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성탄(1) 마태복음 4:12-17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4:16)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다양한 표현으로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예수님은 빛이시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예수님은 길이시다.” “예수님은 부활이시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의 본성과 성품을 핵심적으로 가장 잘 나타낸 말씀은 예수님은 빛이시다.”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증언했고(1:9), 마태는 예수님을 큰 빛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을 큰 빛”, “참 빛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세상에는 작은 빛” “거짓 빛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찬란한 태양 빛이 떠오르면 별빛과 달빛은 그 효력이 상실됩니다. 이처럼 태양과 같은 큰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작은 빛들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짓 빛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그 정체가 다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성탄을 맞아서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어둠과 절망과 상실한 우리 민족에게 생명과 빛과 소망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1.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4:12-16)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의 음란을 책망했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듣고 죄를 돌이켜 진솔하게 회개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기보다는 오히려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이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의 석방을 위해 힘쓰셔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뜻과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앞세우셨고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심은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도 되심을 드러내고자 하심입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4:15-16)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한 후에 이스라엘의 12 지파별로 땅을 분배했습니다. 그때,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게는 갈릴리 지역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최북단으로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유대의 순수한 혈통이 혼혈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와 문화가 이방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수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관리로 등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여러모로 차별을 받아 경제적으로도 피폐되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지방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는 한 마디로 우상이 난무하여 영혼이 없는, 육신적이고 쾌락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말을 흑암에 앉은 백성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둠 컴컴한 곳에 살다 보면 그곳에 익숙해져 어두움을 잘 모르게 됩니다. 이를 심리적인 용어로 동화라고 합니다. 사람이 어떤 것에 동화되면 변화에 대해 두렵고 또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대항하게 됩니다. 따라서 흑암에 동화된 사람은 밝은 세계에 대해 두렵고 밝은 빛의 세계로 나오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사람이 빛 앞에 나오기를 싫어하는 것은 자기의 어두운 모습과 자기의 죄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고, 자기 자신을 감춥니다. 자기를 포장하고 숨깁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이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그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그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는 자기의 죄의 행위가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첫째 아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류는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싫어하고, 말씀 앞에 나오기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 “죽음 안에 있는 존재” “어두움에 속한 존재라고 합니다. 어두움에 속한 존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초조와 불안으로 고통하게 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게 됩니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자신의 밝은 자화상을 갖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위대함과 다른 사람의 위대함도 보지 못합니다. 젊음의 높은 기상과 기백을 한 번도 써 보지 못하고 자신을 자학하고 부모와 가정과 사회를 원망하는 데 자기 자신을 다 소진해버립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방세계는 사망의 땅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이는 사망의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력이 무엇입니까? 사망의 세력은 무와 허자 돌림입니다. 무의미, 무기력, 무능력, 무표정, 허무, 허탈, 허망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에 희망이 없습니다. 삶의 의욕이 없고 불안한 삶을 삽니다. 그리고 한 번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어두운 삶을 삽니다. 그리고 육신의 쾌락을 탐닉합니다. 지옥은 바로 이런 삶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없는 삶은 장차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었습니다. 또 그들은 강대국의 침략으로 늘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이 많았고 슬픈 눈물이 많았고 원통함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하나님의 멸시를 받았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솔로몬 이후 우리나라와 똑같이 남북이 분단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가로막기 위해 북이스라엘의 최북단인 스불론과 납달리의 단 지방과 북이스라엘의 남단인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폭군들이 나타나 북이스라엘을 지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아합왕 시대에 그 절정을 이뤘습니다. 아합왕은 이방 여인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숭배하고 바알 선지학교를 세워 바알 선지자들을 키웠습니다. 그후 북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상에게 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음란과 쾌락과 부정과 불법이 판을 쳤습니다. 이세벨의 무당들이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을 철저하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강대국들의 말발굽 아래 두어 혹독하게 징계하셨습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그들을 치셔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도록 함이었습니다.

남유다도 우상을 숭배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성군 요시야가 나타나 남유다를 혁신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우상을 불에 태우고 제단을 헐고 빻아내려서 가루를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렸습니다. 석상은 깨뜨리고 목상은 찍고 해골로 그 곳에 채웠습니다. 아세라 목상은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했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이런 역사는 전무후무한 역사였습니다(열하 23).

