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메시지제2강

조회 수 2938 추천 수 0 2012.07.11 02:07:07
2006년 신년메시지 제 2강 여호수아서 7:1-26
승리 후에 조심하라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시기하여 자기 가구 가운데 두었느니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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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는 감격스럽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는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이 달다고 했습니다.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잠13:19).” 그러나 승리는 좋은 것이지만 승리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승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것과 승리를 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승리를 누리는 것이 어려운 것은 대체로 승리 뒤에 오는 공허함과 허탈감, 그리고 교만과 방심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 6장을 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난공불락인 여리고성을 함락하고 놀라운 승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아이 성 전투에서 쓰라린 실패의 잔을 마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6장과 7장은 승리와 패배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볼 때 고난의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할 때가 승리의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겪을 때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번영의 때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칼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역경은 인간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상대이다. 그러나 역경을 견뎌 내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 풍요로움 속에서 자신의 영적 정신적 정서적 균형을 갖춘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갑작스러운 승리는 인간을 쉽게 교만하게 만들고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이로 인해 졸부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패 때문에 몰락하기보다 성공 때문에 몰락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공은 실패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공을 잘 다루지 않으면 성공이 오히려 무서운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공을 포기하거나 승리를 양보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자기 전공에서 top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 속에서 승리를 통해서 배우는 것만큼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실패를 통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워 승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방심은 금물입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백성 중 삼천 명 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심육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정탐하기 위하여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아이 성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아이 성은 아주 작은 성이기 때문에 많은 병사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의 보고의 말만을 듣고 아이 성을 우습게 생각하고 3,000명 쯤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이렇게 패배한 이유는 여호수아가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방심은 대체로 자신을 과신하는 교만에서 옵니다. 사자는 하찮은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도 혼심을 다하여서 잡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적당히 싸워도 아이 성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방심하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이 방심하게 되면 기도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여호수아는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요단을 건넜을 때에도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그는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아이 성 전투에서는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승리의 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위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위기는 믿는 자들에게 하나의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정말 위기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승리의 순간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승리의 순간 어제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의 때, 무슨 일이 잘 된다 싶을 때, 성공의 때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승리를 계속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방심하게 되면 작은 것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여리고성에 비해 아이성은 아주 작은 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곳에 사는 거민도 소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3절을 보면 정탐꾼이 소수라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그 소수 앞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물같이 마음이 녹았습니다(5). 대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좀 되는 듯싶으면 작은 일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25:21)” 그리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우리는 작은 일에 소홀히 여기기 쉬운데 작은 일에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방심하여 작은 것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가랑비가 옷을 적신다는 말이 있지요? 큰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은 폭풍이 아니라 작은 좀 벌레입니다. 좀벌레가 밑둥을 갉아먹을 때 한순간 무너집니다. 큰 대궐을 무너트리는 것은 광풍이 아니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대들보를 갉아먹을 때입니다. 이를 볼 때 작은 것에 소홀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아가서에서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유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2:15).” 적은 누룩 한덩어리가 개인이나 공동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방심은 모든 화의 근원입니다. 방심하지 않는 길은 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누구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까? 베드로가 방심했을 때 병사 앞에서가 아니라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부인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늘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따라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무슨 일이 잘 된다고 생각될 때 자신의 강한 모습을 드러내지 마십시오. 물이 차면 넘치게 되고, 강하면 부러집니다. 강하다 싶으면 자신을 낮추십시오. 넘치면 나눠주고 섬기어 비우는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은 늘 연한 순같이 사셨고 약한 어린양처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부드러우셨습니다. 언제나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에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방심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원인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잠16:18,18:12,1:32). 교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보다는 자기를 의지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할 때 교만하여집니다.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 사람은 첫 사람 아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에 사단과 동역하여 하나님께 대적하였습니다. 또한 바벨탑을 쌓은 사건도 바로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를 일컬어 망령된 자라고 하였습니다(잠21:4,24).
