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강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조회 수 2555 추천 수 0 2012.07.12 07:21:17
마가복음 제 2 강 (1:9-11, 요절, 1:9)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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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를 보면 봄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2월은 중춘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반갑다 봄바람이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萌動)한다. 보장기를 차려놓고 춘정을 하오리다.” 농부는 봄을 맞아 쟁기와 보습을 손질하여 봄갈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봄을 맞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말씀의 쟁기로 마음의 밭을 일구어 복음의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할 줄 압니다. 2009년 3월 15일에 신입생 환영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신입생을 초청하여 입학을 함께 축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2편 7절과 이사야서 42장 1절의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곧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기다리다 못해 산 위의 파수꾼들을 불러 묻기도 했습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사21:11)?” 그들은 그의 오심이 지체되는 것이 이상하여 날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곧 오소서, 빨리 오소서, 우리의 왕이시여!”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기에 앞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선구자로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세례의 기원은 구약의 결례의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구약 시대에 손이나 발을 씻는 결례의식이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의 몸을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야 했습니다. 더러운 것을 만졌거나 시신을 만지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물로 깨끗하게 씻고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교도가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경건한 자라는 말은 개종자를 뜻합니다. 유대교에 들어오려는 개종자들에게 남자에게는 할례와 세례, 그리고 제물을 드려야 했고, 여자들은 세례와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유대의 요단강까지 먼 길을 걸어서 오셨습니다(9).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고후5:21).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세례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하며 극구 말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3:15).” 예수님이 받으시는 세례는 죄가 있거나 죄를 씻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매우 중요시 여기십니다. 의(δικαιοσύνην)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빌2:8). 예수님은 의를 이루기 위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6,27).”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 되기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입니다.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그의 신분과 가치관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면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의와 거룩함과 사랑입니다.

물은 더러움을 깨끗이 씻는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고 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3,4).”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을 때 죄에 대해 우리가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통치 개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죄의 통치를 받지 않습니다. 죄는 항상 살아있는 매개체를 통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음으로 끝났습니까? 우리는 죽기 위해 죽는 것입니까? 죽음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새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 생명은 미래적인 삶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입니다. 생명의 속성은 파릇파릇하고 살아 숨지고 역동적이며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침울하고 어둡고 칙칙하고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삶을 살아서는 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절대긍정,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약동하고 생명으로 충만하되 날로 자라야 합니다. 자라되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막8:34). 따라서 세례는 단순히 물을 뿌려주는 의식이 아닙니다. 세례 받는다는 것은 나의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세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례는 사죄를 낳으며, 사망과 마귀로부터 구출하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과 약속으로 선언하신 그대로이다.” 이제 세례 받은 사람들은 내가 받은 세례가 나의 구원의 인침이라는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노춘경이라는 분입니다. 그는 한문 서적을 읽다가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속에 기독교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교(敎)-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종교-라는 비난조가 있었습니다. 그는 좀 더 서양종교를 알기 위해 헤론 의료선교사를 찾아가 기독교에 관한 책을 구했지만 없었습니다. 그는 알렌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책상 위에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쪽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책을 양심의 가책이 없이 옷소매 속에 감추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읽은 후에 언더우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언더우드 목사님으로부터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자세히 전해 들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진지했던지 후에 언더우드 목사님은 후에 노춘경의 눈초리는 진리를 찾으려는 갈망으로 빛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춘경은 예수님은 신앙을 고백과 앞으로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서약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국법으로 금하고 있었고, 외국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었으니, 드러나는 날에는 어떠한 형벌도 각오해야 하는 시대기 때문에 그는 헐버트라는 분이 대문에서 망을 보는 중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날이 1886년 7월 11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다”란 부정의 부정으로 강한 긍정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반드시 체휼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체휼하다(συμπαθήσαι)는 헬라어로 ‘함께 수난 당한다(συμπáσχω)’에서 파생된 말로, 동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동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동정만 해서 뭐합니까? 독자를 둔 자식이 죽었을 때의 어머니에게 아무리 위로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아픔을 동정할 뿐만 아니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오라비를 잃어 슬피 우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로로 끝나지 않으시고 부활의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친히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근본 문제는 연약함에서 옵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원치 않게 죄를 짓습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사단의 시험을 받아 넘어집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의심을 심어 놓으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넘어지고 맙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비실거리게 됩니다. 강한 삼손도 이방 여자의 꾐에 빠졌을 때 분별력을 상실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솔로몬도 이방 여자의 꾐에 빠졌을 때 그 모든 지혜를 상실하고 헛되고 헛된 사람으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받을 때 넘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연약한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강한 사람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연약한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슈퍼맨들은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겸손하고 연약한 자들만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퇴출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연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예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고 때를 주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때를 따라’란 적절한 시기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도와주십니다. 적절한 시기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십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당시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좌란 하나님이 계신 장소로 성막 안의 속죄소입니다(히9:5, 출25:21). 그러나 은혜의 보좌란 속죄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때에 용서와 사랑이 있습니다. 긍휼과 쉼과 용기가 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나가기만 하면 용서하여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아간다는 것은 기도생활입니다.

