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영성

조회 수 2884 추천 수 0 2012.07.11 02:25:18
출애굽기 14:1-21, 요절, 14:21,22

모세의 영성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14: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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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애굽에서 영광의 탈출을 했습니다.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하여 힘차게 행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바로의 세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인도자가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연단이 필요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근성과 모세의 영성, 그리고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노예근성

1,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다 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하나님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텐트)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믹돌’에 진을 치라고 한 것은 군사학측면에서 보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 노도와 같이 흐르는 시퍼런 강물이 있기 때문에 뒤에서 바로의 군대가 공격해 오면 이스라엘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이 소식을 듣고 “노예 출신이라 별 수 없군, 너희는 이제 독 안에 든 쥐다”라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바로는 장자를 죽이는 재앙으로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켰지만 막상 노예가 없어지자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성을 쌓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등 집안일을 돌보아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은 “왜 우리가 이스라엘을 내어보내었는가”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스라엘이 광야에 갇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장된 특별 병거 600승과 애굽의 모든 병기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맹렬히 추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앞에는 시퍼런 홍해, 뒤에는 성난 사자처럼 추격하는 애굽 군대에 갇힌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아서 홍해를 건널 수도 없었고, 수륙양용차를 타고 건널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바다에 빠져 죽어 홍해바다의 물고기 밥이 되느냐, 아니면 다시 바로의 노예가 되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코너에 몰아넣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코너에 몰려 있을 때 절망하거나 낙망해서는 안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홍해는 바로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good chance)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어떤 가능성과 좋은 여건과 환경 가운데서는 배울 수 없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의 때에 때 믿음과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리서 애굽 군대의 추격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들의 이와 턱이 떨리는 소리 또한 커져만 갔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습관을 좇아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11,12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겉으로 보면 홍해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노예생활에서 오는 노예근성 때문입니다.

노예근성의 특징은 첫째로 원망과 불평입니다. 노예의 반대는 주인인데, 주인은 원망하고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노예근성에 젖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노예근성으로 찌들어서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어려운 일이 있다 싶으면 좌절하고 포기하고 드러누웠습니다. 감사보다는 불평하고, 찬양보다는 원망하고, 믿음보다는 불신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기보다는 추하고 정욕적이었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 위한 고생하기보다는 애굽 사람을 섬기며 하루 밥 세끼 먹는 노예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둘째로 노예근성의 특징은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그마한 문제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금방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들은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실질적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보는 역사의식이 없었습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민족은 국가나 단체나 개인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 4장에서 여호수아에게 12지파에서 12명을 뽑아 요단 한가운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곳에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가복음 8:17-21절에서 역사의식이 없는 제자들을 심히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크신 능력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사건을 체험하였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역사의식이 없었을 때 불신에 빠져 먹을 것을 가지고 염려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 쓰시고 인도하셨는가, 개척 초기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섬겨 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노예근성의 특징은 사명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버리고 짐승처럼 살찌우며 목숨만을 견지하고자 하는 목숨 제일주의자들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은 무엇입니까? 노예로 살더라고 목숨만을 부지하는 것이 압니다. 강대국인 애굽의 눈치를 살피며 고기국물 가마솥 옆에서 고기국물 몇 모금 얻어 마시고, 통조림 몇 통, 치즈 몇 조각, 달러 몇 푼 얻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삶은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며 인간답게 사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된 삶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며 사모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존재(physical reality)로 사는 것이 영적인 존재(spiritual reality)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잘 먹고 잘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명을 버리고 사는 것은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호랑이의 호랑이다운 기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 갇혀 던져주는 것을 받아먹으며 사는 것이 진정한 호랑이의 기상입니까? 호랑이의 기상은 산야를 달리며 포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인생의 고귀한 사명과 목적을 잊고 일차원적인 동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비참한 노예의 사슬에서 풀려 자유인이 된 구원의 은혜를 잊고 애굽을 동경하며 옛날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 그리운 애굽이여! 그때가 좋았어” 옛날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바로 밑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불러내어 이 고생시킨다”며 자기를 인도한 목자를 원망합니다. 자기를 하나님께로 인도한 목자를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으로 큰 죄입니다. 그리고 좀 어렵다 싶으면 옛날을 회상하며 죄의 낙을 사모하는 것은 죄악된 행위입니다.

둘째, 모세의 영성

모세는 이런 백성들을 어떻게 돕고 있습니까? 13,1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위기에 직면할 때에 두렵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두려움도 있습니다. 창조적인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두려움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두려움은 기회를 놓치도록 합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믿음으로 반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믿음이란 용기입니다. 담력입니다. 담대함입니다. 자신감입니다. 배짱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담대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환경에 따라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배짱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요동치 아니하였습니다. 모세는 믿음 위에 굳게 섰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모세와 백성들의 차이점은 바로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현실을 바라보느냐”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골리앗을 보았을 때 골리앗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였습니다(삼상17:31-49). 모세가 하나님을 보고 홍해를 바라보았을 때에 절대 절명의 한계상황 앞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역사를 잠잠히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싸우시고 일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승리에 대하여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62:1,2).”

