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전도서 5:1~9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5:7)

 

 

불교에는 눈에 보이는 불상이 있고, 천주교 또한 눈에 보이는 성모 마리아상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형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이 있기에 불자나 천주교 신자들은 법당이나 성당에 들어갈 때 그 순간만큼은 경건합니다. 그러나 예배당에는 십자가 이외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느 교회는 십자가도 우상이 될 수 있다며 십자가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이 예배당에 올 때 경박한 모습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장 칼뱅은 20대에 기독교 강요를 집필했습니다. 방대한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앞에서”(in the presence of God, Coram Deo)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살므로 사람의 눈치를 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살므로 비굴한 삶을 삽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 살기에 거짓되고 불의합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 살기에 눈치를 보고 체면치레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눈치와 체면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면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삶을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면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참된 예배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고 충만케 하십니다.

우리가 매 순간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리는 예배입니까?

1. 예배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5:1)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경청, 말씀에 순종을 포함합니다.

네 발을 삼가라는 것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가 경거망동한 행동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보다 제물을 드리는 것과 악을 행하면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물은 예배를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교환물 정도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악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예배를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가지고는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순전한 마음이 있을 때 말씀이 들립니다.

그러면 왜 말씀을 듣는 것이 참된 예배가 됩니까? 왜 말씀을 듣는 것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까?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우리의 심령에 혁명적인 변화와 갱신과 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삼상 15:22).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 일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주의 백성을 재판할 때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청했습니다(대하 1:10). ‘지혜란 히브리어로 듣다와 같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옵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듣는 마음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식이 아는 것, 정보라면 지혜는 아는 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힘입니다. 요즘 지식은 넘쳐납니다. 네이버나 다음, 구글에 물어보면 모든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부족하여 도리어 아는 지식만큼 각종 사회 병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순종보다 제물, 예배라는 형식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는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선악을 분별하고, 지식을 옳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wise man)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시간에 평상시에는 읽지도 않던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시간에 성경을 이것저것 뒤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 폰을 꺼내어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가 시작하는 순간 잠을 청합니다. 어떤 사람은 적선하듯이 예배라는 형식에 참여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예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모습으로 예배를 드립니까? 바울은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고 했습니다. 악한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해서 그에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결국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구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들음에 있습니다. 믿음이 어디에서 납니까? 들음에 있습니다(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어야 인격이 변화되고, 말씀을 들어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생명을 걸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는 예배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할 때, 3주간 말씀을 전했습니다(17:2). 그때 데살로니가 도시가 뒤집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울은 가는 곳마다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복음 이외 어떤 것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도시는 말씀으로 뒤집혔고, 어떤 도시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이 바울이 전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나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을 듣는 자세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4:20).

첫째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려면 마음이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일이면 적어도 30분 전에 교회에 와서 말씀이 들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들리는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옆에 앉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리 구조는 30분이 지나야 정상이 됩니다. 허겁지겁하여 예배시간에 맞춰오면 30분이 지나야 안정이 됩니다. 따라서 예배시간뿐만 아니라 학교나 회사도 30분 전에 출근하고 강의실에 도착하여 기도하고 자리도 정리 정돈하면서 업무와 학습 준비를 하면 업무나 학습 효과가 배로 나타나게 됩니다. 시간에 쫓기면 과속하게 운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교통 신호를 어기게 되고 교통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매사 준비된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 앞에 겸손하고, 말씀대로 삽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진실하게 회개합니다.

셋째는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15절을 보면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조급해서입니다. 식물은 속성재배가 가능하지만, 사람은 속성재배가 불가능합니다. 때로 우리는 변화되지 않는 자신으로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달팽이는 인내 하나로 방주에 도달했다고 했습니다. 달팽이의 속도는 시속 12m입니다. 달팽이는 느려도 인내하는 재주 하나만은 있습니다. 우리 역시 달팽이가 방주를 보고 끝까지 기어간 것처럼 말씀을 듣고 끝까지 인내하면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고 내면에 천국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6:9).

