적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이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양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적인 것이 있고, 윤리적인 것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있고,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고, 비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있습니다. text(교과서)와 context(상황)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것과 내용적인 것이 있습니다. 형식은 변하고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문화는 변하지만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context은 변하지만 text는 변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신앙의 문제에서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는 본질적인 것을 붙들었습니다. 반면에 상황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너그러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비본질적인 것,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리처드 칼슨은 “사소한 곳에 목숨을 걸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니까 절대적인 것은 양보하고, 양보할 문제 앞에서는 절대를 주장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믿으면 모두 자유라고 아무렇게나 행동해서는 안 됨을 환기시켰습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믿은 이로서 삼가야 할 것들은 이방문화 가운데 우상의 더러운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음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음행은 성적 죄악을 뜻합니다. 성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성은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의 연을 맺어 은밀하게 인격으로 사랑을 나는 것입니다. 그 외의 모든 행동은 음행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음행은 단순히 도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의 음행은 우상 숭배와 연관되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의식 중에 음행이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음행은 항상 일치합니다. 당시 다이애나 신전에 30,000명의 창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곧 신전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그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은 목매여 죽인 짐승과 피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목매여 죽였으니 피가 빠지지 않습니다. 피가 빠지지 않은 짐승을 먹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금기 사항이었습니다(레 17:13-14; 신 12:16-23). 그들은 피를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제사를 지낼 때 피를 받아서 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를 잡을 때 목매어 패서 죽입니다. 개고기를 잘 먹는 사람들은 한번 쯤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각기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틀리다는 흑백 논리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비본질인 문제는 총천연색(colorful), 무지개로 접근하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검정과 흰색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빨간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파란색도 있고, 핑크색도 있습니다.
세상은 붕어빵처럼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다양합니다. 사람의 모양도 다양하고 리더십도 다양합니다. 교회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건강한 사회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반면에 획일적인 사회, 일사 분란한 사회는 폐쇄된 사회(closed society)입니다. 북한은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획일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합니다.

왜 사회가 분열됩니까? 왜 가정이 깨집니까? 피차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좌우, 이념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점심 먹는 문제를 놓고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념으로 편을 가를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다름의 문제입니다. 서로 다름으로 접근할 때 해답이 있습니다. 다름 속에 일체감, diversity에서의 unity가 이루어집니다.

야고보는 최소한 이런 것들은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는 곳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교제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데 문턱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결된 사항(22-35)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는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을 보증할 사절로 뽑혔습니다.

23절을 보면 편지의 수신인이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율법주의자들의 훼방이 안디옥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온 이방인 교회로 확산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27절은 편지를 보내게 된 동기입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사도와 장로들은 안디옥 교회에 가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사로이 가서 여러 가지 사악한 말로 양떼들을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바울과 바나바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총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깊이 신뢰하는 훌륭한 목자들로 보증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사항이 무엇입니까? 28,29절을 보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노라.”

사도와 장로들은 이 결정이 성령과 우리의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 총회의 결정이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요,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성령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결정된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에는 그 어떤 것도 가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 + a가 아닙니다. +a를 떼어 내야 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율법주의와 복음신앙의 싸움에서 복음 진리가 승리하였습니다. 이로써 민족, 문화, 전통, 관습, 할례, 무할례 등 모든 문화의 장벽을 초월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가 확고히 서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동시에 세계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삼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삼가라”고 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율적으로 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율법보다 더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라고 하면 기계적으로 로봇처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삼가야 하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 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령의 세심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행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과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이 없다며 예수님을 믿고도 술과 담배를 즐겨 마시고 피웁니다. 왜 우리는 담배를 피우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자유를 하찮은 담배 피우고 술을 마시는데 빼앗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고귀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여기에 성숙함이 있습니다.

30,31절을 보면 교회의 편지를 읽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큰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로 인한 무거운 짐을 벗고 다시 주님의 은혜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내려온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으므로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여 굳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수습되자 형제들의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계속 머물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였습니다(32,33).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단과 사이비, 그리고 거짓 진리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복음 진리를 굳게 지키고, 율법과 죄의 멍에를 고통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짐을 벗기는 선교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는 이로서 스스로 삼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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