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 23 강(말씀, 9:1-18, 요절 9:15)

사울은 나의 택한 그릇이라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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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사울을 바꾸셨고, 사울은 세계와 역사를 바꾸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과장 된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은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이 인류 문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이전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사도행전 7,8장을 보면 극악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첫 순교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유대교 신봉자 중의 신봉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인류를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은 아주 극적이고 동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극적인 변화를 바울의 변화로 동격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허랑방탕했는데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음을 바울과 비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허랑방탕하다가 예수를 믿고 변화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가 도덕적인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열렬한 유대교 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바꾸었습니다. 따라서 부도덕한 생활을 하다가 예수를 믿고 나서 바울과 같이 회심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바울과 같이 극과 극의 변화를 원합니다. 그런 변화만이 진정한 변화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만이 회심은 아닙니다. 회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과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입니다. 프린스턴 대학생들의 1,000명 중심으로 회심을 경험했는가를 물어보았는데 330명이 회심의 경험을 말했고 그 중에서 18명이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 정도가 급격한 변화를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점진적인 변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1,2년, 길게는 5년 10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저는 콩나물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순식간에 다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콩나물이 자랍니다. 시간 안에서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을 들으면서 변화합니다. 이런 사람이 800명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변화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무의식적인 변화입니다. 소위 모태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부터 변하는지 자기도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교회 오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오갑니다. 이런 사람은 기독교 문화에 문화화 사회화되어 있어 기독교 문화에 젖어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가 그의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에 사회에 나아가 한계 이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면에 예수님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재건적 회심입니다. 미온적인 사람이 어떤 곤경이나 어떤 역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 신앙의 깊이를 더하면서 확 달라지는, 중생을 체험하는 그런 변화입니다. 마지막으로 계획된 회심입니다. 수양회 때에 회심한 사람 앞으로 나오세요. 그러면 벌떡 일어나 강대상으로 달려가는 그런 회심입니다. 이런 회심은 자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화끈한 경험이 없다고 해서 중생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한 고백적인 신앙의 경험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청년 사울이 바울로 급변하는 말씀입니다. 청년 사울이 변화되었다. 여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청년의 시기를 프로이드는 잠복기라고 하고, 아동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은 자아정체감 형성의 중요한 시기로 보았고, 스탠리 홀은 질풍노도(storm and stress)시기라고 했습니다. 청년기는 힘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시기입니다. 또 이 시기는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시기이기도 하고, 또 이 시기는 무엇인가 목숨을 걸고 할 일을 찾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나머지 인생이 거의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청년기에 어떤 신앙 훈련을 받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하여 단 한번 밖에 없는 귀한 청년기에 존귀하신 주님을 만나 고귀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포로 된 사울(1-9)

사울은 성도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무서운 살인자의 독기가 서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거룩한 성도의 순교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고 교회를 잔멸하고자 철저한 수색작전을 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만은 부족하여서 먼 다메섹까지 가서 성도들을 잡아오고자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청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약 240㎞, 일주일 걸리는 꽤 먼 거리입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프로필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헬라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다소는 학문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는 히브리 인중의 히브리인으로(빌3:5,6),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행22:1-3).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귀화한 로마 시민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파 중에 정통파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모세 이후의 최대 선생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힐렐이라는 대 스승의 손자인 가말리엘의 제자였으며 골수 유대교 신봉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비친 예수교는 이단 중의 이단이었습니다. 저런 이단은 토벌의 대상이었고, 나사렛 예수는 철저하게 대적해야 할 대적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당을 이 땅에서 싹쓸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울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였습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췄습니다(3b). 시간은 환한 대낮, 정오였습니다. 그가 명상하거나 기도하던 중이 아니었습니다. 꿈을 꾼 것도 아니고, 환상을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경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데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환한 빛이 순간적으로 바울을 비추자, 바울이 그만 땅에 꺼꾸러졌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교회를 핍박하는 그를 예수님은 나를 핍박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와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하셨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사랑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를 핍박하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너희를 핍박하는 자는 나를 핍박하는 것이요 너희를 거역하는 것은 나를 거역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는 음성을 듣고 묻습니다. “주여 당신은 뉘십니까?” 사울은 혼비백산의 순간에도 감히 당신은 누구입니까? 묻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5b).”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죽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을 했지 예수님을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는 길이지 예수님을 잡으러 가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나를 핍박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울은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핍박했고, 예수님께 대항했고, 지금 다메섹으로 가는 것 또한 예수님을 핍박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6).”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순식간에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모습에서 이제는 눈 뜬 장님이 되어 남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핍박자 사울을 체포하셨습니다. 사울을 체포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성도들의 고난에 동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핍박 받고 있는 성도들을 자신이 핍박을 받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성도들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 계셨습니다. 아니 성도들이 받는 고통보다 더 고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돌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엡5:23).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의 빛, 영광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이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 사울의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빛으로 찾아오신 것은 어두움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의 대표적인 상징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교만은 성령의 역사를 대적하도록 합니다. 교만은 자기 자랑으로 나타납니다. 교만은 영적인 무지를 가져다줍니다. 무지한 열심이 사울을 어두움의 자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이 빛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친 영광스런 부활의 빛이었습니다. 이 부활의 빛, 이 생명의 빛, 이 영광의 빛이 사울에게 임하자 그를 지배하던 어두움이 순식간에 물러갔습니다. 죽어가던 그의 영혼이 소생했습니다. 감겼던 그의 영적인 눈이 뜨였습니다. 이때 인간 사울은 죽고 새사람 바울이 탄생했습니다. 그 순간 죄의 종에서 의의 종, 사단의 종에서 그리스도의 종, 불순종의 종에서 순종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울과 예수님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어두움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고, 불의가 진리를 이길 수 없고,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빛, 생명의 빛, 영광의 빛이십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어두움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택한 그릇이 된 사울(10-18)

