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제8강

조회 수 2839 추천 수 0 2012.07.11 02:18:30
사도행전 제 8강(말씀, 2:42-47, 요절, 2:42)

초대 교회의 특징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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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특징이 어떠합니까(42)? 가르침의 받음과 교제와 기도의 중요성을 말해 보시오.

2.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해 어떤 자세를 가졌습니까(43)? 이들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43-45)?

3. 구원받은 성도들은 세상에 대한 자세가 어떠했습니까(46,47).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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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회의 모습하면 우리는 언제나 초대 교회를 떠올립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초대 교회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나 예수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생활 철학, 예수님의 교훈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인 사건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사건을 경험하고,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의 산 증거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모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좋은 교훈을 듣기 위하여, 좋은 생활 규범이나 윤리를 배우기 위하여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순간순간 강렬하게 느끼며 의식하며 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성령으로 강림하시어 저들의 생활 속에, 저들의 심령 속에 살아계심을 강렬하게 느끼며 모였습니다. 그들은 영적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함께 하심을 의식하며 모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초대 성도들과 같이 우리의 삶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고 체험하고 의식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학자는 초대 교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배우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예배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로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버클리라는 성경학자는 열 가지로 열거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첫째, 초대 교회는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42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쓰니라(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the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er.).” ‘힘쓰다’는 단어는 영어로 devoted, 헌신하다, 주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데 헌신했고, 서로 교제하는데 헌신했고, 떡을 떼는데 헌신했고, 기도하는데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로부터 배우는 것에 헌신을 했습니다. 헌신은 시간과 물질과 자신을 드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들은 배우는데 시간을 드렸습니다. 배우는데 물질을 드렸습니다. 배우는데 자신의 마음을 드렸습니다. 대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는 직통 계시를 받는다며 자신의 주관적 체험에 만족하여 성경을 읽거나 배우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보십시오. 초대 성도들은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그들은 여전히 모여서 더욱더 열심히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이 건강한가, 건강하지 않은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밥맛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압니다. 밥맛이 없으면 일단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반면에 건강한 사람은 입맛이 좋습니다. 소화도 잘 시킵니다. 건강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맛있게 잘 먹습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말을 씀이 맛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해도 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들어도 질리지 않고, 또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합니다. 듣지 않으니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기쁨이 없고, 성장할리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배가 부른 사람입니다. 배가 부르다는 것은 영적으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려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배우는 마음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다 안다며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고개를 숙이고 배우려고 합니다. 가르치기에 앞서서 듣는 자세가 앞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천국이 임합니다. 마태복음 5:3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부르면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찬물과 간장, 그리고 보리밥도 없어서 못 먹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성경만 읽어도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습니다. 북한 지하 교회 성도들과 중국 지하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만 읽어줘도 눈물 콧물 흘리며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초대 성도들은 말씀이 갈급하였고, 겸손했기 때문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데 헌신했습니다. 사도들은 학문이 많은 바리새파 출신이 아닌 배우지 못한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말씀을 전했을 때 저들이 학문이 없는 갈릴리 촌놈들이 아니냐고 조롱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 무릎 아래 엎드려 배웠습니다. 요한 앞에 엎드려 겸손하게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겸손하기 때문에 성장하였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학문을 듣기 위하여, 신학 사상을 듣기 위하여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배우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보혈의 능력을 듣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영적으로 겸손한 사람입니까? 성경을 배우는데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닌,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권능과 십자가의 고난을 배우는데 자신의 삶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리신 그 놀라운 사랑과 그 은혜를 체험하기 위하여 배우는데 열중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는데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자신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에 영적인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보혈의 은혜와 중생의 체험과 성결이 있고 영적인 체험이 있습니다. 아멘.
둘째, 초대 교회는 교제하는 교회였습니다. 교제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교제란 하나님의 가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서로에게 헌신하는 사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요일 3: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됩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의 삶은 믿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어디에 소속되느냐의 문제입니다. 혈육의 가족 공동체는 이 세상으로 끝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 나라에게 이르기까지 영원한 관계입니다.
우리가 교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첫째로 우리 인간은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교제는 서로가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살아가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함께 동행할 존재로 빚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몸을 주듯이,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제는 안전하고 더 멀리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혼자 여행을 해 보세요. 따분합니다. 혼자 걸어보세요. 멀리 걷지 못합니다. 그러나 둘이 여행을 하면 피곤한 줄 모릅니다. 둘이 걸으면 더 멀리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여정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여정은 길고 깁니다. 혼자는 걸을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하며 걸어야 하는 순례의 길입니다. 셋째로 교제는 시너지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4장을 보면 두 사람의 합심이 얼마나 시너지 효과가 있는가를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4:9을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눈송이는 무력하나 많은 눈송이가 뭉치게 되면 교통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제는 귀한 것입니다. 넷째로 무엇보다 나를 가다려 주며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제가 필요합니다(벧전3:8). 우리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면 그 기쁨이 배가 되고, 어려울 때 함께 울어주면 그 슬픔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교제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교회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가족애를 가지고 서로 뜨거운 교제를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이들의 구체적인 교제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들은 서로에게 배려했습니다. 