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34강영생을 얻는 길

조회 수 2335 추천 수 0 2012.07.12 07:34:41
마가복음 제 34 강 (10:17-31, 요절 10:21)

영생을 얻는 길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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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61살, 회갑입니다. 제가 61년을 돌이켜 보니 정말 하늘의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캐나다의 이요셉 선교사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더 그렇다는 것을 느끼었습니다. 이 요셉 선교사님의 메일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다시 한 번 회갑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까지 신실하게 건강 지켜 주시고, 몸 된 교회와 세계 선교 섬기게 하시고, 아름답고 믿음 있는 두 자녀 축복해 주시고, 박사학위 주시고, 상아탑에서 교수목사님으로 섬기게 하시고, 저희 부부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의 스승님이요 목자 되게 하시고, 누르도록 넘치도록 헤아릴 수 없는 정말 축복을 많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지옥문 위에 있습니다. 로댕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지옥문 위에 있다. 당신은 그 문이 열리는 순간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 본문에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입니다(마19:20). 그는 높은 관직에 있습니다(눅18:18). 그는 부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범적인 종교인입니다(19,20). 그는 모든 것이 채워진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가 무엇이 부족해서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오늘날 현대인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위장술입니다. 모두가 가면을 쓰는데 익숙해 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어요. 그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설령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자신을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면을 벗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가면을 벗고 주님께로 나와 영생으로 채워서 삶의 만족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청년의 고민(17-20)

17절을 보겠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달려와서 예수님의 무릎 아래 꿇어앉아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청년에게 심각한 인생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영생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절실한 인생문제를 들고 주님께로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심각한 문제를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등지고 산이나 도심 속의 담 안으로 들어가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의 가상의 세계에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인생은 다 그런 거야!’ 하며 체념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극단적인 사람은 한강다리에서 몸을 던집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올 만큼 고상한 인품이 있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시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보다 좀 훌륭한 스승, 자신의 역할 모델 정도로 보았습니다. 사회심리학자 반두라는 현대인들은 누군가를 모델로 삼아 그 모델을 닮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내가 노력을 하면 모델과 같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이 이론의 주체는 나,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많은 사상과 이즘의 부딪침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상과 이즘들을 보면 크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헬레니즘은 인본주의요, 헤브라이즘은 신본주의입니다. 이 두 사상은 인간의 구원문제에 부딪칠 때에 극과 극으로 치닫게 됩니다. 인본주의는 내가 주어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의로워지는가, 내가 어떻게 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가?” 이 인본주의 사고 기초 위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구원의 주체가 ‘내’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고,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신본주의는 “하나님이 어떻게 내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는가?”입니다. 그러니까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청년은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여 관원이 되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영생도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영생의 주체는 나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8).” 예수님은 도덕 선생 정도가 아닙니다. 모델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점 없고, 흠 없으신 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만민의 구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열거하시고, 이를 지켰는가를 물으셨을까요? 10계명을 크게 요약하면 첫째 계명에서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요, 다섯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는 수평적인 인간과의 관계로 인간 상호간의 자세입니다. 왜 예수님은 인간 상호간의 계명을 다 지켰는가를 물으셨을까요?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히 여기고, 이것을 지키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면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계명이요? 저는 어려서부터 이런 계명은 다 지켰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들은 6살 때부터 계명을 암송하며 지킵니다. 그는 계명을 따라 남을 해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자 보기를 돌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많은 업자들로부터 뇌물의 유혹을 이기고 주는 봉급으로 만족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는 인간 기초가 있고, 내용이 있고, 소망이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관하여 깊이 생각할 만큼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얻었지만 내면에 기쁨과 행복과 평강과 쉼이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아니하여 공허했습니다. 그가 소유한 것들이 그에게 영생과 평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영생이 없는 삶은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채워지지 않은 절대 빈 공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이 공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 즉 공백이 있다. 이 공간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청년은 노력으로 부와 명예, 그리고 도덕적 욕망의 공간을 채웠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절대공간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절대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삶의 만족이 없습니다. 이 절대 빈 공간을 채울 때 행복하고 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청년의 한 가지 부족한 것(21)

예수님은 그의 문제가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젊은이는 외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흠이 없으며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 한 가지 부족함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Go, sell everything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온전히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이란 anything이 아니라 everything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영생을 얻기 위해서도 something이 아니라 everything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팔아야 합니다. 왜 다 팔아야 합니까? 영생은 싸구려가 아닌 고귀하고 값비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하고 값진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한 예가 있습니다. 항해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만났습니다. 배가 점점 기울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구명보트로 갈아타야 합니다. 구명선 까지는 가는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빈 몸이라야 겨우 그 줄을 타고 갈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모든 것을 버리고 구명보트로 가는 줄을 타고 갔습니다. 그 중에 많은 금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이 너무 아까워 망망대해에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금을 허리에 차고 마지막으로 그 구명줄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중간쯤 되어 줄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끊어집니다. 그는 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명을 잃고 맙니다.

