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34 강(말씀, 13:24-42, 요절 13:26)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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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목사님이 꿈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 심판대에 섰는데 하나님이 심문을 하십니다. “너는 일생동안 항상 진실하게 살았느냐?” 아닙니다.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깨끗하게 살았느냐?”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깨끗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정직하게 살았느냐?” “저는 정직하게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이제 천국 가기는 틀렸구나,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며 낙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즈음 광채가 홀연히 비추더니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진실하지도 못하고 깨끗하지도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은 전부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믿었습니다. 그는 내가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내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쳤습니다. 제가 이를 확증합니다.”

그 때에 하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입성하는 순간 깜짝 놀라 일어나니 꿈이었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모두는 실패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아시고 구원의 말씀, 메시아를 보내시고자 오랫동안 준비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새롭게 영접하여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무지로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이스라엘(24-38)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고, 신약 성경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언만 있고 성취가 없다면 그 예언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예언한다는 사람들이 예언을 하는데 그 예언이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예언을 받으려고 따라다니지 마세요. 다시 말하지만 예언은 성취가 있어야 하고, 그 예언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나타나야만 예언의 가치가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 속에서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출애굽 사건, 어린양의 피, 반석에서 물이 솟는 사건 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과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본체가 있습니다. 본체가 없는 그림자는 존재할 수 없고, 본체가 없는 그림자는 의미가 없고, 그것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본체가 나타나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이것은 아파트 모델 하우스는 아파트가 지어지는 순간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24, 25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것은 죄악 된 삶을 전면적으로 돌이키는 회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혹시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시점에서는 그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대중적인 기대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유대 군중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신은 자기 뒤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종에 불과하다고 고백했습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청중들에게 믿음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형제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비시다아 안디옥에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그리고 유대교로 입교할 예정인 이방인들이 함께 참석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을 안디옥 회중들에게 보내셨다고 증거합니다.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여기에서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다.” 그리고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입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 육체를 입기 전의 예수님이 바로 로고스입니다.

헬라 철학에서 로고스는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존재, 이성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피조가 아닌 창조주 로고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로고스입니다. 이 로고스가 히브리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로고스라고 한 것은 헬라 사람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헬라인들은 로고스라고 하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근본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보내셔서 오셨고, 오시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27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함으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바울은 유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고 슬픈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예언한 존귀하신 예수님, 구원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 로고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는데 저들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큰 사건이 예루살렘에 나타났습니다.

왜 그들이 이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습니까? “알지 못함으로” 그 이유는 알지 못해서입니다. 그들이 무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이니다(눅23:34).” 사람이 알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차후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면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공부를 하지 않아 게임에 몰두하다가 미사일을 맞고(F), 푸들푸들(FD)하고, 시들시들 (CD)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은 것을 언제 실감하게 되느냐면 늙어서 돋보기안경을 쓸 때입니다. 다시 말해 미네르바 부엉이가 석양에 나를 때입니다.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a).”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것은 지식이 없어서입니다. 그들이 매주 안식일마다 선지자들의 말을 읽고 암송했지만 그 의미를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외우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았더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무서운 사건 속에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빌라도의 공권력을 빌어 예수를 죽였습니다(28). 이로서 신명기 21장 23절이 성취되었습니다. 죽어서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 받은 자의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29-37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합니다. 다윗은 죽어 썩어 무덤에 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영감을 받아서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율법으로 죽고 은혜로 삽니다. 죄로 죽고 죄 사함을 받아 삽니다. 죄로 죽고 은혜로 삽니다. 십자가로 죽고 부활로 삽니다. 부활은 없다면 사죄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구원도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모두 무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삽니다. 죽으면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값싼 자존심과 자기 의를 죽여 부활의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날로 새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39-41)

바울은 39절에서 중요한 결론을 내립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 얻는 것이라.” 이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요, 성경의 주제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법과 다른 하나는 제사법입니다. 도덕법의 죄 값은 사망입니다. 이 법은 우리를 살리는 법이 아니라 죽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법은 주셔서 죄를 짓는 자마다 제사를 지내면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19,20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서 ‘율법의 행위’란 구원을 얻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포함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하는 것, 도덕주의자들이 양심대로 살아 의에 이르고자 하는 것, 그리고 선행이나 업적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에 해당됩니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의에 이를 수 없어 깊은 절망감에 빠져듭니다.

성철스님의 고백이 그렇고, 바울의 고백이 또한 그러합니다. 성철스님은 최후의 설법에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나는 한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려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수양을 했지만 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탄식은 어떠합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는 모두가 자기 노력이나 행위로 의롭게 되고자 애쓴 사람들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행위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일생동안 캄캄한 동굴 속에서 살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과 24절을 보겠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의롭다함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의인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는다는 뜻입니다. 내 의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싸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입니다. ‘은혜’란 기쁨, 기쁨을 일으키는 것, 기쁨을 준다는 뜻입니다. 즉 은혜란 복음을 요약한 단어입니다. 은혜는 신약성경에 155번 나오는데, 그 중에 100번 이상을 바울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값없다’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죄가 너무 추하고 더러워 어느 정도 씻은 후에 나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죄를 씻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나의 의’가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예수님께서 주홍같이 붉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신 사실을 마음으로 영접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 눈처럼 양털처럼 깨끗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3장 42절에 나오는 강도는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는 염치없이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그러자 예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그를 영접하시고, 그 즉시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그런데 이 은혜는 한번만 주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함을 얻다’의 시제는 현재분사(being justified)로, 언제나, 항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항상, 계속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언제나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죄에 빠집니다. 때로는 유혹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의롭게 살고자 결심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절망합니다. 불의에 빠집니다. 불신과 회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반복해서 죄를 지을지라도 보혈의 은혜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언제나 의롭다 해주십니다.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었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 진실하게 회개하면 하나님은 미쁘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요한1서1:9).

40절은 하나님의 최후 초청을 거절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말씀이 전해지면 두 종류가 나타납니다. 이를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41절을 보겠습니다. 복음을 배척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기습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 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결국 그들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아 AD 72년에 예루살렘성이 초토화되었고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방황해야 했습니다.

셋째, 이방의 빛(42-52)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와 구약의 말씀을 기초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대 철학자요, 사상가이지만 순수하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43).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말씀을 듣고자 모일 만큼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44). 그들은 말씀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그들이 몰려 온 동기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 시기심이 생겨 바울의 말을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이들의 비방에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47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은 이사야 49장 6절의 “이방의 빛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방인들에게 선교의 뜻을 전합니다. 이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말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의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명령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은 다 믿었습니다(48).

이런 이방인들의 개종으로 인해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로 퍼졌습니다(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핍박을 통해 복음이 이방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고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핍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게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과 그 시내 유력한 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그 지역에서 쫓아버렸습니다(50). 그러자 두 사도는 그들을 향해 발의 티끌을 털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51). 남은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을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얽어매던 죄와 죄의식의 사슬이 풀려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었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 진실하게 회개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힘써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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