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영성

조회 수 2825 추천 수 0 2012.07.11 02:24:43
열왕기하 18:1-12(참조, 19:1-20:11)

히스기야의 영성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18:5)”

Hi, Bible Lover!

남북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으로 시작하여 19명의 왕이 208(B.C.930-722)년 동안 통치했지만 한결같이 악했습니다. 그 중에 오므리와 아합은 극악했습니다. 한편 남유다에는 르호보암으로 시작하여 20명의 왕이 344(B.C.930-586)년 동안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달리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산 왕들이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히스기야는 요시야와 더불어 선한 왕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의 영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히스기야의 영성을 배워서 캠퍼스와 직장과 민족과 세계 복음화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히스기야는 산당을 제거했습니다(1-4).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나라의 경제는 약해져 있었고, 윤리와 도덕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의 선왕인 아하스의 부패로 인해 백성들은 쾌락과 우상의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아하스가 얼마나 부패했느냐 하면 열왕기하 17장을 보면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낸 이방 사람의 가증한 것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아들을 바비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산당을 지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눈치를 보느라고 왕궁에서 하나님의 전으로 가는 낭실을 폐쇄하기까지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형제 국가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비운을 보아야 했습니다. 한편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남유다를 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동쪽에는 신흥 제국인 바벨론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남쪽에는 애굽이 긴 잠에서 깨어나 유다를 넘보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론도 분열되어 앗수르를 의지하자는 앗수르파가 있었는가 하면 애굽을 의지하자는 애굽파도 있었고, 신앙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자는 파 또한 있었습니다. 나라는 삼삼오오로 찢겨져 있었습니다. 유다는 風前燈火와 같은 樓卵의 危機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 속담에 父傳子傳이라는 말처럼 자식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특히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을 본받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아버지인 아하스를 닮지 않았습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 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그는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사회적인 개혁이 아니라 종교부터 개혁했습니다. 그가 왜 제일 먼저 종교를 개혁했을까요? 한 나라의 총체적인 위기나 부패는 단순한 사회병리 현상이 아니라 종교의 부패로부터 기인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789년에 일어난 불란서 혁명의 동기를 보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당시 봉건 사회를 주도한 왕권에 아부하고 야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28년에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난 것도 러시아 정교회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교회 지도층이 부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보면 부패가 만연하고 윤리의식과 도덕적 수준이 말이 아닙니다. 그 한 예로 한국 사회조사연구소에서 2004년에 중고등학생 5,132명을 대상으로 혼전 동거에 대한 설문 조사 연구에서 응답자의 42.3%가 혼전 동거를 할 수 있다고 응답을 했고 안된다가 30.1%, 모른다가 26.8%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 미디어다음이 21,248명을 대상으로 혼전 동거에 대한 조사 연구에서 34.3%인 7,298명이 사랑하는 사이이면 가능하다고 했고, 결혼 사이이면 가능하다가 29.9%인 6,349명이었고 있을 수 없다가 31.9%인 676명에 불과하였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왜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되었습니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다른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 믿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기본은 마르틴 루터가 부르짖었던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말씀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은혜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를 헌 운동화를 버리듯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기 보다는 자기 의지로, 자기 혈기로, 자기 의로 살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살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지는 않습니까? 믿는 사람들이 점점 믿음보다는 인간 중심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영광보다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이생의 자랑에 눈이 멀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부터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만이 청소년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가정을 구원하고 직장을 구원하고 대학을 구원하고 민족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제일 먼저 산당을 제거했습니다. 산당은 야외 제단을 말합니다. 산당은 높은 언덕이나 산 위에 있었습니다(민21:28, 렘26:18, 겔2:2, 미3:12). 산골짜기에 있는 경우도 있었고(렘7:31,19:5,6:32,35), 푸른 나무 아래 두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음란 행위를 은폐하고자 함에 있었습니다(왕상14:23,24). 이를 볼 때에 우상숭배의 뒤에는 음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의 산당들은 가나안의 풍요신인 바알과 앗세라 여신들의 제단 구실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하나님은 높은 장소에 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나안의 산당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까지 갈 수 없다며 산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가나안 농경사회의 풍요의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종교 혼합주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히스기야가 산당을 제거했다는 것은 바로 신앙의 혼합주의, 두 마음을 품은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도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흉내 내어 만든 것을 부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산당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지니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계명에서 다른 신, 곧 우상이란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믿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소유물이나 사람 등을 하나님보다 더 높게 취급할 때 바로 우상이 됩니다. 마르틴 루터는 우상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내 마음이 쏠려 있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상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나름대로의 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우상을 섬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나의 명성을 귀하게 여긴다면 명성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물질이 하나님보다 더 귀히 여긴다면 물질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 정욕 등에 마음이 쏠리고, 이런 것들을 의지한다면 그것 우상이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고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입니다.

