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13 강(3:13-19)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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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게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 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누가 나와 같이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듯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이 가사는 가수 최성수의 ‘동행’이라는 노래 가사입니다. 동행이란 함께 길을 걷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가 스승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을 사제동행이라고 합니다. 사제동행, 동행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뽑아 날마다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동행하신 그들은 똑똑하고, 세련되고, 머리 좋고, 학벌이 좋은 엘리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학벌이 없는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 천대를 받던 세리 등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했을 때에 1세기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인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사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하 만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용어였습니다. 그런데 진즉 그는 ‘인사가 만사’가 아니라 ‘인사가 망사’가 되어 IMF를 만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쓴다고 해서 ‘중용 인사’라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코드가 맞는 사람을 쓴다고 해서 ‘코드 인사’,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강남의 부동산 부자와 고려대를 나와서 소망교회에 다니고 영남이 고향인 사람들을 내각에 앉혔다고 해서 ‘강부자’, ‘고소영’ 인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인사는 중요합니다. 인사는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인사관리 업무입니다. 인사는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래서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를 보면 누구를 장로와 집사, 그리고 권사로 세워야 할 것인가를 길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뽑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13a).

13a절을 보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예수님이 자기의 원하는 사람을 부르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나서, 내가 똑똑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조건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고, 재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는 자기 의지나 뜻이 조금도 개입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속성은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자기에다가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합니다. 자기 계획에 맞추고, 자기 생각에 맞추고, 자기 스타일에 맞추고, 자기 가치관에 맞추고, 자기 인생관과 자기 세계관에 맞추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의 필요로 하는 사람, 예수님의 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예수님을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분으로, 자기가 원하는 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라면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영어로 ‘these’로,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부모님이 될 수 있고, 자녀가 될 수 있고, 남편이나 아내가 될 수 있고, 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이나 명예, 이상, 꿈, 자기 생각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제자들 중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확언했습니다(마26:33). 그는 주님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서약까지 했습니다(요13:37b). 그런 그가 몇 시간이 못 되어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이 진리에 기초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감정에 기초한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보다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좇을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이 고이고이 간직한 자신의 꿈만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의 꿈은 지상 메시아 왕국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 영생도 좋지만 지상에 있는 동안 눈에 보이는 보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이런 인간적인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내면을 아시고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지 않은 진실 되고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순수해야 하고, 사랑은 진실해야 하고, 사랑은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차선이 아닌 최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5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 사랑은 하나님께 열린 마음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 열린 마음은 겸손합니다. 배우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둘째는 주님의 양을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15).” “내 양을 치라(16).” “내 양을 먹이라(17).”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시며 베드로에게 부탁하실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양들을 돌보고 먹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피로 사신 예수님의 양떼, 예수님이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 양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양을 돕지 않는 것은 거짓 된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어린양을 섬기고 돌보고 양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달라스 신학교에 기독교 교육학의 대가인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님이 있습니다. 하워드는 그의 책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8살 때에 함께 놀아주는 친구들이 없어서 혼자 놀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혼자 놀고 있는 하워드를 보고 한나절을 함께 놀아주며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월터였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편모슬하에서 살아가던 하워드에게 월터는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하워드의 유년 시절과 사춘기, 그리고 청년시절까지 하워드에게 월터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워드가 월터의 이력을 보니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월터는 주님을 사랑했고,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전도를 했고 양들을 섬겼습니다. 그를 통해 11명이 목사가 배출되었습니다. 특히 하워드를 통해 무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중에 유명한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있습니다. 월터를 통해 하워드가 하워드를 통해 스윈돌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와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특히 이번 평창 국제 수양회에 한명씩 꼭 초청하여 주님을 만나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나아왔습니다(13b).

그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13b). ‘나아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이 결단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예수님께 대한 감정은 날로 날로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빛도 이름도 없는 무명의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올 수 있었습니까? 이는 그들에게 향한 예수님의 비전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시는 예수님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역사의 주역이요,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History Maker로 키우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제자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믿음과 비전과 사랑을 보았을 때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비전과 믿음, 사랑은 그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습니다.

비전과 소망과 믿음은 그들을 black hole 같이 예수님께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이처럼 비전과 믿음은 사람을 위대케 합니다. 비전은 자력과 같고, 비행기의 intake와 같이 강력하게 끄는 힘이 있습니다. 비전은 어떤 역경과 어려움도 극복케 합니다. 예수님의 믿음과 비전을 보았을 때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1995년에 2005년까지 하버드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 제목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이 비전을 붙들고 12 가정이 미국 선교사로 파송 받아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한 바울을 2008년에 보스턴대로 보내심으로 이 비전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2015년까지 예일대에 한 사람을 보내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저는 한바울을 보스턴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예일대로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은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계 지성사를 바꾸시고, 세계역사를 바꾸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셨습니다(14,15).

