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42강온전한 헌신

조회 수 2418 추천 수 0 2012.07.12 07:36:43
마가복음 제 42 강 (12:35-44)

온전한 헌신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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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던 알렘비 대장이 제 1차 세계대전 말기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성 안에는 이슬람교도인 터키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임을 생각한 그는 그곳에서 피 흘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격 결정을 유보하고 영국 왕에게 피를 흘려서라도 점령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왕은 대장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의 뜻을 기다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성 안의 터키 군대로 하여금 큰 공포를 느끼게 하셨습니다. 강하고 독하기로 이름난 터키군대이었지만, 알렘비라는 이름만 듣고도 전의를 상실하여,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영국군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알렘비 대장을 선두로 모자를 벗어들고 찬송하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였습니다.

신앙인들 중 어떤 사람은 늘 승리하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항상 사탄에게 얻어맞으며 살아갑니다. 그 차이는 헌신의 자세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립니다. 그러니 언제나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헌신은 일부분이 아니라 온전한 것을 뜻합니다. 헌신은 100%를 의미합니다. 99.99%도 온전한 헌신은 아닙니다. 헌신은 100%입니다. 헌신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찾으십니다. 본문을 보면 헌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주님께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서기관들에 대한 경계(35-40)

35-3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먼저 서기관들의 그릇된 메시아 관을 시정해 주셨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로서 백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자손에서 탄생한다는 것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만 알았지 신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윗과 같이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고 지상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민족적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시편 110편 1절에 나오는 “주”가 누구인가라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자세히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36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성경을 조금만 연구하였더라면 다윗이 말하는 내 주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였지만 성경전체를 알지 못하여 성경의 핵심을 꿰뚫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알면 어떤 성경 말씀도 다 해석이 되고 풀립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문을 공부할 때 저희 선친께서 자치통감을 암송하면 물리가 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리’가 나면 4서3경을 다 꿰뚫어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물리’는 바로 주님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데서 출발합니다. 이단들이 늘 하는 짓은 성경을 인용하여 내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다윗은 일찍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심판주로 오실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이 고백하는 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인생들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는 세상의 구주가 되십니다.

38-40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의 악영향을 경계하도록 하셨습니다. 서기관은 문안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내용보다 껍데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풍채를 더하고 위세를 가장하기 위해서 긴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들은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과부를 도와준다는 명목 아래 재산을 탈취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경건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미사여구를 써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이중생활을 하고 거짓되었습니다.

외식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입니다. 서기관들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이 받을 심판은 더 무겁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기관의 사고방식을 버려야합니다. 서기관의 사고방식은 내용보다 형식을 붙잡는 것입니다. 본질보다 곁가지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에 치중하기 때문에 내용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였습니다. 사람이 결과에 치우치게 되면 그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거북선이 왜군을 물리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과만 보고 원인을 보지 못함에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를 왜군으로부터 건져내야겠다는 한 가지 목표, 한 가지 일념이 거북선을 만들게 되었고, 또 왜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결과가 나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창조적인 지혜가 나옵니다. 최문수 형제가 와튼 스쿨에 가야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서면 독수리 날개에 업혀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곁가지를 붙들지 말고 본질을 붙들고 목표를 붙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본질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붙들면 모든 답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골2:3).

유태인 사이에서 “학교에서 지식만 배운 놈”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알았다고 합시다. 백과사전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것을 응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못하니 머리 따로 생활이 따로 놀았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는 양떼를 돌보고 섬기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가는 길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껍데기에 관심을 갖지 말고 본질에 관심,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과부의 두 렙돈(41-44)

