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7강말씀과 하나님 나라(3)

조회 수 2149 추천 수 0 2012.07.12 07:25:40
마가복음 제 17 강(4:30-34)

말씀과 하나님 나라(3)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 가로되(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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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창죽동 금대봉골에 검룡소라는 작은 못이 있습니다. 둘레는 20여 미터이고 깊이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못에서 하루에 솟아나오는 물의 양이 2-3천 톤이 됩니다. 이곳이 바로 한강의 발원지입니다. 하루에 2-3톤은 그렇게 많은 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시작된 물이 시내를 이루고 작은 강을 이루고 한강이 되어 수도권의 인구 13,286,084명, 남한의 1/4의 인구의 젖줄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는 시작은 미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창대합니다.

욥기 8장 7절을 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과가 창대하려면 시작도 창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서 창업합니다. 창업식도 아주 거창하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못가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무리 미약해 보이지만 그 결과는 장엄하고 웅장합니다.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30-3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씨앗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앗입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가 하면 750여개를 모아여 겨우 1g이 될 정도로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는 마른 깨알보다 작고 가볍습니다. 그러나 이 씨가 땅에 뿌려지면 4,5m로 자라서 큰 가지를 냅니다. 그 가지의 그늘에 여러 가지 새들이 둥지를 틀고 깃듭니다. 하나님 나라는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아 보이지만 후에는 창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가 되시지만 말구유에서 초라한 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는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 제국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초라합니다. 작은 베들레헴, 갈릴리,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사역, 골고다에서 죽으신 사건 등은 인류 역사의 현장에서 보면 미미한 겨자씨와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이 온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임종 직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칼로서 전 유럽을 제패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에서 비참하게 죽은 예수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면 시작이 미미할지라도 결과는 창대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평범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도 있었고, 과격한 열심당원도 있었으며, 따지기를 좋아하는 빌립도 있었고, 의심 많은 도마도 있었고, 거기에는 배반할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2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을 ‘적은 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대한 조직이나 군대도 없었으며, 또한 유명한 학파를 형성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소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초라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몇 사람들을 통해 시작한 역사가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마지막은 창대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두란노 서원을 세내어 2년 동안 제자들에게 날마다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헬라 철학자들이 수사학과 철학 또 수학도 가르치는 강의실이었습니다. 베자 사본에는 그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장막 만드는 공장에 가서 텐트를 만들어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 처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세웠습니다(계1:11).

바울은 에베소에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후 로마 개척이라는 크고 놀라운 비전을 보았습니다. 19장 21절을 보겠습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은 이 비전을 따라 쇠고랑을 찬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습니다. 그가 로마에서 가서 거창한 장소에서 거창하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28장 30, 31절을 보면 감옥, 셋집에서 일대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2년 동안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담대히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셋집에서 일대일로 시작한 복음이 313년, 만 250년 만에 로마가 복음으로 정복되었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겨자씨와 같이 처음은 미미하지만 대로마를 무너뜨리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 등 몇 사람과 더불어 Holy Club을 만들어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이 모임은 극히 미미했습니다. 이 모임은 수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숫자는 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한 차례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미미한 모임이 터가 되어 오늘날 감리교단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1885년 부활절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제물포항에 발을 내디딤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는 같은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언더우드가 내가 먼저 내리겠다며 먼저 첫 발을 내디뎠었습니다. 바로 이 한 분의 첫 발을 내디딤으로 한국 땅에 복음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시작한 성경 공부가 100년이 지난 오늘날 850만 명의 경이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겨자씨가 아주 작지만 이러한 놀라운 생명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 있는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나고, 미미한 것 같으나 엄청난 역사를 이루는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거대한 바위를 깹니다. 딱딱한 아스팔트도 헤치고 나옵니다. 이것이 놀라운 생명이요, 신비입니다. 여기에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능력, 생명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금시계와 콩 한 주먹은 교환의 가치 측면에서 보면 금시계가 귀하고, 생명적인 차원에서 보면 콩이 더 귀합니다. 교환의 가치를 귀히 생각하는 사람은 금시계를 택할 것이고, 생명을 귀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콩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외딴 섬에서 누구의 판단이 현명합니까? 금시계를 택한 사람은 굶어 죽고, 콩을 택한 사람은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을 보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생명은 헬라어로 유한적인 생명인 βιος(비오스)와 영원한 생명인 ζωή(조헤)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명은 ζωή,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행복과 기쁨과 자유를 포함합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계21:3b,4). 이 생명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풍성한 생명이요(요10:10), 천국에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요10:28).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의 속성은 자라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따스하고 부드럽습니다. 생명은 영원하고 희망이 있습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시킵니다. 생명은 약동합니다. 생명은 역동적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반대는 죽음입니다. 죽음의 속성은 딱딱합니다. 죽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죽음은 역겨운 냄새를 풍깁니다. 죽음은 생명을 잉태시킬 수 없습니다. 죽음은 파멸시킵니다. 죽음은 차갑고 부패시킵니다.