14a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을 세우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그런데 이는 너무 작은 숫자 같습니다.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려면 120명이나 1,200명 정도는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을 세우셔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12란 숫자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소수 몇 사람을 키우고자 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역사는 많은 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창조적 소수를 통해 역사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믿음의 종들을 부르셔서 역사의 위기를 극복하고 역사를 계승하셨습니다.

미국역사를 볼 때 미국 이민 초기에는 윈슬롭을 통해 미국의 위기를 극복했으며, 디모데 드왓이트, 윗트 필드, 요나단 에드워드 등이 미국을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 역사의 공통점입니다. 토인비도 문명사를 연구하던 중에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의 문명이 외적·내적 도전에 응전하며 계속 성장하게 하는 힘은 창조적 소수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12명을 뽑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님과의 동행입니다(14b).
14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전 생애와 전 인격을 배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그들의 병든 내면이 치료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잘 배워서 예수님의 사람들, little Jesus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은혜, 섬김, 순종, 사랑, 온유, 믿음, 십자가, 가치관, 비전,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 등, total education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본받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8절에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예수님이 멈추시면 멈췄고, 예수님이 가시면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면 기도했고, 예수님이 전도하시면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삶의 표준이요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전 인격과 사역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동행했을 때에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들은 주님을 위해 순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동행은 인격과 인격이 부딪혀 배우는 산교육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여 little Jesus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심은 험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심입니다.

둘째는 복음 증거입니다(14c).
14c절을 보겠습니다.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보내사’란 사도란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십니다. 세상은 마귀의 역사가 있는 곳이요,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일에는 관심이 많으나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가르쳐 영적인 무지를 깨우쳐 주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셔서 사죄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생명의 빛, 희망의 빛이 세상에 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훈련시켜서 가정과 캠퍼스, 그리고 직장, 더 나아가 세계로 내보내십니다.

셋째는 영적 능력입니다(15).
사람을 근본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시대 문제나 물질 문제, 인간 문제가 아닙니다. 아담 이후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악령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원수는 사람이나 체제나 제도가 아닌 사단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교묘히 괴롭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고 불신과 의심과 회의를 심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합니다. 정욕, 욕심,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우리를 미치게 합니다. 각종 질병과 악령에 시달리게 합니다. 사단은 나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권세를 덧입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마다 성령을 주심으로 영적인 권세를 주십니다. 마귀에 눌린 자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회복시켜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아멘.

넷째, 예수님은 12 제자들에게 큰 희망을 두셨습니다(16-19).

16-1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사도를 세우셔서 사도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헌신과 사랑과 이해가 요구됩니다. 옆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격이 다르고, 출신 성분이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가 될 때 엄청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12공동체를 이루어 예수님의 가르침과 훈련을 받았을 때 1세기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역사의 주역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12공동체의 일원 중에 제일 먼저 베드로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무식하고 용감했습니다. 그는 나서기를 좋아하고 뒷감당을 하지 못하면서도 큰 소리를 잘 치는 big mouth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순수한 열정과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는 장차 반석이 될 만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모래알 같지만 베드로,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우뢰의 아들’ 이란 별명을 지어 주심으로 요한은 세상 만민을 향한 요한복음과 계시록을 기록하고,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마태는 매국노 세리 출신이요, 시몬은 운동권 출신입니다. 안드레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계산적인 사람이요, 도마는 의심병에 시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대오, 야고보는 역사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요, 바돌로매는 눈물을 잘 흘리는 순정파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할 자였습니다.

12공동체를 이룬 개인 개인을 보면 학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문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당시가장 천한 어부였고, 손가락질 받은 세리였고, 로마를 전복하려던 열심당원들로 구성된 제자들입니다. 기초도 없고, 배우지 못한 어부 출신들입니다. 형식도 없고 내용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배경도 없고 가문도 변변치 않습니다. 그들은 내 놓을 만한 명함 한 장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큰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키우기만 하면 아름답고 보배로운 자들이 될 것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재 굴러다니는 광석 같지만 잘 다듬기만 하면 위대한 예술품이 될 것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삼 년 반 동안 인내와 겸손과 사랑으로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비전과 인내와 사랑으로 그들은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내면을 볼 때 천박합니다. 겸손하지도 못하고 충성심도 없습니다. 형식과 내용도 없습니다. 인간 기초가 없습니다. 쉽게 자리에 눕습니다. 전도는 그만 두고 자기 자신 하나 감당치 못합니다. 생각은 좁고 편협합니다. 불의에 잘 빠지고 자학을 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겉모습과 내면이 어떠하든지 간에 세계 지성사를 변화시킬 큰 소망과 비전을 두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빚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하여 좋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나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 나가 주님의 제자들을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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