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45강저희를 기념하라

조회 수 2380 추천 수 0 2012.07.12 07:37:20
마가복음 제 45강(14:1-11, 요절 14:9)

저를 기념하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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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 석 자를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후세에 이름 석 자를 남기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관광지에 가보면 빠짐없이 자기 이름을 새겨 놓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바위나 돌에 새긴다고 유명해지고 후세에 유명한 사람으로 기억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한 평범한 여인이 유명해진 사건이 나옵니다. 여인은 먼 훗날에도 여전히 유명세를 탈 것입니다. 이 여인은 돌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인기에 대해 예수님은 일찍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9).” 이 땅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이 여인의 이름은 계속 기억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여인을 인정하시고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기록되고 기억될까요?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이 여인은 한일이 별로 없습니다. 단지 이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그 속에 있던 향유를 죽음을 앞두고 계셨던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뿐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과 더불어 4 복음에서 모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었을까요? 이 여인이 옥합을 깨어드린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입니까?

첫째, 그녀는 주님을 사랑했습니다(love).

1,2절을 보면 때는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된 날로 유대 절기 중 최대의 명절입니다. 이날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일 계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유대 명절에 예수님을 죽이면 백성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 날은 예수님의 생애 중 가장 긴박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 예수님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초대를 받아 식사하셨습니다. 이 식사는 보통 평범한 초대식사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초청된 식사자리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2절을 보면 “유월절 전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는 마리아입니다. 그렇다면 향유를 부은 여인은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가족 중에 오빠 나사로는 가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던 그가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그래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본문은 문둥이 시몬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몬은 아마 문둥이였다가 주님의 은혜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몬은 가난한 나사로의 집보다 좀 여유가 있었기에 자기 집에서 잔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석상에서 갑자기 마리아가 옥합을 들고 나오더니 그 옥합을 깨고 그 속에 있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향유는 매우 값진, 순전한 나드였습니다. 나드는 인도 지방이나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향나무의 뿌리에서 추출되는 매우 비싼 향유입니다. 이 옥합은 여인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이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당시 옥합은 여인들의 결혼 지참금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인도에서 직수입한 향유를 한 방울 두 방울 사서 옥합에 담았습니다. 이 여인이 모은 향유 속에는 여인의 꿈과 사랑과 진심과 눈물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이 귀한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을 이렇게까지 하게 했을까요? 예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은 은혜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9절을 보면 이 여인은 죄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옥합을 깨어 드린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4,5절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분을 내며 말했습니다.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말한 자가 가룟 유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을 보고 향유를 허비했다, 쓸 데 없는 일에 사용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향유 방울들이 돈으로 보였습니다. 실용적인 눈으로 보면 이 사람들의 생각이 옳습니다. 이 돈으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예수님의 몸에 붓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여인의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인의 순수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은 물질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끔찍이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관심은 돈에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라고 돈의 소중함을 몰랐겠습니까? 이 세상에 돈이 귀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러나 여인은 돈보다 예수님이 더 귀했습니다. 이 여인은 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사랑의 법칙 중 하나는 사랑은 주어도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돈을 써본 경험이 다 있습니까? 여러분이 결혼하기 전에 데이트할 때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이것은 돈을 허비하는 거야, 이것은 시간 낭비야, 이것은 청춘을 날려 보내는 거야 하며 아까워하였습니까? 아마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했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에는 낭비의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낭비합니다. 생각을 낭비합니다. 물질을 낭비합니다. 아니,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낭비합니다. 낭비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마리아의 심정이 이러합니다. 누가 무엇이라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낭비라고 해도,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은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은 계산이 필요 없습니다. 내 영혼을 살리신 주님, 내 오라비의 생명을 되돌려 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옥합, 아니 더 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깨어서 드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헌신의 자리로 가게 합니다. 사랑은 실천의 자리, 헌신의 행동의 자리로 옮기도록 합니다. 사랑은 봉사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녀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교회사가인 라투렛은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은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가도 아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심지어 목회자도 아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의 제단에 사랑을 바친 수없는 많은 성도들이 바로 교회의 주인들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리아와 같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켜온 주역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께 사랑을 쏟아 부은 여인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저는 개척 초기에 김리브가 선교사의 주님께 향한 사랑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간호사였습니다. 간호사는 3교대입니다. 오후 3시, 오후 11시, 오전 7시입니다. 병원의 밤 근무는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집으로 퇴근하여 쉬지 않고 곧장 교회로 옵니다. 교회에 오면 오전 9시 정도 됩니다. 밤에 한 잠도 자지 않았으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인하대로 가서 전도합니다. 그리고 일대일 성경 공부로 그들을 돕습니다. 오전 근무 중일 경우에는 교회에 오면 오후 5시입니다. 그는 곧 바로 학교로 가서 양들을 만나고 일대일로 돕다가 곧바로 밤 근무하러 병원으로 갑니다. 그녀의 주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은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개척기에 교회 살림을 다 꾸려나갔습니다. 그 당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은 올드미스 2 명뿐이었습니다. 그녀는 10의 5조를 드렸습니다. 그녀의 주님께로 향한 사랑은 개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은 마리아의 영성을 지닌 여러분들입니다. 오민정 자매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무실을 지킵니다. 그가 CMI 간사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녀는 국제 칼라 라이센스를 가진 커리어 우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국 CMI 전체 사역을 섬깁니다. 그리고 교회의 궂은일을 모두 다 합니다. 하나님은 오민정 자매님의 헌신을 길이 기억하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그녀는 전부를 드렸습니다(all).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방법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옥합을 열어 향유 몇 방울을 주님의 머리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헌신의 방법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중요한 손님이 내방할 시 향유가 준비된 집에서는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몇 방울씩 떨어뜨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둘째는 옥합을 깨지 않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최고의 헌신으로 평가 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옥합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정도의 헌신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취한 방법은 옥합을 깨뜨려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예수님께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녀는 최소한의 헌신이나, 최고의 헌신이 아닌, 전부의 헌신을 드렸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런 마음의 헌신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었다.” 마리아가 드린 향유는 300데나리온으로 일 년의 연봉이었습니다. 그녀는 “힘을 다하여” 주님께 드렸습니다. 밴스 해브너 목사님은 “전적인 헌신”에 대한 설교에서 한 지적으로 보이는 여인이 집회 후 “목사님, 왜 가능하지도 않은 전적인 헌신을 설교하시나요? 그냥 80, 90%만 헌신하라고 설교하시는 것이 현실적인 도전이 아닐까요?”하더랍니다. 이때 목사님은 이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부인,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당신에게 80,90%만 헌신하고 나머지 10%는 다른 여인에게 헌신해도 만족하겠습니까?” 목사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적인 헌신이 아닌 헌신은 헌신이 아닙니다.”

