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메시지제1강

조회 수 4182 추천 수 0 2012.07.11 02:06:01
2006년 신년메시지(빌립보서 3:12-16, 요절 3:14)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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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일반적으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늘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는 과거지향적인 삶과, 또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미래지향적 삶입니다. 다시 말해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꿈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대개 나이가 먹으면 미래지향적인 삶보다 과거 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이라 할지라도 꿈과 비전을 상실하고 산다면 과거지향적인 삶을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를 일컬어 애늙은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꿈을 꾸며 꿈을 붙들고, 비전을 가지고 산다면 이는 미래지향적인 삶을 산다고 볼 수 없으며 늙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춘이란 시를 보면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미 빛 얼굴,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고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나오는 정신력을 뜻하며 
청춘이란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 세의 청년보다 
육십 세가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는 것이다.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서 늙는 것이다. 
세월은 사람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사람에게는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그 가슴속에는 언제나 놀라움에 이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이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의 흥미를 그리는 환희가 있는 법이다. 
그대에게나 나에게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마음속에 있다.
아름다운 희망, 희열, 용기, 힘에서 
나오는 영감을 갖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을 것이다. 
영감이 끊어지고 정신이 희미해져서 눈속에 묻히고 
비탄이라는 얼음 속에 갇힌다면 
비록 나이는 이십대라도 그 사람은 이미 늙은 것이다.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팔십 세 일지라도 청춘은 그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새 해가 되어 육신의 나이가 먹었다 할지라도 꿈과 비전만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는 것으로 슬퍼하지 말고, 꿈이 사라지고 비전이 사라져가는 모습으로 인해 슬퍼하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저와 여러분이 비전에 붙들려 앞으로 달려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비전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준비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가꿉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개발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오래 엎드린 새가 높이 날고 빨리 핀 꽃이 먼저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엎드려 비축한 새가 높이 나릅니다. 불후의 명작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무려 8년간,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하여 무려 2,000개의 자료를 수집했고 지금도 그것이 남아 있습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준비합니다. 호박은 6개월, 참나무는 6년, 100년이 걸립니다. 그런 나무에서 열린 열매가 상수리, 그리고 나무의 숯은 참숯이 되어 오래 오래 불을 피웁니다. 그리고 비전을 가진 사람은 따르는 법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제자는 우선적으로 따르는 법을 배웁니다. 좋은 follower가 됩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8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40년간 모세를 따랐습니다. 그는 40년간 2인자로 살았습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훈련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가진 사람은 충성하고 헌신하며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의 바울의 나이는 대개 60세 전후로 봅니다. 지금은 60세 하면 노인축에 끼지도 못합니다만 수명이 짧던 당시의 나이로 본다면 나이가 꽤 먹은 노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바울의 마음속에 벅찬 감격, 타오르는 비전, 끓어오르는 꿈을 붙들고, 그 꿈과 비전을 따라,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이런 미래지향적인 삶, 꿈과 비전을 잃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그는 그 시대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뒤에서 끄는 뉴턴의 제 3 법칙인 작용, 반작용이 작용합니다. 이 때 반작용이 크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퇴하게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이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닙니다(히10:39).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반작용을 이기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첫째, 과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새 역사는 떠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창세기 12:1,2을 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새 역사가 창조되었습니다.  새 역사가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아름다운 창조적인 파괴라고 합니다. 모든 새로운 창조는 익숙한 것들을 파괴하고 떠나고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일어나야 됩니다. 변화는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아상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아상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서 현재와 미래가 결정됩니다. 자아상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자아상은 자신에 대한 이해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미지는 우상을 섬기고 살던 아버지 데라의 이미지입니다. 아브라함은 달 신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우상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의 자아상은 우상을 섬기는 자아상이었습니다. 그의 자아상은 어두웠고 그의 자아상은 운명적이었습니다. 그는 잘 되면 자기 복, 안되면 조상 탓, 우상 탓을 하는 원망과 불평의 어두운 자아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는 쾌락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아상은 쾌락과 탐욕의 자아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는 결정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땅에 묻고 과감하게 열국의 아비로 살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갈대아 우르에서 달 신을 섬기는 자로 살 것인가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도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과거를 땅에 묻고 미래를 행하여 도전하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변화에 적응하는 그런 삶을 살도록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미래를 전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썩은 동아줄을 끊어야 합니다. 매일 과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의 과거가 여러분의 꿈을 좀먹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과거가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여러 분을 과거로부터 풀어놓으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실수와 죄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더 이상 과거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자아상, 밝은 자아상,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8:12).”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무슨 죄를 지었든지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죄를 아파하십시오. 진지하게 죄를 회개하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죄인의 이미지 속에서 살지 마십시오. 더 이상 과거의 죄와 상처가 여러분의 미래를 막지 못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과거의 죄에서 떠나 과거를 땅에 묻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던 살인자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였던 원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죄 용서함을 받고 과거를 땅에 묻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다 지을 수 없었겠지만 과거의 실수와 죄, 그리고 실패가 그로 하여금 현재 일하는 것을 막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과거를 넘어서기 위해서 빌립보서 3:13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기서 바울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과거에 의해 영향이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행해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던 것들을 끊어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거 실패나 슬픔이 그늘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죽인 끔찍한 과거의 노예가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처절하게 과거를 후회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건강한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누가 밝은 자아상을 가진 사람입니까? 누가 밝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입니까? 지나간 과거를 슬퍼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 경건한 사람은 죄 사함의 확신 속에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은총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확신, 새로운 자아상으로 빚어졌다는 확신 속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아상, 밝은 자아상이 되었습니다. 