지금 우리나라는 극심한 혼돈과 어둠에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촛불이 횃불이 되어 탄핵이 가결되어 헌정 질서가 중단되었습니다. 모든 리더십은 물이 흐르듯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승계되어야 합니다. 어쨌든 헌정이 중단된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가 힘든 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있습니다. 국내외 정세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경제는 어렵고 사회는 불안하고 촛불은 계속 광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 IMF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지금 한국은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탐욕의 맘몬신, 이세벨의 무당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탐욕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맘몬신인 바알과 쾌락의 신인 아세라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되 철저하게 제거하여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대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것을 통회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9:1). ‘영화롭게 하다는 명예롭게 하다, 이름을 높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아름다운 헬몬산과 갈리릴 호수를 관광산업으로 만들어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아니면 경제를 부흥시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무엇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큰 빛을 보내심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큰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남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요셉과 마리아의 몸을 빌어 조용히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복음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가룟 유다를 빼고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예수님을 만나면 모두가 영화롭게 됩니다. 영국은 바이킹 해적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신사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목사와 선교사를 배출한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은 명문대학이 되었고,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은 미국에서 명문 가문 중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큰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의 성품이요 영광의 광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3절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이 빛은 원초적인 생명의 빛입니다. 이 빛은 존귀와 위엄의 빛입니다. 이 큰 빛은 예수님 안에 있는 영광과 생명의 빛입니다(고후 4:6). 이 빛은 치료의 광선입니다(4:2). 이 빛은 옳은 길로 인도합니다. 어떤 종교는 윤회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돌다 보면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나 큰 빛이신 예수님은 방향이 분명하고 시작과 종말이 분명합니다(1:1, 22:21)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영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 때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영광의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9:3).

그는 강력한 빛으로 3일 동안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빛은 신비한 빛, 상상할 수 없는 빛, 이해할 수 없는 빛, 생명의 빛,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이 생명의 빛, 예수님의 영광의 빛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의 분노의 눈초리가 치료되어 은혜와 긍휼의 눈초리, 밝고 빛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가 나옵니다. 그는 운명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슬픔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를 지배했던 운명과 슬픔이 사라지고 밝고 환한 자화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부총장이었던 백낙준 박사는 변변하지 않은 가문 출신입니다. 당시 백정은 신분 중에 가장 낮은 신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선교사를 만나 주님을 믿었을 때 신분을 깨고 귀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우리 중에 김레베카 선교사는 월남한 부모님 밑에서 32녀 중의 네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열등감, 그리고 얼굴에 죽은깨가 많다는 열등감으로 슬픔의 사람, 운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큰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큰 빛 되신 예수님, 생명의 빛, 소망의 빛, 능력의 빛, 영광의 빛이 임할 때 우리의 어둡고 칙칙한 얼굴, 우리의 어두운 마음, 우리의 어두운 눈이 빛나는 눈동자, 밝은 마음의 창으로 변하고, 죄와 죽음이 주는 모든 권세로부터 벗어나 밝고 기쁘고 빛난 삶을 살게 됩니다. 상처 받은 마음이 치료가 되고 정을 통하는 눈빛이 거룩한 눈으로 변화됩니다. 입에서는 영광과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이번 성탄에 영광의 빛, 생명의 빛 예수님이 내 내면에 더욱 더 강렬하게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큰 빛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웠느니라 하시더라.”(4:17)

첫째,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흑암에서 큰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에서 생명의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큰 빛 되신 예수님께로 나오기 위해서는 생각을 전환하고, 자기 삶의 방법을 전환해야 합니다. 자기 삶의 스타일을 전환하고, 자기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려면 자기 죄를 찌르는 고통과 아픔을 맛보아야 합니다. 자존심을 깨야 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욕심은 물욕과 명예욕입니다. 특히 물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물욕의 회개하려면 십일조를 철저히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돌아오려면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3:7). 십일조는 봉급의 십일조 뿐만 아니라 모든 소득의 십일조, 그리고 시간의 십일조도 포함합니다.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리면 그 삶이 투명하고 깨끗합니다. 십일조는 그 사람의 삶의 투명성과 청지기 자세를 갖도록 합니다. 그러니 시간과 물질과 삶을 함부로 허비할 수 없습니다.

둘째,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5).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은 본질상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2:1). 아담의 죄성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입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기에 대해 집착이 강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고 죽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는 순간 구원받습니다. 이 구원받은 생명은 믿음이 크든 작든, 그리고 행위에 따라 절대로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큰 믿음을 강조하는 집단은 나의 행위에 따라, 믿음이 크고 작음에 따라 구원이 취소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을 통한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아직 죽은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한 일도 없습니다. 승천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무덤에 묻혀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경험하신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가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 순간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도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땅에 묻히실 때 나도 묻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나도 부활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나도 승천하였고, 하늘의 우편에 계실 때 나도 우편에 앉았습니다(2:6).

우리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이 아니라 이미 가 있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함께 재림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육신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이 새로운 몸과 생명이 만나는데 이것이 영화로운 영광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어느 집단은 성화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한번 구원받았으면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화는 내 육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을 거룩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동시에 전했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자기 의를 주장하게 됩니다. 한편 믿음 없는 회개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자기 불의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동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큰 빛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은혜의 세계, 빛의 세계,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다가 올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빛은 생명을 줍니다. 빛은 소망을 줍니다. 빛은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빛은 진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생명의 빛, 희망의 빛, 소망의 빛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탄을 맞아 큰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 밝고 빛난 삶, 명품가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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