4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예수님은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보셨다’는 단어의 시제는 미완료시제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드리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헌금생활을 중시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물질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삶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마6:21).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그 사람의 Credit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모든 소비를 신용카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소비하는 내용의 보면 그 사람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인격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옷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옷을 사는데 돈을 쓸 것입니다. 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책을 사는데 돈을 쓸 것입니다. 먹는데 관심을 가진 사람은 먹는데 지출을 많이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과외비는 20조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나라와 하나님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 헌금을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지출의 흐름은 곧 그 사람의 삶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정말 변하기를 원한다면 돈 쓰는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나는 돈주머니가 회개치 않은 사람의 회개는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보물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헌금의 액수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물질의 흐름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특히 헌금은 지도자 검정 시스템입니다. 특히 헌금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헌금 자체는 희생입니다. 희생이 있어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헌금을 제대로 드리는 사람이 삶 전체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헌금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all in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모험하는 것이며 희생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헌금은 아까울 정도로 드리십시오. 부담이 되도록 하십시오. 분에 넘치도록 헌금을 드리는 분들은 결코 굶지 않습니다. 십일조 제대로 드리는 사람은 결코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에 아무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액수는 헌금이 아닙니다. 이는 기부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부담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희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고, 희생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서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은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넘치는 기쁨으로 연보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억지로 하지 않고 자원함으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굶어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다 채워 주셨습니다. 그들의 헌금은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가난한 가운데서 엘리야를 섬겼을 때 하나님은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앞 세대 선배들은 건축헌금을 가난한 가운데도 힘에 부치도록 드림을 통해 많은 감격과 신앙의 성장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는 헌금을 통해 희생이라는 귀중한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희생을 통해 가난과 저주를 끊어 버리게 하십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연보 궤는 나팔처럼 생겼는데, 제사 종류별로 9개, 기타 독특한 용도별로 4개, 총 13개의 다른 통이 있어 목적대로 맞는 연보 궤에 헌금을 넣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도가 드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헌금이 두 가지 있는데 그 하나는 십일조이며 다른 하나는 주일헌금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드리는 감사헌금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기독교의 3대 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기타 헌금으로서 목적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운영은 반드시 헌금을 통해서만 운영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례교인은 교회의 재정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41,4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앉아계시는 연보 궤 앞으로 부자가 걸어 나와서 돈을 넣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얼마를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의 돈을 헌금함에 집어넣었습니다. 렙돈은 그리스와 로마의 화폐 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였습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는데, 1 렙돈은 1/128 데나리온이었습니다. 하루 막일해서 받는 일당을 10,000원이라고 한다면, 1 렙돈은 1/128 즉, 800원이 채 안 되는 적은 금액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당시 연보 궤는 놋쇠로 만들어졌고, 화폐도 지폐가 아니기 때문에 헌금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를 통해 헌금액이 얼마인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과부의 헌금을 대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43,4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예수님께서 이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부자들이 거만하게 헌금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헌금을 드리는 부자들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나름대로 정성껏 하나님께 드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과부를 칭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예수님은 열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다섯을 한 것보다, 하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를 다 한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므나 비유를 보면 예수님은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이나 10 므나를 남긴 사람이나 모두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보다 동기를 보시고 원인을 보십니다. 더 많이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덜 헌신한 사람보다, 할 수 없는 사람이 진심을 다해 충성한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하나를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는 자신들이 누릴 많은 것 중에 하나를 드렸습니다. 부자와 달리 과부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녀는 자기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드러난 것만 보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조건과 능력도 함께 보십니다.
우리는 과부처럼 생활비를 전부 바치라는 말씀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식 먹여 살릴 생활비까지 다 바치고, 시험에 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앞에 어떤 풍족한 것을 남겨두고 있느냐? 묻고 계십니다. 부자는 풍족한 것들을 많아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행복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반면에 내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물질은 드리지만 시간은 못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은 드리지만 물질에는 인색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은 하겠지만 이것만은 내버려 달라고 하는 것은 부자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릴 것을 남겨 놓는 사람이 부자의 마음입니다. 시간은 물질과 같이 내가 가지고 있으면 없어집니다. 시간을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이를 셀 때 몇 살 먹었다고 하는데 시간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흘러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리면 하늘 창고에 쌓입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 지식도 그러하고 나의 재능도 그러합니다. 얼마를 드리고 얼마를 남겨 놓으면 세상에서는 인정받고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고 나면 그런 것들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에 드리게 되면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천국 잔치에 참예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시고, 목숨까지 다 내어 주셨습니다. 마음을 새로이 하고, 우리의 서원한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진실한 두 렙돈으로 주님께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물질을 주님께 드렸다면 이젠 시간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시간을 드렸다면 땀과 눈물을 드리십시오. 이제 온전한 기도의 단을 쌓으십시오. 지금 문제는 우리에게 아직도 주님께 바칠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게 내 모든 것을 주었건만, 너는 그저 네가 누리는 풍족함 가운데 하나를 나에게 주는구나.”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의 원리는 자기를 위해 축적하는데 있지 않고 주님께 드리는 데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문을 열고 닫으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쓸 것이 없어서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두 렙돈을 온전히 바치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이 저와 여러분이 복을 받는 길이며, 온전히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길이기에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은, 지식이나 재물이나 능력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질보다 양을 보고 상대적으로 평가하였지만 예수님은 양보다 질을 보시고 절대평가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친 양보다 바치는 자의 진심과 바치는 동기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참된 연보는 여인과 같이 우리의 진심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가난한 과부가 희생적으로 헌금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100% 온전한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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