아멘.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1을 읽겠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마라톤 선수는 할 수 있는 대로 가볍게 하고 뜁니다. 수영 선수는 0.001초를 단축하기 위하여 몸에 난 솜털까지 민다고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무거운 것은 헬라어로 ὄγκος(옹코스)로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체중을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장애물은 탐욕과 세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율법적인 생각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합니다. 율법적인 생각은 교만케 하고, 불의에 빠지게 합니다. 반면에 율법의 짐을 벗으면 은혜가 생깁니다. 은혜는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찬송과 감사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은혜의 옷을 입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죄를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습니다. 이를 볼 때에 죄는 얽매이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죄는 ultra bond와 같아서 한 번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따라 붙으면 입을 벌렸다 하면 원망하게 됩니다. 의심이 따라붙으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시기심이 따라 붙으면 사촌은 그만 두고 자식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픕니다. 허무와 절망이 따라 붙으면 죽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죄가 따라 붙으면 말하는 것, 먹는 모습, 걷는 모습, 커피 마시는 모습 등 모든 것이 밉게 보입니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가 미우면 버선 신은 모습까지 믿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욕의 죄가 따라 붙으면 뗄 수 없습니다. 열등감이나 비교의식도 얽매이게 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나쁜 습관들도 얽매이게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벗어버린다는 것은 과감하게 집어치우다, 단번에 벗어던진다는 뜻입니다. 이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하는 차차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단번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단번에 진실히 회개하게 되면 납덩어리처럼 짓누르던 심령이 그렇게 기쁠 수 없게 됩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했을 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침상이 젖기까지 회개했을 때 그 심령에 참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51:1-4).” 니다. 우리가 현실을 이기고 현실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푯대는 부름의 상, 소명입니다. 바울은 부르심, 소명에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만을 위해서, 지옥만 안가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함에 있습니다. 따라서 소명이란 주님의 부르심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 있는, 자기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이게 바로 소명입니다. 이런 소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소명은 불신자들에게는 없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고귀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공통의 보편적인 소명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것, 즉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 그러나 전도를 해도 사람마다 어떻게, 어디에서 하느냐 하는 것은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베드로의 경우에는 자기와 같은 동족인 유태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들을 위한 소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위해서 줄기차게 달려갔습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캠퍼스에 남아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보편적 소명이 있고,  보편적 소명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은사, 독특한 삶의 조건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명 또한 있습니다. 이 구체적인 소명이 분명하고 확고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소명이 확고했습니다. 바울은 이 소명을 붙들고, 이를 향하여 좇아갔습니다. ‘좇아간다’는 것은 영어로 press on으로 강력한 감성이 들어가 있는 단어로, 강력하게 전진하는 뜻이요, 헬라어로는 오랫동안 굶주렸던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한 모습을 말합니다.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바울은 목표를 향하여 무섭게 질주했습니다.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둘째,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못지않게 미래를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떠남이 중요한 것은 만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이면 다윗을 대전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토요일이면 만남의 기쁨이 있습니다. 비움이 중요한 것은 채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괴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창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버림이 중요한 것은 얻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2에서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인내란 헬라어로 ὐπομονἠ (휘포모네)로 전진하는 결의,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장애물이 있더라도 지연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실의에도 좌절하지 않고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외적인 장애물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참고 목적지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실패와 승리는 얼마나 인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과거를 떠나 미래를 향하여 나갔을 때에 중도에서 멈출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그 땅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러다가 뛰다가 힘이 들고 어려우면 상이고 무엇이고 다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러나 초반전에 아무리 잘 뛰어도 인내심이 없어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달린 사람만이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을 때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 비전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식 하나 없는 늙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요 천만인의 아버지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희망은 우리의 삶을 활기 있게 합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목표를 정했으면 全力疾走해야 합니다. 한눈팔지 않고 그 목표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 때 바울은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영광스러운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딤후4:7,8). 
여러분은 Campus ministry와 직장 선교를 위해 소명을 받았습니다. 재학생은 현장에서, 졸업생은 직장에서 복음 전하며 물질로 지원하여 인천의 캠퍼스와 서울 캠퍼스, 더 나아가 세계 캠퍼스, 그리고 내가 처한 직장이란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여 세계 땅 끝까지 복음화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소명을 위해 전심전력하여 질주하십시오. 자기 삶을 투자하고 헌신하십시오. 이 소명을 위해 전심전력하여 질주할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 상급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소명을 성취하는 일, 그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일, 그것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마젤란이 세계를 처음으로 항해로 일주할 때 많은 시련과 난관이 있었습니다. 2년 동안 계획했던 항해가 3년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식량이 고갈되었습니다. 배의 모든 장비가 마모되기 시작했습니다. 파선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몇 사람들이 선상 반란을 시도했습니다. 이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젤란 함장은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계속해서 한가지 단어만을 되풀이했습니다. “계속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마젤란은 드디어 세계를 일주할 수 있었습니다. 
새 해를 출발하면서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새 해에는 과거의 부정적인 자아상을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새 해에는 과거의 썩은 동아줄을 끊으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자아상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새 해에는 과거의 실수와 실패가 당신의꿈과 비전을 좀먹지 말게 하십시오. 과거의 사슬을 담대히 끊고 미래를 향하여 서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1월 1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가십시오. 나가되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계속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새해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신령한 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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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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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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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과 긍정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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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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