생명 앞에 금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생 앞에 돈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생명 앞에 명예, 권세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생이 귀하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가 귀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팔아 영생을 얻고, 물질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좇지 않는 헌신은 자선사업에 불과합니다. 자선사업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가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상대적입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철학은 ‘손해도 보지 말고, 손해도 끼치지 말자’ 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근본정신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의 정신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나님보다 세상 보화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 때 그는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이란 eternal life로 영원한 영적 생명, 다른 말로 말하면 구원입니다. 영생은 세상의 모든 것을 팔아 소유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시간과 청춘과 젊음과 정열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영생은 선한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요(엡2:8), 거듭남과 성령으로 얻는 것입니다(딛3:5). 영생은 영원합니다. 반면 세상의 보화는 풀의 꽃과 같아서 얼마 못가 시들어 버립니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없습니다. 한 번 밖에 없는 값진 인생을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각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99%도 아닌 1%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 나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 훌륭한데 물질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물질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이 어두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헌신적이며 정욕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격도 훌륭하고 매너도 훌륭한데 허영심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실치 못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과시하고자 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공을 버리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에 대한 이상과 꿈을 버리지 못하는 1%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것, 어떤 사람은 인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것, 어떤 사람은 인내하지 못하는 것, 어떤 사람은 운명적인 생각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한 마음을 팔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팔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황금 시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작은 부속 하나가 고장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을 회개하고, 주님께 드릴 때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보화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늘 보화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17:3).

셋째, 구원과 하나님의 능력(22-31)

그는 마땅히 세상의 보화보다 예수님을 더 귀히 여겨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는 자신은 결코 천한 돈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물질을 사랑하는 본성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영생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물질을 팔아 살만큼 절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생을 단지 지금까지 가진 것 위에 하나 정도 더 얻는, 하나의 license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생을 얻고자 했던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영원히 누리고 싶었던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보다도 그는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자신을 드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여러분, 산 사람이 입는 옷과 죽은 사람이 입는 囚衣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에 호주머니가 몇 개 있는가를 세어 보십시오. 적어도 4개 이상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囚衣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보화를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은 원숭이와 같이 죽는 줄도 모르고 놓지 않습니다.

어제 병원 예배를 드리고 나서 이지동 원장이 자기를 곁에서 도와주며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주던 의사 선배가 52세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큰 병원을 운영하며 서초에 몇 백 평의 빌딩이 있고 정말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본인 자신은 그가 삶의 모델이 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는 순간 모든 것을 놓고 죽더라는 것입니다. 이 원장은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보화를 팔아 하나님 보화를 살려면 어떤 것이 귀한 것인가 하는 가치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량으로 매몰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로 헤아려 수량이 많으면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거부합니다. 나는 몇 평 아파트, 내 아들은 몇 등, 나는 대 기업, 나는 1류 대 등 모든 것을 평등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등보다 가치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치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귀하다는 가치관, 예수님이 세상 보화보다 귀하다는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보화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고, 이를 얻고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자리를 버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값진 진주와 같아서 모든 재물을 팔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보화보다 예수님을 택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청년이 나가자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 이 때 제자들은 심히 놀라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현재는 좀 가난하게 살지라도 장래에는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부자는 다 틀린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왜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신자는 냉수 마시고 이를 쑤셔야 합니까? 이 말씀은 사람이 물질을 사랑하면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17,18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네가 이 시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됩니다. 그러나 돈을 벌 줄도 알아야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방법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자가 존경받기란 어렵습니다. 대체로 부자가 존경을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재산을 모으는 방법에서 정당해야 하고, 둘째 그 재산을 지킴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재산을 처분함에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주의 최부자는 300년간 부를 지켜 오면서 수많은 이웃과 함께 ‘나눔’을 실천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는 옳게 벌었고, 옳게 물질을 지켰고, 옳게 물질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독립을 독립자금을 댔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나라가 망한 것이 부족한 교육 때문임을 깨닫고 300년 묵은 그의 재산을 아낌없이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를 설립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부자도 구원하시고 가난한 자들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 있게 예수님의 제자가 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자 청년과 비교할 때에 제자들은 용기와 믿음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보화들인 부모, 형제자매, 자식, 전토, 좋은 직장 등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금세에 구원을 받고, 100배나 축복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겸하여 받으면 내세에 100% 영생이 보장된다고 하셨습니다. 핍박은 우리가 세상 보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정금보다도 더 귀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현재 부자 청년보다 낫다 생각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영적 교만은 금물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한 가지 부족한 것을 팔아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의 보화와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동시에 소유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냐? 돈이냐? 그리스도냐? 향락이냐? 그리스도냐? 욕심이냐?’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상 보화를 팔아 하늘에 보화를 쌓고 영생 얻기를 기도합니다.

♬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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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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