둘째, 탐욕은 금물입니다(1). 6:27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수6:27).” 여리고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리할 때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영어 성경에 보면 But(그러나)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이 참패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아간이란 사람이 범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심으로 아이 성 사람들로부터 대패하게 되었습니다.
6-9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으로부터 대패하자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참모회의를 통해 문제를 찾지 않았습니다. 참모회의를 통하여 작전을 짜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 앞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릎 쓰고 해가 저물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 명예가 이방 사람들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는 문제에 매이기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그 문제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가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어 물건을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에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간 한 사람의 범죄를 전 이스라엘의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결케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죄인을 드러내시고 드러내신 후에 그와 온 가족 그의 모든 소유를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치고 불살랐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처럼 아간의 죄를 철저하게 다루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었기 때문입니다. 아간이 범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과 또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불순종한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의 권위입니다. 그런데 아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무너진 영적 지도자의 권위가 세워져 공동체의 질서를 확립케 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죄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죄는 반드시 누룩과 같이 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작은 죄나 큰 죄나 동일하게 여기시고, 죄를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죄는 사람들의 앞길을 막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죄는 자신을 파괴합니다. 죄는 가족을 파괴합니다. 죄는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죄는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죄가 미치는 곳마다 파괴가 임합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승리는 전체의 승리입니다. 반면에 한 사람의 범죄는 전체의 범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유기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간의 범죄는 전체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간의 범죄로 아들딸들까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죄악 때문에 자녀들까지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미워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자신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 공동체에 무서운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다루십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아간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반드시 장성하고 오염됩니다. 누룩과 같이 번져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곧 한 사람의 범죄는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죄의 뿌리를 뽑으십니다. 이런 것들을 눈 감아 주면 아주 무섭게 번져 이스라엘 전체에 퍼져 수습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철저하게 아간의 문제를 다루신 것입니다.
적은 밖에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데 있었습니다. 내부에 있었습니다. 그 적은 탐욕이었습니다. 탐욕은 더욱 더 많이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불의한 방법으로 탐하는 것입니다. 소유할 권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소유하려는 굶주린 욕망입니다. ‘탐심’이란 헬라어로 움켜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단 선악과만을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자신의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탐해서 따먹은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의 범죄도 탐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탐심을 경계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모든 죄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게 장성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그가 훔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그것을 탐하는 탐심이 있었습니다. 탐심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말과 행동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탐심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물질의 탐심, 명예의 탐심, 이 마음 때문에 각종 죄가 생깁니다. 살인, 시기, 질투, 컨닝, 미움 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형제는 자매의 마음을, 자매는 형제의 마음을 움켜쥐고자 마음을 뺏습니다. 이것은 아주 악한 마음이요 죄악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열성을 뺏는 것보다 낫습니다(잠16:32). 가나안 사람들이 외부의 적이라면 아간은 내적인 죄인 것입니다. 내적인 죄는 탐심입니다.
우리가 탐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동사가 나오는데 잘 보세요. 보고 탐내어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죄는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보았기에 상상했고 상상함으로 탐욕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취했습니다. 그리고 감추었습니다. 창세기 3:6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둘째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족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인간은 욕심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을 다스림으로 행복하게 됩니다. 풍성한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한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자족한 삶은 욕망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고 베푸는 것이 자족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삶에 있습니다.
16-21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 결과 유다의 족속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아간은 자기 아내를 위하여 시날산 외투 한 벌, 그리고 아내의 반지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금 50세겔, 은 100세겔을 훔쳐 자기 마루 밑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러면 아간이 범죄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21a절을 보면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 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어리 하나를 보고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악된 백성과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죄악된 마음을 회개하고 성결케 될 때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이 성을 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결케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했을 때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금년에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죄악된 탐심을 몰아내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금년 기도 제목을 붙들고 줄기차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멘!
이상에서 우리는 승리자의 장애물은 방심과 탐욕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복해야할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고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경계선이 있습니다. 경계선이 넘어서는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는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즉시 자복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남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이 바로 실패의 원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요일1:9).” 우리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입니다. 아간은 끝까지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게 되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께로 나와 지속적으로 승리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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