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제6강

조회 수 2752 추천 수 0 2012.07.11 02:17:57
사도행전 제 6 강(말씀, 2:22-36, 요절 : 2:36)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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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사렛 예수님은 일생동안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22, 참조, 행10:38)? 일생동안 착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누가 누구의 손을 빌어 죽였습니까(23)?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어야 했습니까?

2.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24)? 다윗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습니까(25-28)? 왜 예수님은 무덤에 계속 계실 수 없었습니까?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을 어떻게 증거했습니까(29-32)?

3. 하나님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높이셨습니까(33-35)? 이 사건이 성령 강림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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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신가? 찬송가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찬송가 94장을 부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되시네♪ 이 찬송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사실적으로, 성경 말씀을 들어서, 그리고 구원 받은 백성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우주적 사건인 동시에 개인적이고 실존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인홀드 베버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내 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가장 부끄러운 이야기이고 가장 저주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가장 귀하게, 가장 영광스럽게, 가장 놀라운 기적으로, 능력으로 받아들일 때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이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은 한 인간이셨습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나사렛 예수’란 메시야의 명칭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38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큰 권능과 능력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더럽고 추한 문둥병자를 어루만져 깨끗하게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워 걷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의 병을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주의 은혜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일생동안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오셨고,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찬송가 84장을 부르겠습니다.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나 그 때에 확실히 소경이 눈을 뜨는 것 보았네 그 갈릴리 오신이 능력이 나를 놀라게 하였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 나 뵈옵고 그 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
둘째,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예수님은 일생동안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법 없는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부끄러운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고전1:23).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밥 먹을 때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십자가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너무 끔찍한 형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끔직한 형벌이냐 하면 십자가형은 물과 피가 다 쏟아져 진이 다 빠지고,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1,000번 이상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이 고통이 길면 3일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사람들에게는 힘이 정의였습니다. 지혜를 대표하는 헬라 철학도 로마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명분이고 진리이고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힘이면 모든 것이 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기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힘없는 그런 예수를 믿을 수 없다, 그런 예수는 미련한 사람이나 믿는 것이다, 우리 같이 고상한 철학과 진리를 논하는 지성인들은 예수를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대 성도들은 착한 일을 행하신 주님께서 처참하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것도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스승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십자가형에 처형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같으면 십자가에 죽은 그 분이 나의 스승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마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어쩌다가 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예지하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서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흐르는 사상은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죄를 분별하고 범죄하지 않도록 법을 주셨습니다. 반면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범한 인간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구약의 각종 제사법은 십자가에 대한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희생 제물인 어린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무력한 것이 아니라 힘의 원천입니다. 십자가가 승리와 영광과 힘의 원천임을 안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의 반대는 자랑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합니까? 아니면 사랑합니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기뻐하여 전합니까? 그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나 예수를 믿는다”고 드러내놓고 예수 믿는 사람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를 전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우리 중에도 사람들 앞에서 예수라는 말을 입에 뻥끗하지 못하는 벙어리 신자, 두더지 신자들이 있습니다. 복음 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8:38).”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향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그 동안 믿은 것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 죄책감과 죄의식으로부터의 구원,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구원,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회복이요 치유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두 가지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을 죽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죽입니다. 십자가는 교만을 죽입니다. 십자가는 위선을 죽입니다. 십자가는 거짓을 죽이고, 불신을 죽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죽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영접하는 순간 신기하게 이런 죄악과 죄의 속성을 죽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긍정적으로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삶의 존재가치가 살아나고, 존재의미가 살아납니다. 비전과 꿈이 생깁니다. 은혜가 생기고, 생의 보람을 찾게 됩니다. 병든 내면이 치유되고, 육신의 질병이 치유됩니다. 사랑과 용서가 생깁니다. 낮은 자존감이 높은 자존감으로 변화됩니다. 좌절과 절망 중에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깁니다. 십자가는 승리와 영광과 구원의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님이 일생동안 착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이것으로 우리의 메시야, 구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우리의 최대 원수는 사망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이 예수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25-28절은 시편 16:8-11의 인용된 말씀으로, 이 말씀은 부활을 예언한 중요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27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절대로 썩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무덤 속에서 썩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죄와 상관이 없는, 분리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3일 만에 이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거룩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4,5을 읽겠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과 긍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나도 부활했습니다. 생명이 임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안목,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역사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성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사망의 그늘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사망의 그늘이란 무(無)자가 들어가는 단어들로서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무의미, 무표정, 무정함, 무책임, 무관심, 허무 등입니다. 이런 단어들이 나의 입과 표정에서 사라지고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났다니! 사람들은 불치의 병을 앓다가 치료받아 낫기만 해도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9-3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의 두 가지 사실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선지자로 일찍이 주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시편 16편에서 ‘나’가 다윗자신을 가리킨다면 다윗의 묘가 지금까지 우리 중에 없어야 하는데, 우리가 다윗의 묘를 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가장 위대한 인물로 보는 다윗이 전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부활을 변증하였습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32절을 보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스라엘은 2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증거의 효력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예를 들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보았다고 증거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고 체험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했습니다(29). 그는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러분은 주님을 믿습니까?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33-36).예수님이 부활로 끝났다면 나사로의 부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하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3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이 말씀은 시편 110: 8 말씀입니다. ‘발등상’이란 왕이 발로 밟는 발판을 말합니다. 왕이 보좌에 앉으면 그의 발을 발등상에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네 원수로 발등상이 되게 한다’는 것은 원수를 발로 완전히 밟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원수를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그리스도를 어디에 있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천사도 감히 앉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만이 앉을 수 있습니다. ‘앉으라’는 말은 어떤 임무를 다 마치고 난 다음 임무가 주어질 때까지 잠시 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로 엄청난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하셔야 할 일은 원수를 완전히 밟을 때까지, 마귀를 완전히 박멸할 때까지 잠시 쉬십니다. 마귀의 완전한 박멸은 재림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쉬고만 계십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두 가지 일을 하십니다. 하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 hot line을 타고 바로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요한 계시록5:7,8과 8:3,4을 보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금 대접, 금향로에 담아두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린 기도, 주님의 뜻대로 드린 기도는 금 대접과 금향로에 담아 모두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요한복음 16:7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가셔야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성령이 오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심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이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든 자들과 성령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한량없는 성령을 부어주시어 그들이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모든 죄를 물리치게 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마귀의 모든 거짓과 술수와 불신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은혜의 영이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하고 상한 우리의 심령을 치유하여 주시고, 영혼에 새 힘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사단의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십니다. 그 때까지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사탄의 세력과 싸웁니다.
결론적으로 36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아름다운 메시지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다(23).”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36).” 베드로는 바로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사람들로 예수님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는 바로 그들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교만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불순종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정욕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배은망덕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감사치 않고 불평한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안일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나의 거짓과 술수와 위선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러한 나의 죄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를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그 뜻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와 그리스도는 사도행전적 신앙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주’는 노예와 주인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주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의 대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시어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하나님 보좌에 앉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 한량없는 성령을 주셔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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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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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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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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