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제8강깨끗함을 받으라

조회 수 2465 추천 수 0 2012.07.12 07:23:10
마가복음 제 8 강(1:40-45)

깨끗함을 받아라.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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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가 깨끗한 삶,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추하고 악취가 나는 삶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삶, clear한 삶을 원하십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치료하여 주시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하게 하시는 사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한 문둥병자를 깨끗케 해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 이런 경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온전한 사람, 건강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조금도 의심과 회의와 불신이나 없어야 합니다. 주님의 생각이 내 생각, 내 생각이 주님의 생각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주님의 뜻과 하나가 되도록 하십시오. 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 기적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본문에 문둥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 문둥병자가 나옵니다. 이 문둥병자는 깨끗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나와 간구합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해 주세요. 우리는 이 문둥병자의 모습에서 죄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한 인간의 자화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보시고 깨끗케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죄로 추한 인간을 향한 크신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는 뇌간에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께 기도하는 문둥병자(40)

예수님께서 온 동네에 다니시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한 동네에 계실 때였습니다. 이 때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꿇어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문둥병은 부정한 병입니다(레13:14,15). 그래서 문둥병자가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이 병은 상처 난 피부를 통해서 전염되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추방되어 진 밖에서 외롭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몇 가지 기본 욕구가 있습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인간에게 결핍욕구와 성취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결핍욕구 중에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belonging and love needs)가 있습니다. 사랑은 터치입니다. 사랑하면 터치하고 싶습니다. 손을 잡고 싶습니다. 포옹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자와는 터치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랑을 주거나 받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는 이 병이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생긴 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았다는 깊은 죄의식으로 일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은 몸의 말초부터 결점이 생기다가 결점이 터지면 궤양이 생겨 고름이 되어 흐릅니다.

이 문둥병은 피부뿐만 아니라 연골 조직과 신경을 썩게 하기 때문에 코가 문드러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눈썹이 빠지고 시신경을 파괴하여 시력도 잃게 합니다. 문둥병은 눈이 나빠도 코가 없기 때문에 안경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신경이 마비되어 통증을 느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5장 12절을 보면 이 사람은 온몸에 문둥병이 들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온 몸에서 궤양으로 인해 고름이 흘러 나왔을 것입니다. 살이 썩어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눈썹은 다 빠지고, 코는 문드러지고, 팔과 다리가 잘라져 그의 흉한 모습은 차마 두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몸이 문드러진 것처럼 그의 정신과 영혼 또한 파괴될 대로 파괴되었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진 것이 생명인지라 죽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성경은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을 때 문둥병이 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민12:9,10, 대하26:19). 이 문둥병은 죄와 그 증상이 매우 흡사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첫째는 죄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제품이 아닌 하나 밖에 없는 걸작품입니다. 한번 옆 사람의 얼굴을 한번 처다 보세요. 눈 위에 조화 있게 그려진 눈썹, 빗물이 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안경을 쓸 수 있도록 얼굴 중앙에 우뚝 선 코와 두 귀, 굳게 다문 입, 그런데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이러한 아름다운 모양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바꾸어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고상합니다. 순수합니다. 진실합니다. 사랑이 풍성합니다. 거룩함을 사모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겸비되어 있습니다. 책임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죄지은 인간은 음란합니다. 사랑보다 미움,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 겸손보다 교만, 용서보다 미움, 긍정보다 부정적인 생각, 진실보다 거짓됩니다. 이처럼 죄는 사람의 마음과 양심, 그리고 인격과 영혼을 추하게 합니다.

둘째는 죄는 양심과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문둥병은 신경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통을 느끼다가 조금 지나면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죄도 처음 지을 때는 죄의식이 듭니다. 양심의 찔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죄를 짓다보면 죄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요즈음 리스트가 나오는 데 다 그런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용감하게 죄를 짓고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내면은 죄로 썩어가고 악취가 납니다.

셋째는 죄는 사람을 추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게 하고자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가꾸고 매만집니다. 자신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들고, 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는 거울을 보거나 사진 찍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추하기 때문입니다. 문둥병이 사람을 추하고 더럽게 만들듯이 죄도 사람을 추하고 더럽게 만듭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성경 말씀을 보기를 꺼려합니다. 그리고 맑고 밝은 얼굴이 추하게 됩니다. 아무리 겉모양을 꾸미고 향수를 뿌려도 죄가 주는 악취는 감출 수 없습니다.

넷째는 죄는 관계성을 단절시킵니다.

문둥병이 사람과 단절시키듯이, 죄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죄지은 인간은 꽃병에 꽃혀 있는 꽃과 같습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인생입니다. 또 죄는 인간 상호간도 단절시켜 서로 미워하고 분열하고 서로 다툽니다. 요즘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서로 싸웁니다. 진보와 보수는 대적 관계가 아닌 서로 보완의 관계입니다.

