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활메시지고전15장50-58절

조회 수 2655 추천 수 0 2012.07.14 06:31:47
2011년 부활절(고린도전서15:50-58, 요절 15:58)

부활의 승리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을 앎이라(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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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회의론자 토마스 홉스는 그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아,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이 어둠 속으로 덥석 뛰어 들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태연한 척 살아가지만 모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모두가 죽음 앞에 절망합니다. 모두가 원대한 꿈을 안고 열심히 살다가도 죽음을 생각하면 힘이 빠지고 의욕이 상실되어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망을 sting, 찌르고 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쯤은 경험했는지 모르겠지만 가시나 바늘에 찔려 상처가 덧났을 때 열이 나고 꾹꾹 쑤실 때 참기 힘들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죽음은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Where, o death, is your victory? Where, o death, is your sting?” 바울이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죽음의 세력을 파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망과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다른 종교나 철학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인간의 본래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죄요 마귀가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하고 체념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잊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무력하게 만들고 멸망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을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라고 했습니다(고전15:26).

본문은 부활신앙에 대한 climax입니다. 바울은 부활의 승리를 감격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부활의 승리의 찬가를 부르기를 기도합니다.

1. 누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있습니까? 50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이란 혈육, 부모나 형제나 친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혈과 육은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말합니다. 혈과 육은 우리의 의, 도덕적인 선행, 우리의 선한 의지 등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행과 자선을 베풀어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 의지로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울어도 못 하네, 참아도 못 하네, 힘써도 못 하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당시 최고의 지성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는 자타가 구원의 1 순위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자마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자선을 많이 베풀고 훌륭해도 육은 난 것은 육이기 때문입니다(요3:6).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이상을 가지고 양심을 따라 바르고 고상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과 술수와 쾌락을 좇아 천박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육은 육입니다. 육이 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걸레를 아무리 빨아도 걸레가 행주가 될 수 없고, 검은 숯을 아무리 빨아도 흰 숯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첫 사람 아담의 속성,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 태어난 인류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입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절대로 자기중심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자기중심은 죄입니다. 이게 아담 생명, 아담의 죄성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a).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아담의 죄성으로 죽은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게 되고, 심판 후에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예하게 됩니다.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막9:48). 아담 안에 있는 인류는 그런 곳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있습니까?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남이란 나의 노력이 아닙니다. 나의 선행도 아닙니다. 나의 변화된 성품도 아닙니다. 나의 행위도 아닙니다. 거듭남이란 말씀 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의 죄 사함이 있고, 나의 부활이 있으며, 거듭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생명이 있습니다. 거듭난 예수 생명은 영원합니다. 이 생명은 지금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3:20).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은 1장 12,13절을 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기에서 ‘권세를 주셨다’는 뜻은 헬라어로 부정과거로 단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단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단번에 하나님 자녀의 특권과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단번에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벧전1:3,4).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영접하는 곧,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어떤 종교가 한번 믿음으로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모든 종교는 선행을 쌓아야 합니다. 쌓은 만큼 구원이 질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니 얼마나 놀랍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래서 성경은 값없는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 그리고 은혜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은혜의 복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51-56)?

많은 사람들이 인류 역사는 점점 개선되고 변화되거나 퇴보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진화론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산을 보게 되면 몇 억만년 걸렸다. 이 바위가 몇 억만년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이게 다 진화론적인 사고구조입니다. 그러나 51절을 보세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바울은 비밀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 비밀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Grand Canyon 박물관에 가면 grand canyon의 골짜기에 조개껍질과 물고기 화석이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산꼭대기에도 조개껍질과 물고기화석 같은 것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이는 그곳이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몇 억만년 전에는 여기가 바다였는데 천천히 침식되어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천히 변화되었다면 어떻게 산꼭대기에 물고기화석과 조개껍질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북극이나 남극에 만년 빙하가 있는데 그 얼음 덩어리 속에 200만 마리의 매머드(Mmmoth) 화석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매머드의 배를 갈라보면 그 속에 열대식물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매머드가 열대 지방에서 식물을 먹고 북극이나 남극에 올라가서 죽었겠습니까? 순식간에 바다가 그랜드 canyon 되었고, 순식간에 열대가 빙하로 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 후쿠시마 도시가 순식간에 지진과 해일로 change,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갑자기 순식간에 뒤집어진 것입니다. 화산이 터지면 없던 섬이 생기고, 생겼던 섬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산도 바다로 빠져 버리고, 땅에서 섬이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모든 변화는 홀연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몸이 순식간에 변화됩니다.