예수님은 사울을 체포하신 후 그를 위해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환상 중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직가로 가서 사울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나니아가 사울이 어떤 자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이때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15,16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울에게로 가라.” “사울을 만나라.” “사울은 나의 택한 그릇이다”고 하셨습니다.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릇이 무엇입니까? 그릇이란 물건을 담는 용기를 말합니다. 그릇, 용기(容器)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칼은 의사 선생님이 사용하면 생명을 살리는데 쓰임 받고, 강도가 사용하면 생명을 죽이는데 쓰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죄와 마귀가 사용하게 되면 죄와 마귀에게 쓰임을 받아 불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지금까지 죄와 율법주의가 사울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사울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릇은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인간이 위대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인간 조건이나 형편에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내 인생은 달라집니다. 보배를 담으면 보배가 되는 것이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가 됩니다. 수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의 요강을 가지고 가서 맛있는 초코렛과 빵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 사기요강을 보면 사군자가 그려져 있거든요. 요강이 맛있는 초코렛을 담으니 초코렛 그릇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그리고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나니” 지금까지 사울이라는 그릇에는 살기가 담아 있었습니다. 유대교라는 율법주의가 담아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그릇에는 자기중심이 담아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그릇에는 자기 열심히 담아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그릇에는 자기 이름과 명예가 담아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그의 그릇에는 자기완성이란 것이 담아 있었습니다. 그의 그릇에는 자기 의와 자기 자랑이 담아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도 초대 왕인 사울의 이름을 따서 사울이라 지었습니다. 사울이란 큰 자, 왕이란 뜻입니다. 그는 큰 자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그는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진노의 그릇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울은 예수님의 택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울의 그릇에는 보배, 복음이 담아 있습니다. 이제 사울의 그릇에는 주님의 명예가 담아 있습니다. 그의 그릇에는 주님의 영광이 담아 있습니다. 그의 그릇에는 주님의 영광의 빛과 사랑과 은혜가 담아 있습니다. 그의 그릇에는 진리가 담아 있습니다. 그의 그릇에는 이방인 선교라는 놀라운 사명이 담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사울은 히브리 문화와 헬라 문화를 섭렵한 당대의 석학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공통 언어이었던 헬라어를 유창하게 하였고 히브리어도 능통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또 그는 놀라운 충성심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방향만 잘 잡아주면 크게 쓰임 받을 그릇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지식, 열심, 학문, 언어를 쓰셔서 이방인과 세상 왕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릇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란 존재는 연약하고 쉽게 깨지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나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연약합니까? 나란 존재는 놋그릇이 아닙니다. 은그릇이 아닙니다. 금 그릇이 아닙니다. 진흙으로 빚은 토기입니다. 얼마나 연약합니까? 그러나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보배를 담으면 보배로 쓰임 받게 됩니다. 보화 되신 예수님을 담으면 영광이 임합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복음음서에는 보배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 모양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생명의 주이십니다(요1:4). 예수님은 목마른 인생들에게 영생수를 주시는 영생의 샘이십니다(요4:14). 예수님은 배고픈 자의 생명의 양식이십니다(요6:35). 예수님은 소경의 빛이십니다(요9:5). 예수님은 사망권세에 신음하는 인생들의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요11:25). 예수님은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자의 선한 목자이십니다(요10:11). 예수님은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회복자요 치유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은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이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입니다(고후5:17). 예수님은 저주의 자식을 축복의 자녀요, 마귀의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십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자를 희생적인 자로, 교만하고 거친 내면의 소유자를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쓸모없는 자를 유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롬1:16). 죄로부터의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운명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슬픔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죄 사함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삶의 존재가치와 존재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높은 자존감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의 보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치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큰 뜻을 두시고 주권적으로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주권대로 구속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자기 그릇을 비우고 복음으로 채웠습니다. 그는 이방 세계에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의 그릇으로 살면서 많은 핍박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이 조각되고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사람을 택하여 주님의 그릇으로 삼으시어 만민 구속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젊은 청년기인 여러분이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 되어 보배로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 만민에게 전하는 택한 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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