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고린도후서 1:1-24

위로의 하나님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편지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잠시 고린도교회를 심방했지만 많은 상처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괴로워하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 그들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고후 2:14). 그리고 그간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자신의 심정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는 곳곳에 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과 절실한 심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를 화해의 서신이라 합니다. 이 서신은 고린도에서 3개월 유하기 직전, A.D. 55년 가을에 마게도냐에서 기록했습니다.

본문에서(고후 1:1-11) 위로란 단어가 10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를 통해 위로의 하나님, 미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위로의 하나님(고후 1:1-11)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고후 1:1). 여기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한 것은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제까지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의 내적인 상태가 어떠했는지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2:4).

그는 마음이 편치 못해 드로아에 복음을 전할 문이 활짝 열려 있었음에도 복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고후 2:12-13). 그의 내면은 눌림과 걱정과 많은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중에도 바울을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교회가 회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또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하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디도의 소식을 통해 바울을 크게 위로하셨습니다. 이 소식은 바울에게 흑암 중에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이 소식은 지난날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환난을 잊게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로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위로는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크면 클수록 위로의 잔도 더욱 크고 넘칩니다.

바울이 당하는 환난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위로를 위함이요, 위로를 받는 것도 그들의 위로를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위로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이길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아니했습니다(고후 1:7). 고린도교회에는 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분쟁, 도덕적인 타락, 소송 문제, 성만찬에 대한 문제, 은사 문제 등 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1년 반 밖에 안 된 어린 성도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위로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셔서 굳게 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신앙체험을 통해 위로의 하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심한 환난을 당해 살 소망까지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고후 1:8). 그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는 때로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고후 11:24-27).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로 인해 내면에 환난이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양들로부터의 배반과 배척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왜 바울이 그런 혹독한 환난을 당해야 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9-10)

이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권능의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함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4절을 보면 그는 자기를 신뢰하고 자랑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러 가지 환난을 통해 자기 자신이 의지하고 신뢰하던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셨고, 지금도 건져 주시고, 앞으로도 그를 건져 주실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고후 1:11-12). 그들은 기도를 통해 바울을 위로한 하나님의 위로에 간접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체험하도록 도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위로만이 진정한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로하면 단순히 마음을 기쁘게 하는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로하다[파라크론(παρακαλωυ)]’ 헬라어로 현재 분사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 분사형은 역동적이고 계속적인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동적으로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인내를 주십니다. 역동적으로 소망을 굳게 하십니다. 또 역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역동적으로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위로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위로를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갓난아기가 부모의 위로를 받아야 할 존재인 것처럼 우리가 험악한 세상에서 살다 보면 위로해 줄 사람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자식이 커도 때로 부모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합니다. 피곤한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시원한 냉수라도 한 컵 따라주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퇴근하여 더운 날씨에 아기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며 손을 잡아줄 때 큰 위로가 됩니다. 양들은 목자의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목자 또한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건 개선과 대리만족을 통해 위로를 얻고자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목나무나 돼지 대가리에서 위로를 얻고자 열심히 그런 것에다가 절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위로해 주지는 못합니다. 설령 위로하여 준다 할지라도 그 위로는 일시적입니다. 어떤 분이 아내를 의지하고 아내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자기도 아내를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남편도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보이는 것들로부터 위로를 얻고자 하면 의지하는 것들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물질로 위로를 얻고자 하면 물질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얻고자 하면 미운 물건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우리를 위로하여 주실 분은 진정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12:20-21).

갈대는 연약함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상한 갈대라 했으니 얼마나 연약하겠습니까? 상한 갈대는 약간만 건드려도 부러집니다. 그리고 상한 갈대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금방 사그라집니다. 꺼져 가는 심지는 절망의 상징입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내버려두면 끄름만 납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아무 쓸모없습니다. 인간은 독수리처럼 힘찬 면이 있지만 내면은 무기력하고 연약합니다. 유리그릇처럼 불안한 존재입니다. 만지기만 해도 깨질 것 같습니다. 미풍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의심의 연기, 불평의 연기, 원망의 연기, 미움과 시기의 연기만 모락모락 내는 쓸모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조기 명퇴시킵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상한 갈대를 치료하여 튼튼한 갈대가 되게 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에 성령의 기름, 말씀의 기름, 사랑의 기름을 불어 넣어 힘차게 타오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에게도 소망을 두십니다.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인기 없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주십니다. 예수님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호호 불어 불씨를 살리십니다.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희망을 주시고 용기를 부어 주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소망 없는 자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북돋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를 복음이 최후의 심판에서 승리할 그 날까지 계속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40:1-2)

이 말씀은 유명한 헨델의 메시야의 서곡에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에 대한 예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마음에 닿도록 외치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을 짓누릅니다. 죄는 사람의 뼈를 상하게 합니다. 죄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죄는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할지라도 죄의 사슬에 매인 사람은 행복이 없습니다. 죄수가 좋은 환경에서 지낸다 할지라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위로는 죄 사함으로부터 옵니다. 그것도 아무 대가 없이 죄를 사함 받았을 때 그 감격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죄를 사함 받았을 때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32:1-5).

이 세상에 위로가 많다 할지라도 아무 공로 없이 죄를 사함받은 이 위로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조건 없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위로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디에 가서 위로를 얻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위로를 위로하시되 넘치게 위로하시는 주님께 나아가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나는 슬픔과 원통함과 괴로움이 많았습니다(삼상 1:10). 그거 어디에 가서 위로를 얻었습니까? 남편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 전에 나아가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위로의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로의 하나님은 우리를 만져주시고 감싸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 나아가 위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2. 미쁘신 하나님(고후 1:12-24)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한 바울은 왜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이유를 말하기 전에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바울은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욕심이나 속임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꾀나 지혜나 감정을 따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느니, 육체의 지혜를 따라 행하는 사람이라고 바울을 비방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행히 편지를 읽고 부분적으로나 바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고후 1:13-14). 그래서 약속을 변경한 이유를 진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본래 바울은 고린도를 두 번 방문하고자 했습니다(고전 16:5). 그러나 약속대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아니오, 아니오하려는 속셈이면서 , 하는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바울이 전한 복음까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18-19)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바울은 신실하신 미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따라서 하면서 아니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는 ’, 진실뿐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 미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성령이 보증이 되기 때문에 진실함을 증거했습니다(고후 1:21-22). 그러면 미쁘신 하나님을 믿는 그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첫째는 그가 양들을 아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고후 1:23)

아낀다(spare)’, 이는 새가 둥지를 틀고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알을 품는 모습과 같이, 조심성 있게, 귀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기를 가진 산모들은 아기를 위해 모든 것을 조심합니다. 음식도 조심해서 먹습니다. 어떤 자매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태아를 위해 한 잔도 마시지 않습니다. 또 어떤 자매는 태아를 위해 배를 만지며 조심성 있게 걷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양을 귀히 여겨 함부로 대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믿음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4)

바울은 이들의 믿음을 주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잘 아는 그는 고린도에 가서 얼마든지 세세히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주관하지 않고 믿음을 돕는 목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 믿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양을 사랑한다면 양을 믿어 주어야 합니다. 미덥지 못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상한 갈대로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소망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변함이 없으시고 진실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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