이 시대는 포스트 모던 시대, 상대주의 시대, 웹툰 시대, 사이버 가상 시대, AI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은 속도가 돈이라며 빨리 더 빨리, 그리고 절대 진리를 부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사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결국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에 선포되는 말씀과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경청하여 아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2. 예배는 바르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5:2)

함부로 입을 연다는 것은 성도의 언어생활 가운데 특히 기도 생활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 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감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보아야 알고, 들어야 깨닫고, 손으로 만져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을 뜨고 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을 휘둘러 봐도 하나님이 만져지지 않습니다. 듣고자 해도 들리는 음성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어렵고 잘못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을 많이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수단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방법으로 하늘에 있는 선한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아무거나 원한다고 다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항상 다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므로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 줄 다 알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내 환경이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놀랍게도 나 자신도 모르게 내가 변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에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헛된 욕심이 사라집니다. 무겁게 느껴지던 십자가가 가볍게 여겨집니다.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 달고 오묘하여 자꾸 가까이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불평하던 입에서 찬송이 나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됩니다. 기도가 나를 변하게 합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무슨 문제가 생기면 급한 마음으로 함부로 기도합니다. ‘함부로 기도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는 것은 청구서를 내밀 듯이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리처드 포스터(Richard J. Foster)기도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안에서 상처를 받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떼쓰듯이 요구할 때 하나님께서 상처를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것을 외면하고 무조건 많은 것, 무조건 큰 것, 무조건 자기가 필요한 것만을 요구할 때 상처를 받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기도를 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는 바른 기도에서 우리의 기도 대부분이 하늘나라에서 아무 쓸모 없는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수없이 날아오는 광고성 메일과 문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이런 취급을 받으면 헛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소중하게 읽히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볍게 아뢰거나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이웃과 성도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흔들어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많아집니다(5:3).

3. 예배는 서원을 속히 지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5:4-6)

서원이란 히브리어로 약속하다, 맹세하다, 서약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고 또는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서원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야곱의 서원이 나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명분과 하나님의 복을 가로챘습니다. 이를 알고 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27:41). 이를 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외가로 보냈습니다(27:42~45).

야곱은 부모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괴나리봇짐을 지고 밧단아람으로 향했습니다(28:10). 얼마큼 가니 어둑어둑했습니다. 야곱이 도착한 곳은 루스였습니다. 그는 여장을 풀 곳이 없어 한 돌을 취하여 베개를 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서 별을 보며 풍찬노숙했습니다. 그는 몹시 피곤했습니다. 그는 쫓기는 몸이었기에 더욱더 피곤했습니다. 그는 형에 대한 두려움과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을 때 그는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2~15)

이 꿈은 지상에서 천상까지 이어져 있고 현실 세계가 영원한 세계와 연결된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나그넷길에 나타나 야곱에게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28:16).

야곱은 일찍이 일어나 베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28:18).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 곧 하나님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나그네 길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념하며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8:20~22)

하나님은 야곱의 벧엘 서원을 기초로 20년간 도우셨습니다. 야곱은 20년이 지나자 라반의 집인 밧단아람을 떠났습니다. 그는 마땅히 서원했던 벧엘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고 숙곳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세겜으로 옮겨 영구히 머물고자 거처할 땅까지 샀습니다. 그는 고난의 때에 나타나 보호해 주시고 서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의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았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엘벧엘, 하나님의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서원이 있습니다. 한나는 자식이 생기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삼상 1:11).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그의 서원대로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어떤 직분에 임직할 때, 또 사업이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거나 또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면 주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서원합니다. 공개로 하기도 하고, 개인으로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원 기도하고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은 하나님 앞에 서원하였으면 잊어버리지 말고 빨리 갚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갚지 아니한 서원보다는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서원하고 갚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5:6). 거짓말은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원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하고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5:4~6). 따라서 하나님과의 약속, 서원, 맹세한 것, 신앙고백을 했으면 내게 손해가 될지라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듣는 데서 옵니다. 구원은 말씀을 듣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면 하늘로부터 은혜의 파도가 우리 안에 밀려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지켜야 합니다. 모두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서원을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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