52절을 보겠습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말합니다.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십니까? 주님이 순식간에 홀연히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순식간에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순식간에 변화됩니다.

주님이 순식간에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됩니다. 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때 나도 변화합니다. 헨델의 메시야의 곡의 3부 부활과 영생을 들어보면 한 10분 동안 똑같은 가사를 부릅니다. ♬홀연히 변화하리라. 우리도 변화하리라. 홀연히 변화하리라. 우리가 변화하리라. 나도 변화하리라♬

둘째, 우리의 신분이 순식간에 변화됩니다.

53절을 보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입는다’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사람의 몸이 좀 깨끗하지 못하고 추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깨끗한 옷을 입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가리어집니다. 특별히 옷 입는다는 말은 당시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신분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를 양자로 삼아 왕자의 옷을 입히는 그 순간 왕자가 됩니다. 순식간에 신분이 변합니다. 과거 노예이었지만 왕자가 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왕이 됩니다. 여기에는 과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거 신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자의 옷을 입는 순간 신분이 확 변합니다.

우리의 신분이 홀연히 어떻게 변화됩니까? 우리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게 됩니다. 54절을 보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죽음이 주는 절망과 슬픔과 미움과 낙심, 그리고 어두움과 두려움이 흔적도 없어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이 있을 때에, 그 기쁨이 극대화되는 순간, 그 동안에 슬펐던 것 모든 것이 다 사리지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삼켜버리고 이기는 몸이 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 날은 진노의 큰 날로, 끝까지 회개치 않고 범죄 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스러운 날입니다(계6:17). 그날에 그들이 죄악 된 삶을 회개하려고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자 고난당했던 거룩한 성도들, 예수그리스도께 충성하고자 희생했던 성도들은 최후의 승리와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지키고, 주의 날을 기다려 온 그들에게 의의 집,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재림은 영광스럽고 장엄하고 복된 것입니다.

3.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55-58)?

예수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주님의 다시 오시는 날에 사망이나 죄는 모두 다 삼키고 이기는 몸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55절을 보겠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때까지 사망이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권세 앞에 굴복 당하여 죽어 갑니다. 사는 날 동안 허무, 무의미, 두려움, 절망, 패배주의, 무기력, 무능력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사망이 우리를 이길 수 없고 찌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기 때문입니다(56). 죽음은 사람에게서 육체를 빼앗아갑니다. 인간이 육체를 빼앗기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모두 죽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죄에게 육체를 빼앗긴 인간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육체를 입어야 완전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면 죄 없는 몸을 물려받게 됩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육체는 죽음을 이기는 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 재림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의 승리를 노래하며 현재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5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견실하다’는 내적인 것이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은 외적인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도록 여러 가지로 유혹합니다. 회의와 의심을 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 신앙을 굳게 하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일’이란 예수님을 믿는 일이요,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분명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 살며,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보냄을 받았는가?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위해 살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 일에 일생을 걸고 생명을 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만 걱정하며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일생은 거는 삶, 믿음에 목숨 거는 삶, 주님의 뜻이라면 죽을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축복의 주인공, 역사의 주인공, 세상에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세상을 끌고 가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이런 은혜가 임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평생을 바친 리빙스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달성할 때까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사명인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십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것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과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34절을 보겠습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죄악 되고 음란한 이 세상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을 대비하여 깨어 의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에,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거룩함의 단어가 각인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세계, 순간에 사라질 것들에게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영원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예배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을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내가 찾는 것이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돈을 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지위와 명예를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빈손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끌어안고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미국의 시간관리 전문가 마이클 포티너가 미국 사람들이 평균 72세를 산다고 가정하고 일생 동안 소모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잠자는데 23년, 직장에서 일하는 데 20년, 쉬면서 즐기는 데 7년, 먹고 마시는데 6년, 줄 서거나 신호등을 기다리는 데 5년,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는 데 3년, 물건을 찾는데 남자 말고 여성들이 핸드백 뒤지는데 3년, 가사 일에 4년,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데 1년을 보낸다고 합니다. 아마 요즈음 전화 거는 시간이 10년은 될 것입니다. 핸드폰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반면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시간은 일평생 다 합쳐서 1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만남이 소원하고 대화가 뜸하면 친밀감이 떨어집니다. 이게 사랑의 법칙입니다. 72년 생애에 1년 6개월 남짓 예배 시간을 드리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깊은 교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넉넉히 감당할만한,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비록 힘이 없지만, 연약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면 결국 승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앞날도 주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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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