반면에 생명의 특징은 힘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안은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때 생명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둘째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사귐을 가질 때에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요한일서 1장 1-3절을 보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친구와 사귐을 가지려면 가장 먼저 장벽을 깨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죄의 장벽을 깨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가려면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둘째는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단순히 교인이 되고, 세례를 받는다고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와 연합될 때에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과 연합될 때에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나의 삶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의 죽음과 부활로 영접할 때에 생명을 공급받게 됩니다.
저는 두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무려 10년 동안 캠프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내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문어다리처럼 흐느적거리던 형제가 독수리 같이 희망 찬 삶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한 형제는 캠프 안에서 잠만 잤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깨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등 영적인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캠프 안에서 잠만 잔 분은 10년 동안 한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지 못한 불임목자가 되었고, 예수님 안에서 깨어 있던 목자는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는 가임목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죄와 죽음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슬픔을 이기고, 무기력을 이기고, 구원에 이르게 되며, 더 나아가 재생산할 수 있어서 제자 양성할 수 있습니다.

링컨을 위대케 한 것도 말씀을 통한 생명 역사입니다. 그는 8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좋은 계모를 만나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14살 때 계모를 여의었습니다. 그는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 때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를 위대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작은 포켓 성경입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 때 나를 위대케 한 것은 계모가 선물한 포켓 성경이라며 포켓 성경을 꺼내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의 신앙 인격을 자라게 하였으며 큰 거목으로 키웠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때 사교(邪敎)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는 탕아였습니다. 그런 그가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 방탕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탕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가 ‘구원을 얻고자’, ‘바르게 살고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깊은 마음속에는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죄 문제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죄 사함의 기쁨을 얻지 못해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앞에 두려워 떨어야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두렵고 기도해도 두려웠습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에 있는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로마서 1장 17절인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고 성령 안에서 그 마음에 생명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그는 일어나 “바로 이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 말씀으로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그의 마음에 참된 자유와 기쁨을 얻었고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선교사로 갔다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올터스키에잇이라는 작은 거리를 지나가다가 조그만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몇 사람이 모여서 로마서 서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서 서론을 듣는 중에 마음이 뜨거워져 “온 세계를 위하여 오신 주님이 이제는 ‘나’를 위해 오신 주님”이라 고백하며,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 외에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민족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나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만큼 강력한 나라는 없습니다. 이것은 가장 작은 씨앗인 겨자씨가 자라서 모든 나무보다 성장한 것과 같습니다.

자란 겨자 나무에 수많은 새들이 깃들이는 것처럼, 교회에는 온 세계 백성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실 때에 이미 이러한 일들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면서 이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모든 족속이 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교회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공산주의도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낙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수많은 인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가난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또한 과학은 우리들에게 편리함을 준 대신에 환경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천국 복음은 들어가는 곳마다 영혼을 구원하고 지역을 발전시키며 그곳을 축복의 장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만일 오늘날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없어진다면 역사는 암흑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바울의 말처럼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는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인류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을 놀라운 복음의 증인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뜻에 순종하면 우리도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창대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복음의 생명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천국 복은 결국 땅 끝까지 확장될 것입니다.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을 뿌릴 때 말씀 자체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겨자씨와 같은 이 백성, 젊은 지성인들을 통해 전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와 같이 미미할지라도 말씀의 씨를 뿌려서 어두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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