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50 강(15:16-38)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제 9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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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골고다는 우리말로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 동산의 이름이 왜 해골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동산의 모양이 해골과 흡사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예부터 그곳이 사형 집행 장소이기 때문에 죽은 죄수들의 해골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지명의 유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수많은 지역 중에 해골이란 동산에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비잔틴시대의 성화 중에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를 해골 위에 그린 것이 있습니다. 그 성화를 그린 작가는 골고다를 단순지명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해골로 이해한 것입니다. 해골 위의 십자가, 인간 해골 정수리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꽂혀 있습니다. 해골이란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앙상한 뼈를 말합니다. 해골에는 살아날 희망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이를 볼 때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는 언젠가는 인간 모두가 해골이 된다는 뜻입니다. 아마 100년 이후, 아니 몇 년, 아니 오늘 당장에 해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미래의 해골들입니다. 사람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얼굴에 화장을 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은 군인이 전투에 앞서 전투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좀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각종 비싼 화장품을 바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긴 안목으로 보면 미래의 자기 해골을 치장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해골과 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습니까? 지금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걸어 다니는 해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해골에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십자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예수님의 피가 그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적십니다. 그러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해골 정수리로부터 시작하여 발끝까지 흘러 적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고난 받으신 예수님(16-19)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빌라도의 지시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채찍의 끝에는 납덩이나 뼛조각이 붙어 있어서 한 번 맞을 때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로마법에 로마인에게는 채찍질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이기에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맨몸에다 채찍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120대의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채찍이 예수님의 몸을 한 번 휘감을 때마다 예수님의 등에는 골이 패이고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붉은 피가 흘렀습니다. 신음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채찍이 날아 왔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16절을 보며 군병들은 채찍질을 다한 후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총독 관저)의 뜰 안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옷은 사람의 지위와 품격을 나타냅니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가 나를 대변해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옷에다가 자존심을 겁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왕으로 고소당했습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왕의 상징인 붉은색의 옷을 입히며 조롱했습니다. 거기다가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면류관은 황금 면류관이 아니라 가시면류관이었습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를 뚫었습니다. 고개 숙인 예수님의 얼굴에는 한 줄기 두 줄기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들은 이런 예수님을 앞에 놓고 꿇어 엎드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머리를 톡톡 치면서 침을 뱉었습니다.

로마는 힘으로 전 세계를 평정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 처형이 곧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너무나 힘없고 나약한 모습을 보인 예수님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는가 조롱하고 침 뱉고 멸시한 것입니다. 시편 22편 6절은 조롱받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가 되어야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교회와 선교사들을 후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힘으로 선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뭣이 되어야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있어야 선교하고, 뭣이 되어야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치 군대의 힘으로 전 세계를 제패한 로마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조롱과 침 뱉음과 멸시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으로, 교만이 아니라 겸손으로, 힘이 아니라 순종으로 진정한 만왕의 왕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군병들처럼 힘으로 예수님을 못을 박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연약함과 겸손, 순종함으로 생명을 구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20-32)

십자가형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잔인한 형벌입니다.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놓고 더위에, 들짐승과 까마귀 떼에 살 한 점까지 다 뜯기도록 합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형벌이 담겨져 있습니다. 벌거벗기고 조롱하고 침 뱉고 때립니다. 아무리 무자비한 살인마조차도 떠날 때에는 수의를 입히고, 땅 한 평이라도 그의 몫으로 내 줍니다. 그것도 안 되면 화장해서 강이나 흑 위에 뿌리어 마지막 가는 길에 예의를 갖춰줍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은 발가벗깁니다. 땅도 하늘도 그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허공에서 세상을 추하게 떠나갑니다. 세상 말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두고두고 한이 되고 수치가 됩니다. 그래서 로마의 반역자나, 죄질이 나쁜 흉악범이 아니면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희롱을 다 받은 후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20). 사형수들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70kg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몇 발짝 가시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군병들이 발길질하고 채찍질했습니다. 예수님은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가시다가 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가시다가 또 쓰러지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은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군병들은 옆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21).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는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십자가를 짐으로 온 가족이 구원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후에 그 아내와 아들이 로마 교회의 든든한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 일이 그와 가정과 자녀에 엄청난 영적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억지로 진 십자가일지라도 십자가는 생명을 살리고 영광을 얻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십자가를 지기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당시에는 고난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에 이르셨습니다. 군병들은 마취제인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받고 속죄의 피를 흘리고자 하심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 굵은 대못을 ‘쾅! 쾅! 쾅!’ 박았습니다. 그리고 해골에 십자가를 꽂았습니다. 십자가에 세 개의 대 못에 박힌 예수님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피가 십자가를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상했습니다. 그리고 군병들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무자비하게 창으로 찔렀습니다(요19:34). 피가 십자가를 타고 흘러 내려와 골고다 언덕, 해골 정수리를 시작하여 전 해골을 적셨습니다.