골로새서 3:5절을 보면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4절을 보면 쾌락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기를 원한다면 물질의 탐욕과 육신의 쾌락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복음 역사보다 물질을 더 사랑할 때 순수한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욕심은 형식적인 신앙과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합니다. 또 쾌락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쾌락은 죄의 온상이 됩니다. 영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면 마음을 뺏고 부패시키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거하되 부수고 쪼개고 불살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산당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그것을 은근히 즐기게 됩니다. 연애 감정이라는 산당을 온전히 버리지 않고 마음 한 쪽 구석에 놓아두면 언젠가는 그것을 찾아 섬기게 됩니다. 과거에 한 형제가 연애 문제를 해결하고 전화를 절대로 하지 않겠노라며 전화번호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산당을 온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에 휴지통을 뒤져 찢은 전화번호를 찾아 조각조각 붙여 다시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산당은 찢는 것으로 안 되고, 찢어 쪼개고 부수고 태워서 흔적도 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둘째,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했습니다(5-12).

5a절을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 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여호와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그의 선왕인 아하스는 우상을 의지하고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의 선왕인 아하스는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입니까?

6a절을 보겠습니다.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그는 하나님과 연합했습니다. ‘연합하다’란 NIV 성경에는 ‘hold’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썩은 동아줄인 강대국이나 사람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꼭 붙들었습니다. KJV에는 ‘cleave’로 되어 있습니다. ‘cleave’란 뜻은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의 연합에 해당되는 단어인데, 이는 종이 두 장을 아교풀로 딱 붙여 놓은 상태를 말합니다. 종이 두 장을 딱 붙일 때에 그 사이에 무엇이 낄 수 없습니다. 그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엇이 끼게 되면 그 순간부터 가정파탄이 생깁니다. 부부사이에 시어머니가 개입되면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이 끼게 되는 순간부터 고멜과 같이 신앙의 음녀가 되게 됩니다.

사무엘상 7:3절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에게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분만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방신의 대표적인 것은 바알신입니다. 바알은 농경신으로, 물질의 풍요를 상징합니다. 곧 물질만능의 우상을 뜻합니다. 아스다롯은 매혹적인 여신을 말합니다. 이는 육신의 쾌락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 마음속에 물질의 신, 쾌락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겸하여 물질과 쾌락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이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을 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가 썩은 동아줄입니다. 썩은 동아줄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철학이나 강대국은 모두 썩은 동아줄입니다. 썩은 동아줄을 붙들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드십시오. 썩은 동아줄인 물질을 붙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과 기쁨의 원천입니다.

셋째, 히스기야는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6b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계명을 지켰습니다. 말씀을 따라 행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의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입니다(막12:29-31). 사랑은 힘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시편 1:1-3은 말씀을 좇아 사는 삶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고 참되며 내 발의 등이며, 내 길에 빛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고 말씀대로 살았을 때에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되었습니다(7,8). 국가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북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9-12).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여러 성읍에 둠으로 이스라엘은 혼혈화되고, 종교도 혼합화되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약해서입니까? 아니면 외교술이 없어서입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호세아가 앗수르를 버리고 애굽과 손을 잡은 데 있는 것 같습니다(왕하17:3-6). 그러나 열왕기서 18:12은 그 원인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토록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유랑의 생활을 하다가 혼혈족이 되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홍보다 더 붉고 더럽고 추한 죄로부터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붉은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불살라 흔적도 없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붙들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넷째, 히스기야는 기도했습니다(19:1-20:11).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은 멸망시킨 후에 유다의 성읍들을 다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침공하기 위해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절망은 인간의 경험 중에서 가장 최악이요, 동시에 극단적으로 몰아넣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절망의 상황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위기의 때를 오히려 승리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먼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당시 슬픔이 있을 때, 회개할 때, 분노를 나타날 때는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독을 당하셨다는 영적인 분노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복받침이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성전을 찾아 앗수르의 편지를 펴놓고 상황을 아뢰었습니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19: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19).”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중보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전도서 4:12절은 중보기도의 위력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마태복음 18:19은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1-11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운명에 맡기지 않고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절망과 좌절의 벽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망과 좌절을 넘어서서 기도하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15년 동안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가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고, 하나님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가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29:13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사야서 55: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믿음의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기도로 극복합니다. 그의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 그의 통곡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의 절망치 않는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좌절치 않는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15년 동안 연장한 징조로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10도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11).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히스기야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고 말씀을 좇아 행하는 그의 믿음과 기도를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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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