그런데 나의 허물과 죄만을 생각할 때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나의 체면, 죄의식, 불신, 무지 등은 담대히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만이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심령에 충만한 사죄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영혼에 힘과 능력과 긍휼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영적인 소원이 있고 하나님께로 향한 진심과 열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문제와 현실이라는 어려움과 내 자신의 악한 본성과 악한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죄악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고, 회의와 불신과 절망으로 넘어지고, 사단의 송사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문제를 들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한량없는 은혜가 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지금 어떤 상황이든지 담대하게 거리낌 없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에 십자가의 붉은 피로 사죄의 은총과 긍휼하심이 여러분들의 심령을 적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비전과 소망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아멘.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승인을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승인의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을 때에는 하늘이 갈라지는 우주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순간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막은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사건과 일맥상통합니다(막15:38,마27:51,눅23:45). 다시 말해 하늘이 열렸다는 의미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막혔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담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만이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았습니다. 성령 강림은 B.C 8세기경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을 덧입으셨습니다(사11:1,2). 하나님은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붓듯 하심으로 예수님은 착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행10:38). 성령은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요, 모든 사단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원천입니다.

비둘기는 온유, 겸손, 순결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과 순결과 평화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섬기십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사역은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사61:1,2). 복음 역사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악령과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모든 악령과 사단의 세력을 파하실 수 있었습니다(행10:38).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힘과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진실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심령에 임합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 하나님은 육성으로 세계만방에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과 권세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배척을 당하시고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신 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사 주의 주,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셋째, 낮아짐의 절정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겸손하심의 절정입니다. 사람들은 교만하여 조금만 인정해주고 자리를 잡게 되면 목에 힘을 주고 다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똑 같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인간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낮은 자리, 겸손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겸손은 우리를 가장 안전한 자리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 낮은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스스로 강하다며 교만한 자는 사탄의 공격을 받고 쉽게 무너집니다. 이사야서 60장 22절에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작아지고 낮아져야 능력이 나옵니다. 자신의 힘을 빼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바울에게 가시를 준 이유는 낮아지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 전파에 전심을 다했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내세우고 자신을 내세울 때에 하나님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같이 내가 가장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옵니다. 모세가 초기에 자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외로이 양 치게 하고 처가살이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의지하던 것들을 깨시고 그런 후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깨에 힘 들어가고 뭔가 자신의 힘으로 하겠다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의 일 하려는 사람은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낮아짐, 겸손, 자기 부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겸손은 기도로 나타납니다. 게으른 사람이 기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은 엎드려 기도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 낮아진 사람에게 하늘 문이 열립니다. 겸손하게 낮아질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에 살 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 중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빛을 받습니다. 빛을 받으니 빛이 반사되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은 겸손하고 낮아진 사람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지켜 나가십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전도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겸손한 자에게 능력 부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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