헌신은 전부를 뜻합니다. 80%는 아내에게 20%는 이웃집 아줌마에게 마음을 준다면 되겠습니까? 마리아의 옥합을 깬 것은 마음을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헌신은 90%가 아니라 100%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다른 것은 다 드리는 것 같은데 물질을 드리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 드리는 것 같은데 자기 꿈을 드리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 드리는데 결혼에 대한 꿈을 못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다 드리는 데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은 예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깨어 예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적당히, 형식적으로, 입술로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찬양을 하더라도 마음으로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품을 다해야 합니다. 성품은 soul입니다. 그리고 힘은 strength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과 연락이 됩니다. heart to heart. 우리가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가 있습니다. soul to soul. 우리가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힘찬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strength to strength.

여인은 향유를 깨어 드리기까지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성품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힘을 다하여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몸을 던져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이와 같이 섬기십니까? 그렇다면 아멘 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은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되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힘찬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를 보면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눈물을 흘리며 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이 옥합이나 향유는 주님 이외의 다른 대상을 향해서는 결코 다시 사용되지 않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셋째, 그녀는 기회를 붙잡았습니다(chance).

성경은 마리아의 헌신을 전하며 그녀의 헌신의 때를 주목합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이 사건 직후에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한 음모가 시작합니다. 때는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서두에 말씀을 드렸던 것과 같이 예수님을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고 돌아가시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만일 이런 상황에서 돌아가시면 예수님 장례도 치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집으로 달려가 자기의 미래를 위해 예비한 소중한 옥합을 가지고 와 이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주님께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싶었습니다. 그녀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8절에 보면 “저가 내 장사를 미리 준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하며 그것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게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결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구제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제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 1회적인 사건입니다. 기회를 잃어버리면 다시 섬길 수 없습니다. 여인은 이 기회를 포착하여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절을 보면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9장 4절 을 보면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찬송가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찬송가 370장을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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