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35강 이고니온선교

조회 수 2241 추천 수 0 2012.07.12 07:41:12
사도행전 제 35 강(말씀, 14:1-7, 요절, 14:3)

이고니온 선교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친히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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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도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성공적인 선교 사역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공동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이 그곳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그 도시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쫓겨서 간곳이 이고니온입니다. 이고니온은 오늘날 터키의 콘야라는 곳인데, 터키에서 5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이고니온은 고원이지만 넓은 평원을 이루는 비옥한 곡창지대입니다.

두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을 때 의기소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함을 받아들였습니다(14:22). 우리는 오늘 두 사도의 이고니온 선교를 통해 어떤 상황을 만나던지 주님의 힘을 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주를 힘입어(1-3a)

1절을 보면 두 사도는 이고니온에 도착하여 이전대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전과 같이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반면에 2절을 보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형제들을 대적하여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믿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만 믿지 않은 것이라 다른 사람들까지 믿지 못하도록 한 것은 내가 믿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심리 중에 하나가 자기 의견에 동조해주기를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두 사도는 같은 동족이 복음역사를 방해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두 사도는 복음 역사를 방해하는 그들과 싸우다가 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복음 전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번 핍박을 당하면서도 이전과 똑같이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두 사도는 핍박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핍박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사도는 핍박을 받지만 핍박에 나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쫓겨나는 일이 있어도 전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친히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두 사도는 핍박하는 이고니온에서 오래 머물면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용기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들의 용기는 그들이 주를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주를 힘입어’는 ‘주님 안에(in the Lord)’라는 뜻입니다. ‘담대히 말하다(speak boldly)’는 자유롭게 말하다, 드러내어 말하다(speak freely)는 뜻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주 안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주님 안에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만 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영적 자유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자유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두 사도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두 사도가 핍박하는 사람들을 보거나 의식했다면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핍박하는 무리들을 보았다면 그들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들이 우리를 핍박하지?’ ‘자기들만 믿지 않으면 되지, 왜 다른 사람들까지 믿지 못하게 하지?’ 그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그들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주님 안에 있었습니다. 두 사도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 편에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눈을 고정시켜라. 그리고 골로새서 3장 1절에 땅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야고보서 1장17절에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모두 위에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과 신령한 은사가 임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위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절망 중에 위를 바라보았을 때에 하늘의 수많은 별들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19:4).” 예수님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축사하셨습니다(요17:1,마14:19).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열린 하늘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만일 스데반이 땅을 보았다면 원수들이 이를 갈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을 것입니다. 이를 가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에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공포심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을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마음에 평안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주위를 보지 않고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그는 영광스러운 첫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땅을 바라보면 죄악과 죽음과 공포와 두려움의 소리만 들립니다. 우리가 내 주위를 보면 걱정과 염려하는 마음이 듭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스럽습니다. 가을 남자가 되고 가을 여자가 되어 슬픈 연가를 부르며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 영광을 보면 소망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지난 주 자칭 행복전도사라고 일컫는 최윤희씨가 자살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며 어떤 절망 중에도 자살하지 말고 살자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자고 외치고 다니던 그가 ‘살자’가 아니라 ‘자살’했습니다. 왜 그녀가 자살했을까요? 그녀가 위를 보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연약한 육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긍정을 외치고 행복을 외쳤지만 긍정과 행복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행복의 요인 중에 영성,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는 심리치료법은 알았지 신앙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를 보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 찬양하겠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 그때 어떤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 내가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이 때 얼굴이 해같이 빛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고, 그리스도를 보고 나와 가정, 그리고 직장과 캠퍼스, 이웃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고. 땅을 보고, 세상을 보고, 가정을 보고, 이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보고, 나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마음에 기쁨과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하늘 영광을 보고 나를 보면 감사가 나옵니다. 유대인 속담에 “앞도 막히고 뒤도 막혔거든 위를 바라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 영광을 보고 나를 보면 살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스도를 보고 이웃을 보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보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하늘을 보고 직장과 캠퍼스를 보면 하나님의 생명과 거룩함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오뚝이가 넘어지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뚝이가 어떻게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까? 오뚝이에게는 중심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 추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두 사도가 환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중심 추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에 주님이 중심이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늘 문이 열립니다. 가정에 주님이 중심이 되면 부부가 싸우지 않게 되고 가정에 화평과 평강이 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중심으로 살면 이 땅의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진정한 용기와 소망은 돈이나 지혜가 아닙니다. 명예나 친구들의 후원과 성원이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와 소망은 하늘에서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기와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고 하늘을 바라보시기 기도합니다.

둘째,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3b)

두 사도가 주를 힘입어 말씀을 전하니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3b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친히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하나님은 두 사도가 주를 힘입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했더니 보너스로 이적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주님의 표적과 이적은 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이 주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는 두 사도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자기의 은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자기의 은혜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3절, 15장 5절에 내게 주신 은혜, 갈라디아서 2장 9절과 에베소서 3장 7절에도 ‘내게 주신 은혜’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특별한 은혜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을 보면 바울의 간증이 나옵니다. 바울은 본래 과거가 좋지 않습니다. 그의 손에는 거룩한 성도의 순교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고 교회를 잔멸하고자 철저한 수색작전을 폈던 인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만은 부족하여 먼 다메섹까지 가서 성도들을 잡아오고자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가던 그런 위인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전서 1장 13절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진노 대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과 사랑까지 넘치도록 부어 주셨습니다. 1장 13b,14절을 보겠습니다.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은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빚진 마음이 마음 깊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자기 같은 죄인에게 임한 풍성한 은혜를 생각할 때 감격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을 보겠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가 어떻게 꺼질 줄 모르는 주님의 은혜의 감격과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죄인 중의 괴수인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격, 주님의 첫 사랑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은혜가 다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게 임한 주님의 은혜가 있을 때만이 남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은혜 말고,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까? 특별한 은혜를 부르심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임한 특별한 은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대학 선교, 지역 사회 변화를 위한 지역선교, 열방을 향한 세계선교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의 은혜가 가슴 벅차오를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 하나만이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인 것처럼 모두를 사랑하신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것만 같다, 되는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생각되어집니까?” 이런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가득 차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이 주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를 생각할 때 어떤 핍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핍박과 환난 중에도 요동치 않았습니다. 그는 악랄한 선동에도 굴하지 않고 은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은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복음에 대한 감격과 열정을 뜨겁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찬송가 405장 부르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셋째, 도망가며 복음을 전하는 두 사도(4-7)

두 사도가 주를 힘입어 은혜의 복음을 전하자 어떤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4절을 보겠습니다.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두 사도를 좇는 자와 유대인을 좇는 자로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바울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말씀을 전했는데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끝내 회개치 않고 마음이 완악해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이 예배 시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고니온에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지만 일부는 믿고 일부는 안 믿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항상 두 세력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좇는 빛의 세력이 있는 반면에 복음을 미워하여 악감을 가진 어두움의 세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대적하는 어두움의 세력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말씀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런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을 더욱 더 의지하고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도는 도망을 갔습니다. 6,7절을 보겠습니다.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그들은 도망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자 어디로 왔습니까? 이고니온으로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 핍박을 당하자 루스드라와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고, 이고니온 교회가 설립되고, 루스드라 교회가 설립되고, 더베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후에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시 이고니온 교회를 심방하였습니다.

주님, 두 사도의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복음의 열정을 배우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나를 보게 하소서. 주님의 눈으로 나를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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