이와 같이 문둥병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결과가 치명적이듯이 죄도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사망 이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이 문둥병자에게 놀라운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몹쓸 병도 고쳐 주시고 어떤 몹쓸 죄인도 따뜻이 용서해 주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그를 고무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로 나가는 데에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많은 무리라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는 무리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자의식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더러운 몸을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이 말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믿음이 요구됩니다. 이 곱객또한 불신과 회의의 장애물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같은 사람을 영접해 주실 것인가에 대한 회의, 예수님께서 자기와 같은 고질병을 고치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주위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왔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자신의 추한 모습이 깨끗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깨끗케 됨을 믿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은총과 긍휼을 구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게 자비와 긍휼을 구할 때에 응답하십니다(눅18:9-14).

둘째,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41)

예수님은 그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4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민망히 여기다는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스프랑크니스데이스’인데 이는 심장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어로 filled with compassion, 불쌍한 마음으로 가득차서, 동정으로 가득차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지극히 불쌍하게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이 되고, 그의 슬픔이 예수님의 슬픔이 되고, 그의 고독이 예수님의 고독이 되었습니다.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은 탕자의 비유에도 나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그 날부터 날마다 문을 열어 놓고 아들이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바람 소리에도 혹시 아들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상거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에서 측은히 여긴다는 말이 filled with compassion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달려 나가 더럽고 냄새나는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아들의 누더기를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손에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더러워진 그의 발을 씻기고 신을 신겼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측은히 여겨 아들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그러므로 우리가 큰 죄를 졋다 할지라도 주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떠나 탕자처럼 사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누구를 막론하고 민망히 여기시고 받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민망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손을 댔다는 것은 건성으로 댄 것이 아닙니다. 댔다란 헬라어로 ‘헤프사토’로 붙잡다, 아픈 곳을 골고루 만져 준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손을 대기는커녕 가까이 가기조차 꺼려했습니다.

사람들은 문둥병이 나은 사람과 어쩌다 악수하게 되면 비누로 씻고 수세미로 문지르고 그것도 부족하여 유한락스로 닦을 것입니다. 그리고도 밤에 악몽에 시달릴 것입니다. 손을 댄다는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율법에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초월하여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고독한 내면을 아셨습니다. 그의 깊은 슬픔을 아셨습니다. 그가 사랑에 굶주려 울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아시고 그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궤양이 나서 진물이 샘물처럼 흐르는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사랑의 손길이었습니다. 은혜의 손길이었습니다. 구원과 긍휼의 손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그에게 닿는 순간 예수님의 저미는 사랑의 전율이 온 몸에 흘러 고독과 절망과 슬픔이 사라졌습니다. 그 저미는 사랑에 감동되어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염될 것을 염려하여 ‘5미터 떨어져! 내가 말씀으로 고쳐 주마!’ 하셨다면 병은 나음을 입을 수 있지만 그 내면에 입은 상처는 영원히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미는 사랑으로 내면의 상처를 먼저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처럼 사랑할 수 없는, 가까이 할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사람을 사랑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양들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저미는 사랑을 가지고 도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죄를 짓게 되면 판단하고 정죄하고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는 한 번 전과자가 되면 영원한 전과자로 낙인찍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몹쓸 인간이라도 사랑으로 감싸십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사랑을 구하다가 만신창이가 된 사마리아 여인도 사랑하셨습니다. 38년 중풍병자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파멸해가는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예수님의 원하는 것이 일치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치유가 일어납니다. 나의 원함과 예수님의 원하는 것이 일치가 안 되면 내가 아무리 원해도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원하심과 문둥병자의 원하는 것이 일치됨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그가 믿음으로 나아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소극적으로 고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I am willing)”이 말씀은 그가 낫기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께서 그를 깨끗케 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몸이 깨끗케 되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도 깨끗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여기에는 예수님의 의지와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깨끗케 하심으로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맑고 깨끗한 보배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피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받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위해 당신의 보배로운 피를 음료로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흘리신 피 속에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주님의 피의 잔 속에 그리스도의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영원하고 완전합니다(히9:12). 예수님은 짐승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온전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요1:29).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순결한 보배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깨끗케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속죄는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번에 모든 죄를 깨끗케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어떤 몹쓸 죄인도 구원하고 새 사람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좀 죄를 닦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그 모습대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고 나의 내면을 말갛게 씻어 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진실 되게 죄를 고백할 때 예수님의 피는 모든 불의와 죄악에서 깨끗케 해 주십니다(요한1서1:9,10).

예수님의 피는 죄인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악 된 습관을 끊게 할 수 있습니다(벧1:18,19). 예수님의 피는 거룩한 소원을 주시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합니다(히9:14). 예수님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인간 상호간에도 화목케 합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곧 문둥병이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은 신기하게도 갓 태어난 어린 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는 이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건강진단서를 얻도록 하셨습니다(44).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이 일을 전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예수님의 사역이 방해를 받았습니다(45). 여기에서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름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고 지금도 흘리시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이 보배로운 피로 죄 씻음 받고 순결한 주님의 자녀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보배로운 피로 정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은혜에 강동 되어 예수님을 위해 남은 생을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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