이 피는 구원의 피 입니다. 이 피는 구원의 피 입니다. 이 피는 생명의 피 입니다. 이 피는 주님의 은총의 피 입니다. 이 피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피 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양의 피를 보시고 구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파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로마서 5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 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우리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적실 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서 사함 받고,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링의 영혼과 육신과 마음을 적실 때에 영원한 심판에서 제외됩니다.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피가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적시기를 기도합니다.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아멘.

그들은 죄 패에 유대의 왕이라고 써서 붙였습니다(26). 그리고 좌우에 강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27).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모욕은 계속되었습니다(29-32). 지나가던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였습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를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도 보고 믿게 할지어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린 강도조차도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마지막 유혹이었습니다. 사단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 역사를 방해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희생 시킵니다. 좀 나은 사람은 나도 살고 너도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죽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어리석은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이 영광도 없습니다. 고생과 고난을 통해 부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리요 생명의 원리입니다. 사단은 지금 우리를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힘 있게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버림받으신 예수님(33-36)

제 육시 곧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33).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날이 밝고 해가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캄캄한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위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기절하시고, 다시 그 고통으로 인해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무서운 저주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침 뱉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향해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여기서 볼 때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보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이었습니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버림받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일생 버림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에게 버린바 되어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빌라도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 고통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절규하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야 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두 가지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죄의 심각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가 가져올 결과를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쉽게 짓습니다. 심지어 죄를 즐깁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사람들이 이 참혹한 형벌을 보고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경계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섭고, 죄로 인한 그 결과와 형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내면에 상처가 생깁니다. 죄의식과 수치심,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옵니다. 이처럼 죄는 마음의 평화를 앗아갑니다. 그리고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삵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롬6:23). 사람이 한번 죽은 것은 정한 것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따릅니다(히9:27). 죽은 후에는 제 2의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계21:8). 이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는 달콤하지만 그 뒤에는 무서운 형벌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장미꽃 뒤에는 가시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내 대신 채찍에 맞게 하시고, 조롱과 멸시와 수치를 당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버림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임할 저주와 진노를 예수님께 전가시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위해 예수님이 저주와 심판을 받게 하심으로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또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4,25).”

예수님께서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나는 열등감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나는 패배감의 상처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나는 미움과 증오심의 상처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나의 부끄러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부끄러운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내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피가 나를 적실 때 용서받고 아름다운 복된 인생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건강하고 희망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넷째, 운명하신 예수님(37,38)

예수님은 마침내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습니다(37). 누가복음을 보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했습니다. 이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커튼으로서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성전이 되시고,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이 되셨습니다(히10:19,20).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켜본 로마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9)”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요, 메시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임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를 타고 해골을 적셨습니다. 이 피를 믿는 자마다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의 골짜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뼈들이 살아날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던 마른 뼈들이 여기저기에서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예수님의 피가 여러분의 정수리를 적실 때 안일의 자리, 탐욕의 자리, 이기심의 자리, 불신의 자리, 절망의 자리, 원망과 불평의 자리, 부정적인 자리, 인터넷에 중독되었던 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거목들이 됩니다. 예수님의 피가 여러분의 정수리를 적실 때 세상 정욕에 무릎 꿇지 않는 군대, 어떤 악조건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용맹스러운 군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믿음의 군대,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하는 충성스런 군대, 고난을 사랑하는 강한 용사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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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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