44,45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지구상을 보면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고, 다른 한 쪽에서는 잉여농산물이 넘쳐나서 버리는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서로 필요를 따라 나눠줬습니다. 얼마 전 파키스탄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병원치료를 받지 못해서, 먹을 것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정성스럽게 구제헌금을 드려 도움이 필요한 그들을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초대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기도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였습니다. 특별한 소원이 있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이기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척도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기도생활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기도에 비례합니다. 요즘 민경숙 자매님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신뢰가 가고, 믿음이 갑니다. 기도는 신앙과 비례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기도의 비밀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에 보내 놓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의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출17:10,11).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손을 들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8을 보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십니다. 우리 대신 싸우십니다.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일하십니까? 우리가 무릎을 꿇을 때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윌리암 카우퍼는 이 승리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싸우기를 중단하는 것,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병기를 번쩍이게 만드는 것, 사탄이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가장 연약한 성도가 무릎을 꿇을 때이다.” 그렇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우리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기도에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승리하기를 원합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일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면 성공은 짧은 시간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데에는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략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곳에 지혜와 전략이 있고 집중력이 있습니다. 공부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실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의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기도의 손은 능력의 손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손 위에 함께 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의 손은 긴 손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향력은 전 세계를 향하고 영원을 향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곳에 사탄이 일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놀라 도망가 버립니다. 기도하는 곳에 자연히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피곤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여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아멘.
넷째, 초대 교회는 떡을 떼며 기뻐하는 교회였습니다. 42d절과 46절에 보면 떡을 떼었다,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을 의미하고 애찬도 의미합니다. ‘성찬’은 구원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것과 더 나아가 성도가 한 형제임을 확인하고 사랑의 나누는 것입니다. 그들은 매순간 주님의 보혈로 구원 받은 은혜와 기쁨을 새롭게 하고, 한 형제가 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다섯째, 초대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였습니다. 43절을 보겠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두렵다’는 것은 믿음 안에서 신령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영적인 권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모름지기 교회에 들어올 때에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전5:1).” 그렇습니다. 발 한 번 딛는 것도 삼가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권능이 있었기 때문에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영적으로 회복과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표적하면 치유와 회복만을 생각하는데, 치유와 회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이적도 있고, 살리는 이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이적도 있습니다. 아나니와 삽비라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영적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때로 실패도 주시고, 질병도 주시고, 고통도 주십니다. 우리는 여러 이적을 통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초대 교회는 칭송 받는 교회였습니다. 47a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칭송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에 영향력을 끼쳤음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믿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말에 있어서, 삶의 태도와 행동에 있어서 뭔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칭찬을 받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먼저 언어가 달라야 합니다. 언어는 마음에서, 마음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언어 속에 그 사람의 존재가 담겨져 있고, 그가 늘 생각하는 소원과 그의 기질, 지식, 사고의 틀과 태도, 그리고 마음의 습관이 담겨져 있습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 믿음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어는 생명과 같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혀에 달려 있습니다(잠18:21).
언어는 작은 씨앗과 같지만 씨앗 속에 생명이 약동하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 속에 생명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심으면 그 언어가 생명이 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언어를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죽은 언어를 심으면 죽게 되고, 사는 언어를 심으면 살게 됩니다. 그리고 언어는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네가 말하는 대로 될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믿음을 반영합니다. 우리의 말 속에 꿈이 담겨져 있고, 우리의 말 속에 미래가 담겨져 있습니다.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를 따라 하나님은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 말을 따라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기도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언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삼가야 합니다.
제임스 맥도날드는 축복받는 삶을 위한 5가지 습관에서 비방하는 언어의 위험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방이란 어떤 사람에 관해 부정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대개 비방하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고 아끼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비방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알지 못하는 맹점을 갖고 있습니다. 공기가 우리 주위에 있지만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방을 삼가십시오. 비방 속에는 시기와 질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악평하는 언어를 삼가라고 했습니다. 악평은 좋은 것을 좋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점을 좋게 여기기보다는 나쁘게 여기는 좋지 못한 단점이 있습니다. 악평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싫어하면 무조건 악평하고,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것은 무조건 악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남을 악평하는 사람은 자신까지도 악평합니다. 또 하나는 원망하는 언어를 삼가라는 것입니다. 원망의 뿌리는 악평에 있습니다. 악평하다 보면 원망합니다. 비방과 원망과 악평은 결국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언어는 “할 수 있다, 행하여야 한다는 헌신의 언어, 감사, 칭찬” 등입니다. 특히 감사의 언어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감사란 받은 것을 받았다, 받을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미래를 창조합니다. 우리의 입술 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담겨져 있습니다(골3:17).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은 부정적인 언어를 긍정적인 언어로, 비방하는 언어를 감사로, 불신의 언어를 확신의 언어로, 자기 중심의 언어를 헌신의 언어로, 주신 것을 늘 감사했습니다. 그들의 그런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감자탕 교회 이야기를 보면 성도들은 목사를 칭찬하고, 성도들은 서로를 칭찬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한국 교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특징은 찬양하는 교회, 모이기를 힘쓰는, 예배를 사랑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교제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떡을 떼며 기뻐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칭송 받는 교회였습니다. 예베와 찬양과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니 우리가 초대 교회의 반만이라도 닮은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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