15,16절을 보겠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고 하나님께 나아가 울부짖으며 기도하므로 방향과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나가게 하라!” 현재 상황에서 이 명령은 홍해 바다 속에 빠져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손을 내밀라!” 손을 내민다고 노도같이 흐르는 홍해가 갈라지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모세는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21).” 이때 기상천외한 일이 생겼습니다. 물이 갈라져 양쪽에 물 벽이 생기고 바다가 육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길을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그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길로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 그 거대한 물 벽이 터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내면의 두려움과 불신과 회의를 극복하고 나갔습니다. 모세는 불신의 생각, 두려운 생각을 극복했습니다. 생각은 중요합니다. 어떤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집니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의 컨테이너선 .하나가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산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습니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여 포도주를 다 내려놓은 후에, 선원 하나가 짐이 다 부렸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선원이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르고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하여 문을 두드렸지만 그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배는 다시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냉동실 안에는 먹을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원은 자신이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바닥에서 쇠꼬챙이 하나를 집어 들고 날짜별로 시간별로 자신이 죽어가는 고통을 적어나갔습니다. “먼저 손가락과 발가락이 얼어갔다. 이윽고 코가 얼기 시작했고 냉기는 피부를 찌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온 몸이 하나의 얼음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다”는 벽에 기록을 했습니다. 배가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에 그 선원이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적어 놓은 고통의 순간들을 읽으며 놀라운 일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컨테이너 안이 꽤 따뜻했다는 것입니다. 온도계를 재어보니 섭씨 19도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아무 것도 적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냉동 장치를 가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선원은 섭씨 19도에서 얼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곳은 냉동실이고, 냉동실은 냉동되어서 추울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춥다고 생각하니 춥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상상 속에서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행동을 가져오고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위대한 일을 하려면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불가능의 생각이 가능의 생각으로 변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물들게 해야 합니다. 에머슨은 “싱싱한 말을 피에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언어 속에 흘러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밀어내어야 합니다. 그때 불가능의 강, 홍해의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모세는 불가능의 강, 홍해를 건너기 위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먼저 정복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가능한 생각을 정복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하는 생각을 정복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려워하는 감정을 정복했습니다. 그때 불가능의 강, 홍해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대한 용장이요 거장이요 불가능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먼저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톰 모런이 지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에서 “생각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기꺼이 자신의 머릿속을 리모델링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0도보다는 180도로 생각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다른 세계가 보입니다. 기존의 생각, 고장관렴을 깰 때에 믿음의 세계가 보입니다.

또한 용장이요 거장이요 불가능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실 때에 한순간에 홍해를 가르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 때에 하나님이 밤새도록 동풍을 일으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고 끈기 있게 기다렸을 때에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불가능의 강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과정 하나하나를 인내해야 합니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믿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기 자신만 불가능의 강을 건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모든 백성이 불가능의 강을 건널 때까지 굳세고 끈기 있게 기다리고 참고 기도해야 합니다. 작은 강은 순식간에 갈라질지 모르지만 불가능의 강은 순식간에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꿈은 쉽게 성취될 수 있지만 큰 꿈은 쉽게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인내와 끈기와 기도가 요구 됩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불신과 두려움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극복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반면에 애굽 사람들은 시험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히11:29). 그들은 노예 백성들도 건너는데 선진국 백성들인 우리가 건너지 못하랴! 자신들이 능력과 지혜와 경험을 의지하고 건너려 하다가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홍해는 가나안으로 나가는데 반드시 건너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우리 개인 개인도 신앙생활을 할 때 반드시 건너야 할 장애물이 있습니다. 안일의 홍해, 쾌락의 홍해, 이기심의 홍해, 불신과 허무와 운명의 홍해 등을 반드시 건너야 합니다. 언어의 홍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홍해가 아무리 건널 수 없는 홍해라 할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2-23).”

셋째,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첫째로 하나님은 길을 내셨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강물, 뒤에는 장갑차로 무장된 바로의 군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널 배도 없고 공수 낙하할 헬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헤엄을 쳐서 건널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홍해에 빠져 죽든지 아니면 바로의 노예가 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원망과 불평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신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나갈 길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길을 내사 그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손을 내어 밀면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친히 길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길이 되사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요14:6)” 길 되신 예수님을 붙들 때 어떠한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방황치 않게 됩니다. 그 택하신 자들을 보호하시되 섬세하게 보호하여 주십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길을 내시고 길이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손을 내밀고 어 우리 각자에게 놓인 홍해를 건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으로 나가게 하라,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이때 기상천외한 일이 생겼습니다. 물이 갈라져 양쪽에 물 벽이 생기고 바다가 육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길을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그 길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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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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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마을교회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